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982
982회. 내 말이 맞았네. 그런데 뭘 오해래?
진안야시(晉安夜市, 진안 야시장)에 나가 있던 탁고명보다 금선상방의 방주 금동신과 풍연초가 먼저 돌아왔다.
금동신 방주가 황당한 얼굴로 안마당에 떡하니 서 있는 이두마차 두 대를 가리켰다.
“풍 대주, 지금 우리 안마당에 들어와 있는 게 마차가 맞소?”
“그런 거 같습니다. 오늘 약속이 있으셨습니까?”
“있으면 내가 풍 대주와 식사를 하러 갔었겠소?”
금동신 방주는 마차를 찬찬히 살폈다.
평범한 모양새가 고관대작이나 왕족들의 마차는 아니었다.
몇 번을 뜯어봐도 흔하디흔한 이두마차다.
‘다른 상방의 방주가 왔나?’
하지만 다른 상방의 방주에게 안마당을 내주는 상인은 없다.
‘그럼 누구지?’
금동신 방주는 고개를 갸웃했다.
대체 누가 상방 안마당에 떡하니 마차를 세워 놓았던 말인가!
때마침 마당을 지나던 차승언 행수가 헐레벌떡 달려왔다.
“차 행수. 마침 잘 왔네. 이 마차…….”
금동신 방주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차승언 행수가 소리쳤다.
“석경장의 남천 대협이 오셨습니다!”
그 한마디 말에 모든 게 정리됐다.
금동신 방주가 멈칫할 때 풍연초는 벌써 저만큼 달려가고 있었다.
객청.
풍연초의 합류로 객청은 잔칫집처럼 시끌벅적했다.
그로부터 한 식경(약 30분)쯤 후 진안야시에 나갔다던 탁고명이 돌아왔다.
“연 아우!”
한달음에 달려온 탁고명이 연적하의 손을 잡고 흔들었다.
“둘째 형님, 그동안 잘 지내셨죠?”
“잘 지냈지. 풍 형님과 함께 석경장에 간다 간다 하면서 찾아가질 못했다. 상방에 일이 너무 많았거든.”
“괜찮아요. 그래서 할 일 없는 내가 왔잖아요.”
“그래, 이야기는 계속 듣고 있었다. 무림에서 손을 뗐다지? 잘했다. 무림에 얽혀 봐야 머리만 아프고 실속 없다.”
“하하…….”
연적하는 어색하게 웃기만 했다.
최근에 장인과 화해하고 다시 끼어들게 됐지만, 이 자리에서 그런 이야기를 할 필요는 없었다.
그때 심통이 의미심장한 얼굴로 한마디 던졌다.
“탁 대주. 요즘도 해원상방과 진안야시를 두고 싸우나?”
“뭐, 그렇죠. 그래도 이전처럼 살벌하게 전면전은 안 합니다.”
상대인 해원상방에서 진안야시에 천경대를 배치한 뒤로 칼싸움은 많이 줄어든 상태였다.
천경대의 대주가 연설주인지라 금선상방에서 대대적인 반격을 삼가한 탓이다.
해원상방 역시 오봉십걸에 대한 부담으로 전면전을 걸어오지는 않았다.
처음의 격돌 이후 지금까지 금선상방과 해원상방은 진안야시를 절반씩 나눠서 관리하고 있었다.
“해원상방에서 연설주를 앞세웠다지?”
“말도 마십쇼. 검술이 어찌나 뛰어난지 큰형님과 제가 아니면 상대할 사람도 없을 정돕니다.”
“쯧! 그럴 게야. 우리 공자님이 너무 착해서.”
과거 연적하는 배다른 형제들에게 구천여일진경의 법문을 가르쳐 준 적이 있다.
심통은 그걸 지적한 것이었다.
비록 구백 자 가운데 극히 일부분밖에 못 배웠다 해도 그 공능은 칠파이문의 비전 심법 못지않았다.
심통이 그걸 자신의 탓으로 돌리자 연적하가 말했다.
“맞아. 내가 너무 착해서 심 노인 같은 마두에게도 그걸 가르쳐 줬지. 그 시절로 다시 돌아갈 수 있다면……. 절대 가르쳐 주지 않았을 텐데.”
“공자님, 제가 그래도 마두까지는 아니었습니다.”
“아, 맞다. 내가 너무 띄워 줬네. 마두가 아니라 마졸이었지. 미안해.”
괜히 끼어들었다가 본전도 건지지 못한 심통은 얼른 화제를 돌렸다.
“조만간 해원상방의 방주가 맨발로 달려올 게다. 그때 진안야시에서 손을 떼라고 해라. 아마 들어줄 게다.”
“심 노인. 그게 무슨 소립니까? 도부영 방주가 맨발로 달려온다니요?”
풍연초가 놀란 눈으로 심통을 보았다.
물론 연적하가 부른다면야 누구라도 달려오겠지만, 연적하는 그럴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여기 오는 길에 오봉산에서 해원상방의 상단과 시비가 있었다.”
“시비요?”
“그쪽 상인 한 놈이 지안의 백호에 눈독을 들여 시비를 걸었다가 얻어맞았지. 그걸 오봉산채에서 알게 됐으니 그냥 넘어갈 리가 있겠느냐? 녹림에 알려 해원상방의 숨통을 조일 모양이더라. 그러니 해원상방의 방주가 맨발로 달려오지 않겠느냐?”
“아! 그런 일이……. 대체 어떤 미친놈이 우리 조카의 백호를 탐냈단 말입니까?”
“해원상방에 염 뭐시기라는 놈이 있다. 그 일로 이제 해원상방은 끝났다고 보면 된다. 그러니 진안야시가 문제겠느냐? 흐흐.”
풍연초와 탁고명은 당장이라도 해원상방으로 달려갈 것처럼 펄펄 뛰었다.
그들은 진안야시 운영권보다 어린 조카의 백호를 노린 놈이 있었다는 데 더 분노했다.
한편 금선상방의 금동신 방주는 석경장 사람들이 아직 저녁 식사 이전임을 알고 급히 저녁 식사를 준비했다.
말이 저녁 식사지 거의 연회(宴會) 수준의 요리가 깔렸다.
객청에서 석경장 식솔들이 식사를 시작할 즈음, 해원상방의 방주와 대행수가 연설주를 앞세우고 금선상방을 찾아왔다.
금선상방의 금동신 방주는 연설주의 얼굴을 봐서 내치지 못하고 ‘지금은 남천 대협 가족이 식사 중이니 기다리라’ 했다.
한 식경쯤 후 금선상방의 방주는 연설주와 해원상방 방주, 그리고 대행수를 데리고 객청으로 향했다.
해원상방의 도부영 방주와 양승원 대행수는 객청에 들어서자마자 머리를 땅에 박으며 소리쳤다.
“남천 대협! 살려 주십쇼!”
“용서해 주십쇼! 제발 한 번만 살려 주십쇼!”
가족들과 식사 중이던 연적하가 눈을 찡그리자 심통이 손을 휘저었다.
도부영 방주와 양승원 대행수의 몸이 안채로 이어지는 월동문 밖으로 주르륵 밀려 나갔다.
월동문 밖에서 도부영 방주와 양승원 대행수는 땅에 머리를 처박고 다시 소리 높여 외쳤다.
“용서해 주십쇼!”
“남천 대협!”
두 상인의 외침이 계속되자 연적하는 심통에게 눈짓을 보냈다.
들여보내라는 뜻이다.
심통이 손을 움켜쥐고 자신의 앞으로 당기자, 도부영 방주와 양승원 대행수의 몸이 다시 객청 마당으로 딸려 나왔다.
도부영 방주와 양승원 대행수는 구천노도의 신공절학에 감히 숨도 크게 쉬지 못하고 눈알만 굴렸다.
그제야 연설주가 쭈뼛쭈뼛 나섰다.
“오랜만에 보는구나. 아기를 낳았다는 소문은 들었다.”
연적하가 뚱한 얼굴로 말했다.
“내가 가르쳐 준 무공으로 오봉십걸들과 싸우고 있다면서?”
“그, 그건……. 피치 못해서. 그래도 서로 절제하고 있으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돼.”
“오봉십걸의 적은 내 적이고, 오봉십걸의 친구는 내 친구야. 마교 교주가 죽은 걸 보고도 몰라?”
“미, 미안해. 진안야시에서 빠질게.”
“그 얘기 하려고 온 거야?”
“아니, 방주님과 대행수님이 오봉산의 일로 함께 가 달라고 부탁해서……. 온 거야.”
그러자 연적하가 짜증 가득한 얼굴로 해원상방 상인들을 쏘아보았다.
“이봐요. 아저씨들! 가족들과 저녁 식사 중인데 갑자기 쳐들어와서 그렇게 소리를 지르면 돼요? 안 돼요?”
그러자 도부영 방주가 머리를 숙였다.
“송구합니다! 너무 급해서 그만 눈에 보이는 게 없었습니다!”
“뭐가 그렇게 급한데요?”
도부영 방주는 가슴을 진정시킨 뒤에 빠르게 말했다.
“오봉산에서 저희 쪽 상인 하나가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염광오는 본래 성질이 포악하여 상인들도 그를 피하고 있었습니다. 오봉산에서 그가 패악질을 할 때 상인들이 보고도 나서지 않은 것도 그 때문입니다. 결코 염광오를 돕기 위해 그런 것이 아니었습니다. 남천 대협의 입장에서는 충분히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만, 그건 오해십니다. 오해를 풀기 위해 저와 대행수가 직접 남천 대협을 찾아온 것입니다.”
연적하는 머리보다 감정을 앞세우는 사람이지만, 그렇다고 머리가 나쁜 것은 아니다.
아니 오히려 잔머리에 있어서는 심통과 맞붙어도 지지 않을 정도로 단련된 사람이었다.
“방주와 대행수라고 했죠?”
“예, 제가 방주인 도부영이옵고, 제 옆에 있는 이가 대행수인 양승원입니다.”
“말하는 거 보니 두 사람도 염광오가 그런 못된 사람이라는 거 알고 있었던 모양이네요?”
“예.”
“그렇습니다.”
도부영 방주와 양승원 대행수는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도 염광오의 사람됨에 대해서는 익히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전에 누가 그러더라고요. 누가 못된 짓 하는 걸 알고도 방치하는 건, 그 못된 놈과 한패나 마찬가지라고. 나는 맞는 말 같던데. 어떻게 생각해요?”
도부영 방주가 머리를 숙였다.
“용서해 주십시오! 모두 제가 아랫사람을 관리하지 못한 탓입니다!”
“내가 진짜 궁금해서 그러는데 성질이 포악하다는 걸 알면서 왜 데리고 있었어요? 그 사람 뒷배가 좋았나? 아니면 그에게 따로 받아먹은 게 있어요? 둘 다 아니면 진짜 방주가 병신이라는 건데. 말해 봐요. 왜 그런 놈을 데리고 있었어요?”
연적하의 질문에 도부영 방주는 눈앞이 캄캄했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면 그냥저냥 넘어갈 줄 알았다.
그런데 왜 그런 놈을 데리고 있었냐니!
뭐라고 대답해도 상방 운영에는 치명적이었다.
양승원 대행수는 남천 대협이 핵심을 지적하자 감히 나서지 못하고 눈치만 살폈다.
한숨을 푹푹 쉬던 도부영 방주의 입이 마침내 열렸다.
“염광오는 개봉통판(開封通判, 종 육품) 진자양 대인의 오촌 조카입니다. 하여 지금까지 그가 하는 짓을 묵인하였습니다. 모두 저의 잘못입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듣고 있던 심통이 입바른 소리를 했다.
“결국 뒷배가 있어서 봐줬다는 소리네. 에라 이 화상아!”
“심 노인, 뭘 그렇게 펄펄 뛰어. 심 노인은 더 나쁜 짓도 했으면서.”
연적하의 지적에 심통이 헛기침을 터뜨렸다.
“험, 험, 공자님. 왜 철모르는 소싯적 이야기를 하십니까.”
“어이구! 내가 오봉산에서 심 노인 첨 봤을 때 백발이었어.”
“뭔가 기억에 착오가 있으신가 봅니다. 저 머리 까맣습니다.”
심통이 반로환동 한 듯 까만 제 머리를 쓰다듬어 보였다.
뻔뻔한 심통의 행동에 고개를 젓던 연적하는 다시 해원상방 방주와 대행수에게 시선을 돌렸다.
“뒷배를 믿고 악행을 저지르는 놈이나, 뒷배 눈치 보느라 그걸 묵인한 당신들이나 다른 게 뭐야? 자기들은 아니라고 하지만, 결국 똑같은 사람들이야. 방주와 대행수가 그러니까 상인들도 따라 하는 거잖아. 내가 오봉산에서 해원상방을 악질이라고 했는데, 내 말이 맞았네. 그런데 뭘 오해래?”
연적하의 말에 가슴이 철렁한 도부영 방주와 양승원 대행수는 이전보다 강하게 머리를 처박았다.
“용서해 주십쇼!”
“다시는 못 본 척하지 않겠습니다! 제발 살려 주십쇼!”
두 사람의 이마에서 피가 철철 흘러내리자 남궁연은 지안의 눈을 가리고 방으로 들어갔다.
연적하가 날 선 어조로 말했다.
“누가 죽인대? 한 달간 반성하고 있어. 그럼 오봉산에 연락해서 용서해 주라고 할게. 설마 이 자리에서 말로 털고 갈 생각은 아니겠지?”
충격에 사로잡혀 멍한 얼굴을 하고 있던 도부영 방주는 급히 고개를 저었다.
“아, 아닙니다! 어찌 말로 그토록 중한 죄를 씻을 수가 있겠습니까? 지은 죄를 반성하며 자중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한 달간 상단에서 발생할 손해를 생각하면 눈물이 핑 돌지만, 용서해 준다니 그게 어디인가!
조마조마한 얼굴로 지켜보던 연설주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연적하에게 무시당하면 어쩌나 내심 걱정했는데 다행히 한 달로 마무리될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