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783
783회. 구천현녀 신당을 내가 모조리 부숴 버릴 겁니다
연적하가 식사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자 남궁연이 웃으며 말했다.
“도관의 식사 시간이 정해져 있어서 그럴 거야. 늦게 온 우리 잘못이지.”
“누님은 배 안 고파요? 뭐 좀 먹어야죠?”
“입맛이 없네? 그냥 선단 하나로 만족하려고.”
그러자 연적하는 심통에게 시선을 돌렸다.
“심 노인은? 배 안 고파?”
“제가 먹을 걸 구해 오겠습니다.”
“이 시간에?”
“눈치가 빠르면 절간에서 젓갈도 얻어먹는다고 하지 않습니까? 사람 사는 곳은 어디든 똑같지 않겠습니까?”
“하기야 그 난리통에 진인이 영석까지 챙길 정도면 보통 수완은 아니 야? 그럼 한번 믿어 볼게. 이번에는 혼자 독식하지 말고 좀 가지고 와 봐.”
연적하가 구주에서 있었던 일을 꺼내자 심통은 얼른 자리를 떴다.
그러자 남궁연이 안쓰러운 얼굴로 한마디 했다.
“심 노인을 너무 뭐라고 하지 마. 광명진천의 계략에 넘어간 것뿐이니까.”
“그건 아는데, 내가 위험하니까 절대 영기를 흡수하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했거든요. 그런데도 영기를 흡수하다가 죽을 뻔했잖아요. 자꾸 상기시켜 주지 않으면 또 욕심부리다 탈이 날 거예요.”
남궁연은 그가 놀리려고 그러는 게 아님을 알고 더 말하지 않았다.
***
청성산 노소정.
다음 날 정오.
연적하는 노소정 정상의 노천제단으로 향했다.
벌써 제사 준비를 끝냈는지 청성파 도사 십여 명이 제단 앞에 줄지어 서 있었다.
그를 발견한 도사 하나가 다가왔다.
“연 장주님이십니까?”
“예.”
“빈도는 이대제자인 공무라 합니다. 장문인으로부터 연 장주님의 제사를 도우라 명받았습니다. 제문(祭文)은 따로 준비하신 게 있습니까?”
“없어요.”
“허면 저희가 제사 때 쓰는 제문으로 준비를 할까요?”
“아뇨. 제문은 따로 없어도 돼요.”
“그러시다면 제사는…….”
“제문을 읽을 순서가 되면 신호를 주세요. 그때부터는 내가 알아서 할게요.”
“알겠습니다.”
공무 도사는 조금 이상했지만 장문인의 지시인지라 군말하지 않았다.
잠시 후 청성파 도사들은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어떤 이는 부지런히 돌아다니며 향을 피우고, 또 다른 이는 닭을 죽여 벽사(闢邪)의 기운이 있는 피를 제단 주위에 뿌렸다.
마침내 제문을 읽어야 할 순간이 되자 공무 도사는 연적하에게 시선을 돌렸다.
자신의 차례가 되자 연적하는 제단 앞에 우뚝 섰다.
열 개나 되는 향로에서 피어오른 향이 구름처럼 제단 주위를 감싸고 있었다.
보기에도 제법 그럴듯해서 신이 있다면 당장에라도 내려와 줄 것 같았다.
어딘지 뭉글한 향냄새가 코끝으로 밀려오자 연적하는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이런 냄새를 신들이 좋아한다니 믿을 수가 없군.’
향냄새가 싫어진 연적하는 서둘러 운을 뗐다.
“구천 높은 곳에 거처하시는 구천현녀님! 삼청(三淸)에서 성모원군을 보좌하시느라 바쁘시겠지만, 제자 연적하가 중한 일이 있어 뵙기를 청합니다! 아무쪼록 제자의 부름에 응답하여 주십시오!”
제문도 아니고 주문도 아닌 기괴한 그의 말에 청성파의 도사들은 고개를 갸웃했다.
특히나 가까이서 그 소리를 듣고 있던 공무 도사는 몇 번이나 연적하 쪽을 힐끔거렸다.
‘기이하다. 연 장주는 왜 자신을 구천현녀의 제자라고 칭하는 것일까?’
전설에 의하면 구천현녀가 황제에게 특별한 가르침이나 무상의 보물 따위를 준 적이 있다.
그래도 누구 하나 구천현녀를 스승이라 부르지 않았다.
그런데 무림에서 소악마로 이름을 떨친 연적하가 뜬금없이 구천현녀의 제자라고 떠벌리니 기가 막혔다.
‘흐음! 제문도 없는 엉터리 제사라. 그저 청성파에서 제사를 지냈다는 소문이 퍼지기를 바라는 것일까?’
아무리 생각해도 그 외에는 달리 이유가 없었다.
장문인이 연적하와 선을 그었다고 했는데 아무래도 더 확실하게 하시라고 직언해 주어야 할 것 같다.
그건 공무 도사만의 생각은 아니었다.
노천제단에서 연적하가 하는 짓을 본 청성파 도사들의 표정은 하나같이 좋지 않았다.
시작이 있으면 끝도 있는 법.
연적하의 기괴한 제문은 곧 끝났다.
제단 앞에 선 연적하의 침묵이 길어지자 공무 도사가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연 장주님?”
그러자 연적하가 물러가라는 듯 손을 뒤로 빼 까딱였다.
그 손짓의 의미를 파악한 공무 도사는 조용히 뒤로 물러나 주문의 대열에 합류했다.
짙은 향연 속에 청성파 도사들의 천지를 정화하는 주문[淨天地神呪]이 울려 퍼졌다.
연적하는 내심 믿고 있었다.
자신이 제사를 지내기만 하면 구천현녀가 강림하여 응답할 것이라고.
그러나 나름 고심한 끝에 완성한 구천현녀를 부르는 제문을 암송했건만, 응답이 없다.
무려 한 식경(약 30분) 동안이나 맡기 싫은 향냄새를 맡으며 서 있었지만 결과는 같았다.
지쳐서 쉬려는지 뒤에서 은은하게 들려오던 주문 소리도 잠잠해졌다.
그는 직감적으로 더 기다려 봐야 소용없음을 깨닫고 돌아섰다.
기다렸다는 듯 공무 도사가 다가왔다.
“연 장주님, 이만 마무리를 하시겠습니까? 혹여 더 계실 생각이라면 저희는 먼저 물러날까 하는데, 그래도 되겠습니까?”
공무 도사가 연적하를 빤히 보았다.
제사도 제사지만 점심까지 거르면서 이런 해괴망측한 짓에 동참하고 싶지는 않았다.
“오늘은 이만 마무리하시죠.”
“예.”
공무 도사의 안색이 환하게 밝아졌다.
장문인이 제사를 도우라고 했기에 연적하가 잡으면 남아 있어야 했다.
그런데 제사를 마무리하라니 사지백해에 새로운 기운이 충만해지는 느낌이다.
청성파 도사들은 다시 각자 맡은 대로 누군가는 주문을 외우고, 누군가는 제단에 놓았던 제구(祭具)들을 하나씩 회수하기 시작했다.
청성파 도사들은 제단 주위를 깨끗이 청소한 뒤에 줄지어 산을 내려갔
깨끗하게 치워진 제단 앞에 우두커니 서 있는 연적하에게 심통이 다가가 말을 걸었다.
“공자님, 구천현녀님은 만나 보셨습니까?”
“아니.”
“아예 응답이 없었습니까?”
“어.”
머뭇거리던 심통이 조심스럽게 운을 뗐다.
“허면 그 미친 늙은이의 말대로 천사동(天師洞)에서 태일초(太一醋)를 올리는 건 어떻겠습니까? 구천현녀가 감당하기 어려워 나서려 하지 않는 것일 수도 있지 않습니까?”
심통은 연적하의 안색을 살폈다.
아무리 구천현녀기 신이라 해도 주신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는 아니라기에 해 본 소리다.
“바쁘면 그럴 수도 있지. 사람도 누가 부른다고 바로 대답하는 건 아니잖아.”
“그야 그렇습니다만. 저 하늘 위에 구천현녀만 있는 건 아니니 공자님도 잘 생각해 보십쇼.”
도교에는 수많은 신이 있다.
솔직히 심통의 입장에서는 구천현녀나 태일신이나 별반 다를 게 없었다.
“심 노인.”
“예?”
“사람은 신의라는 게 있어야 되는 거야. 내가 누군가를 믿고 의지하기로 했으면 끝까지 가야지.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건 아니잖아.”
“제가 언제 뱉으라고 했습니까? 구천현녀도 삼키고, 태일신도 삼키면 되지요.”
“쯧쯧! 그러니까 심 노인은 안 되는 거야. 사람이 지조가 있어야지. 사람도 한번 부탁한다고 다 들어주지는 않잖아? 당장 내 부탁을 안 들어준다고 다른 사람에게 쪼르르 달려가면 기분 좋겠어?”
“누가 모릅니까? 가모님이 언제 출산할지 모르니 드리는 말씀이지요. 구천현녀에게 매달려 있다가 가모님이 덜컥 출산이라도 하면 어쩌시려고요?”
“사람은 때로 모든 걸 걸어야 할 때가 있는 거야. 백척간두진일보(百尺竿頭進一步)라는 말 몰라?”
“그게 뭡니까?”
“절간에서 하는 말이야. 백 척(약 30미터)의 장대 끝에서 한 걸음 더 나가야 한대. 절체절명의 순간 최선을 다한 것에서 한 걸음 더 나가라는 거지. 그런데 나는 이제 겨우 한 번의 제사를 지냈을 뿐이라고. 아직 백척간두에도 이르지 못했는데 벌써 신을 갈아타라는 거야?”
“그거야 당장 급하지 않은 땡중들이나 할 법한 소리지요. 시간을 다투는 일에 무슨 횟수를 따집니까? 저라면 천사동으로 달려가 태일초를 드렸을 겁니다.”
딱히 틀린 지적이 아닌지라 연적하는 가타부타 말하지 않았다.
자신이라고 왜 그런 생각을 안 해 봤겠는가.
하지만 남궁연과 똑같이 생긴 구천현녀를 두고 다른 신에게 가고 싶지는 않았다.
그건 왠지 남궁연에 대한 불신을 넘어, 그녀를 배신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런 속마음을 심통에게 말할 수는 없었다.
자신도 이해할 수 없는 일을-당장 눈앞의 일밖에 모르는-심통이 받아들일 리가 없으니까.
잠시 후 연적하는 심통과 함께 상청궁 별궁으로 돌아갔다.
식당까지 내려가기 어려운 남궁연을 위해 도동(道章)들이 식사를 날라다 주었다.
식사를 마친 연적하는 산파에게 몇 가지 당부를 하고 다시 노천제단으로 향했다.
청성파에서는 하루 한차례 제사를 지낼 생각인지 노천제단에 올라오지 않았다.
휑한 제단을 둘러보던 심통이 슬쩍 말했다.
“공자님, 어째 제단이 허전한데 청성파 도사들을 불러 모을까요?”
“냅둬. 그들이 뭘 한다고 해서 될 일이 아니야.”
“그럼 혼자 하시게요?”
“심 노인은 ‘정천지신주’를 알아?”
“모르는데요?”
“아는 주문은 있어?”
“없습니다. 검객이 주문을 알아 뭐에 쓴다고요?”
“심 노인에게 물어본 내가 바보지. 그냥 장문인이든 누구에게든 가서 부적 만들 재료나 좀 얻어 와.”
“혼자 북 치고 장구 치고 다 하시게요?”
“해 보는 데까지 해 봐야지. 어서 가.”
“예…….”
심통이 마땅치 않은 얼굴로 산을 내려갔다.
홀로 남은 연적하는 제단 앞에 서서 팔을 높이 들고 큰 소리로 외쳤다.
“구천현녀님! 세상을 구제하시느라 바쁘시겠지만 잠깐 할 말이 있으니 와 봐요! 구천현녀님이 오지 않으면 태일신에게 태일초라는 걸 지내야 한다고요! 나를 의리 없는 사람으로 만들고 싶지 않으면, 뭐라고 대답 좀 해 줘요!”
휘이잉-.
대답 대신 늦가을의 차가운 바람이 무심하게 산정을 스치고 지나갔다.
연적하는 목이 쉬도록 구천현녀의 이름을 불렀다.
구천현녀가 끝내 답하지 않으면 태어날 아기를 위해서라도 천사동으로 달려가야 했다.
하지만 그러고 싶지 않았던 그는 구천현녀가 강림하기를 바라고 또 바랐다.
그의 목에서 쉰 목소리가 나올 즈음 심통이 돌아왔다.
“공자님. 재료를 구해 왔습니다.”
“어, 거기 내려놔.”
잔뜩 갈라진 연적하의 음성에 심통은 흠칫 놀랐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심통은 제단 앞의 평평한 바위에 괴황지와 붓, 주사 따위의 재료들을 진열했다.
짐짓 무덤덤한 표정으로 다가온 연적하가 벽사(鬪邪)의 부적을 쓱쓱 그려 나갔다.
“오룡궁에 있을 때 이런 걸 배워서 어디다 쓰나 싶었는데, 쓸 일이 생기네?”
“그래서 뭐든 배워 두면 좋다고 하지 않습니까.”
심통은 적당히 맞장구를 쳐 줬다.
담담해 보이지만 꽉 잠긴 음성만 들어도 연적하가 얼마나 초조해하는지 알 수 있었다.
지조니 신의니 떠들어 댔지만 끝내 구천현녀의 응답이 없으면 그는 천사동으로 달려갈 것이다.
그 스스로도 그걸 알기에 목이 쉬도록 구천현녀를 부르짖는 것이리라.
한숨을 내쉬던 심통은 제단 위 하늘로 고개를 들어 올렸다.
‘구천현녀님, 우리 공자님의 부름에 뭐라도 답을 주십쇼. 구천현녀님이 할 수 없는 일이면, 태일신에게 찾아가라고 해도 되잖습니까? 설마 내가 먹지 못하는 거 남도 못 먹게 하겠다는 심보는 아니시겠지요? 그러다 우리 공자님의 아기에게 안 좋은 일이 생기면 강호에 있는 구천현녀 신당을 내가 모조리 부숴 버릴 겁니다. 아시겠습니까!’
끓어오르는 감정에 심통이 이를 빠드득 갈자 연적하가 힐끔 돌아보았다.
“나한테 불만 있어? 왜 그렇게 눈에 힘을 줘? 무서워서 어디 부적 그리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