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796
796회. 그게 유명교와 무슨 관계가 있는데요?
수월문주 장문우가 마차와 하루치 건량을 준비하는 데는 반 시진(1시간)이 걸렸다.
그때까지 연적하 일행은 수월문의 객청에서 느긋하게 차를 마셨다.
정오에 임박할 즈음.
그간의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연적하 일행에게 장문우가 조심스레 다가왔다.
“저어, 남천 대협. 마차가 준비되었습니다.”
“아, 고마워요.”
“아닙니다. 오히려 제가 감사드립니다. 그 버러지 같은 놈들은 사천무림에 협조를 구해서라도 꼭 잡아 단전을 폐하도록 하겠습니다.”
그건 장문우의 진심이었다.
그가 마차를 구하러 돌아다닐 때 때마침 당가의 일이 성도에 알려졌다.
-연적하가 오랜 세월 사천 지방의 패자(覇者)로 군림하던 당가를 폐허로 만들었다!
수월문은 당가에 비하면 구멍가게만도 못한 문파.
연적하가 홧김에 손가락만 까닥여도 흔적도 없이 사라질 터였다.
“그건 알아서 하시고. 이쯤에서 작별하지요.”
연적하가 마당으로 내려가자 장문우는 황송한 표정으로 배웅에 나섰다.
수월문의 정문 앞에 이두 마차가 위풍당당하게 서 있었다.
연적하는 흡족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마차는 자신이 지금까지 타 본 것들 중에 가장 고급스러운 외관을 가졌다.
고작 반 시진 만에 어디서 이렇게 좋은 마차를 구해 왔는지 모르겠다.
연적하와 월아, 금아가 마차로 들어갔다.
구천노도 심통과 삼보절명 당운망이 남아 치열하게 눈싸움을 벌였다.
두 사람은 상대에게 마부 역할을 넘기고 싶어 했다.
심통이 먼저 운을 뗐다.
“나는 공자님을 모시고 다니면서 지겹게 마차를 몰았다. 당가 너도 한 번쯤은 마차를 몰아 봐야 하지 않느냐?”
“그러고 싶지만 이 년 동안이나 당가의 옥사에 갇혀 있던 터라 아직은 무리다.”
당운망은 이 년간 옥에 갇혀 있었다는 핑계로 사양했다.
속이 뻔히 보이는 말이었지만 심통은 반박할 말을 찾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그때 연적하의 한마디가 모든 갈등에 종지부를 찍었다.
“둘이 교대로 몰아.”
결국 심통과 당운망은 서로를 원망하며 마부석과 그 옆자리로 올라갔다.
일단 심통이 먼저 고삐를 잡았다.
당운망이 끝까지 옥사에 갇혀 있어 무리라고 고집을 부린 탓이다.
우여곡절 끝에 마차는 수월문을 떠났다.
***
성도는 거대한 도시다.
수월문에서 성도 외곽까지는 이백 리(약 78킬로미터)가 넘는다.
마차를 이용해도 이틀은 걸리는 거리.
연적하 일행은 다음 날 저녁에야 성도 외곽의 도강언에 도착할 수 있었다.
어둡기도 하지만 지친 일행을 위해 당운망은 객잔 앞에 마차를 세웠다.
심통이 먼저 내려 굳게 닫힌 객잔의 문을 두드렸다.
막 잠자리에 들려던 객잔 주인이 피곤한 얼굴로 손님을 맞이했다.
“어이쿠! 어떻게 이 늦은 밤에 오셨습니까? 빈방은 있습니다만 음식 준비는 어렵습니다. 숙수가 일을 끝내고 돌아가서요. 그래도 괜찮으시겠습니까?”
심통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저녁은 건량으로 해결했기에 잠자리만 있으면 됐다.
“저녁은 먹었다. 다섯 명이 쉴 수 있는 방만 있으면 된다. 빈방이 몇 개나 있느냐?”
“세 개가 남았습니다.”
“모두 우리가 사용하겠다.”
심통은 연적하에게 방 하나를 구해 주고, 다른 하나는 월아와 금아가 쓰게 했다.
자신은 당운망과 한방을 쓸 생각이다.
물론 당운망과 한방을 쓰고 싶지는 않았지만 지금은 그게 최선이었다.
연적하 일행은 객잔 주인의 안내에 따라 각자의 방으로 흩어졌다.
다음 날 오전.
그간의 쌓인 피로로 느지막이 눈을 뜬 연적하는 객잔 식당으로 내려갔다.
객잔을 이용하는 손님의 대부분이 상인이라 식당은 텅 비어 있었다.
창가 자리에 앉아 밖을 내다보니 지난밤 세워 두었던 마차가 보였다.
심통이나 당운망이 치우지 못하게 한 모양이다.
탁자에 음식을 내려놓고 돌아서는 점소이를 연적하가 불러세웠다.
“잠깐.”
“예?”
“나와 함께 온 일행들이 안 보이는데? 어디에 있는지 아냐?”
“노인 두 분과 어린 아가씨들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어.”
“한 식경(약 30분)쯤 전에 산책을 한다고 나가시는 걸 보았습니다. 곧 돌아오실 겁니다.”
“그래? 가 봐.”
점소이가 꾸벅 인사를 하고 돌아서 갔다.
연적하가 모처럼 혼자만의 식사를 즐기고 있을 때다.
단단한 체형의 중년 남자 둘이 들어와 한쪽 구석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연적하의 눈에 이채가 어렸다.
아침을 먹기에는 늦은 시간이고, 점심으로는 턱없이 빠른 시간인 까닭이다.
암암리에 살펴보니 피풍의(披風衣) 사이로 수춘도가 보였다.
‘금의위?’
상대의 정체를 알게 된 연적하는 관심을 끊었다.
중년인들의 목표는 연적하가 아니었던 듯 식사를 마치고 유유히 떠나갔다.
연적하가 맥 빠진 얼굴로 차를 홀짝거릴 때 심통, 당운망, 월아, 금아가 돌아왔다.
그를 본 심통이 대뜸 물었다.
“무슨 일 있으십니까? 표정이 영…….”
“내 표정이 어때서?”
“똥이라도 씹은 얼굴이라서요.”
“똥은 아니고. 조금 전에 금의위를 봤어.”
“금의위요? 혹시 우리 몰래 유명교 욕을 하고 다닌 건 아니죠?”
“내가? 왜?”
“교주의 술법에 당하셨으니까요.”
“그래도 딱히 유감은 없어. 과정이야 짜증 나지만 결과적으로 손해는 보지 않았으니까.”
“많이 유해지셨습니다?”
조금은 비꼬는 듯한 심통의 말에 연적하가 발끈했다.
“그래서 뭐? 유명교주를 욕하고 다니라는 거야? 그게 소원이면 그렇게 해 주고.”
연적하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자 심통이 손사래를 쳤다.
“그럴 리가요! 칭찬입니다. 그런 게 경륜이라는 겁니다. 당가야. 내 말이 틀렸냐?”
당운망 역시 금의위나 유명교와 얽히고 싶지 않았던지라 고개를 격하게 끄덕였다.
“맞지! 맞아. 가주님. 심가가 입은 삐뚤어졌지만 이번에는 바른말을 했습니다. 경륜입니다. 경륜.”
그제야 연적하는 못이기는 척 자리에 앉았다.
두 노인과 더불어 시시껄렁한 이야기를 나누던 연적하의 눈에 멀리 산이 보였다.
불현듯 청성산에 두고 온 남궁연과 딸이 떠오른 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가자.”
심통, 당운망, 월아, 금아가 군말 없이 일어나 그의 뒤를 따랐다.
잠시 후 연적하 일행의 마차가 막 움직이려는 순간이다.
누군가 벼락처럼 마차 앞으로 뛰어들었다.
깜짝 놀란 말들이 날뛰자 심통은 고삐를 단단히 움켜쥐고 말들을 달랬다.
“워워!”
말들이 흥분을 가라앉히자 심통은 갑자기 난입한 사람에게 욕부터 퍼부었다.
“이런 개 같은 년을 봤나! 죽으려고 환장을 했느냐! 왜 마차 앞으로 뛰어들어!”
뒤늦게 정신을 차린 묘령의 여자가 고개를 숙였다.
“미안합니다! 제가 급한 사정이 있어서 그런데 마차를 좀 얻어 탈 수 있을까요?”
“…….”
예상치 못한 말에 심통이 눈만 끔빽일 때다.
마차 창문을 열고 연적하가 물었다.
“어디로 가는데요?”
“청성산요!”
“타세요.”
묘령의 여자, 한소양은 앳된 얼굴의 남자에게 허리를 조아렸다.
“감사합니다. 이 은혜는 잊지 않을게요.”
말을 마친 그녀는 불안한 눈으로 좌우를 살피다가 재빨리 마차에 올라탔다.
뻘쭘한 얼굴로 수염을 잡아 뜯고 있는 심통에게 당운망이 말했다.
“심가야. 얼른 출발하지 않고 뭐하느냐?”
“쩝…….”
심통은 하고 싶은 말이 많았지만 꾹 참고 고삐를 흔들었다.
두 마리 말이 앞으로 치고 나가자 마차가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마차는 마주 앉은 앞사람과 살짝 무릎이 닿을 정도로 비좁았다.
초면의 사람들에게 둘러싸인 한소양은 어색함을 풀기 위해 먼저 자기 소개를 했다.
“태워 주셔서 고마워요. 저는 도강언에 있는 낙성문의 한소양이에요. 나중에라도 낙성문에 찾아오시면 사례할게요.”
“괜찮아요. 마침 자리가 비어서 그런 건데요 뭐.”
“아, 네에.”
한소양은 청년이 자기소개를 하지 않자 궁금했지만 묻지 않았다.
태워 준 것만 해도 감지덕지인 마당에 이름까지 캐물을 수는 없었다.
마차가 마을 어귀에 도달할 즈음이다.
빠르게 잘 달리던 마차가 느려지더니 급기야 사람들 걷는 속도로 움직였다.
답답함을 느낀 연적하가 말했다.
“심 노인. 어떻게 된 거야? 왜 이렇게 못 가?”
“마을 어귀를 관졸들이 막고 있습니다. 누굴 찾고 있는 것 같습니다.”
“누굴 찾고 있다고?”
그러자 당운망이 끼어들었다.
“예! 짐이 아니라 얼굴을 확인한 후에 통과시키고 있습니다.”
“아하!”
바깥 상황을 짐작한 연적하가 고개를 끄덕였다.
종종 범죄자를 잡기 위해 관졸들이 그럴 때가 있었다.
이번에도 달아난 누군가를 잡으려고 마을을 철통같이 에워싼 모양이다.
지금 상황을 한소양에게 설명하려던 연적하가 멈칫했다.
그녀의 안색이 좋지 않아서다.
“한 소저, 어디 아파요?”
“저어, 실은…….”
머뭇거리던 한소양이 자포자기한 얼굴로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하아! 저를 잡으려고 그러는 거예요.”
“한 소저를요? 왜요? 누굴 다치게라도 했어요?”
연적하가 새삼스러운 눈으로 한소양을 찬찬히 살폈다.
녹림이라면 모를까?
아무리 봐도 평범한 무관의 아가씨를 관졸들이 왜 잡아가려는 것일까?
“그게 제가 욕을 좀 했거든요.”
“풋! 욕을 했다고 잡아가요? 다관(茶館) 같은 데서 황제 욕이라도 했어요?”
기가 막힌지 월아와 금아도 한마디씩 했다.
“진짜요?”
“어머! 무슨 욕을 했길래 관에서 잡아가요?”
“유명교 욕을 했거든요.”
“…….”
깜짝 놀란 월아와 금아는 손으로 자기들 입을 탁! 하고 막았다.
잠시 어색한 침묵이 마차를 감돌았다.
연적하가 궁금하다는 듯 물었다.
“무슨 욕을 했는데요?”
“성도에서 저희 낙성문과 경쟁하는 문파가 있어요. 삼정검문이라고. 그런데 삼정검문이 유명교에 드나들면서 저희 낙성문 쪽의 상점들을 하나씩 빼앗겼어요. 정확히는 관에서 저희 낙성문 쪽 상점을 계속 건드렸어요. 그걸 견디다 못한 상점들이 삼정검문으로 옮겨 간 거죠. 인심이라는 게 그렇더라고요. 삼정검문과 손 잡으면 관에서 뒤를 봐주니까, 아무리 낙성문이 잘해 줘도 소용없더라고요.”
“그게 유명교와 무슨 관계가 있는데요?”
“유명교주가 대법사가 됐잖아요. 호국의 종교가 된 뒤로 관부에서 특별 관리를 해 줘요. 현령들은 뭐 도와줄 게 없나 살피느라 하루가 멀다 하고 유명교를 들락거리죠. 그러다 보니 유명교에 줄을 대면 성공하고, 줄을 대지 않으면 빼앗기는 형국이 된 거죠.”
“유명교가 직접적으로 나쁜 짓을 한 건 없다는 소리로 들리는데, 맞나요?”
“그렇게 말할 수도 있지만, 유명교 존재 자체가 악을 만들어 내고 있잖아요. 지방 관원들이 알아서 눈치를 보면서 기는 상황이라……. 법과 도덕보다는 유명교에 드나드는 사람들 입맛대로 세상이 움직이고 있다고요!”
답답한지 한소양의 음성이 높아졌다.
그 부분에 있어서는 생각이 깊지 않은 연적하도 공감할 수 있었다.
“아하! 그래서 유명교를 욕하셨구나?”
“맞아요.”
“청성산에는 왜 가는 거예요?”
“그곳에 남천 대협이 계시다는 소리를 들었어요. 유명교와 싸우던 그분이라면 도와주실 수 있지 않을까 해서요.”
“사천무림과 호천맹도 있잖아요.”
“사천무림은 유명교와 친하고, 호천맹은 유명무실하게 된 지 오래거든요.”
“연적하도 별수 없을 거예요.”
“왜죠?”
연적하가 막 대답하려는 순간, 느릿느릿 움직이던 마차가 멈춰 섰다.
곧이어 관졸 중에서 관인 하나가 나와 심통과 당운망을 향해 말했다.
“실례합시다! 본관은 도강언의 포두 여청풍이오. 달아난 역적을 찾고 있으니 번거롭더라도 잠시 협조해 주시면 감사하겠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