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981
981회. 여러분의 숭고한 뜻을 받들겠습니다
사흘 전.
호천맹 맹주 집무실 무문각.
호천맹 맹주 무극상인과 무상도제 장무덕, 그리고 의천검존 이의정이 마주 앉았다.
호천맹에는 검왕과의 비무를 의논하기 위함이라고 했지만 진짜 목적은 다른 곳에 있었다.
모임의 주재자인 무극상인이 먼저 운을 뗐다.
“남경의 호천맹 이 차 지원부대가 철수 중에 있습니다. 우려하던 대로 남천이 남맹의 편에 섰습니다. 호천맹이 남직례성에 발을 디디면 지난해 남맹이 포기한 백오십 개 문파를 되찾아 주겠다고 했답니다.”
“허어!”
“흐음!”
무상도제와 의천검존의 입에서 침음성이 흘러나왔다.
무극상인이 계속해서 말했다.
“아시다피시 현재 남직례성에는 무극문을 포함해 열두 개의 호천맹 방파가 남아 있습니다. 남맹은 그들을 모두 흡수해 명실공히 남직례성 유일의 맹으로 남으려 할 것입니다.”
무상도제가 입을 열었다.
“남맹이 무극문도 노릴 거라는 말이오?”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무극문이 얼마나 더 버틸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무극문이 남맹에 흡수되는 것은 시간문제일 뿐입니다.”
“끙!”
무상도제는 반박하지 않았다.
지금처럼 남천의 위세를 등에 업고 남맹이 날뛰면 그렇게 되고도 남았기 때문이다.
“검왕과 반천일검은 남직례성으로 만족할 사람들이 아닙니다. 이런저런 핑계로 남직례성에 인접한 방파들을 포섭할 겁니다. 지난해에 야금야금 세력을 넓혔던 것처럼 말이지요.”
검왕과 반천일검이 어떤 사람들인지 알고 있는 무상도제와 의천검존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결국 남천이 문제입니다. 그가 천하무림에 군림하는 한, 호천맹이 설 자리는 없습니다.”
“남천에 대적하자는 말이오?”
무상도제가 암울한 눈으로 무극상인을 보았다.
그러자 무극상인이 무상도제에게 되물었다.
“무극문이 남맹에 흡수되기를 바라십니까?”
“…….”
무상도제는 침묵했다.
하지만 그 침묵이 부정의 뜻임을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의천검존이 나섰다.
“맹주, 그 전에 남천을 상대할 자신은 있소? 그는 유명교주와 천외이선, 마교주를 단신으로 꺾은 천외천의 고수외다. 남맹이 호가호위(狐假虎威)하는 것도 그가 천하무적이라고 믿어서가 아니오?”
“지금까지 천하십대고수들은 단 한 번도 뭉치지 않았습니다. 칠파이문만이라도 뜻을 모은다면……. 가능할 거라 생각합니다.”
“흠! 칠파이문이라고 해도 실제로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곳은 소림사와 무당파가 전부일 텐데…….”
“원공 선사와 태허 진인이 합류한다면 우리에게 승산이 있습니다. 우리가 힘을 합치면 유명교주나 천외이선, 마교주도 굴복시킬 수 있습니다. 남천도 예외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무극상인의 말에 아무도 반론을 제기하지 않았다.
천하십대고수들은 하나하나가 입신의 경지에 이른 존재들.
자존심 강한 그들이 합력하기가 어렵지, 일단 손을 잡으면 연적하를 제압하는 것은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
현재.
통천각.
총사의 말에 굳은 얼굴로 숙고하던 무극상인의 입이 열렸다.
“천하무림의 안녕과 발전을 위해……. 무거운 사명감으로 여러분의 숭고한 뜻을 받들겠습니다.”
원하던 답을 들었음에도 칠파이문 대표들의 표정은 밝지 않았다.
칠파이문이 생사존망을 가르는 싸움에 첫발을 내디딘 까닭이다.
맹주인 무극상인의 얼굴에 결연한 빛이 떠올랐다.
무림의 종주인 호천맹과 남천의 승부는 필연이었다.
지금까지 유명교, 마교로 인해 애써 모른 척했지만 이제는 그만 끝을 봐야 할 때가 됐다.
무상도제와 의천검존과는 어느 정도 말을 맞춰 놓은 상태니 원공 선사와 태허 진인만 설득하면 될 일이었다.
그렇게 호천맹의 뿌리인 칠파이문은 남천과의 위태로운 공존을 끝내고, 홀로 살아남는 것을 택했다.
***
호광성.
균현.
무당산.
이른 아침, 전서구 한 마리가 무당파로 날아들었다.
전서구가 가져온 밀지를 확인한 무당파 장문인 영결상인은 바로 진무궁 궁주인 천지상인을 불러들였다.
“장문인, 찾으셨습니까?”
“어서 오시오. 내 상인과 긴히 의논할 이야기가 있어 오시라 했소.”
긴히 의논할 이야기가 있다고 했지만 영결상인은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그는 빈 잔에 차를 따라 천지상인의 앞으로 밀었다.
청량한 차향(茶香)이 장문인의 거처를 은은히 물들였다.
천지상인도 서두르지 않고 장문인이 말해 주기를 기다렸다.
영결상인은 차를 절반 정도 마신 뒤에야 입을 열었다.
“얼마 전 호천맹에서 긴급한 회의가 열렸다고 하는구려. 호천맹의 이 차 지원부대가 돌아온 모양이오.”
“무극문의 일이 잘 해결된 것입니까?”
“그랬다면 긴급회의까지 열렸겠소. 남천이 호천맹에 경고를 한 것 같소. 호천맹이 남직례성에 발을 디디면 지난해 남맹에서 포기한 백오십 개 문파를 직접 되찾아 주겠노라고.”
“허어!”
천지상인의 입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여태 수수방관하던 남천이 결국 관여를 한 모양이다.
“그리고 그 일을 칠파이문이 호천맹에 대한 심각한 도전으로 받아들였다고 하오. 남천과 손잡은 남맹이 호천맹을 무너뜨리기 전에……. 먼저 손을 쓰기로 했다 하더이다.”
“선공을 결정한 것입니까?”
“그렇소. 조만간 호천맹에서 누군가 태허 진인님을 찾아올 게요.”
“결국 그렇게 되는군요.”
“그동안 남천과 칠파이문은 아슬아슬한 관계를 유지해 오고 있지 않았소. 곪은 것이 마침내 터진 게지요.”
천지상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칠파이문의 드높은 자존심을 생각하면 늦은 감이 있었다.
“그런데 빈도는 왜 부르신 겁니까?”
영결상인이 의미심장한 눈으로 천지상인을 보았다.
“상인은 어떻게 생각하시오?”
“무엇을 말입니까?”
“천하십대고수들로 남천을 제거하겠다는 호천맹의 계획이 성공할 거라 생각하시오?”
“반반으로 봅니다.”
“호오! 절반이나 된다는 거요?”
“남천은 구천검이라는 가공할 검공에 여동빈 선인의 천둔검마저 터득했습니다. 구천검과 천둔검이 각각 이 할 오 푼(25퍼센트)의 역할을 한다고 가정해 그리 말씀드린 것입니다.”
“구천검이 천둔검만큼 대단하오?”
“그 이상이면 이상이지 뒤지지는 않는다 생각합니다.”
“거기에 오룡궁의 술법까지 더해진다면……. 남천에게 조금 더 유리해지겠구려.”
“호천맹에는 안됐지만 불리한 싸움은 아닐 것입니다.”
“허어!”
영결상인이 탄식했다.
천지상인의 예측대로라면 호천맹은 섶을 지고 불구덩이로 뛰어드는 것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장문인이 보시기에는 어떻습니까?”
“내 생각이 무슨 의미가 있겠소. 나보다는 남천과 가까운 상인의 눈이 더 정확할 게요. 그래서 말씀인데……. 상인께서 수고를 좀 해 주셔야 겠소.”
“말씀하시는 대로 하겠습니다.”
“포공사에서 천하십대고수들이 검왕을 제거하기로 했다 하오. 검왕에게 일이 생기면……. 남천은 칠파이문을 그냥 두지 않을 게요.”
“맞습니다. 잘해야 봉문이고 멸문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상인께서 남천의 지인이니 그에게 은밀히 뒤띔을 해 주시오. 검왕이 죽으면 돌이킬 수 없게 되니, 그 일만은 막았으면 하는 게 내 바람이오.”
“예, 맡겨 주십시오.”
“남천은 지금 개봉으로 가고 있소. 오봉십걸들을 만나러 가는 것 같다니……. 찾는 게 어렵지는 않을 게요.”
“알겠습니다. 지금 즉시 개봉으로 출발하겠습니다.”
“오봉십걸이 금선상방에 있다고 하니 금선상방을 찾아가시오.”
“명대로 하겠습니다!”
천지상인이 결연한 얼굴로 읍을 해 보였다.
***
하남성.
개봉.
해원상방.
신시 말(오후 5시).
해원상방의 방주 도부영이 장부를 들여다보고 있을 때다.
우당탕하는 발소리와 함께 대행수 양승원이 집무실로 뛰어 들어왔다.
“웬 호들갑인가?”
“방주님! 큰일 났습니다.”
“큰일?”
도부영이 읽고 있던 장부를 덮고 시선을 돌렸다.
“무창부로 가던 일주상단에서 일이 터졌습니다.”
“무슨 일?”
“일주상단의 상인 하나가 큰 사고를 쳤답니다.”
“어허! 흥분을 가라앉히게. 그럴 때일수록 침착해야 한다니까. 대체 무슨 사고를 쳤기에 그 난리인가?”
그제야 양승원 대행수는 숨을 가라앉힌 뒤 말했다.
“오봉산 초입의 마을에서 염광오가 남천 대협에게 욕설을 했다고 합니다. 그 자리에 있던 오봉산채의 부채주가 대로해서 일주상단의 오봉산 출입을 금했습니다. 그 일이 알려져 녹림에서 우리 해원상방을 벼르고 있다고 합니다.”
“잘못 안 거 아닌가? 염광오가 남천 대협과 얽힐 일이 뭐 있다고?”
“그게…… 일주상단 상인들의 말에 의하면…….”
양승원 대행수는 염광오가 벌인 일을 소상히 털어놓았다.
“뭐라! 남천 대협의 딸이 데리고 다니는 새끼 백호를 취하려고 시비를 걸어? 그 미친놈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어깨뼈가 부러져 허창의 의원에 드러누워 있다 합니다.”
“허창에? 그 미친 자를 당장 끌고 올라오라 하게! 해원상방을 망하게 하고서 어딜 드러누워 있어! 그래서 남천 대협은 지금 어디에 있고?”
“개봉으로 올라가는 중이라 합니다.”
“개봉? 설마 우리에게 따지러 오고 있다는 말인가?”
“그건 아닌 것 같습니다.”
“미치겠군. 허면 지금 일주상단은 어디에 있고?”
“지금은 허창에 있습니다. 녹림의 대응을 보고 길구 방면으로 크게 우회하겠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큰일 날 소리! 대응은 무슨 대응! 녹림이 남천 대협의 일이라면 눈에 쌍심지를 켜는 걸 몰라서 하는 말인가! 허창에 대기하라고 하게!”
“조금 돌아가더라도 상품을 납품하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그런 태평스러운 소리를 할 때가 아니네. 돌아가긴 어딜 돌아간다고 그러나? 천하에 깔린 게 녹림의 산채와 수채인데! 손해 생각하다가 물건 다 빼앗기면? 남천 대협과의 일부터 풀어야 하네. 천경대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이번 달부터 진안야시(晉安夜市)를 지키고 있습니다.”
“천행이군. 즉시 연 대주를 불러들이게. 연 대주를 통해 남천 대협과의 일을 푸는 게 우선이야.”
“알겠습니다.”
방주의 집무실에서 물러난 양승원 대행수는 서둘러 진안야시로 걸음을 옮겼다.
***
개봉.
금선상방.
해거름 무렵.
이두마차 두 대가 금선상방의 정문에 멈춰 섰다.
이윽고 마차에서 내린 심통이 금선상방으로 휘적휘적 걸어갔다.
마당을 오가던 상인과 일꾼 들이 외부인의 방문에 힐끔거렸지만, 딱히 그를 제지하는 사람은 없었다.
제집처럼 태연하게 금선상방에 들어간 심통이 때마침 지나가던 초로의 노인을 불러 세웠다.
“이리 와 보거라.”
“나 말이오?”
초로의 노인, 홍완 행수가 황당한 얼굴로 되물었다.
금동신 방주의 사촌인 그는 갑작스러운 하대에 살짝 기분이 나빴지만, 애써 감정을 눌렀다.
“그럼, 거기 너밖에 또 누가 있다고? 냉큼 오거라.”
“허, 거참. 무슨 일이오?”
홍완 행수가 염소수염을 한 노인의 아래위를 훑었다.
그제야 허리춤에 찬 기이한 단봉이 보였다.
‘무림인인가?’
그렇다면 저 광오 한 언행도 이해가 갔다.
“풍연초와 탁고명이 자리에 있느냐?”
“풍 대주와 탁 대주를 찾아오신 손님이십니까?”
대번에 홍완 행수의 말투가 고분고분해졌다.
오봉십걸의 수좌인 풍연초를 아랫사람인 것처럼 대하는 노인에게 겁을 집어먹은 것이다.
“어허! 자리에 있느냐니까 왜 이리 말이 길어.”
“풍 대주는 방주님과 잠시 외출 중이고, 탁 대주는 진안야시에 나가 있습니다.”
“탁고명을 불러들이거라.”
머뭇거리던 홍완 행수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저어, 불러들이는 것은 어렵지 않으나, 누구시라고 전해 드릴까요?”
“나는 구천노도다. 석경장의 장주님께서 두 사람을 만나기 위해 오셨으니 냉큼 불러오거라.”
“헉! 알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깜짝 놀란 홍완 행수는 미친 듯 질주해 사라졌다.
정문으로 돌아간 심통이 마부에게 손짓을 보내자, 길가에 서 있던 이두마차 두 대가 금선상방으로 천천히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