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862
862회. 게으르고 싶다.
출렁- 출렁-.
강풍에 배가 좌우로 요동쳤다.
설상가상이라고 머리 위로 폭우가 마치 물을 들이붓듯 쏟아졌다.
쏴아아아-.
그 아수라장 속에서 경험 많은 사공도 삿대를 손에서 놓치고 말았다.
“아앗!”
절망한 사공이 두 손으로 제 얼굴을 감싸 안았다.
강 한복판에서 배를 조종할 삿대마저 잃었으니 이제는 속수무책의 상황.
배는 물살에 떠밀려 가다가 전복되든지, 바위에 부딪쳐 부서지고 말 터였다.
허둥거리던 그는 뭔가 이상한 느낌을 받고 고개를 돌렸다.
아까부터 자신만 난리를 치고 있는 것 같았다.
아니나 다를까?
선객들은 엉성하게 만든 선실에 모여 있는데 표정이 평화로웠다.
석경장의 사람들은 이 난리통에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고요했다.
상황을 몰라서 그런다고 생각한 사공은 선실 앞으로 달려가 소리쳤다.
“나리님들! 삿대를 잃어버렸습니다! 배를 강변에 댈 수가 없습니다!”
그제야 선실에 있던 사람들의 얼굴에 살짝 긴장이 어렸다.
이윽고 석경장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연적하를 향했다.
심통에게 연적하가 천둔검으로 상단 사람들을 구했다는 이야기를 들어서다.
지금은 강물에 빠진 수십 대의 마차도 검공으로 끌어 올려 준 연적하를 믿는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연적하는 식솔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사납게 요동치는 갑판에 우뚝 선 그는 허공에서 천둔검을 꺼내 하늘로 던졌다.
그가 검결지를 까닥이자 천둔검은 배 뒤편으로 나아갔다.
사공은 이기어검에 잠깐 놀랐지만 이내 우거지상을 했다.
‘이런 젠장! 당장 배가 뒤집혀 죽게 생겼는데 무슨 칼이냐고!’
그가 이 위기를 어떻게 극복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을 때다.
갑자기 배 밑바닥에서 ‘쿠웅’ 하는 소리와 함께 진동이 느껴졌다.
“헉! 바, 바위에 부딪쳤나 봅니다!”
갑판 위에 납작 엎으렸던 사공이 돛대로 엉금엉금 기어가며 소리를 내질렀다.
그는 배가 박살 나면 돛대라도 잡고 살아 볼 요량이었다.
그때다.
미친년 널뛰듯 좌우로 요동치던 배가 갑자기 중심을 잡았다.
심지어 당장 부서져도 이상하지 않을 배가 미동도 하지 않는다?
사공은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 엉거주춤 일어났다.
사나운 물살에 조금 전까지 갑판 위로 물이 튀었는데 그런 것도 없었다.
뱃전으로 다가가 아래를 내려다보던 사공의 입이 쩍 벌어졌다.
배 밑바닥이 수면에 아슬아슬하게 걸친 채로 전진하고 있었다.
지금 배를 띄우고 있는 건 강물이 아니라 다른 무언가였다.
‘헉! 저게 뭐지?’
평저선(平底船)인 배의 평평한 밑바닥을 받치고 있는 건 난생처음 보는 금속 재질의 판이었다.
‘설마 아까 본 그 검은 아니겠지?’
색깔을 보면 영락없는 그 검이지만 크기가 달랐다.
배의 길이가 오 장(약 15미터)이 넘는데 평범한 장검으로 어떻게 이걸 떠받친단 말인가!
‘그럼 그 검은 어디로 간 거지?’
아니 이런 위기의 순간에 연적하는 왜 검을 꺼내 배 뒤편으로 던졌을까?
사라진 검의 행방을 궁금해 하던 그가 눈을 부릅떴다.
십여 장(약 30미터) 앞쪽에 나루터가 보였다.
눈에 익은, 쥐똥만 한 그것은 협만촌의 나루터가 분명했다.
“저! 저기 나루터가 있습니다!”
사공이 손가락으로 오른편 강변을 가리켰다.
금방이라도 나루터를 지나쳐 갈 것 같던 배가 방향을 꺾어 나루터로 향했다.
이윽고 배가 나루터에 도착하자 사공은 밧줄로 배를 나루터에 꽁꽁 묶었다.
사공이 나루터에 배를 고정하자 연적하는 천둔검을 허공으로 돌려보냈다.
그제야 물살에 배가 다시 흔들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미 계류가 된 상태라 흔들림은 심하지 않았다.
겨우 한숨 돌린 사공은 호기심에 배 밖으로 상체를 쑥 내밀었다.
하지만 언제 사라졌는지 편편한 판은 보이지 않았다.
‘하기야 사라졌으니 배가 흔들리는 거겠지?’
그게 뭐냐고 묻고 싶었지만 애석하게도 이곳에 자신의 대화 상대는 없었다.
머리를 긁적이던 사공은 선실로 돌아갔다.
“이곳은 협만촌입니다. 날이 갤 때까지 이곳에 머물겠습니다. 마을에 객점은 없지만 촌장에게 말하면 집 하나 정도는 구할 수 있을 겁니다. 구해 드릴까요? 물론 배를 묶어 두었으니 선실에서 쉬셔도 됩니다.”
심통이 의견을 구하듯 연적하를 힐끔 보았다.
그러자 연적하가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이야 아무래도 상관없지만 남궁연과 아기를 생각하면 집이 나았다.
“구해 보거라.”
심통의 허락이 떨어지자 사공은 도롱이를 걸치고 삿갓을 쓴 뒤에 마을로 달려갔다.
협만촌의 허름한 가옥.
석가장 식솔들은 대청마루에 모여 촌장집 아낙들이 만들어 준 음식으로 배를 채웠다.
집을 잠시 빌리겠다고 했더니 식사까지 한 묶음으로 제공해 주겠다고 해서 그리된 것이다.
돈이 조금 더 나갔지만 양쪽 모두에게 좋은 일이었다.
식사 후에 차로 입가심을 하던 당운망이 어둑어둑한 하늘을 보며 탄식했다.
“허어! 이제 점심을 먹었을 뿐인데 저녁 식사를 한 기분이네. 이거 참.”
심통이 어디서 주워 왔는지 나뭇가지로 이를 쑤시며 거들었다.
“그러게. 무슨 날씨가 이 모양인지. 이런 날은 동파육에 죽엽청이 딱인데.”
심통이 입맛을 다시자 월아와 금아가 그의 앞으로 쪼르르 달려갔다.
“스승님, 마을에서 죽엽청을 얻어 올까요?”
“동파육도 재료를 구해서 만들 수 있어요.”
심통과 함께 주루를 운영했던 월아와 금아가 눈을 반짝였다.
그러자 심통이 연적하의 눈치를 힐끔 살폈다.
자기들끼리만 있으면 모르겠지만 지금은 그의 눈치를 살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연적하는 듣지 못한 척 딴청을 부렸다.
참다못한 심통이 슬쩍 운을 뗐다.
“공자님, 오늘 갤 날씨가 아닌데 동파육에 죽엽청 어떻습니까?”
“그렇게 독한 술이 뭐가 좋다고.”
“향설주를 구해 볼까요?”
“향설주에 동파육은 괜찮지.”
“그럼 향설주에 동파육으로 가겠습니다.”
심통은 연적하가 변덕을 부리기 전에 얼른 월아와 금아에게 말했다.
“향설주와 동파육으로 준비해 보거라.”
“예!”
시원하게 대답했지만 월아와 금아는 움직이지 않았다.
그제야 심통은 돈이 없어서 그러는 것임을 알고 다시 연적하에게 고개를 돌렸다.
“공자님. 은자 반 냥 정도는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러자 연적하가 아쉬운 얼굴로 은자를 뚝 잘라 심통에게 던졌다.
심통이 은자 반 냥을 월아의 손에 쥐어 주며 말했다.
“무리하지 말고 적당히 돈에 맞춰 준비하도록 해라.”
“예.”
월아와 금아는 작은 널빤지로 머리를 가리고 집 밖으로 달려 나갔다.
멀어져 가는 월아와 금아를 당운망이 부러운 얼굴로 보았다.
심통과 달리 그에게는 아직 제자가 없었다.
그동안은 당가의 가법이 무서워 엄두도 내지 못했는데 이제는 괜찮을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독을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이래저래 생각할수록 한숨만 나왔다.
“부럽냐?”
심통의 말에 당운망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월아와 금아는 쾌활하고 재기발랄해서 이상적인 제자라 할 수 있었다.
심통이 약 올리듯 말했다.
“흐흐. 착하게 살면 제자는 저절로 생기느니라.”
당운망은 뭐라 한마디 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평소의 심통을 생각하면 믿기 어려운 일이지만 그가 월아와 금아의 은인인 것만은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났지만 여전히 하늘은 어두웠고, 폭우도 멈추지 않았다.
월아와 금아가 대청마루로 동파육을 내왔다.
연적하와 심통, 당운망은 머리를 맞대고 앉아 향설주와 동파육을 먹었다.
남궁연은 아기에게 젖을 먹여야 하는 터라 술은 입에도 대지 않았다.
월아와 금아는 나이가 어려 빠졌다.
그러다 보니 여자들만 술자리에서 제외된 형국이 됐다.
보다 못한 남궁연이 월아와 금아에게 동파육만이라도 먹자고 제안했다.
맨입에 동파육만 먹던 세 여자는 마을 아낙들이 해 놓은 밥을 곁들였다.
술 대신 밥인 셈이다.
월아와 금아는 그게 우스운지 깔깔거렸다.
쾌활한 두 소녀의 웃음소리가 빗소리를 뚫고 멀리까지 퍼져 나갔다.
다음 날이 돼서야 비로소 하늘이 밝아졌다.
여전히 비는 추적추적 내렸지만 어제와 같은 장대비가 아닌지라 배를 띄우기로 했다.
석경장 식솔들은 선실에 모여 불어난 물이 만들어 낸 생경한 풍경을 즐겼다.
도롱이와 삿갓을 쓴 사공은 새로운 삿대로 배를 강 중심부로 밀어냈다.
삿갓으로 얼굴을 가렸지만 사공은 남궁연이 있는 곳으로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그는 연적하와 저 석경장의 사람들이 자신과 완전히 다른 세계에 살고 있음을 알았다.
‘저 혼자 날아가는 검’과 ‘배를 물 위로 들어 올린 수법’은 생각만 해도 소름이 돋았다.
타강을 따라 남쪽으로 내려가던 배는 양자강과 만나 다시 동쪽으로 나아갔다.
남궁연이 세운 계획은 양자강을 따라 남직례성까지 가는 것이었다.
찌그덕- 찌그덕-.
습관적으로 삿대질을 하던 사공은 눈으로 땀이 파고들자 손등으로 훔쳤다.
그러다 자신의 손이 덜덜 떨리고 있음을 발견했다.
지난 며칠 동안 잔뜩 긴장한 가운데 삿대질을 했더니 결국 몸에 무리가 온 모양이다.
‘하아!’
보통의 손님들인 줄 알고 장거리 계약을 한 게 미치도록 후회가 됐다.
석경장 사람들의 눈을 의식하다 보니 육체는 물론 정신까지도 힘들었다.
그렇다고 이제 와서 계약을 취소할 수도 없는 노릇.
삿대질을 하다 쓰러져 죽는 한이 있어도 약속은 지켜야 했다.
그걸 알기에 더욱 힘든 것인지도 모른다.
‘죽겠다.’
갑자기 멀쩡하던 허리까지도 욱신거렸다.
아무래도 지난 열흘간의 삿대질로 진이 쪽 빠진 모양이다.
허리를 꼿꼿하게 세우고 매 순간 전심전력으로 삿대질을 해 댔으니 그럴 수밖에.
적당히 요령을 피우며 일했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
초반에 남궁연을 곁눈질하다 심통에게 찍히고, 연적하의 무위를 본 게 문제였다.
강의 크기와 물살의 세기로 말하자면 양자강은 타강에 비할 바가 아니다.
당연히 집중력과 힘도 몇 배 이상 들었다.
삐끗.
‘악!’
힘주어 삿대질을 하는데 뭐가 잘못 됐는지 허리에서 격통이 밀려왔다.
‘끝장이군.’
사공은 천천히 선미에 주저앉았다.
자기 실수로 계약이 깨지게 됐으니 무조건 상대의 결정에 따라야 했다.
그는 삿대를 갑판에 내려놓고 삐끗한 허리를 열심히 주물렀다.
삿대질을 멈추자 물살에 밀린 배가 조금씩 강변으로 흘러갔다.
배가 요상하게 움직이자 심통이 선미로 다가갔다.
“이놈아. 배가 산으로 가겠다.”
“갑자기 허리가 삐끗해서……. 삿대질이 어렵게 됐습니다.”
“흐흐. 그렇게 몸이 뻣뻣한데 허리가 삐끗하지 않으면 이상하지. 하는 꼴을 보니 네놈은 물질해서 먹고 살면 안 되겠다.”
사공은 억울했지만 변명하지 않았다.
어쨌든 허리를 다친 건 자신의 잘못인 까닭이다.
“무산현의 나루터에 내려 드리겠습니다. 양자강은 오가는 배가 많으니 금방 다른 배를 구할 수 있을 겁니다.”
심통은 사공의 일을 바로 연적하와 남궁연에게 알렸다.
결국 연적하가 나서서 뱃삯을 조정한 뒤 무산현에서 내리기로 했다.
***
호광성.
무산현.
정오 무렵.
오 장여 길이의 배 한 척이 선착장으로 천천히 진입했다.
선착장에 있던 사람들 가운데 몇이 빠르게 새로 들어온 배로 다가갔다.
그러나 배는 문제가 생겼는지 남녀노소 손님들을 내려놓고 인근 계류지로 이동했다.
목적지를 확인하려 다가갔던 사람들이 실망한 얼굴로 흩어졌다.
석경장 사람들은 한적한 곳의 나무 그늘에 자리를 잡았다.
남궁연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앉아 선착장을 구경하던 연적하가 중얼거렸다.
“다들 바쁘네? 무슨 개미 떼가 움직이는 것 같아.”
근처에 있던 당운망이 끼어들었다.
“저들은 우리를 게으른 사람들이라고 생각할 겁니다.”
“아! 게으르고 싶다.”
진정성이 느껴지는 연적하의 탄식에 석경장 식솔들이 ‘풉!’ 하고 웃음을 흘렸다.
그때 묘령의 아가씨들 십여 명이 질서 정연하게 선착장으로 들어왔다.
등에 맨 장검과 맞춰 입은 듯한 백의를 보면 같은 문파의 무림인들이 분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