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797
797회. 됐고, 어디 소속이에요?
모든 걸 포기한 듯 술술 털어놓던 한소양의 얼굴이 한순간 굳었다.
마음은 독하게 먹었지만 막상 포두가 찾아오니 덜컥 겁이 난 것이다.
오늘날 유명교를 욕한다는 것은 반역과도 같다.
나라에서는 단지 말뿐이 아니라 금의위까지 동원해 잡아갔다.
그리고 잡혀간 사람들은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한소양은 끝까지 버텨 보고 싶었지만 청년과 두 소녀를 생각하면 그럴 수 없었다.
“하아! 집요하네요. 나 하나 잡겠다고 저렇게 많은 포졸들을 동원하다니……. 아무래도 여기까지인 것 같아요. 저 때문에 다른 사람들까지 피해를 당하게 할 수는 없으니…….”
그때 맞은편에 앉아 있던 연적하가 마차의 창문을 열고 말했다.
“거기 아저씨. 여 포두라고 했어요?”
도강언 포두 여청풍이 황당한 얼굴로 청년을 보았다.
자신의 직위를 밝혔는데 ‘거기 아저씨’란다.
속에서 울컥 욕이 치밀어 올랐지만 그는 초인적인 인내심으로 눌렀다.
포졸의 위치란 본디 그런 것이다.
일반인에게는 호랑이처럼 군림할 수 있지만 권력자 앞에서는 개처럼 알아서 기어야 한다.
포졸은 관에서 가장 낮고 천한 직위인 까닭이다.
“그렇습니다만 공자님께서는 누구신지?”
“내가 누군지는 알 것 없고, 얼마면 돼요?”
“…….”
여청풍 포두는 모멸감에 치를 떨었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마음 같아서는 욕을 한 바가지 퍼부은 후에 넌지시 은자 열 냥쯤 부르고 싶었다.
포졸은 일 년에 은자 열 냥을 받는다.
한 가족의 한 달 생활비가 은자 한 냥쯤 되니 일 년에 은자 열 냥으로는 먹고살기 어렵다.
그런 이유로 대부분의 포졸들은 백성들에게 돈을 뜯어냈다.
하는 짓을 보니 청년도 포졸들과 오랫동안 뒤로 돈을 주고받은 것 같았다.
마음 같아서는 자신도 그러고 싶지만, 오늘은 안 된다.
뒤에서 금의위가 지켜보고 있기 때문이다.
“허, 허튼소리 말고 누군지나 밝히게.”
이야기가 길어지자 포졸들이 우르르 마차 주위로 모여들었다.
뒤늦게 여청풍은 한껏 포두의 위엄을 발산했다.
“귓구멍이 막혔나! 어디의 누구인지 밝히라니까!”
“석경장의 연적한데요.”
“어디에 있는 석경장? 여강현에 있는 석경장이 아니라면 그런 식으로 말하지 말라고.”
“여강현의 석경장 맞는데요?”
“…….”
처음에 여청풍은 청년이 자신을 놀리는 줄로만 알았다.
그래서 버럭 화를 내려는 순간 마부석에서 차가운 음성이 들려왔다.
“여청풍이라고 했느냐? 그만 깝치고 길이나 트거라.”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린 여청풍의 눈에 마부가 들어왔다.
염소수염을 한 노인에게서 태산과도 같은 기도가 느껴졌다.
그의 시선이 저도 모르게 노인의 허리춤으로 향했다.
‘헉! 금강저다!’
포졸들이 사용하는 육모 방망이 정도의 크기를 한 그것은 분명 금강저였다.
“구, 구천노도십니까?”
“흥! 내가 아니면 천하에 누가 연 장주님의 마차를 몰 수 있단 말이냐?”
심통은 마차를 모는 것이 벼슬인 것처럼 말했다.
누가 들어도 헛소리지만 포졸들은 감히 비웃지 못하고 시선을 돌렸다.
“자,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여청풍은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일이 아님을 알고 급히 금의위들에게 달려갔다.
여청풍이 달려오자 두 명의 금의위는 눈살을 찌푸렸다.
소기(小旗) 조명화가 턱을 세우며 물었다.
“무슨 일이냐?”
“마차가 와서 검문을 하려고 했사온데……. 석경장의 장주가 타고 있습니다.”
“석경장? 설마 여강현의 그 석경장을 말하는 것이냐?”
“그렇습니다. 마부가 스스로 구천노도라고 했습니다.”
조명화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입맛을 다셨다.
구천노도가 연적하를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것은 강호에 유명했다.
“그래서?”
“구천노도가 길을 열라고 합니다. 어찌할까요?”
곰곰 생각하던 조명화는 수하를 데리고 마차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마차로 다가가자 마부석에 있던 늙은이가 눈을 부라리며 쏘아보았다.
하는 짓이 과연 녹림의 마두 출신답다.
‘정말 구천노도구나.’
조명화는 금의위 소기답게 대번에 늙은이의 무위가 뛰어남을 감지했다.
하지만 자신은 황명을 집행하는 금의위.
석경장의 연적하가 아무리 무림의 고수라 해도 자신의 명에 따라야 한다.
“험! 본관은 금의위의 조명화요. 황상의 명으로 역도를 잡으러 왔소.”
“나는 석경장의 장주 연적하예요.”
연적하가 의미심장한 눈으로 조명화를 보았다.
자신과 금의위의 관계를 생각하면 이쯤에서 상대가 물러나는 게 인지상정이었다.
그런데 조명화는 뜻밖의 말을 했다.
“연 장주께서 본관이 하는 일에 협조해 주면 감사하겠소.”
“협조라면?”
“마차를 조사하게 해 주시오.”
조명화의 말에 연적하는 기가 찼다.
언제는 ‘천외검선’이니 ‘황상의 숨겨진 검’이니 띄워 주더니 자신이 탄 마차를 조사하겠단다.
뒤늦게 그는 금의위에 분파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가만, 남진과 북진으로 나누어져 있다고 했던가.’
자신은 남진과 일을 했으니 상대가 북진 소속이라면 모를 수도 있었다.
“됐고. 어디 소속이에요?”
“…….”
연적하의 말에 조명화는 울컥했지만 일단은 참았다.
금의위 앞에서 막 나가는 것은 그만한 뒷배가 있다고 생각해서다.
“금의위라고 하지 않았소.”
“내 말은 남진이냐, 북진이냐를 묻고 있는 거예요.”
순간 조명화는 일이 잘 안 풀릴 것을 직감했다.
남진과 북진을 따질 정도로 연적하가 금의위에 대해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북진에 속해 있소.”
“직위는?”
“소기요.”
연적하가 조명화를 빤히 보며 말했다.
“가만? 어디서 본 얼굴인데. 우리 아는 사이예요?”
“오늘 아침에 객잔에서 본 것 같소.”
“아, 맞다. 객잔에서 본 사람이구나. 어쩐지 낯이 익더라. 인연이네, 인연이야.”
조명화는 연적하가 자신을 세워 두고 허튼소리를 하자 짜증이 났다.
‘아니! 조사에 협조해 달라니까 무슨 헛소리를.’
기어코 그가 막 한 소리 하려고 할 때다.
“조 소기님. 내 마차를 조사하려면 북진무사 정도는 와야 할 거예요. 심 노인, 뭐해? 가자고.”
기다렸다는 듯 심통이 고삐를 흔들었다.
덜그럭거리며 마차가 움직이자 포졸들이 엉겁결에 좌우로 갈라졌다.
마차는 포졸들 사이를 유유히 헤치고 전진해 마을을 벗어났다.
조명화는 노기 어린 눈으로 마차를 노려볼 뿐 감히 막아서지 못했다.
상대가 북진무사를 들먹이니 자연히 움츠러든 것이다.
조명화의 수하 여수담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조 소기님, 어떻게 할까요?”
“너는 은밀히 마차를 쫓아라. 나는 오늘의 일을 상부에 상신(上申)하도록 하겠다.”
“존명!”
여수담은 즉시 근처에 매어 두었던 자신의 말을 타고 마차 뒤를 쫓았다.
***
한소양이 맞은편에 앉은 연적하를 보며 어색하게 운을 뗐다.
“그런데 정말 남천 대협이세요?”
“남천이 내 별호를 말하는 거라면 맞아요. 내가 남천 연적하예요.”
“마, 만나 뵙게 돼서 영광이에요.”
“아까도 말했지만 유명교와의 문제는 나도 어쩔 수 없어요.”
“…….”
“황실에서 인정한 호국의 종교라면서요? 소저도 방금 봤잖아요. 금의위까지 동원된 거. 나는 고작 석경장의 주인일 뿐이에요.”
“하지만 남천 대협게서는 말 한마디로 금의위를 물리치셨잖아요.”
“아직 금의위에 대해 잘 모르시나 본데 그들은 쉽게 물러나지 않아요. 어쩌면 진짜 북진무사가 찾아올지도 몰라요. 그때는 나도 어쩔 수가 없어요.”
“천하가 유명교 때문에 고통받고 있어요. 그걸 외면하실 건가요?”
“한 소저는 낙성문이라고 했죠?”
“네.”
“만약 낙성문이 삼정검문에 상권을 빼앗기지 않았어도 유명교를 욕했을까요?”
연적하의 말에 한소양은 즉답을 하지 못했다.
이 모든 게 삼정검문이 유명교를 등에 업고 낙성문의 상권을 빼앗아 시작된 일인 까닭이다.
침묵하던 한소양의 입에서 한숨이 흘러나왔다.
“하아! 그래요. 삼정검문에 상권을 빼앗겨서 유명교를 욕한 건 사실이에요. 하지만 지금과 같은 세상이 정상적인 건 아니잖아요?”
“소저의 말은 맞는데, 그렇다고 나 혼자서 바꿀 수 있는 세상도 아니에요.”
“남천 대협께서는 과거 유명교에 맞서 싸우셨잖아요?”
“혼자서 싸운 건 아니었죠. 천지맹을 도와 싸운 거니까. 하지만 지금 호천맹은 싸울 뜻이 없잖아요. 설마 나 혼자서 유명교와 싸우라는 건 아니겠죠?”
“그래도 남맹은 남천 대협과 뜻을 함께하지 않을까요?”
“천하가 힘을 합쳐도 어쩌지 못한 유명교를 강남무림만으로 상대하라는 건가요?”
“…….”
연적하의 지적에 한소양은 입을 꽉 다물었다.
정사파가 힘을 합쳤어도 막지 못한 유명교를 생각하면 강남무림만으로는 무리였다.
“더구나 남맹은 나와는 별관계도 없어요. 남맹이 사천무림과 각을 세운 건 상대할 만하니까 그런 거예요. 그들에게 유명교와 싸우자고 하면 찬성할 것 같아요?”
“듣고 보니 대협 말씀이 맞네요. 너무 제 생각만 했어요. 죄송해요.”
“죄송할 것 까지는 없어요. 한 소저에게 의기(義氣)가 있어서 그런 거니까.”
사실 연적하가 한소양을 도운 건 바로 그 의기를 좋게 보아서였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다.
생판 남인 그녀를 위해서 피를 흘려 줄 마음은 조금도 없었다.
해거름 무렵 연적하가 탄 마차는 청성파의 산문 앞에 도착했다.
이윽고 연적하와 한소양, 월아, 금아가 차례로 마차에서 내렸다.
청성파 앞에서 잠시 머뭇거리던 한소양이 연적하에게 작별인사를 건넸다.
“남천 대협, 마을에서 빠져나올 수 있게 도와주셔서 감사해요. 저는 이만 가 볼게요.”
“당분간은 청성파에 있는 게 좋을 거예요.”
“청성파에요?”
뜻밖의 제의에 한소양이 고개를 갸웃했다.
자신은 청성파와 아무런 연고도 없는데 왜 청성파에 있으라는 건지 모르겠다.
심통이 연적하를 대신해 나섰다.
“금의위 놈 하나가 마차를 따라왔다. 여기서 네가 혼자 가면 바로 잡히고 말 게다.”
“아!”
한소양의 얼굴이 더욱 어두워졌다.
고작 유명교 욕을 했다고 이렇게까지 집요하게 따라붙을 줄이야!
듣고 있던 월아가 기막힌 얼굴로 한마디 했다.
“스승님, 유명교 욕 좀 한 거 가지고 너무한 거 아니에요? 살다 보면 뒤에서 욕 좀 할 수도 있지. 금의위가 그렇게 할 일이 없나?”
“흐흐. 본래 금의위가 하는 일이 그런 거니라. 그러니 너도 밖에 나가서 함부로 입을 놀리면 안 될 것이야.”
스승의 가르침이 마음에 들지 않자 월아는 입술을 삐죽였다.
결국 한소양은 연적하 일행과 함께 청성파로 들어가기로 했다.
지금 금의위에 잡혀가 허망하게 죽는 것보다 그편이 백배 나아서다.
***
한소양이 청성파로 올라가는 것을 확인한 여수담은 돌아가 조명화에게 보고했다.
단단히 벼르고 있던 조명화는 즉시 장문의 보고서를 작성해 위에 올렸다.
다음 날.
그의 보고서는 총기(總旗)와 백호(百戶), 천호(千戶)의 손을 거쳐 마침내 사천지부 북진무사 장사경에게 전해졌다.
얼굴을 잔뜩 찌푸린 장사경이 천호 하시진에게 확인하듯 물었다.
“연적하가 역도인 한소양을 빼돌리고, 그에 대해 조사하려거든 북진무사를 부르라 했다는 건가?”
“소관도 그렇게 이해했습니다.”
“미쳤군. 역도를 빼돌린 것만도 이미 중죄이거늘, 감히 북진무사를 찾아? 나를 도발했으니 응해 주지. 가장 빨리 동원할 수 있는 군대가 어디냐?”
“팽주(성도 북쪽)에 정천호 황지원의 천호소(千戶所)가 있습니다.”
“그에게 군사를 이끌고 내일 정오까지 청성산으로 오라 해라.”
“모양 대인의 허락을 득하지 않아도 되겠습니까?”
“그러기에는 늦다. 역도가 달아나기 전에 전광석화처럼 휘몰아쳐야 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