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949
949회. 호천맹도 별거 없네
합비.
남궁세가.
이른 아침.
검왕 남궁벽이 식사도 하기 전에 총관 유정유검 남궁산호를 집무실로 불렀다.
“가주님. 저를 찾으셨다고요?”
“조용히 며칠 다녀올 일이 있으니 그렇게 알고 있게.”
“며칠씩 이나요?”
남궁산호가 놀란 눈으로 남궁벽을 보았다.
호천맹이 합비에 진입했는데 남맹 맹주가 며칠씩이나 자리를 비우다니?
“짧으면 이틀, 길면 사흘 정도 걸릴 걸세.”
“아!”
남궁산호의 입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왕복을 하는 데 이삼일 정도 걸리는 곳이라면 남경이 분명했다.
“남경에 가십니까?”
“…….”
남궁벽은 답하지 않고 말을 돌렸다.
“총사에게 귀띔하고 나왔으니 남맹에서 나를 찾는 일은 없을 걸세. 세가에서 찾으면 적당히 둘러대게.”
“알겠습니다.”
남궁산호는 더 묻지 않았다.
이윽고 자리에서 일어난 남궁벽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사라졌다.
***
남경.
무극문.
해거름 무렵, 삿갓으로 얼굴을 가린 무인이 무극문 앞에 나타났다.
허리춤에 고풍스러운 검을 착용한 그는 남맹의 맹주인 검왕 남궁벽이었다.
주변에 사람이 없음을 확인한 남궁벽은 어기충소의 신법으로 날아올랐다.
곧이어 허공에서 급격하게 방향을 튼 그는 무극문 안쪽으로 이동했다.
잠시 후 남궁벽은 가장 안쪽의 전각 위에 깃털처럼 조용히 떨어져 내렸다.
그의 발이 막 기왓장에 닿았을 때다.
한 노인이 그의 맞은편에 유령처럼 솟아났다.
천하십대고수의 일인이자 무극문의 태상인 무상도제 장무덕이었다.
“무극문의 담을 넘다니……. 남맹의 맹주가 되더니 대범해졌구먼.”
“조용히 장 선배를 뵙고 가려다 보니 그렇게 되었습니다.”
장무덕이 무심한 눈으로 남궁벽을 보았다.
그가 초저녁에 월담을 한 것은 잘못이지만 이해 못 할 바는 아니었다.
“따라오게.”
장무덕은 천천히 허공을 걸어 마당으로 내려갔다.
남궁벽의 얼굴이 살짝 굳었다.
전설의 허공답보를 아무렇지도 않게 해내는 걸 보니 마음이 무거웠다.
그렇다고 기가 죽을 정도는 아니다.
남궁벽 역시 허공답보로 장무덕의 뒤를 따랐다.
일반적으로 경신술은 빠를수록 경지가 높지만 허공답보는 반대다.
걸음걸이가 느릴수록 경지가 높다.
허공에 머무르기 위해서는 그만큼의 내력이 뒷받침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장무덕과 남궁벽의 거리는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다.
마당에 먼저 내려선 장무덕은 남궁벽을 힐끔 보고는 이내 마루 위로 올라갔다.
이윽고 남궁벽이 마루에 오르자 의자를 가리켰다.
“앉지. 손님에 대한 예를 생각하면 다과라도 대접해야 하지만, 생략하겠네.”
월담까지 해 가며 찾아온 손님이니 식솔들 눈에 띄지 않게 배려한 것이다.
“감사합니다.”
남궁벽은 목례를 한 후에 자리에 앉았다.
두 사람 사이에 침묵이 감돌았다.
사실 남궁세가와 무극문의 사이는 나쁘지 않았다.
같은 정파에, 둘 다 남직례성에 자리하고 있어서 교류도 빈번했다.
그 시절에 장무덕과 남궁벽은 무림의 선후배 관계였다.
지금은 ‘그런 날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사이가 벌어졌지만 말이다.
먼저 입을 연 것은 장무덕이었다.
“요즘 남천 때문에 마음고생이 심하다고 들었네. 나로서는 감사한 일이지만. 허허.”
장무덕은 남천과 남궁세가의 관계부터 확인하고 들어갔다.
남천이 관여하면 무극문은 다시 봉문을 해야 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남궁벽이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
“남궁세가와 상관없는 사람이니 거론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모호함을 유지하는 게 협상에 유리할 테지만 남궁벽은 그러지 않았다.
그 정도로 딸과 사위에 대한 분노는 컸다.
특별한 일이 없다면 죽을 때까지 그 거리는 유지될 터였다.
미련할 정도로 고지식한 그의 태도에 장무덕은 속으로 혀를 찼다.
‘쯧쯧! 어리석다고 해야 할지, 순수하다고 해야 할지……. 남천이 내 사위였다면 업고 다녔을 텐데.’
남궁벽과 남천의 관계가 그렇다면 무극문과 호천맹에는 잘된 일이었다.
“거두절미하고 묻지. 월담까지 해 가며 나를 찾아온 이유가 뭔가?”
“어젯밤 장봉현에서 첫 싸움이 벌어졌습니다. 오늘 남맹은 호천맹을 회하(淮河) 너머로 밀어낼 겁니다. 적어도 올해 호천맹이 무극문에 합류하는 일은 없을 겁니다.”
“장봉현의 일은 나도 알고 있네. 그 말을 하려고 온 건가?”
장무덕이 고개를 갸웃했다.
남맹은 호천맹을 막기에 급급해 선우세가를 챙기지 못할 것이다.
일대일의 상황이라면 선우세가는 무극문의 상대가 되지 못한다.
그러니 남궁벽의 이야기는 오히려 무극문에 유리하다 할 수 있었다.
“싸움이 길어지면 불필요한 희생만 늘어날 뿐입니다. 해서 선배님께 제안을 드리고자 왔습니다.”
“제안?”
“선배님과 제가 싸워 이기는 사람의 뜻대로 매듭짓는 게 어떻겠습니까?”
“허허허!”
후배인 남궁벽의 교묘한 도발에 장무덕은 어깨까지 들썩이며 웃었다.
“나를 상대로 싸워서 이길 자신은 있는 모양이지?”
“그럴 리가요. 허나 길고 짧은 것은 대봐야 알지 않겠습니까?”
장무덕의 입가에 쓴웃음이 떠올랐다.
아닌 것처럼 말하지만 이길 자신이 없고서야 저런 제안을 할 리가 없다.
괘씸해서 어울려 주고 싶다가도 ‘굳이 내가 왜?’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그러고 싶지만 그 제안은 거절하겠네.”
“자신이 없으십니까?”
“자신보다는 형평성에 맞지 않아서네. 만약 자네가 선우세가의 가주였다면 받아들였을 걸세. 하지만 자네는 남맹의 맹주가 아닌가? 자네가 남맹의 자격으로 뛰어든다면, 이쪽 역시 호천맹으로 상대하는 게 맞지 않겠나?”
“저에게 세 분의 천하십대고수들과 싸우라는 겁니까?”
“그보다는, 내가 호천맹의 대표가 아니라 그런 걸 결정하기 어렵다는 걸세. 호천맹과 남맹의 싸움이라면 그에 걸맞은 방식을 취해야지.”
정중한 거절이었다.
그의 거절을 생각지 못한 남궁벽은 충격에 빠진 얼굴로 한동안 침묵했다.
하지만 장무덕의 말이 억지는 아닌지라 반박하기 어려웠다.
남맹과 호천맹의 싸움을 장무덕이 대표한다는 것도 말이 안됐다.
“제 생각이 짧았습니다. 그것과 별개로 선배님은 선우세가와의 싸움에 나서지 않으시겠지요?”
“왜 그럴 거라고 생각하나?”
“선우세가에 선배님의 상대가 없으니까요.”
“그럼 내가 묻지. 선우세가는 무극문의 상대가 되지 않는데 왜 무극문의 영역을 넘보나?”
“그건 무극문이 호천맹에 속해 있기 때문입니다.”
“남맹의 많은 방파들이 이전에는 모두 호천맹 소속이었네. 자네의 남궁세가도.”
“하지만 지금은 남맹으로 뭉쳤습니다.”
“자네가 남맹을 세운 것은 이해하네. 그렇다고 남경에 뿌리를 둔 무극문까지 건드리는 건 지나쳤어.”
그러자 남궁벽이 결연한 어조로 말했다.
“호천맹을 앞세우셔도 됩니다. 무극상인과 의천검존을 끌어들이고 싶다면 그렇게 하십시오. 세 분의 명성에 물러설 내가 아닙니다.”
“너무 무리하지는 말게. 자네는 천하제일인이 아니니까. 아니, 설사 천하제일인이라고 해도 우리 셋은 감당하지 못할 걸세.”
“말씀드렸지요? 길고 짧은 것은 대 봐야 안다고.”
“그냥 눈으로 봐도 알 수 있는 건 알 수 있다네. 혈기가 넘치는 걸 보니 아직 젊군. 그만 가 보게.”
“제 질문에 아직 답하지 않으셨습니다.”
“무슨……. 아! 그 질문이 선우세가와의 싸움에 나설 거냐는 거라면, 글쎄. 모르겠군. 하지만 이것 하나는 분명하네. 결국은 나도 무극문의 일원이라는 거.”
‘싸울 수도 있다’는 소리였다.
가만히 듣고 있던 남궁벽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그날에 뵙겠습니다.”
남궁벽의 작별 인사에 장무덕이 고개를 끄덕였다.
“멀리 안 나가겠네.”
천천히 마당으로 내려간 남궁벽은 마치 유령처럼 홀연히 사라졌다.
***
합비.
장봉현 외곽.
해거름 무렵.
헐떡거리며 달리던 오십여 명의 무인들이 하나둘씩 지면에 주저앉았다.
중양절 무림대회로 선발된 호천대였다.
호천대 대주 삼무검 이도가 가까이 있던 절검 양만승에게 물었다.
“화천대는?”
“와부호(瓦埋湖) 방면으로 빠졌습니다.”
“회하로 간 게 아니라?”
“남궁세가의 공세에 밀리다 방향을 잃은 것 같았습니다.”
“쯧!”
이도가 혀를 찼다.
화천대는 산동성과 하남성에서 끌어 모은 무인들이라 정예와 거리가 멀었다.
그런 그들이 남궁세가를 만났으니 정신을 못 차리는 것도 당연했다.
양만승이 지친 얼굴로 중얼거렸다.
“생각보다 남맹의 힘이 강하네요. 화천대가 그렇게 무너질 줄 몰랐습니다.”
“그러게. 남궁세가의 창천대가 대단하다 해도 좀 버텨 줄 줄 알았는데.”
이도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호천대가 남맹의 추격을 막아주었기에 망정이지 정말 큰일 날 뻔했다.
양측의 숫자는 비슷했건만 화천대가 너무 모래성처럼 무너졌다.
“청운검의 무위가 그렇게 뛰어날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후기지수들 중에 제일이라는 건 알았는데…….”
이도가 따끔하게 한마디 했다.
“부러워만 말고 정진해라. 너희는 그와 동년배가 아니냐.”
“예.”
이도의 제자인 절검 양만승은 눈을 내리깔았다.
한쪽에서 눈치를 보던 비봉 전서린과 철협 고지석이 슬금슬금 다가왔다.
이윽고 비봉 전서린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사백님. 우리는 어디로 가나요?”
“와부호로 가야지. 화천대에 합류해야지 우리만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와부호는 계획에 없던 곳이잖아요?”
“일단 와부호에서 화천대와 함께 반격을 모색해 볼 생각이다.”
“남맹의 선봉을 남궁세가가 맡고 있는데……. 반격이 될까요?”
“우리 호천대가 남궁세가를 막아 주면 된다.”
전서린의 시선이 호천대를 향했다.
인원은 화천대가 월등히 많았지만 개개인의 실력은 호천대가 앞섰다.
호천대라면 남궁세가의 창천대를 상대로 어느 정도 버텨 줄 것도 같았다.
잠시 후 자리에서 일어난 이도가 호천대원들을 향해 말했다.
“화천대를 따라 우리도 와부호로 갈 것이오! 더 쉬다가는 남맹에 뒤를 잡힐 수 있으니 지금 움직이겠소!”
그의 지시에 호천대원들은 투덜거리면서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닌 게 아니라 지금 남맹에 뒤를 잡혔다가는 목숨이 위태로웠다.
호천대 고수 오십여 명은 다시 경신술을 이용해 서쪽으로 달려갔다.
호천대가 사라지고 일각(15분)쯤 지났을까? 일단의 무인들이 몰려왔다.
호천대의 뒤를 쫓던 남궁세가의 고수들이다.
창천대 대주 척사검 남궁진이 땅바닥에 찍혀있는 발자국을 발견하고 멈춰 섰다.
청운검 남궁천이 그의 옆으로 다가가며 말했다.
“호천맹의 흔적이군요. 발자국이 선명한 걸 보니 얼마 안 된 모양입니다?”
“우리가 제대로 쫓아온 모양이다. 그런데 상처는 괜찮으냐?”
남궁진이 근심 어린 눈으로 보자 남궁천은 팔을 휘휘 저어 보였다.
“살짝 스친 정도입니다. 이건 다친 것도 아니죠.”
“그래도 조심해라. 작은 부상이라 해도 쌓이면 좋지 않으니까. 너도 알다시피 하루 이틀에 끝날 싸움이 아니다.”
“예. 거리가 더 벌어지기 전에 바로 가시죠?”
그러나 남궁진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우리 남궁세가가 너무 앞서 있다. 팽가와 모용세가를 기다리도록 하자.”
“시간을 끌면 호천맹도 다시 뭉칠 겁니다.”
“급습의 효과는 이제 끝났다고 봐야 한다. 재정비가 필요한 건 적들만이 아니다.”
“쩝.”
남궁천은 아쉬운 얼굴로 입맛을 다셨다.
유명교를 상대로 할 때와 다른 끝없는 자신감에 피가 끓어올랐다.
하지만 지금은 대주의 말에 따라야 했다.
‘호천맹도 별거 없네.’
어젯밤의 급습 이후 꼬박 하루 동안 남맹은 크게 이익을 보았다. 비슷한 숫자인 적을 별다른 희생 없이 와부호까지 밀어냈으니까.
그래서인지 다쳐도 아픈 줄 모르겠고, 몸도 생각보다 힘들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