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753
753회. 따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웅천주.
녹수성.
북부대수림 초입.
정오 무렵.
칠백여 명의 천족 무사들이 들판 위로 기러기처럼 부드럽게 떨어져 내렸다.
북부군 사령관 프리타 우베르토의 직할 부대다.
연적하는 뜨거운 햇볕을 피해 나무 그늘 아래에 철퍼덕 주저앉았다.
그런 그를 향해 북부군 사령관과 참모장이 다가갔다.
연적하가 고개를 들어 올리자 퀴리아노스 참모장이 정면의 숲을 가리켰다.
“저기가 웅천주 북부에 있는 대수림입니다. 세 개 정도의 성(省)을 합친 면적으로 웅천주에서는 ‘북부대수림’이라 부릅니다. 금산산맥과 연결되어 야수로 들끓는 위험한 곳 이지요. 천독곡 북쪽에서 멀지 않으니 마왕도 저리로 들어갈 겁니다.”
“세 개의 성을 합친 면적이면 엄청 넓네요?”
“그렇습니다. 웅천주의 북쪽은 거의 ‘북부대수림’이라 생각하시면 됩니다.”
“그렇게 넓으면 마왕을 찾는 데 어려움이 있지 않아요?”
“북부대수림에서 금산산맥으로 들어가려면 대수촌이라는 곳을 지나야 합니다. 대수촌에 있으면 마왕이 알아서 찾아올 겁니다.”
“대수촌? 그렇게 위험한 곳에도 마을이 있어요?”
“지금도 마을이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기록상으로는 대수촌이라는 마을이 있습니다.”
연적하가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한편으로 사람들이 그런 곳에까지 정착했었다는 게 신기했다.
“사람들은 왜 그렇게 위험한 곳에 정착했을까요?”
“어쩌면 야수 사냥을 업으로 하거나 범죄자들일 수도 있습니다.”
퀴리아노스 참모장의 말에 크리스 부관이 덧붙였다.
“성주나 현령의 폭정을 피해 달아난 사람들일 수도 있습니다.”
“물론 그럴 가능성도 있습니다.”
퀴리아노스 참모장은 부정하지 않았다.
대수촌은 기록상으로만 있을 뿐 자신이 직접 확인한 곳이 아닌 까닭이다.
연적하는 대수림으로 시선을 돌렸다.
울창한 나무에 가려 숲 안쪽은 보이지도 않았다.
그저 어쩌다 한 번씩 간헐적으로 정체를 알 수 없는 야수의 울부짖음만 들려왔다.
이제 북부대수림의 언저리인데도 저렇다면 안쪽은 더 심하리라.
그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아무리 사람의 적응력이 뛰어나다 해도 북부대수림에서는 불가능할 것 같았다.
***
사흘 후.
북부대수림.
북부대수림의 나무 위로 한 무리의 천족이 날아가듯 달려갔다.
천족 북부군 사령관 프리타 우베르토의 직할 부대다.
그들을 이끌고 있는 천족은 퀴리아노스 참모장이었다.
쉬지 않고 주위를 살피던 퀴리아노스 참모장의 얼굴이 어둡게 가라 앉았다.
‘여기 어디쯤 대수촌이 있어야 하는데…….’
대수촌의 위치는 이미 머릿속에 암기하고 있었다.
그런데 아무리 주위를 둘러봐도 마을이라 할 만한 것이 보이지 않았다.
인간들의 마을도 대수림에 먹혀 버린 것일까?
고민하는 그의 귓가에 야수의 거친 포효 소리가 들려왔다.
그것뿐이었으면 그냥 스쳐 지나가고 말았을 것이다.
쉬지 않고 울부짖는 야수의 포효 소리에 인간들의 외침이 섞여 있었다.
멀리 금산산맥이 보일 정도로 깊은 대수림에 인간이라니?
‘대수촌 사람들이다!’
정면으로 달려가던 퀴리아노스 참모장이 소리를 향해 방향을 꺾었다.
이윽고 칠백여 명의 천족 전사들이 그를 따라 방향을 전환했다.
“홍! 창을 던져!”
“죽어랏! 쫌!”
“마이! 뚜안! 밧줄 당겨!”
“당기고 있다고!”
“제기라알-!”
삼 남 일 녀가 거대한 붉은 늑대를 포위한 채 공격을 퍼붓고 있었다.
붉은 늑대의 뒷다리에는 각각 하나씩 밧줄이 걸려 있고, 두 남녀가 그 밧줄의 끝을 잡고 있는데, 늑대가 힘을 쓸 때마다 남녀의 몸이 질질 끌려갔다.
지휘를 하고 있던 롱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뒷다리를 하나의 올가미에 넣었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한 게 실수다.
‘제길! 혈랑의 뒷다리만 한데 묶었어도!’
그랬다면 마이와 뚜안이 저렇게 질질 끌려다니는 일은 없었을 터였다.
그가 잠깐 생각하는 사이에 혈랑이 고개를 돌려 밧줄을 물었다.
이어진 혈랑의 고갯짓에 가벼운 마이의 몸이 허공으로 튕겨져 올랐다.
혈랑은 어깨에 창을 박은 채로 솟구쳐 올랐다.
뒤늦게 롱이 마이를 구하기 위해 몸을 날렸지만 늦었다.
롱의 몸이 마이에게 이르기 전에 혈랑의 이빨이 마이를 덮쳤다.
“아악!”
마이의 입에서 뾰족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마이!”
“피해!”
“안 돼!”
끔찍한 최후를 예감한 세 남자의 입에서 각기 다른 말이 쏟아져 나왔다.
혈랑의 이빨이 막 여자의 몸을 물기 전, 숲에서 한 자루 검이 날아왔다.
쉬익- 퍽-!
검은 혈랑의 머리를 꿴 채로 계속해서 날아가 나무에 깊숙이 박혔다.
마치 검으로 거대한 혈랑을 나무에 박아 버린 모양새다.
뒤늦게 정신을 차린 삼 남 일 녀가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좌우를 살폈다.
그들은 혈랑만큼이나 정체를 알 수 없는 존재의 개입을 두려워하는 것 같았다.
이윽고 그들의 앞으로 천족들이 표표히 떨어져 내렸다.
수백 명이나 되는 천족을 본 삼 남 일 녀의 얼굴은 이내 하얗게 질려 갔다.
이윽고 일행 중에 가장 연장자인 롱이 천족들에게 한 걸음 다가가 허리를 조아렸다.
“구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롱은 감히 허리를 세우지 못하고 구부정한 상태로 얼굴만 살짝 들어 올렸다.
그건 다른 인간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도 롱처럼 허리를 숙인 채 고개만 살짝 들어 올려 천족의 안색을 살폈다.
그런데 천족들의 반응이 조금 이상했다.
인사를 받은 천족들이 머쓱한 표정을 지으며 시선을 돌린 것이다.
삼 남 일 녀는 눈치만 살필 뿐 감히 허리를 세우지 못했다.
그런 그들의 귓가로 낭랑한 음성이 들려왔다.
“그만들 똑바로 서 봐요. 뭐 좀 물어볼 게 있는데 자세가 그래서 말하기가 어렵잖아요.”
삼 남 일 녀의 시선이 일제히 한 곳으로 향했다.
천족들 사이에서 인간 청년이 뚜벅뚜벅 걸어 나오고 있었다.
삼 남 일 녀는 청년을 천족들의 길잡이쯤으로 여겼다.
그러니 물어볼 게 있다는 말을 했으리라.
눈치를 보며 슬그머니 허리를 세운 롱이 청년에게 물었다.
“물어볼 게 있다고 했습니까?”
“예, 대수촌이라는 마을을 찾고 있어요.”
“대수촌요? 저희 마을이 대수촌입니다만 그곳을 왜…….”
롱의 얼굴에 경계의 빛이 어렸다.
연적하가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
“마왕이 금산산맥으로 가기 위해 대수촌을 지날 거예요. 우리는 마왕을 토벌하러 왔어요.”
마왕이라는 말에 롱의 눈이 휘둥그렇게 떠졌다.
“예? 마왕이 대수촌을 지나간다는 말입니까?”
“아저씨, 마왕이 웅천주에 쳐들어 왔다는 건 알고 있어요?”
“모릅니다.”
롱이 고개를 저었다.
대수촌은 북부대수림에서도 최북단에 있어 외부와 단절된 생활을 해 왔다.
그러니 당연히 마왕의 침공이라는 말도 처음 듣는다.
사실 그가 대수촌 사람들 외에 다른 인간을 만나기도 십여 년 만이다.
그 정도로 북부대수림은 넓었다.
“웅천주를 쳐들어왔던 마왕이 천독곡에서 북부대수림 방향으로 달아났어요. 우리는 마왕이 금산산맥으로 숨어들기 전에 죽이려고 해요. 그게 우리가 대수촌을 찾는 이유예요.”
청년의 말에 롱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 갔다.
마왕이 자신의 마을을 지나간다는 소리를 들으면 누구나 그럴 게다.
“그러시다면 제가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롱의 눈은 청년이 아니라 그의 뒤쪽에 서 있는 천족들을 향하고 있었다.
길잡이에게 할 말이 아니라고 생각해서다.
천족들은 대수촌 사람이 대종사를 건너뛰자 불편한 얼굴로 고개를 돌렸다.
보다 못한 퀴리아노스 참모장이 대종사를 소개하려는 순간 롱이 자기 일행에게 말했다.
“들었지? 마왕이 대수촌으로 향하고 있다고 하니 사냥은 여기까지다. 흘린 물건을 회수하고, 준비가 끝나는 대로 돌아가겠다. 서둘러라.”
그의 말에 이 남 일 녀는 주변으로 흩어져 화살과 밧줄, 그물 따위를 수거했다.
대수촌 사람들의 준비는 반각(약 7분)도 안 되어 끝났다.
롱이 일행과 함께 선두로 나섰다.
그 뒤를 칠백여 명의 천족군이 조용히 뒤따랐다.
연적하는 그를 길 안내로 착각한 롱의 권유로 대수촌 사람들 속에 섞였다.
한참 동안 숲을 가로지르던 롱이 슬쩍 물었다.
“그쪽은 어쩌다가 천족의 길 안내를 하게 된 겁니까?”
“아, 내가 종문 제자거든요. 종문과 천족이 힘을 합쳐 마왕과 싸우고 있어요.”
깜짝 놀란 롱이 급히 고개를 숙였다.
“어이쿠! 종문의 귀인이신 줄 모르고 실례를 했습니다. 저는 길 안내를 하는 사람인 줄로만 알았습니다.”
“괜찮아요. 그럴 수도 있죠. 얼른 가요. 천족들 기다리게 하면 큰일 나요.”
연적하가 천족을 입에 올리자 롱의 걸음이 다시 빨라졌다.
청년이 종문 제자임을 알고 난 뒤로 롱은 입도 뻥긋하지 않았다.
한 시진(2시간)이나 숲을 가로지르자 빽빽한 나무 사이로 조금씩 길이 보였다.
황토색으로 다져진 흙길은 짐승이 다니는 길보다 넓고 단단했다.
숲속의 길을 따라 다시 한 식경(약 30분)쯤 걷자 계곡 사이로 높게 솟은 목책이 드러났다.
계곡 사이의 목책을 보던 연적하의 입가에 미소가 어렸다.
세상에 비슷한 게 많다더니, 위치나 형태가 오봉산채의 그것과 닮아 있었다.
잠시 후 롱 일행이 목책에 다다르자 목책 위로 중년인의 머리 하나가 쑥 올라왔다.
“롱? 그 옆에 못 보던 사람은 누구지?”
“종문의 제자시네. 속히 문을 열게. 우리 뒤에 천족 군대가 오고 있네.”
목책 위의 중년인은 놀랐는지 눈만 끔뻑였다.
그가 움직이지 않자 롱이 버럭 소리쳤다.
“비엔! 뭐하나! 문을 열라니까!”
뒤늦게 정신을 차린 비엔의 머리가 사라지고, 목책의 두툼한 문이 천천히 열렸다.
롱이 연적하에게 억지 미소를 지으며 변명처럼 말했다.
“본래 대수촌은 외부인에 대한 경계심이 좀 강한 편입니다. 저희들끼리만 생활하다 보니…….”
고개를 주억거리던 연적하가 통과 청년들을 둘러보며 물었다.
“아까 혈랑을 사냥하는 것 같던데. 내가 맞게 본 건가요?”
“예? 실은 사냥이 아니라 혈랑을 만나서 피치 못해 싸우고 있었습니다.”
“뭐, 사냥이든, 싸움이든, 그게 중요한 건 아니고. 혈랑은 철급(鐵級) 마수로 알고 있는데 용케 잘 싸우더라고요? 철급부터는 종문 제자가 아니라면 힘든 것으로 알고 있는데.”
연적하의 지적에 롱은 흠칫 놀랐다.
종문 제자가 그걸 마음에 담고 있다가 물어 올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롱이 머뭇거릴 때 천족 부대가 하나 둘 모습을 드러냈다.
천족 부대를 본 롱이 급히 말했다.
“그 부분은 이따가 따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시간이 나실 때 저를 찾아 주십시오.”
“그래요, 그럼.”
연적하는 대수롭지 않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이들이 어떻게 철급 야수와 싸울 수 있었는지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롱은 촌장에게 알려야 한다면서 일행과 함께 목책 안으로 들어갔다.
잠시 후 북부군 사령관의 직할 부대가 대수촌 앞에 집결했다.
하지만 그들은 대수촌에 들어가지 않았다.
칠백 명이나 되는 천족 부대가 모두 들어가기에 대수촌이 작았기 때문이다.
북부군 사령관의 직할 부대는 대수촌 앞의 숲에 숙영지를 만들기로 했다.
“저는 숙영지에 남겠습니다. 대종사님께서는 대수촌으로 들어가시겠습니까?”
북부군 사령관 프리타 우베르토의 물음에 연적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함께 지내기에 천족보다는 사람이 덜 불편해서다.
이윽고 북부군과 헤어진 연적하가 대수촌의 목책을 막 통과할 때다.
안쪽에서 노인들이 우르르 몰려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