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952
952회. 살 수 있겠습니까?
쏴아아아-!
싸움이 끝난 곳에 빗소리만 요란했다.
삼십육 동인(銅人)의 수좌인 현문대사는 널브러져 있는 사내를 힐끔 보았다.
부상을 당한 동인들의 상태부터 점검해야 하는데 왠지 마음이 쓰였다.
단신으로 삼십육 동인들 중에 무려 여섯이나 쓰러트린 사내다.
마지막 검공에서 느껴진 것은 분명 남궁세가의 것이었다.
‘남궁세가에 그 정도 무위를 가진 고수가 몇 안 될 텐데…….’
폭우로 얼굴을 확인하지 못했지만 원로일 게 분명하다.
아니 원로여야 한다.
만에 하나 저 사내가 남궁천이라면 뒷일은 생각도 하기 싫었다.
다른 동인들 역시 마지막 검공이 신경 쓰였던지 자꾸 힐끔거렸다.
현문 대사가 사내에게 다가갔을 때, 때마침 벼락이 밤하늘을 가르고 지나갔다.
번쩍-.
찰나지간에 피 칠갑을 한 사내의 얼굴이 드러났다.
‘헉!’
현문 대사는 너무 놀라 한순간 숨도 쉬지 못했다.
죽은 듯 쓰러져 있는 사람은 검왕 남궁벽의 장자인 청운검 남궁천이었다.
현문 대사는 급히 남궁천의 목에 손가락을 가져다 댔다.
차갑게 식은 피부 아래로 약하지만 생명의 반응이 느껴졌다.
반사적으로 상체를 튼 그는 삼십육 동인들에게 소리쳤다.
“청운검이다! 비를 맞지 않게 위를 가리고, 아무도 가까이 오지 못하게 막아라!”
부상자들을 치료하던 동인들이 후다닥 일어나 주변으로 흩어졌다.
의술에 조예가 깊은 몇몇이 허겁지겁 달려왔다.
누군가는 장포를 벗어 청운검을 가리고, 또 다른 이는 내상에 좋은 약을 꺼냈다.
그러나 정작 현문 대사는-동인들이 부랴부랴 건네는-단약을 받지 않았다.
겨우 숨만 붙어 있는 사람에게 단약은 무리였기 때문이다.
선문 대사가 근심 어린 얼굴로 물었다.
“사형, 살 수 있겠습니까?”
“살기를 바란다만…….”
현문 대사는 말을 흐렸다.
솔직히 화타나 편작이 와도 남궁천을 살릴 수 있을지 모르겠다.
두 사람의 대화에 소림 삼십육 동인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이 일로 남천 대협의 분노를 사면 소림사나 호천맹이 위험해지는 까닭이다.
***
소림사의 합류로 전세가 역전됐다.
그러나 어찌 된 일인지 호천맹은 와부호에서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았다.
덕분에 남맹은 만신창이가 된 세 개 대를 추스를 수 있었다.
정오 무렵.
남맹 주둔지.
와부호 인근을 수색하던 일대 대원들이 하나 둘 숙영지로 돌아왔다.
공식적으로 희생자는 없건만 대원들의 얼굴은 어둡기만 했다.
“와부호 북쪽은 호천맹 주둔지 인근까지 조사했으나 없습니다.”
“동쪽도 십 리 안까지 없습니다.”
“남쪽도 이십 리까지 뒤졌지만 보이지 않습니다.”
무거운 분위기 속에 대원들의 보고가 끝났다.
서쪽은 와부호로 막혔으니 삼면에 없으면 없는 거다.
묵묵히 듣고 있던 일대 대주 척사검 남궁진이 입을 열었다.
“이대와 삼대 대주님들을 모셔 오거라.”
“예.”
남궁세가의 창천대가 바람처럼 일대의 숙영지를 빠져나갔다.
잠시 후 이대 대주 불오검 모용백과 삼대 대주 용호도 팽무한이 남궁진의 천막에 도착했다.
호천맹의 반격에 큰 피해를 입은 모용백과 팽무한의 표정도 좋지 않았다.
굳은 얼굴로 앉아 있던 남궁진이 입을 열었다.
“어젯밤 이후로 남궁천의 생사가 확인되지 않고 있습니다. 오전 내내 와부호 인근을 쥐 잡듯 조사했으나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이대와 삼대에서 혹 그를 본 사람이 있는지 조사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러자 팽무한이 말했다.
“정신없이 후퇴하던 중에 내가 그를 보았소.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으나 이대를 찾아다니고 있더이다.”
“그래서 어떻게 됐습니까?”
“지금은 피아의 식별이 어려우니 일단 자리를 피하라고 했소. 그러나 그는 이대를 찾겠다며 전방으로 달려갔소. 그게 그를 본 마지막이오.”
가만히 듣고 있던 모용백이 끼어들었다.
“이대에 그의 정혼녀인 진설하 소저가 있소. 청운검이 이대를 찾아다녔다면 분명 진 소저 때문일 게요. 그리고 지난밤 청운검과 함께 소림사의 중들과 싸운 모용세가 제자들이 있었소. 정신을 잃은 뒤 깨어났는데 주변에 아무도 없었다 하더이다. 그 소리를 들었을 때는 그러려니 했는데…… 소림사가 관련되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구려.”
남궁진의 눈에서 안광이 번득였다.
아닌 게 아니라 그의 말을 들으니 소림사의 중들이 의심스러웠다.
그제야 혼란하던 마음이 조금 안정됐다.
“진 소저는 무사합니까?”
“다행히 진 소저는 털끝 하나 다치지 않았소. 그런데 호천맹의 움직임이 영 수상한데……. 혹시 호천맹에 사로잡힌 건 아닌지 모르겠소이다.”
말끝에 모용백은 남궁진의 안색을 슬쩍 살폈다.
천하의 남궁세가 앞에서 ‘당신들의 소가주가 포로로 잡혔을지도 모른다’는 말을 하는 게 부담스러워서다.
그런데 그 말을 들은 남궁진의 얼굴은 오히려 밝았다.
죽은 것보다는 포로로 잡혀 있는 게 백배 천배 나은 까닭이다.
“소림사의 삼십육 동인과 싸웠다면 포로가 됐을 확률이 높겠군요. 소림사의 삼십육 동인과 싸워 이길 수 있는 사람은 검왕 맹주님밖에 없으니까요.”
남궁진의 말에 모용백과 팽무한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게 사실이기도 하지만 딴지를 걸 상황이 아님을 알아서다.
더 이상 다른 정보가 없자 남궁진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저는 지금 즉시 호천맹 주둔지를 찾아가 소림사 관계자들을 만나 보겠습니다.”
“아무쪼록 좋은 결과가 있기를 바라오.”
“잘 다녀 오시구려.”
모용백과 팽무한의 배웅 속에 남궁진은 남맹 숙영지를 떠났다.
***
남궁진은 홀로 호천맹 주둔지로 다가갔다.
그러자 경계를 서고 있던 호천맹 고수들이 달려 나와 그의 앞을 막았다.
“멈추시오! 이곳은 호천맹의 주둔지이니 지나갈 수 없소. 다른 길로 돌아가시오.”
남궁진이 무덤덤한 얼굴로 그 말을 한 상대를 응시했다.
“나는 남궁세가의 사람으로 척사검 남궁진이라 하오. 소림사 분들과 만날 일이 있어 왔으니 전해 주시구려.”
척사검 남궁진이라는 말에 경계조의 조장 관일섬 정오량이 멈칫했다.
남맹! 그것도 척사검이라니!
덜컥 겁이 났지만 그래도 호천맹 주둔지라는 이점을 믿고 아랫배에 힘주어 말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시오. 소림사에 사람을 보내 확인해 보겠소.”
정오량은 소림사의 숙영지로 경계 인원 중에 하나를 보냈다.
잠시 후 정오량이 보낸 사람은 소림사 삼십육 동인의 하나인 선문 대사와 함께 주둔지 입구로 돌아왔다.
선문 대사가 먼저 반수 합장으로 인사를 건넸다.
“소림사 삼십육 동인의 선문이라 합니다.”
“남궁세가의 척사검 남궁진입니다.”
간단한 소개가 끝나자 남궁진이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지난밤 남궁세가의 소가주가 소림사의 삼십육 동인과 싸운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목격자들의 말에 의하면 삼십육 동인이 데리고 갔다는데, 사실입니까?”
선문 대사가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그 일로 잠시 본사의 숙영지에서 대화를 나누고 싶은데 괜찮으시겠습니까?”
“그러지요.”
남궁진은 거절하지 않았다.
소가주를 찾기 위해서라면 소림사가 아니라 지옥이라도 마다하지 않을 그였다.
소림사 숙영지.
중앙에 자리한 천막으로 남궁진을 데리고 간 선문 대사가 정중하게 말했다.
“말씀하신 대로 지난밤 삼십육 동인과 청운검의 싸움이 있었습니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폭우 속에서 상대가 누군지도 몰랐습니다. 마지막 검공을 보고서야 남궁세가의 분이라는 걸 짐작했습니다. 삼십육 동인 중에 무려 여섯이 부상을 입은 치열한 싸움이 었습니다.”
“…….”
남궁진은 묵묵히 들어 주었다.
자신도 불가능한 일을 남궁천이 벌써 해냈다니 한편으로 뿌듯했다.
“손속에 신경 쓸 상황이 아니었음을 이해해 주십사 드리는 말씀입니다.”
“부상이 중합니까?”
“중하다는 말로도 부족합니다. 밤새 여러 차례 위기가 찾아왔었습니다만, 다행히 아직은 살아 있습니다.”
말과 함께 선문 대사가 들어가라는 듯 천막을 가리켜 보였다.
가슴이 철렁했지만 남궁진은 일단 천막 안으로 들어갔다.
쪼그리고 앉아 누군가를 돌보고 있던 승려가 일어나 반수 합장을 했다.
“소승은 삼십육 동인의 수좌인 현문입니다.”
“남궁진 입니다.”
인사가 끝나자 현문은 환자의 앞자리를 남궁진에게 내주었다.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 환자를 내려다보던 남궁진이 비틀거렸다.
“처, 천아…….”
사촌 동생이자 후기지수 중에 최고수라는 남궁천이 마치 밀납으로 만든 인형처럼 누워 있었다.
남궁진은 급히 주저앉아 남궁천의 경동맥에 손가락을 댔다.
피부는 죽은 사람처럼 차갑고 딱딱했지만 미세하게 맥이 느껴졌다.
뒤쪽으로 물러났던 현문 대사가 설명하듯 말했다.
“어제 저녁부터 계속 이 상태입니다. 물조차 먹일 수 없는 상황이라, 약은 쓰지 못했습니다. 아침에 진맥한 의원도 침만 놓고 돌아갔습니다. 저녁에 다시 와서 볼 예정입니다.”
한참 동안 남궁천의 전신을 살피던 남궁진이 물었다.
“소가주를 남궁세가로 데리고 가도 되겠습니까?”
“물론입니다. 거듭 말씀드리지만 저희는 싸움의 상대가 청운검 대협이라는 것을 몰랐습니다.”
“이해합니다. 칼에는 눈이 달려 있지 않다고 하지 않습니까.”
이해한다고 하지만 남궁진의 음성은 차가웠다.
정황을 알고 이해하는 것과 복수는 차원이 다른 문제였다.
이대로 소가주가 죽는다면 남궁세가와 소림사는 원수가 될 것이다.
문득 남천 연적하가 떠올랐다.
남궁천과 유난히 가까이 지내던 그가 이 사실을 알게 되면 어떻게 될까?
소림사와 호천맹이 와부호에서 움직이지 않는 이유를 알 것도 같았다.
남천의 후환이 두려워 눈치를 보고 있는 것이리라.
조용히 일어난 남궁진은 천막 밖으로 걸어 나갔다.
***
합비.
여강현 석경장.
유시 초(오후 5시).
남궁세가의 무인 하나가 석경장의 문을 두드렸다.
창천대 대원인 남궁신도였다.
남궁세가의 무복을 알아본 소삼은 그를 객청으로 안내했다.
잠시 후 연적하가 객청에 들어서자 남궁신도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남천 대협, 창천대의 남궁신도입니다.”
“남궁세가 분이 어쩐 일이세요?”
“지난밤 와부호에서 남맹과 호천맹 사이에 큰 싸움이 있었습니다.”
순간 연적하가 말을 끊었다.
“아니! 밤새 비가 그렇게 퍼부었는데 싸웠다고요?”
“승기를 몰아 호천맹을 회하(淮河) 너머로 밀어내자는 분위기가 강하다 보니 그렇게 됐습니다.”
“그런데요?”
“와부호에서 호천맹의 반격에 남맹이 크게 패했습니다.”
“이기는 분위기였다면서요?”
“와부호에서 소림사의 지원 부대가 합류를 했습니다. 소가주께서 소림사 삼십육 동인과 싸우다가 중상을 입어…… 사경을 헤매고 계십니다.”
“…….”
연적하가 황망한 눈으로 남궁신도를 보았다.
남궁천이 중상으로 사경을 헤맨다니?
그런 일이 있으려고 지난밤에 그토록 불안했던가 보다.
뒤늦게 정신을 차린 연적하가 물었다.
“그래서 형님은 어디에 계시고요?”
“급한 대로 와부호 인근 호강촌(胡岗村)의 의원에 모셨습니다. 대주님께서 남천 대협께 알리라고 하셔서 찾아왔습니다.”
연적하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잠깐만 기다려요. 누님도 알아야 하니까.”
연적하는 대답을 듣지도 않고 부리나케 달려 나갔다.
그리고 반각(약 7분)쯤 지났을까?
객청 앞마당에 연적하와 남궁연이 홀연히 나타났다.
“남궁 형제! 이리 나와 봐요. 호강촌의 의원까지 안내 좀 부탁할게요.”
연적하의 부름에 남궁신도는 서둘러 마당으로 내려갔다.
이윽고 하얀 구름이 발밑에서 피어오르자 긴장한 남궁신도는 연적하의 옆에 바싹 다가섰다.
파라락-.
연적하의 급한 마음을 아는지, 세 사람을 태운 구름이 어느때보다 빠르게 하늘로 솟구쳐 올랐다.
남궁신도는 오줌을 지릴 것 같았지만 이를 악물고 견뎌 냈다.
연적하가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정면을 응시하며 말했다.
“일단 와부호까지 갈게요. 오래 안 걸릴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