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869
869회. 우리가 그럴 사이는 아니잖아요.
서가장의 장주 서결은 천장에서 남자들이 떨어지자 슬그머니 구석으로 물러났다.
본능적으로 자신이 낄 자리가 아님을 알아차린 것이다.
의창 교당의 실질적 주인은 인신 공양을 주관하던 미부(美婦).
그녀의 정부(情夫)에 불과한 그로서는 당연한 행동이었다.
그는 천장을 뚫고 난입한 불청객들과 미부를 번갈아 보았다.
‘제길 이게 무슨 일이지?’
감히 유명교의 신당을 부수고 행사를 훼방 놓다니?
유명교가 호국의 종교로 인정받기 이전에도 이런 일은 없었다.
‘설마 호천맹의 과격분자들인가?’
호천맹이라고 해서 모두 양 같은 사람들만 있는 건 아니다.
다양한 문파들이 모인 만큼 늑대나 사자 같은 무인도 섞여 있었다.
그들은 유명교가 황실의 인정을 받고 난 뒤에도 적의를 숨기지 않았다.
‘틀림없이 그들이다.’
그들 외에 감히 누가 유명교 신당을 기습한단 말인가!
거기까지 생각한 서결은 부지런히 양측을 살피며 유불리를 계산했다.
이곳에는 월하선자가 보낸 다섯 명의 십두마병이 있다.
그에 비해 상대는 고작 셋.
습관적으로 움츠러들었던 서결의 어깨에 조금씩 힘이 들어갔다.
자신감을 회복한 그가 막 제단 중심부로 한 걸음 내디디려 할 때다.
난입한 불청객 중에 가장 어려 보이는 청년이 의창 교당의 주인을 보며 말했다.
“큰어머니?”
연적하가 황망한 눈으로 제단 중앙에 서 있는 미부를 보았다.
그녀는 여섯 살 때 보았던 모습 그대로였다.
지나간 세월을 망각하고 부지불식간에 ‘큰어머니’라 부를 정도로.
그리고 그는 바로 그녀를 큰어머니라 부른 것을 후회했다.
뜻밖의 소리에 놀란 백미주가 눈을 동그랗게 치뜨고 연적하를 보았다.
“정말 적하니? 이 매(妹)의 아들?”
이부용과 꽤나 친했던 것처럼 백미주의 입에서 자연스럽게 ‘이 매’ 소리가 나왔다.
연적하는 백미주의 그런 가증스러움에 치를 떨었다.
“아, 내가 착각을 했네요. 큰어머니는 여섯 살 때 죽었는데. 그런데 백 아주머니. 여기서 뭐 하는 거예요? 손에 칼은 뭐고, 저기 잡혀 있는 도사와 중들은 다 뭐예요?”
연적하가 선을 그었지만 백미주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어차피 그녀도 이부용과 연적하에게 눈곱만큼의 정도 느낀적이 없어서다.
“네가 녹림의 태상호법이라면 알고 있을 텐데. 이건 저들과 나를 위한 제사란다.”
“인신 공양은 백 아주머니나 저들 모두에게 해로운 건데, 누굴 위한다는 거예요?”
“해롭다니. 그건 너의 오해와 편견이다. 나는 고해(苦海)에서 저들을 구해 주고, 저들은 나를 높은 경지로 이끌어 주니, 모두에게 좋은 일이 아니겠느냐?”
“하! 도사와 중 들이 고해에서 구해 달라고 백 아주머니에게 부탁이라도 했나요?”
“내가 선의를 베푸는 것에 상대의 동의가 필요할까?”
“와아! 백 아주머니는 진짜 돌았네요. 그렇게 훌륭한 일을 왜 밤중에 숨어서 한대요? 대낮에 마당에서 하지 않고? 미친년 소리 듣기는 싫었나 보네?”
연적하의 말투가 점점 거칠어졌다.
욕을 먹었지만 백미주는 눈 하나 깜짝이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이 연적하의 상대가 되지 못함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월하선자가 내준 십두마병들이 있어도 마찬가지다.
백두마군들조차 압살해 버리는 연적하에게 십두마병 다섯은 있으나 마나 한 존재들이다.
“네가 반대한다면 제사는 드리지 않으마.”
백미주는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연적하를 빤히 보았다.
그녀는 자신이 연적하에게 대적하지 않으면 그가 물러나리라 생각했다.
그녀의 눈에 연적하는 몸집만 컸지 여전히 여섯 살 어린아이였다.
그가 눈이 마주치자마자 ‘어머니’라고 한 것만 봐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연적하는 그녀의 뜻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그런다고 해서 백 아주머니의 죄가 사라지는 건 아니라는 거 알죠? 여기서 백 아주머니를 놓아주면 다른 데 가서 같은 짓을 할 거잖아요.”
“그래서? 어쩌겠다고? 관인도 아닌 네가 나를 잡아가겠다는 거냐?”
“내가 백 아주머니를 잡아가서 뭐 해요? 석경장에는 감옥도 없는데.”
“그러니까 이쯤에서…….”
“의창에도 포방(捕房)은 있을 거 아니에요. 백 아주머니는 포방으로 가야 할 것 같네요.”
“호호홋! 의창의 포방이라고? 포방 따위가 유명교의 일에 관여할 수 있을 것 같으냐?”
“그건 모르겠고. 일단 백 아주머니와 여기 있는 잡것들은 죄다 포방으로 보낼 거예요. 나머지는 포방에서 알아서 하라죠.”
연적하의 말에 서결과 다섯 십두마병들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포방에 가 봐야 어차피 얼마 지나지 않아 풀려날 것이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의창 교당에서 인신 공양이 이루어졌다는 게 알려지면 여러모로 골치가 아파진다.
특히나 서결은 거의 사색이 됐다.
백미주나 다른 십두마병들은 유명교의 보호를 받겠지만 그는 아니다.
백미주의 정부에 불과한 그를 챙겨 줄 곳은 어디에도 없었다.
아니, 오히려 이 모든 사태의 책임을 지우고 죽이지나 않으면 다행이다.
백미주가 차가운 얼굴로 말했다.
“정말 큰어머니인 나를 포방에 넘길 생각이냐?”
“큰어머니는 이십 년쯤 전에 죽었다니까요? 창고에 갇혀서 손톱으로 벽을 벅벅 긁다가 죽었어요. 그런데 왜 자꾸 우리 큰어머니 행세를 해요? 혹시 백 아주머니도 우리 큰어머니처럼 되고 싶어요?”
창고에 갇혀서 벽을 긁다가 죽겠냐는 질문이다.
백미주는 표독스러운 눈으로 연적하를 노려보았다.
그가 내뱉은 말을 반드시 지킨다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졌다. 자신이 큰어머니 소리를 하면 분명히 죽을 때까지 창고에 가두려 할 게다.
“네가 무백이와 승백이, 설주와 화해했다는 소리를 들었다. 내가 그들의 어미라는 걸 잊지 마라.”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건데요?”
“네가 나를 포방에 넘기면 그 아이들이 좋아할 것 같으냐? 너는 다시 그 아이들의 원수가 되고 싶으냐?”
연적하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자기가 낳은 자식들까지 앞세우는 백미주의 뻔뻔함에 기가 질린 것이다.
“그런데 백 아주머니는 십두마병 같은데 왜 인신 공양에 손을 덴 거예요?”
“그야 당연히 백두마군이 되기 위함이지.”
“이제는 유명교에서도 십두마병이나 백두마군들이 죽으면 어떻게 되는지 알지 않아요?”
“사후의 일에는 관심이 없다.”
연적하가 포박된 채 무릎 꿇려진 도사와 중 들을 힐끔 돌아보았다.
어림잡아도 서른 명이 넘는 숫자다.
백두마군이 되기 위해서는 최소한 백 명의 수도사가 필요하다.
그녀는 얼마나 많은 수도사들을 죽였을까?
백미주를 보던 연적하의 눈에 이채가 어렸다.
그녀 뒤편의 높다란 장식대에 팔주령이 걸려 있었다.
자신도 팔주령을 남궁연이 준 정표로 여겨 오랫동안 몸에서 떼지 않았다.
무심코 가슴을 더듬던 연적하는 피식 웃었다.
항상 가슴에 동여매고 다니던 팔주령은 구주에서 잃어버린 지 오래였다.
대략 비경(秘境)에서 나온 뒤로 보이지 않았던 것 같다.
구천검령을 받던 날 몸에서 떨어져 나갔으리라 여겨지지만 기억에는 없다.
‘저건 백미주의 팔주령인가?’
저게 제단에 걸려 있는 걸 보면 인신 공양과 관계가 있음이 분명했다.
연적하가 자신의 팔주령에 관심을 보이자 백미주는 얼른 화제를 돌렸다.
“너는 형제들과 척을 지면서까지 나를 포방에 넘길 생각이냐? 너에게 무슨 이익이 있다고?”
“죄를 지었으면 벌을 받아야 하니까요.”
말과 함께 연적하는 장식대로 다가갔다.
그런 그의 앞을 백미주가 막아섰다.
“그러는 너도 녹림의 도적이었지 않으냐? 너는 벌을 받지 않았는데, 왜 나에게 벌을 받으라 강요하지?”
“왜냐고요? 백 아주머니, 인생은 본래 공평하지 않아요. 나와 같은 대접을 받고 싶다는 거예요? 욕심이 과하시네. 그런데 지금 내 앞을 막아선 거 맞죠?”
의뭉스러운 연적하의 태도에 백미주는 빠드득 이를 갈았다.
아무래도 그가 노리는 건 자신의 팔주령 같았다.
십두마병들에게 팔주령은 목숨과도 같은 것이니 이제는 이판사판이다.
어떻게든 대화로 무마하려 했던 백미주의 눈에 살기가 감돌았다.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게 되자 그녀는 십두마병들에게 전음을 날렸다.
-놈을 죽여라!
자신의 팔주령만 회수할 수 있다면 십두마병쯤은 죽어도 상관없었다.
대체로 비밀스러운 조직들은 상명하복이 잘 지켜진다.
유명교도 그랬다.
백미주의 명에 다섯 명의 십두마병들은 군말없이 나섰다.
그들은 연적하와 싸워 본 적이 없는 터라 크게 두려워하지 않았다.
심지어 잔혼검마의 경우 소문과 달리 연적하가 만만해 보이자 공을 세울 기회로 여겼다.
츠츠츠츠츳-.
연적하를 향해 다섯 줄기의 도기와 검기가 벼락처럼 날아갔다.
예고 없이 펼쳐진 갑작스러운 공격에도 연적하는 그다지 놀라지 않았다.
십두마병들의 공격은 흉험했지만 종문 고수들에 비할 수는 없었다.
연적하는 물러나지 않고 그 자리에서 천둔검을 꺼내 휘둘렀다.
콰차차차창-!
십두마병들과 연적하 사이에 불꽃이 튀었다.
양측에 싸움이 벌어지자 백미주는 서둘러 팔주령으로 손을 뻗었다.
그녀의 손가락 끝에 팔주령이 닿기 직전이다.
‘꽈르릉!’하는 폭발음과 함께 십두마병들이 뒤로 날아갔다.
그 폭발의 여파가 어찌나 컸던지 지하실이 무너질 것처럼 진동했다.
뒤이어 장식대에 걸려 있던 백미주의 팔주령이 어딘가로 훌훌 날아갔다.
허공섭물로 팔주령을 손에 넣은 연적하가 백미주를 빤히 보며 말했다.
“백 아주머니. 이게 팔주령이라는 거죠?”
백미주는 황급히 십두마병들을 찾았다.
다섯 명 모두 한쪽 벽에 처박혀 있는데 꼼짝도 않는 걸 보니 기절한 것 같았다.
“도돌려다오. 그건 나에게 소중한 물건이다.”
“백 아주머니는 백두마군이 되기 위해 몇 명의 수도자들을 죽였어요?”
“아직 절반도 채우지 못했다. 팔주령을 돌려주면 안 되겠느냐? 다른 사람들에게 팔주령은 하등의 쓸모도 없는 장식품에 불과하다.”
“백 아주머니에게는요?”
“나에게는…… 생명과도 같은 것이다. 그러니 제발 돌려다오.”
“돌려주고 싶지 않네요. 백 아주머니는 이걸 가지고 또 인신 공양을 할 거잖아요.”
“더 이상 인신 공양을 하지 않겠다. 약속하마. 그러니 팔주령을 돌려다오.”
“그래도 안 될 것 같아요.”
“왜냐! 내가 십두마병으로 만족한다고 하지 않았느냐!”
“왜일까요?”
연적하가 팔주령에 손가락을 끼고는 장난치듯 빙글빙글 돌렸다.
백미주는 하얗게 질린 얼굴로 자신의 팔주령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팔주령이 목숨과 같다는 것은 과장된 게 아니다.
팔주령이 깨지면 그것과 연결된 십두마병에게도 문제가 발생한다.
그러니 저렇게 팔주령을 노리개처럼 가지고 놀아서는 안 된다.
팅-.
맹렬하게 돌던 팔주령이 연적하의 손가락에서 벗어나 천장으로 날아갔다.
실은 연적하가 천장으로 날려 보낸 것이었지만 백미주는 알지 못했다.
“안 돼!”
백미주가 몸을 날렸지만 팔주령은 야속하게 연적하의 손아귀로 빨려 들어갔다.
아쉬운 눈으로 보던 백미주가 신경질적으로 물었다.
“왜 나에게 팔주령을 돌려주지 않는 것이냐!”
“우리가 그럴 사이는 아니잖아요. 안 그래요? 백 아주머니?”
백미주는 차가운 연적하의 말에 흠칫 놀랐다.
와룡장과 백가장을 망하게 하고도 그의 분노는 풀리지 않은 것일까?
“하아! 내가 너에게 몹쓸 짓을 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나도 괜히 그런 게 아니다. 이부용과 너 때문에 내 인생도 엉망이 됐다. 어디 그뿐이냐? 너는 와룡장은 물론 백가장도 문을 닫게 만들었다. 그 정도면 피장파장이라고 생각하는데. 아니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