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974
974회. 너무 자책하지 마
삼보표국 정도진 국주의 회갑연 잔치는 끝났다.
설사 무창부의 추국청(推鞫廳)이라 해도 이처럼 삼엄하지는 않으리라.
연적하의 좌측에 금의위 남진무사, 우측에 북진무사가 호랑이 눈으로 세 사람을 노려보고 있었다.
세 사람의 뒤에 선 오십여 명의 포졸들 눈초리도 삼엄하기는 마찬가지.
대역죄인들을 심문하는 분위기인지라 회갑연에 온 손님들은 숨소리도 내지 않았다.
상석에 앉은 연적하가 입을 열었다.
“나에게 분근착골이라는 좋은 수단이 있는데도 쓰지 않고, 여러분을 불러 모은 건……. 그런 걸 쓰지 않아도 세상이 잘 돌아갈 거라는 기대 때문이에요. 그 기대를 저버리지 않기를 바라요. 알겠습니까?”
“예.”
세 사람이 이구동성으로 답했다.
“전주가 누구예요?”
“접니다.”
대동전장의 손의정 전주가 슬그머니 한쪽 손을 들었다.
“삼보표국 국주님과 변제일을 따로 합의했어요? 안 했어요?”
“……했습니다.”
손의정은 순순히 인정했다.
차마 정도진 앞에서까지 부인할 수는 없어서다.
“합의했는데 왜 또 고발했어요?”
“그게…… 주위에서 삼보표국의 신용이 너무 떨어져 원금을 회수하기 어려울 것 같다고들 해서…….”
“신용이 떨어지게 방해를 하고서, 신용이 떨어져 원금을 회수하기 어려워 고발을 했다? 이게 말이야, 방귀야?”
“저희는 방해하지 않았습니다.”
“삼보표국에 사람을 보내 행패를 부렸다면서? 그게 방해지 뭐가 방해야?”
“그, 그건 추객들이 본래 그런 일을 하는 사람들이라…….”
“됐고. 추관에게 돈 먹였어? 안 먹였어?”
“…….”
손의정은 대답에 앞서 금의위의 눈치를 살폈다.
저들이 얼만큼 알고 있는지가 중요한 까닭이다.
그러나 남진무사와 북진무사의 얼굴만 봐서는 속을 알기 어려웠다.
그렇다고 여기서 뇌물을 줬다고 실토할 수도 없는 노릇.
“대협, 어디서 무슨 소리를 들으셨는지 모르겠지만 저희는 뇌물을 쓰지 않습니다. 그건 모함입니다.”
연적하가 북진무사에게 물었다.
“금의위가 답해 봐요. 저 사람이 추관에게 돈을 줬어요? 안 줬어요?”
북진무사 단세권이 바로 답했다.
“그 이전에도 여러 차례 있었습니다만, 고발을 하던 날에는 은자 오천 냥을 상납하였습니다.”
순간 손의정의 얼굴에서 핏기가 사라졌다.
연적하가 그런 손의정을 향해 말했다.
“그렇다는데?”
손의정이 머리를 바닥에 찧으며 소리쳤다.
“대협! 전장이 관부에 일정 금액을 상납하는 것은 관례입니다! 그것과 이번 일은 무관합니다!”
“이야. 녹림도보다 더 뻔뻔한 사람이 여기 있네. 대단하다.”
“…….”
연적하의 비웃음에 손의정은 입을 꾹 다물었다.
자기가 생각해도 말이 안 되는 소리인 까닭이다.
연적하의 시선이 이번에는 추관에게 향했다.
“어이, 추관 아저씨. 이번에는 당신이 말해 봐. 전주가 돈을 주면서 뭐라고 했는지.”
추관 백운봉은 대답에 앞서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금의위가 자신의 비위 사실을 알고 있으니 끝났다고 봐야 한다.
남천이 관련된 일에 자신의 뒤를 봐줄 고관은 없을 터.
“손의정이 ‘삼보표국주를 몇 달 만이라도 옥에 가두어 달라’ 부탁했습니다. 그동안 삼보표국을 헐값으로 인수해 금마표국 지부에 되팔겠노라고. 거래가 끝나면 은자 일만 냥을 더 주겠다고 했습니다.”
가만히 듣고 있던 손의정이 펄쩍 뛰며 백운봉의 말을 부인했다.
“대협! 아닙니다! 절대 그런 말을 한 적이 없습니다! 저에게 무슨 돈이 있다고 삼보표국을 인수해서, 금마표국에 되판단 말입니다? 모두 거짓말입니다! 억울합니다! 이보시오! 백 추관! 혼자만 죽지 왜 물귀신처럼 나를 끌어들이는 거요!”
연적하가 야릇한 눈으로 손의정을 보았다.
금의위와 추관의 증언에도 저렇게 시치미를 떼다니!
이러니 고문 기술이 발달한 모양이다.
언법(言法)을 쓸 수도 있지만 괘씸해서 안 되겠다.
그는 즉시 손가락을 튕겨 손의정의 혈도를 점했다.
“컥! 악! 끄아아악!”
분근착골이 시전되자 손의정은 입에 거품을 물고 사지를 뒤틀었다.
나중에는 비명 소리도 내지 못하고 몸만 펄떡거렸다.
으드드득. 으득.
머리가 엉덩이에 닿자 손의정은 눈을 까뒤집었다.
잠시 후 손의정의 하체가 축축하게 물들자 연적하는 분근착골을 해제했다.
기이하게 뒤틀렸던 몸이 다시 정상으로 돌아왔다.
똥을 쌌는지 갑자기 구린 냄새가 났다.
“손 씨. 추관의 말이 사실이야? 아니야?”
“사, 사실입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손의정은 단 한 차례의 분근착골에 굴복했다.
무림인도 견디기 어려운 게 분근착골이니 어쩌면 당연하다.
“금마표국은 어디까지 관계됐어?”
“그들은 제가 삼보표국에 작업 친 건 모릅니다.”
“그런 거치고는 아주 적극적으로 시비를 걸던데?”
“삼보표국이 빨리 망하기를 바라고 있으니까요.”
연적하가 금마표국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와 눈이 마주치자 금마표국의 총표두 마진상과 곡삼 표두는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쯧쯧! 사람들 심보 하고는…….”
저들은 쓰러진 사람이 일어날까 봐 자꾸 떠다민 형국이었다.
“손 전주라고 했지?”
“예, 예……. 살려 주십쇼.”
“삼보표국의 영업을 방해해서 손해 입힌 건 어떻게 변상할 거야?”
“저희로 입은 손해가 있다면 배상해 주겠습니다.”
“그냥 배상은 안 돼. 고의로 손해를 보게 했으면 그보다 몇 배는 더 배상해야지. 안 그래?”
“두, 두 배로 보상하겠습니다.”
“겨우? 두 배 해 봐야 얼마나 된다고. 정 국주님, 얼마나 손해 봤어요?”
잠시 생각하던 삼보표국주 정도진이 조심스럽게 답했다.
“최소한 은자 삼천 냥은 됩니다.”
“저봐. 두 배 해 봤자 은자 육천 냥밖에 안 되잖아. 남의 표국을 꿀꺽하려던 사람이 그걸 고작 육천 냥으로 퉁치자고 하면 안 되지.”
연적하의 말에 손의정이 더듬더듬 말했다.
“허, 허면……. 다, 다섯 배는 어떻습니까?”
“약해.”
“이만 냥…….”
“그것도 약해. 뇌물로 오천 냥을 쓴 사람이 왜 그래?”
“삼만 냥을 내겠습니다.”
“흠! 그 정도면 무난한 거 같네. 북진무사님?”
연적하의 부름에 단세권이 급히 앞으로 나섰다.
“예!”
“죄를 자백하고, 배상금도 정해졌고, 이제 내가 해 줄 일은 끝난 것 같네요. 전주와 추관 데리고 가서 법대로 처리하세요.”
“예! 명대로 하겠습니다.”
단세권이 금의위에 눈짓을 보냈다.
그러자 금의위 위사들이 손의정과 백운봉을 끌고 나갔다.
일이 마무리됐음에도 소진방과 단세권은 연적하의 뒤에 시립하고 서 있었다.
두 사람은 연적하에게 그만 가라는 말을 듣고서야 자리를 떠났다.
관인들이 싹 다 떠나자 연적하도 슬슬 떠날 채비를 했다.
멀리서 살피고 있던 삼보표국주 정도진이 허겁지겁 달려왔다.
“대협! 더 계시지 않으시고요?”
“동생 집에 가던 중이라서요.”
“아! 소호에 계시는 한 여협과 하 여협을 찾아가신다지요?”
“어? 알아요?”
“그야 물론이지요. 오봉십걸은 소호의 자랑인데 모를 리가 있습니까.”
“잘됐네요. 소호 인근으로 집을 옮겼다는 소리만 들었지, 정작 어디에 사는지는 모르거든요.”
“허면 제가 직접 길 안내를 해 드려도 되겠습니까?”
“에이, 뭐 그렇게까지. 국주님 말고 아무나 다른 사람을 보내 줘도 돼요.”
“아닙니다. 대협과 관계된 일이라면 저에게는 큰 영광입니다. 부디 저에게 맡겨 주십시오.”
본래 정도진은 표사로 시작해 자수성가한 사람이다.
표물의 배송은 물론 호위까지 안 해 본 일이 없었다.
그런 그에게 남천 연적하의 길잡이는 꽤나 자랑스러운 일이었다.
정도진이 그렇게까지 원하자 연적하도 더는 사양하지 않았다.
“그럼 부탁드릴게요.”
“예! 맡겨만 주십시오!”
정도진은 그 자리에서 삼보표국의 정예 표사 다섯을 호명했다.
잠시 후 석경장의 이두마차 두 대가 천천히 움직였다.
정도진은 전성기 시절에 그랬던 것처럼 선두로 나섰다.
그의 좌우에 두 명의 표사가 붙었고, 나머지 둘은 이두마차 뒤로 돌아갔다.
어느 순간 선두와 후미의 표사들이 슬그머니 삼보표국의 깃발을 말안장에 꽂았다.
그러자 마치 삼보표국이 이두마차들을 호위하는 것처럼 보였다.
창밖을 내다보던 남궁연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열심히 사는 사람들이네.”
아주 작은 기회까지도 놓치지 않는 걸 보니 정도진이 어떤 사람인지 알 것도 같았다.
“왜요?”
연적하가 창밖을 힐끔거렸다.
하지만 그녀가 뭘 보고 그런 말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동안 삼보표국의 이름이 땅에 떨어졌잖아. 삼보표국이 석경장의 마차를 호위했다는 게 알려지면……. 너도 나도 삼보표국으로 달려갈걸?”
“그렇게 안 봤는데 정 국주가 여우네요.”
“그 정도 열심이 있으니 성공한 거지. 남들처럼 해서 표국의 주인이 될 수는 없으니까.”
“난 진짜 나를 존경해서 그러는 줄 알았더니만……. 또 이렇게 뒤통수를 맞네.”
“물론 너를 존경하는 마음도 있을 거야. 그의 표정에서 진심이 느껴졌으니까. 존경과 일생일대의 기회를 활용하는 건 다른 거라 생각해.”
“누님이 그렇다면 그런 거겠죠.”
그제야 연적하는 살짝 언짢아지려던 기분을 풀었다.
“그런데 아까는 왜 그랬던 거야?”
“뭘요?”
“나는 네가 손의정을 잡아다가 분근착골로 자백하게 만들 줄 알았거든. 그런데 너는 금의위까지 불러서 대화로 풀어 보려고 했잖아.”
남궁연이 그윽한 시선으로 연적하를 보았다.
그가 ‘분근착골을 쓰지 않아도 세상이 잘 돌아갈 거라는 기대로 그런다’고 했지만, 다른 이유가 있을 거라 생각했다.
“사실 요즘 적당한 선이 뭔지를 생각하고 있거든요. 누님도 알다시피 내가 직접 관여해서 좋은 꼴을 못 봤잖아요. 그래서 금의위의 도움을 받아서 평범하게 처리해 보려고 했어요. 다른 사람들도 인맥은 동원하니까.”
“그랬는데 손의정이 일을 망친 거구나?”
“맞아요. 그 사람이 결국 분근착골을 쓰게 만들더라고요. 금의위가 줬다는 데도 아니라니 별수 없잖아요.”
“너무 자책하지 마.”
남궁연이 연적하의 손을 잡았다.
아버지와 오라버니의 일이 그에게 영향을 미친 것 같았다.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 그를 원망하니 아닌 척해도 심란할 게다.
처가 쪽 가족들과 잘 풀면 좋겠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요원한 일이었다.
중도를 지키려는 그와 남맹의 맹주인 부친, 그리고 호천맹과의 전쟁에 폐인이 된 오라비.
아무리 생각을 쥐어짜도 뾰족한 해결책이 없다.
***
소호 인근.
연적하는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강한항을 떠난 뒤 마을에 들어서기는 처음이다.
느낌상 동생들의 집이 멀지 않은 것 같다.
아니나 다를까?
선두에 있던 정도진 국주가 마차 옆으로 다가와 말했다.
“대협! 이제 곧 동생 분들의 집에 도착할 겁니다. 마차가 들어가기에 골목이 협소하니……. 적당한 곳에 마차를 세우도록 하겠습니다.”
“그러세요.”
그런데 마차가 들어가기 어려울 정도로 좁은 골목이라니?
합비의 사업장 열 개를 얻기 전까지 자신도 돈에 쪼들려 신경 쓰지 못한 게 마음에 걸렸다.
잠시 후 널따란 공터가 나오자 선두가 멈춰 섰다.
마부에게 언질을 주었던지 마차는 더 전진하지 않았다.
이두마차 두 대가 공터에 나란히 멈춰 섰다.
석경장 식솔들이 마차에서 내려 주위를 둘러볼 때다.
무림인으로 보이는 남자 셋이 빠르게 다가왔다.
삼보표국 표사들이 재빨리 그들의 앞을 막아섰다.
그러자 남자들 중 하나가 연적하를 향해 읍을 하며 말했다.
“남천 대협! 저는 악서현 상도문의 장일이라 합니다! 검왕님께서 남천 대협께 전하라는 편지를 가지고 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