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789
789회. 당가에 편지 하나만 보내 봐
청성파는 오랫동안 사천무림의 종주(宗主)였다.
자연히 청성파 출신 무인들의 숫자는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았다.
하지만 그들 모두가 건곤문의 이시원처럼 사문에 대한 충성심이 강하지는 않았다.
특히나 속가제자의 경우 사문을 여럿 두는 경우가 허다했다. 그런 무인들은 오히려 청성파의 갈지자[之] 행보를 비난하며 절연장을 보냈다.
여하튼 청성파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에 사천무림은 술렁거렸다.
믿었던 청성파에게 뒤통수를 맞은 당가는 곧바로 천룡문과 손잡고 사천무림에 무림첩을 돌렸다.
내용은 ‘십일월 보름에 천룡문에서 사천무림의 결속을 위한 무림대회를 개최한다’는 것이었다.
오늘날 사천무림을 이끌어 가는 문파는 청성파, 당가, 천룡문 정도다.
그중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문파는 천룡문이었다.
폐쇄적인 당가나 도관(道觀)인 청성파와 달리 천룡문은 철저히 속세 지향적인 문파인 까닭이다. 문하생 중에 관인(官人)이 많아 의천문(칠파일문)과 비견 될 정도였다.
청성파의 돌발 행동에 깜짝 놀랐던 사천무림은 당가와 천룡문의 무림첩으로 후끈 달아올랐다.
시월 말.
청성파.
상청궁.
정오 무렵.
상청궁의 접객실에 두 남자가 마주앉았다.
청성파 장문인 원양 진인과 천룡문 대외총관 우사 황원익이다.
때가 때인지라 두 사람의 표정은 밝지 않았다.
원양 진인이 황원익의 잔에 차를 따르며 말했다.
“오랜만에 방문해 주셨는데 좋은 이야기를 드리지 못해 미안합니다.”
천룡문은 관할 구역 내의 상가들로부터 관리비를 받지만 청성파는 전적으로 후원에 의존한다. 천룡문도 청성파의 큰 후원자 중에 하나였다.
자연히 천룡문을 대하는 원양 진인의 태도 역시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원양 진인의 태도에 변화가 없자 황원익의 입에서 한숨이 흘러 나왔다.
“하아! 우리 천룡문은 오랜 세월 청성파의 후원자였습니다. 우리가 비록 속인이지만 청성파의 도사님들과 한 식구처럼 지내 왔다고 생각했는데 아닙니까?”
“청성파도 천룡문을 남이라 생각하지 않고 있소이다.”
“그런데 왜 천룡문과 척을 지려고 하십니까?”
“황 대협. 그래서 드리는 말씀인데 천룡문도 당가의 일에서 손을 떼는 게 어떻겠소?”
황원익이 황당한 눈으로 원양 진인을 보았다.
점입가경이라더니 당가의 일에서 손을 떼란다.
“저의 셋째 조카가 당가의 사위라는 걸 아시면서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끙!”
원양 진인의 입에서 앓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맞다.
청성파와 달리 천룡문과 당가는 혼인으로 맺어진 동맹이었다.
그렇다고 뻔히 불구덩이 속으로 들어가는 걸 보고 있을 수 만은 없었다.
청성파의 가장 큰 후원자인 천룡문이 망하면 청성파도 손해였다.
“허면 이왕 온 김에 석경장의 연 장주를 만나 보는 건 어떻소?”
“연적하를요?”
황원익은 눈을 찌푸렸다.
무림첩의 먹물이 채 마르기도 전에 연적하를 만난다는 게 부담스러웠다.
하지만 만나서 손해를 볼 일은 없었다.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고 하지 않던가!
“그렇게 하지요. 그는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별궁에 있소. 빈도가 안내하리다.”
“그를 부르시지 않고요?”
“허허.”
원양 진인은 웃기만 했다.
그에 대해 알게 된다면 감히 부른다는 생각은 하지 못할 것이다.
막 자리에서 일어난 원양 진인이 황원익을 힐끔 돌아보았다.
“무슨 하실 말씀이라도?”
“연 장주가 여드레 전에 우리 청성파의 별궁에서 득녀를 하였소.”
“…….”
황원익은 원양 진인이 무슨 의미로 저런 말을 하는지 알아듣지 못했다.
그것과 자신이 그를 만나 보는 게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이왕이면 축하의 선물이라도 준비하는 게 좋겠다 싶어서 해 본 말이외다.”
황원익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
아무래도 원양 진인에게 자신의 입장을 환기시켜 주어야 할 것 같다.
“장문인, 저는 그의 득녀를 축하하기 위해서 온 것이 아닙니다.”
“알겠소. 단지 분위기를 좋게 하기 위해서 해 본 말이니 신경 쓰지 마시오.”
“예, 물론 장문인께서는 좋은 뜻으로 하신 말씀이겠지요. 허나 천룡문의 입장이 있으니 그냥 만나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그러시구려. 만약 나중에라도 다시 만나야겠다 싶으면 빈도의 말을 기억해 두시구려. 그는 소문과 달리 꽤나 가정적인 사람이더이다.”
“아, 예.”
황원익은 건성으로 답했다.
보름 후에 열릴 사천무림대회는 전쟁의 서막이니 그를 다시 찾게 될 일은 없을 터였다.
별궁.
무료한 얼굴로 마루에 앉아 해를 쬐던 심통의 귀가 쫑긋 섰다.
상청궁 쪽에서 발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그날 이후 청성파 도사들은 별궁을 성지처럼 여겨 함부로 출입하지 않았다.
‘손님인가?’
손가락으로 날짜를 세던 심통의 눈매가 좁아졌다.
‘이제 겨우 남궁세가에 연 공자님 내외의 소식이 전해졌을 텐데, 누구지?’
아무리 생각해도 사천무림에서 연적하 내외를 찾아올 사람은 없었다.
잠시 후 원양 진인과 낯선 초로의 노인이 월동문을 지나 앞마당으로 진입했다.
심통은 그래도 집주인(원양 진인)에 대한 예의로 엉거주춤 자리에서 일어났다.
원양 진인은 구천노도 심통과 눈이 마주치자 정중하게 읍을 해보였다.
“심 대협. 천룡문의 대외총관이신 우사 황원익 대협께서 연 장주님을 뵙고 싶어 해 모셔 왔습니다. 잠시 연 장주님을 뵐 수 있겠습니까?”
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연적하가 방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아기를 어르다가 나온 터라 얼굴에는 천진난만한 미소가 가득했다.
원양 진인이 급히 연적하에게 인사를 건넸다.
“연 장주님, 가족들과의 좋은 시간을 방해한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괜찮아요. 어차피 잠깐 바람을 쐴까 하던 참이었어요.”
연적하의 시선이 원양 진인의 옆에 뻘쭘한 얼굴로 서 있는 초로의 노인을 향했다.
그가 묻기 전에 원양 진인이 먼저 나섰다.
“이쪽은 천룡문의 대외총관이신 우사 황원익 대협입니다. 황 대협, 저분이 바로 석경장의 장주이신 연 대협이시오.”
양쪽을 대하는 원양 진인의 말투가 조금 달라 황원익은 속으로 혀를 찼다.
‘쯧쯧! 청성파가 많이 약해졌구나.’
호천맹과 사천무림의 중심인 청성파가 연적하의 눈치를 저렇게 볼 줄이야.
황원익은 천룡문의 대외총관답게 고개를 빳빳하게 들고 인사했다.
“천룡문의 대외총관 황원익이오. 지난 천지맹 시절에 멀리서 연 대협을 본 적이 있소. 그때는 연 대협께서 녹림을 이끌고 있어 인사를 나누기 어려웠소만. 이렇게 다시 뵈니 반갑구려.”
정중함 속에 은근히 그의 과거를 지적하는 인사다.
그렇지 않아도 심심하던 심통은 재밌다는 얼굴로 황원익을 이리저리 살폈다.
그러나 아기 아빠가 된 연적하는 그런 말을 들어도 실실 웃기만 했다.
“연적합니다.”
그게 전부였다.
연적하는 황원익에게 일체의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심 노인.”
“예?”
“당가에 편지 하나만 보내 봐.”
“주셔야 보내지요.”
“어허! 보내라면 보내지, 그런 시시한 일까지 꼭 내가 해 줘야 돼?”
“예, 예, 뭐라고 보낼까요?”
“오늘 저녁에 석경장 사람들을 찾으러 갈 테니까 준비해 놓으라고 해.”
“그게 답니까?”
“뭐가 더 필요해?”
“목을 씻고 기다리라든가, 저항하면 죽여 버리겠다든가, 많잖습니까?”
“겁먹고 내가 가기도 전에 달아날까 봐 그러지.”
두 사람의 대화에 원양 진인과 황원익은 각기 다른 반응을 보였다.
원양 진인은 드디어 연적하가 당가를 때려 부수러 가는구나라고 생각해 눈을 빛냈다.
반면 황원익은 피식 웃었다.
성도를 기준으로 청성산은 서북쪽의 도강언, 당가는 동남쪽의 간양(简阳)에 있다.
청성산에서 간양까지의 거리는 무려 삼백여 리(약 120킬로미터).
지금이 정오이니 오늘 저녁은커녕 빨라야 이틀이다.
‘나 들으라고 하는 말이겠지.’
천룡문 대외총관 앞에서 저런 식의 허세라니 확실히 녹림 출신답다.
그런데 원양 진인은 연적하의 빤한 거짓말을 왜 보고만 있는 것일까?
그는 연적하의 거짓말이 어디까지 가는지 보고 싶었다.
“연 장주, 당가가 어디 있는지는 아십니까?”
“몰라요.”
황원익은 속으로 냉소를 쳤다.
‘흥! 당연히 모르니 그런 소리를 하겠지.’
그는 연적하가 몰랐다는 식으로 빠져나가려 한다고 생각했다.
“당가는 성도 동남쪽의 간양에 있소. 참고로 간양은 여기 청성산에서 삼백 리쯤 떨어진 곳이외다. 과연 오늘 밤에 가실 수가 있겠소?”
“아! 황 대협은 당가가 어디 있는지 알아요?”
“그야 이를 말입니까? 당가와 본문은 사사로이는 사돈지간이외다.”
“당가 처자가 천룡문에 시집이라도 왔어요?”
“그 반대요. 문주님의 셋째 아들이 당가주의 여식과 혼인하여 당가로 들어갔소.”
“들어가요? 데릴사위가 됐다는 말인가요?”
“그렇소. 본문과 당가의 사정이 중요한 게 아니오. 연 장주는 조금 전에 오늘 저녁에 석경장 사람들을 찾으러 가겠다고 하시지 않았소?”
“그랬죠.”
“방금 나는 당가가 어디에 있는지 가르쳐 드렸소. 정말 당가에 방문할 마음이 있다면 이틀쯤 날짜를 늦추 시라고 말씀드리고 싶소이다. 아니, 편지를 전하고 심 대협이 되돌아와야 하니 나흘쯤 미루는 게 어떨까 싶은데. 장문인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는 원양 진인을 끌어들였다.
‘이래도 모른 척하실 수 있겠소?’
그 질문에는 원양 진인도 자신이 없는지 슬그머니 연적하의 안색을 살폈다.
그가 답을 회피하자 황원익은 다시 연적하를 압박했다.
“연 장주님? 오늘 저녁이 맞습니까? 아니, 그 전에 편지가 도착이나 하겠습니까?”
그러자 심통이 실실 웃으며 말했다.
“흐흐. 가만 보니 천룡문의 후배가 내 경신술을 믿지 못하는 것 같은데 까짓 삼백 리 못 갈 것도 없지. 편지를 전한 후에 당가 근처에서 공자님을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말을 마친 심통이 편지를 쓰려는지 벌떡 일어나 별궁으로 들어갔다.
심통은 반각(약 7분)이 되기 전에 밖으로 나왔다.
그는 야릇한 눈으로 황원익을 본 뒤에, 곧장 지면을 박차고 날아올랐다.
쿵-!
어찌나 진각을 세게 밟았는지 심통이 서 있던 자리에 구덩이가 깊게 파였다.
그걸 본 황원익의 입이 쩍 벌어졌다.
평생 수많은 진각을 보았지만 눈앞에 있는 저런 구덩이는 처음이었다.
‘헉! 사람이 어찌 진각으로 구덩이를 팔 수 있다는 말인가?’
얼띤 표정으로 마당에 생긴 구덩이를 보고 있는 그에게 연적하가 말했다.
“황 대협이 당가를 잘 안다고 했죠? 잘됐네요. 내가 길눈이 어두우니 황 대협의 도움을 좀 받아야겠네요.”
그제야 정신을 차린 황원익이 의아한 눈으로 연적하를 보았다.
“초행길이라면 더더욱 어려울 터인데, 설명만으로 알 수 있겠소?”
“설명은 백 번 들어도 몰라요. 그러니 나랑 같이 가 줘야겠어요. 나와 심 노인이 하는 일에 ‘감 놔라 배 놔라’ 했으니 그 정도는 해 줘야죠. 그렇지 않나요?”
“도와 드리고 싶지만 내 신법으로는 반나절 만에 삼백 리를 가지 못하오.”
“황 대협은 가만히 서 있으면 돼요. 나머지는 내가 알아서 할게요. 조금 있다가 먼 길을 가야 하는데 올라와서 차라도 한잔 마시지요? 장문인도 드시고 가세요.”
연적하의 초대에 황원익은 기가 막혔지만 일단 마루로 올라갔다.
애매한 얼굴로 서 있던 원양 진인도 걸음을 옮겼다.
삼백 리 길을 가겠다는 사람이 한가하게 차를 마시자니 진담인지 농담인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