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973
973회. 지금 최선을 다하면 된다
무창부 추관 백운봉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추관이 전주에게 돈을 받아 처먹었다니?
그야말로 누가 들을까 무서운 소리였다.
그건 차치하고 감히 자신의 면전에서 그런 소리를 하는 인간들이 있을 줄이야.
“누구냐! 어떤 놈들이 그런 끔찍한 망발을 입에 담았느냐! 너희는 당장 죄인들을 잡아들이지 않고 뭣들 하느냐!”
백운봉의 호통에 우르르 달려 나간 포졸들이 손님들 일부를 에워쌌다.
누가 말했는지 확실히 알지 못해 대충 근처를 봉쇄한 것이다.
그러나 누군지 닦달할 필요도 없었다.
연적하와 심통의 대화를 듣고 있던 당운망이 뒤늦게 뛰어든 까닭이다.
“맞습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대놓고 전장을 편들어 줄 리가 없지요. 이 난장판을 보고도 충분히 할 수 있는 행동이라니, 진짜 웃기고 자빠졌네요.”
자기들 면전에서 추관 욕을 하자 포졸들이 일제히 박도를 뽑았다.
차차창―!
이윽고 포두 강범이 눈을 부라리며 말했다.
“너 이놈! 네놈의 죄를 네가 알렷다! 추관 나리를 음해하였으니 당장 오라를 받아라!”
“음해 같은 소리 하고 있네. 네놈 눈에는 내가 그렇게 만만해 보이냐?”
당운망이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자 강범은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헉! 뒷배가 대단한 늙은이를 건드린 건가?’
믿는 게 있으니 오십여 명의 포졸들 앞에서 저러는 것이리라.
당운망의 적반하장에 움찔한 강범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노야께서는 뉘십니까?”
“크크. 노부는 삼보절명 당운망이라고 하신다. 너는 그 이름을 들어 본 적이 있느냐?”
강범은 고개를 저었다.
다만 별호와 당씨 성을 조합하면 독공의 대가라는 건 알 것 같았다.
“당가의 분이십니까?”
유명교주의 출현 이후 관과 무림을 가르는 벽은 더욱 높아졌다.
이전에 관부에서 난처한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사용하던 ‘우물물은 강물을 침범하지 않는다[井水不犯河水]’는 말이 요즘은 절대의 규칙처럼 쓰였다.
그러다 보니 강범도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당가 고수에게 당하면 자신만 손해인 까닭이다.
“당가? 흥! 노부는 석경장의 사람이다.”
“…….”
강범은 당운망의 말을 바로 알아듣지 못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깐.
눈을 끔뻑이던 그의 입이 벌어졌다.
“그게 혹시, 합비에 있다는 그 석경장을…….”
“맞다. 장주님 가족을 모시고 다니는 중이다. 왜? 문제 있느냐?”
“어, 없습니다.”
“왜? 오라를 받으라더니?”
“아닙니다. 소인이 헛소리를 하였습니다. 용서해 주십쇼!”
강범이 허리를 접었다.
그의 뒤에 도열해 있던 포졸들도 일제히 그를 따라 했다.
멀찍이서 보던 백운봉은 그제야 뭔가 일이 틀어졌음을 알았다.
무슨 말이 오가더니 허리를 조아린다?
오연하게 서 있던 백운봉이 머뭇머뭇 강범과 포졸들을 향해 걸어갔다.
“강 포두. 무슨 일인가?”
돌아선 강범이 하얗게 질린 얼굴로 백운봉에게 말했다.
“나리. 합비 석경장 분들이라 하십니다.”
“석경장…….”
무심코 중얼거리던 백운봉은 포두를 제치고 후다닥 앞으로 튀어 나갔다.
“무창부 추관 백운봉이 석경장의 고인들께 인사 올립니다!”
백운봉의 허리는 강범보다 더 접혀서 머리가 땅에 닿을 지경이었다.
연적하가 상석에 있던 의자를 끌어다 걸터앉으며 말했다.
“어이, 백 추관.”
“예!”
“전장에서 얼마 받았어?”
“오, 오해이십니다. 소관은 전장에서 단 한 푼도 받지 않았습니다.”
“그럼 내가 착각한 거야?”
“…….”
감히 석경장 사람에게 그런 불경스러운 말을 할 수 없었던 백운봉은 가타부타 답하지 않았다.
그를 지그시 내려다보던 연적하가 강범에게 손가락을 까닥였다.
강범은 연적하가 누군지도 모르면서 후다닥 달려왔다.
“예! 나리.”
“무창부에도 금의위 지부가 있나?”
“예. 있습니다.”
“가서 상황 설명하고 내가 당장 튀어오란다고 해.”
“예!”
이윽고 막 돌아서려던 강범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저어, 나리. 그런데…… 소인이 아직 나리의 존성대명을 모릅니다. 누구의 명이시라 전할까요.”
그러자 심통이 연적하를 대신해 답했다.
“석경장의 장주이신 남천 연적하 대협이시다.”
“헉!”
뜻밖의 이름에 강범의 입이 쩍 벌어졌다.
살다 살다 이런 곳에서 남천 대협을 만날 줄은 몰랐다.
강범은 감히 허리를 펴지 못하고 굽실거리며 자리에서 물러났다.
죄인처럼 머리를 조아리고 선 백운봉의 얼굴에서 땀이 뚝뚝 떨어져 내렸다.
‘금의위에서 내가 뒷돈을 받은 걸 알고 있을까?’
아닐 거라고 생각했지만 금의위라면 충분히 그럴 수 있을 것 같았다.
본래 관리들의 비위 사실을 수집하는 게 그들의 일인 까닭이다.
뒤이어 연적하가 자신과 눈이 마주친 포졸에게 손가락을 까딱였다.
“예?”
포졸, 순곤이 엉거주춤 다가오자 연적하가 말했다.
“아저씨는 가서 대동전장의 전주를 끌고 와요. 웬만하면 내가 안 나서려고 했는데 완전 개판이야. 관부가 뇌물 받고 나쁜 놈 뒤를 봐주면, 힘없는 백성은 죽으라는 거야?”
“예, 예.”
순곤은 동료 몇을 데리고 급히 자리를 벗어났다.
연적하가 나선 덕분에 소란이 가라앉았다.
삼보표국의 국주 정도진과 표두들이 몰려와 연적하에게 머리를 조아렸다.
“대협! 인사가 늦었습니다. 삼보표국의 국주인 정도진이라 합니다. 대협께서 오신 줄 알았으면 상석으로 모셨을 텐데……. 모두가 저의 불찰입니다. 넓으신 아량으로 혜량하여 주십시오.”
“괜찮아요. 내가 좋아서 그곳에 앉아 있었는데요 뭐.”
정도진이 어떻게 이곳에 오셨냐고 물으려 할 때, 송겸이 나섰다.
“아우님이 정말 남천 연적하인가?”
“그렇습니다. 형님. 제가 나돌아 다닐 때 연남천이라는 이름을 쓰곤 합니다. 연적하라고 하면 사칭했다는 소리들을 해서요.”
“아! 우형은 그것도 모르고 아우를 장사꾼으로 알았지 뭔가. 아우가 남천 대협이었다니……. 보통 인물이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정말 상상을 초월하는구먼.”
“에이, 그렇지도 않습니다. 벗겨 놓고 보면 거기서 거깁니다. 그런데 형님. 제가 정 국주님에게 몇 가지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아우님 마음대로 하게.”
그제야 연적하는 정도진에게 고개를 돌렸다.
두 사람의 대화를 넋 놓고 듣던 정도진이 화들짝 놀란 얼굴로 말했다.
“무엇이든 물어보십시오!”
“별건 아니고요. 여기서 무창부를 왕복하는 데 얼마나 걸리나요?”
금의위가 언제 올지 몰라 묻는 것이었다.
“무창부까지 삼십 리(약 11킬로미터)쯤 됩니다. 말을 타면 늦어도 반 시진(1시간) 이면 왕복이 가능합니다.”
“반 시진 안에 금의위가 오겠네요?”
“그렇습니다.”
“그리고, 전주와 변제일을 늦춘 것에 대해 합의를 본 건 사실이죠?”
“예. 손 전주가 왜 고발했는지 모르겠지만, 분명히 그런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럼 됐어요. 금의위가 올 때까지 잔치나 즐겨야겠네요.”
연적하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정도진이 급히 말했다.
“가족분들과 오셨다고 들었습니다. 상석에 자리를 마련하겠습니다.”
“괜찮아요. 원래 먹던 자리가 좋으니 그냥 그곳에서 먹을게요.”
삼보표국 사람들과 더 얽히기 싫었던 연적하는 정중히 거절했다.
연적하와 석경장 식솔들이 돌아가자 대동전장의 행패로 중단됐던 연회가 재개됐다.
삼보표국에서 상을 치우고 다시 요리를 차릴 동안 누구 하나 자리에서 이탈하는 사람이 없었다.
연적하는 송겸과 정은소의 동석까지만 허락했다.
정은소는 송겸의 옆에 다소곳이 앉아 눈치만 봤다.
그녀는 연적하가 삼보표국 사람들에게 곁을 내주지 않은 이유를 알고 있었다.
‘그런 소리를 하는 게 아니었는데……. 내가 미쳤던 거지.’
불현듯 목선에서 남천 대협이 송겸과 자신의 어색한 호칭을 정리해 주던 때가 떠올랐다.
―아하! 혹시 동생네에 어려운 일이 있으면 언제라도 삼보표국으로 알리라고 하세요. 한 번은 도와줄게요.
그의 도움을 받았으니 작게나마 보답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의 동생이 삼보표국에 들러붙을까 봐 ‘한 번은’이라고 선을 그었다.
순간 움찔하던 그의 표정을 통해 ‘한 번은’에 담긴 의미가 제대로 전해졌다는 걸 알았다.
그런 그가 한번 도움을 베풀었으니 삼보표국과의 관계도 오늘로 끝이리라.
‘이래서 어른들이 맘보를 곱게 쓰라고 했구나.’
씁쓸하게 웃고 있는 그녀의 팔꿈치를 송겸이 툭 건드렸다.
“정 매. 혼자서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그냥요. 그런데 오라버니는 괜찮으세요?”
“뭐가?”
“남천 대협 대하기가 어색하지 않아요? 저는 눈치가 보여서 음식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도 모르겠는데.”
“글쎄. 연 아우나 나나 신분으로 사람을 보는 게 아니라서. 사실 한림원에서도 아랫사람이 뻣뻣하다고 눈총을 좀 받는 편이거든.”
“훗! 그런 게 도움이 될 때도 있네요?”
“그러게. 정 매도 연 아우를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마. 연 아우는 빈부귀천으로 사람을 차별하지 않잖아.”
‘하지만 제가 사람을 차별했잖아요.’
정은소는 그런 자신이 너무 한심했다.
어깨를 축 늘어트린 정은소에게 남궁연이 말을 걸었다.
“정 소저.”
“예?”
화들짝 놀란 정은소가 고개 들어 남궁연을 보았다.
“심 노인은 적하에게 반기를 들었던 사람이고, 당 노인은 그에게 독까지 썼던 사람이에요. 하지만 지금은 누구보다 그와 가까워졌죠.”
“어, 어떻게 그럴 수 있나요?”
정은소의 눈이 왕방울만 하게 커졌다.
심통과 당운망을 본래부터 연적하의 식솔로 생각하던 그녀에게 그건 큰 충격이었다.
“적하가 말하지 않던가요. 그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지금 이 순간이에요. 과거는 지나갔고 미래는 오지 않았으니까.”
송겸이 설명하듯 말했다.
“지금 최선을 다하면 된다는 말씀 같구나. 제수씨, 제 해석이 맞습니까?”
“역시 한림원 학사다우시네요. 맞아요. 감정은 상대적이라, 정 소저가 진심을 다하면 통할 날이 올 거예요.”
“감사합니다. 사실 제가 남천 대협께 너무 결례를 저질러서……. 얼굴을 들 수가 없었거든요. 이제부터라도 송 오라버니를 닮아야겠다는 마음이 드네요.”
연적하는 듣지 못한 척 발끝으로 새끼 백호를 툭 건드렸다.
“낑―.”
상 밑을 어슬렁거리던 새끼 백호가 강아지 소리를 내며 지안에게 달아났다.
“아, 그놈의 새끼. 닿기만 해도 지안이에게 쪼르르 달려가네. 저거 강아지 아냐? 무슨 호랑이가 저래?”
“아빠, 우리 설아 괴롭히지 마세요.”
“험. 괴롭힌 게 아니라 멀리 가지 말라고 그런 거야.”
연적하가 옹색한 변명을 늘어 놓았다.
하지만 석경장 식솔 중에 그의 말을 믿는 사람은 없었다.
연적하는 뻘쭘한 얼굴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제야 겨우 회갑연 같아졌다.
웃고 떠드는 사람들을 보니 덩달아 기분이 좋아진다.
‘이렇게 살면 되는데 왜 그리 못 잡아먹어서 안달인지…….’
그가 속으로 혀를 차고 있을 때 요란한 말발굽 소리가 들려왔다.
곧이어 흑철립에 수춘도를 손에 든 금의위들이 일사불란한 걸음걸이로 마당을 가로질렀다.
금의위는 연적하 앞에 길게 도열했다.
이윽고 무리 중에서 두 사람이 대표로 걸어 나왔다.
“남천 대협! 남진무사 소진방 인사올립니다.”
“북진무사 단세권입니다. 부르심 받고 한달음에 달려왔습니다. 하명하여 주십시오.”
연적하는 고개만 까딱하고 말았다.
흥겹기만 하던 회갑연 분위기가 차갑게 식었다.
뒤이어 포졸들이 육십 대 노인의 등을 거칠게 떠밀며 들어왔다.
대동전장 전주를 데려오라는 명을 받고 나갔던 순곤이 쭈뼛쭈뼛 연적하 앞으로 걸어갔다.
“남천 대협. 대동전장의 손의정 전주가 몸을 숨기는 바람에 찾느라 조금 늦었습니다.”
“수고했어요. 이리 데리고 오세요.”
“예!”
늦었다고 욕먹을 줄 알고 눈치를 살피던 순곤의 어깨가 예상치 못한 칭찬에 들썩거렸다.
잠시 후 연적하의 앞에 대동전장 손의정 전주와 삼보표국 정도진 국주, 그리고 무창부 백운봉 추관이 나란히 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