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955
955회. 약속을 지킬 준비가 되었느냐?
와부호 상공 위에서 무지성과 양화연을 내려다보던 연적하가 지나가듯 물었다.
“소림사는 어떻게 할까요?”
“어떻게 라니?”
“형님을 반병신으로 만들어 놨잖아요. 그런데 그냥 둬요?”
“일부러 노리고 그런 것도 아니잖아.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 나는 아무래도 상관없으니까.”
“…….”
연적하는 남궁연의 안색을 살폈다.
진심으로 그러는 건지 그냥 해 본 말인지 알 수가 없어서다.
“왜 그렇게 봐?”
“진심인가 싶어서요.”
“훗! 지금 내 눈치를 보는 거야?”
“내가 누님 눈치 보면서 사는 거 몰랐어요?”
“진짜?”
남궁연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연적하를 보았다.
천하에서 가장 자유분방한 그가 누군가의 눈치를 보며 산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
“난 거짓말은 안 하거든요?”
연적하는 당당했다.
더러 과장과 축소는 있을지언정 거짓말과 담쌓고 산 지 여러 해 됐기 때문이다.
남궁연이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로 물었다.
“왜?”
“그야 당연히 누님에게 미움받고 싶지 않아서죠.”
“내가 너를 미워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머리를 긁적이던 연적하가 말했다.
“누님에 비하면 내가 좀, 아니, 많이 못났잖아요. 생긴 것도 평범하고 머리도 그저 그런 놈이, 성질만 못됐으니까.”
“호호홋!”
그의 고백에 남궁연은 배를 잡고 웃었다.
천하를 발밑에 둔 고금제일인의 입에서 저런 말이 나오다니!
그녀는 눈물이 맺힐 정도로 웃고 난 후에 연적하의 손을 살며시 잡았다.
“나를 그렇게 생각해 줘서 고마워. 하지만 너에게 미움받고 싶지 않은 건 나도 마찬가지야.”
“에? 내가요? 내가 누님을 왜 미워해요? 백번을 죽어도 그럴 일은 없어요.”
“그렇지?”
“당연하죠. 그건 불가능한 일이라고요.”
“나도 마찬가지야. 내가 너를 미워할 일은 없어. 네가 어떤 일을 해도 나는 네 편이야. 나에게 너는 무조건 옳아.”
“헤헤.”
헤실헤실 웃고 있는 연적하에게 남궁연이 한마디 덧붙였다.
“그래도 눈치는 계속 봐 줘.”
“에? 계속 눈치를 보라고요?”
“응. 그래 주면 내 기분이 좋을 것 같거든.”
“알았어요.”
실실 웃고 있는 연적하에게 남궁연이 물었다.
“그래서 너는 소림사를 어떻게 하고 싶은데?”
“경고를 하려고요. 그래야 더 조심할 테니까요.”
“어떻게?”
남궁연이 알쏭달쏭한 얼굴을 하자 연적하가 말했다.
“누님은 소림사 승려들이 가장 아끼는 게 뭐라고 생각하세요?”
“뭔데?”
“건물이죠. 제자들이야 넘쳐나지만 건물은 딱 정해져 있잖아요.”
“아하.”
“몇 채만 부수려고요.”
남궁연은 만류하지 않았다.
본래 복수란 ‘눈에는 눈 이에는 이’다.
하지만 삼십육 동인이 고의로 그런 것도 아닌데 생명을 상하게 하는 건 좀 그렇다.
어찌 보면 황당한 이야기지만 연적하의 방법이 효과적일 수도 있었다.
건물의 숫자가 정해져 있어서가 아니라, 그걸 다시 짓는 데 돈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문파를 운영하는 데는 꽤나 많은 돈이 들어간다.
거기에 재건축까지 하려면 허리가 휠 게다.
잠시 후 와부호 위에 떠 있던 구름이 합비 방면으로 사라졌다.
양화연은 젖 먹던 힘까지 쥐어짜 팔다리를 놀렸다.
하지만 멀리 보이는 뭍은 좀처럼 가까워지지 않았다.
더 이상 팔다리를 놀릴 힘이 없어 죽음을 직감한 순간, 발바닥에 뭔가 닿았다.
땅이었다.
늘어져 있던 팔다리에 다시 힘이 들어갔다.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쥐어짜 네발로 뭍에 오른 그녀는 허리를 꺾고 토악질을 했다.
“우웩! 우웩! 하악! 하악! 하악-.”
그동안 코와 입으로 들어온 물을 토해 낸 그녀는 이내 하늘을 보고 벌러덩 드러누웠다.
한참 동안 멍하니 별을 바라보던 양화연은 무지성이 떠오르자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은은한 달빛에 호수 물이 하얗게 반짝였다.
역시나 무지성은 보이지 않았다.
남천 대협이 준 마지막 기회를 그는 잡지 못했다.
‘죽으려고 환장을 했던 거지.’
그가 남천 대협과 십전무후에게 한 짓거리를 생각하면 동정의 여지도 없다.
‘이렇게 되면 전장의 허가는 물 건너간 건가.’
양화연의 입에서 한숨이 흘러나왔다.
무지성이 물에 빠져 죽은 것보다 전장 허가가 꼬인 게 더 마음 아팠다.
***
석경장으로 돌아간 연적하는 남궁연을 내려 주고 다시 하늘로 날아올랐다.
쇠뿔도 단김에 빼랬다고 소림사로 가려는 것이다.
쐐애액-.
사나운 바람 소리가 귀에 거슬리자 연적하는 구름의 속도를 조금 낮추었다.
휘이잉-.
찢어지는 소리가 부드러워졌다.
그제야 연적하는 만족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소림사는 남궁천을 만나러 갈 때처럼 서두르지 않아도 된다.
합비에서 소림사까지 천삼백 리(약 500킬로미터)가 넘지만, 운종술로 가면 두 시진(4시간)이면 충분할 터였다.
다만 문제는 방향이다.
한 시진가량 밤하늘을 날아가던 연적하는 자신이 너무 서둘렀다는 걸 깨달았다.
여기가 어디쯤인지, 하남성으로 가려면 어디로 가야 하는지 붙잡고 물어볼 사람이 없다.
“이런! 내가 너무 마음만 앞세웠네.”
갈 길이 막막해지자 ‘심통이라도 데리고 올걸’ 하는 자책이 들었다.
그렇지 않아도 방향 감각이 둔한 그는 욕심내지 않고 땅 위로 내려가기로 했다.
잠시 후 구름 한 덩어리가 관도 위로 내려왔다.
자정에 가까운 시간이라 관도는 텅 비어 있었다.
구름에서 내린 연적하는 관도를 따라 터덜터덜 걷기 시작했다.
한참을 걸었지만 마을은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그는 태평했다.
어차피 마을에 들어간다고 방을 구할 수 있는 시간이 아닌 까닭이다.
“노숙을 생각하면 마을이 없는 게 낫지 암.”
비 맞은 중처럼 중얼거리던 연적하가 멈칫했다.
관도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작은 구조물이 보였다.
뭔가 싶어 가까이 가서 보니 토지신을 모신 사당이다.
그러나 돌로 쌓은 외관만 멀쩡했지 내부는 죄다 썩어 온전한 것이 하나도 없었다.
‘쯧쯧!’ 하고 혀를 차던 연적하는 마하담(공간 창고)에서 천막을 꺼내 펼쳤다.
그리고 내친김에 침상까지 놓고 길게 드러누웠다.
“마하담이 좋긴 좋구나!”
세상은 넓고 기인도 많다지만 천막과 침상을 들고 다니는 이가 자신 말고 또 있을까!
잠자리가 바뀐 탓에 침상에서 엎치락뒤치락하던 연적하가 까무룩 잠이 들었을 때다.
화르륵-!
천막 뒤쪽에 있던 토지신 사당이 갑자기 불타올랐다.
화광이 충천했지만 기이하게도 천막에 옮겨붙지는 않았다.
그래도 느낌이 이상했던지 잠들었던 연적하가 눈을 떴다.
“응?”
잠들기 전까지 한 치 앞도 구별하기 어려울 정도로 캄캄했는데 대낮처럼 환했다.
“날이 밝았……. 헉! 불이 났다고?”
꾸물꾸물 상체를 일으키던 연적하는 후다닥 침상에서 뛰어내렸다.
사당에서 시작된 불이 천막으로 옮겨붙기 직전이었다.
“불! 불! 불! 아니, 물! 물! 물이 어딨지?”
천막 밖으로 튀어나가 이리저리 뛰며 호들갑을 떨던 연적하가 멈칫했다.
분명 신당이 활활 타오르고 있는데 천막은 멀쩡하다?
천잠사로 만든 것도 아니고 그냥 굴러다니던 천막을 가지고 다녔는데 무슨 영문인지 모르겠다.
뒤늦게 마음을 가라앉힌 연적하는 천막 뒤쪽으로 돌아갔다.
신당은 불에 활활 타고 있었는데 신기하게도 뜨겁지 않았다.
“뭐지?”
그가 신당을 태우는 불에 가까이 다가갈 때다.
시뻘건 화염 속에서 누군가 걸어 나왔다.
“헉! 구천현녀님?”
뜻밖에도 불길 속에서 걸어 나온 존재는 구천현녀였다.
“연적하. 너는 약속을 지킬 준비가 되었느냐?”
“에? 약속요? 제가 구천현녀님에게 약속한 게 있어요?”
그러자 구천현녀가 손을 가볍게 휘저었다.
일렁이는 불길 속에 청성산의 사당이 나타났다.
이윽고 두 사람의 대화가 또렷이 들려왔다.
“네가 영기와 검령으로 현세의 질서를 해치지 않음을 보증해 줄 신이 있어야 한다.”
“아! 혹시 태일신이 그 보증을 해 주려고 했었나요?”
“그랬지.”
“태일신은 왜 모르는 나를 위해 보증까지 서 주려고 한 거죠?”
“뭔가 바라는 게 있을 테지. 신도 인간에게 거저 베푸는 법은 없으니까.”
“하지만 구천현녀님은 저에게 바라는 것 없이 베풀어 주셨잖아요?”
“내가 너에게 바라는 것이 있다면 들어주겠느냐?”
구천현녀의 물음에 연적하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죠. 제가 어떻게 구천현녀님의 부탁을 거절할 수 있겠어요?”
“훗! 고맙구나.”
연적하의 입에서 ‘아!’ 하는 탄성이 흘러나왔다.
저건 자신이 현세에서 영기를 사용할 수 있게 구천현녀가 보증을 서 주던 때의 일이었다.
“구천현녀님이 바라는 게 있다면 제가 들어줘야지요. 말씀만 해 주세요! 뭔가요? 그 부탁은?”
“상계(上界)가 혼돈에 빠지게 되었다. 네가 그걸 해결해 주었으면 한다.”
“상계요? 설마 ‘범천욕계왕재천’의 일인가요?”
연적하는 얼마 전 자신이 죽인 천자마와 금사로 인해 생긴 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절반만 맞았다.
“그보다 더 높이 있는 하늘이 흔들리고 있다. 네가 돕지 않는다면 이 불길처럼 불에 타고 말 것이다.”
“저어, 구천현녀님의 말씀을 의심하는 것은 아닌데요. 저 같은 하계의 인간이 ‘범천욕계왕재천’보다 위에 있는 세계를 어떻게 도울 수 있다는 거죠?”
“그것은 네가 구천검령의 주인이기 때문이다.”
“구천검령의 힘이 그렇게 강한가요?”
“구천검령의 힘은 네가 생각하는 것 이상이다. 너는 나의 부탁을 들어주겠느냐?”
“그게…… 저어…… 현세에서 제가 도와 드릴 만한 일이 없을까요?”
솔직히 ‘범천욕계왕재천’에서 고생을 한 연적하는 상계에 간다는 게 꺼려졌다.
게다가 가족들과도 떨어져 지내고 싶지 않았다.
아름다운 처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딸을 두고 어디에 있는지도 모를 상계라니?
그러자 구천현녀가 슬픈 눈빛으로 연적하를 보았다.
“상계가 그렇게 된 것은 너의 책임도 있다.”
“예? 제가요? 저는 구천현녀님이 말씀하시는 세계의 문턱에도 못 가 봤을 텐데요?”
“네가 구천검령으로 천자마와 금사를 죽여서 생긴 일이기 때문이다.”
“…….”
연적하는 갑자기 그 이야기가 왜 이 자리에서 나오는지 도통 알 수 없었다.
“본래 천자마와 금사는 ‘네번째 하늘’의 신들이다. 그것도 세계의 운명을 좌우할 정도로 강한 신이지. 그들이 타락해 세계가 멸망으로 치닫게 되자, 창조신은 천자마와 금사에게서 뒤틀린 욕망을 제거했다. 그리고 그 욕망을 네가 ‘범천욕계왕재천’이라 부르는 ‘왕들의 하늘’에 가두었다.”
가만히 듣고 있던 연적하가 불쑥 끼어들었다.
“그래서 그들의 영혼은 영원히 그곳을 벗어나지 못하잖아요. 아닌가요?”
“맞다. 보통의 방법으로 죽으면 그렇게 되지. 하지만 구천검령은 창조신의 구속조차도 베어 버리는 신령스러운 검이다.”
순간 연적하의 입이 쩍 벌어졌다.
그제야 안개처럼 흐릿하던 찜찜함의 실체를 알 것 같았다.
“헉! 그래서 그들이 죽어 ‘왕들의 하늘’로 가지 않고…….”
“그래. 그들이 왔던 ‘네 번째 하늘’로 돌아가 진신(眞身)과 하나가 되고 말았다.”
망연자실하게 서 있던 연적하는 천자마와 금사의 마지막 대화를 떠올렸다.
-완전체가 되었지만 그림자는 별수 없구나.
-내세에서 뵙겠습니다.
그림자니, 물화(物化)니 하는 것들은 모두 ‘네 번째 하늘’의 진신을 두고 한 소리였다.
‘이 개 같은 것들이 끝까지 내 발목을 잡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