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984
984회. 머릿수 맞춰서 한번 놀아 주려고요
과거 천외이선은 금군 사이를 종횡무진으로 다니면서 지휘관들을 제압했다.
그 일은 철저히 비밀에 부쳤으나 의천문 출신 무관들의 입을 통해 칠파이문에 알려졌다.
칠파이문이 천외이선을 두려워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해볼 만하다’고 생각한 것은 그 때문이다.
천하십대고수 셋만 모여도 금군을 천외이선과 같은 방법으로 제압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천하십대고수 다섯이면 천외이선도 능히 제압할 수 있다고 지레짐작한 것이다.
천지상인 역시 연적하의 말을 듣기 전까지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천외이선이 한 손가락만으로 금군을 제압할 수 있다니?
“그게 사실인가?”
“당연하죠. 금군을 제압하는 게 뭐 어려운 일이라고.”
“자네도 그럴 수 있고?”
“어떻게…… 보여 드려요?”
“지금 금군을 제압하겠다는 것인가?”
“하하! 죄없는 금군을 왜 제압해요? 그냥 맛만 보여 드린다는 거죠. 이렇게.”
말과 함께 연적하가 검결지를 눈앞에 세웠다.
순간 달빛이 가리어지고 사위가 어둠에 휩싸였다.
깜짝 놀란 천지상인이 주위를 휘휘 둘러보자, 연적하가 왼손으로 하늘을 가리켜 보였다.
“헉!”
고개를 들어 올리던 천지상인의 입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달빛을 가릴 정도로 거대한 검이 밤하늘 위에 둥둥 떠 있었다.
검신의 길이는 십 리(약 4킬로미터)도 넘어 보였다.
“어때요? 한 손가락으로 이걸 움직이면 금군을 쓸어버릴 수 있겠죠?”
연적하가 장난스럽게 손가락을 빙빙 돌리자 검이 하늘 위에서 빙긍빙글 회전했다.
때아닌 바람이 천지사방을 휩쓸었다.
천지상인의 목울대로 마른침이 ‘꿀꺽!’하고 넘어갔다.
느닷없이 몰아치는 검풍.
저 검은 환술이 아니라 실재하는 검이 분명했다.
“미, 믿겠네. 저 검은 대체 어떻게 된 것인가?”
“천둔검이에요.”
연적하가 손을 털자 검은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환한 달빛에 사위가 다시 밝아졌다.
“천둔검에 저런 묘리도 있었던가?”
“그것은 한 알의 알갱이에 불과하지만 능히 하늘과 땅을 포용할 수 있다고 하잖아요.”
천지상인이 황당한 얼굴을 했다.
천둔검결에 나오는 ‘일과지유 포라천지(一颗只有 包羅天地)’의 구결은 자신도 익히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걸 저런 식으로 응용하는 사람이 있을 줄이야!
“과연! 자네의 천둔검이면 금군은 한 손가락으로 제압할 수도 있겠군. 나는 자네의 말을 믿겠네.”
천지상인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연적하가 천외천의 경지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보면 볼수록 놀라웠다.
잠시 후 천지상인은 올 때처럼 은밀하게 금선상방을 떠났다.
***
팔월 스무닷새.
남직례성.
합비 포공사.
정오 무렵.
호천맹 맹주 무극상인과 무상도제 장무덕, 의천검존 이의정이 나란히 서서 산문을 내려다보았다.
무상도제가 문득 입을 열었다.
“맹주께서는 홀로 검왕을 처리할 수 있겠소?”
“솔직히 모르겠습니다.”
“검존의 생각은 어떻소?”
무상도제가 의천검존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것은 검왕을 초반부터 합공하느냐 마느냐의 질문이었다.
“흐음!”
의천검존의 입에서 침음성이 흘러나왔다.
솔직히 그는 검왕에 대한 합공이 영 내키지 않았다.
이번 일로 세인들이 검왕을 천하십대고수의 으뜸으로 생각하게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극상인이 검왕을 제압하지 못한다면, 결국 자신과 무상도제가 거들어야 한다.
자존심 상하지만 합공 외에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어차피 좋은 소리 듣기는 틀린 것 같으니 빨리 끝냅시다.”
합공으로 끝을 내자는 소리다.
무상도제도 의천검존과 비슷한 심경이므로 고개를 끄덕였다.
“동감이오. 노파심에서 드리는 말씀인데, 검왕에 대한 연민을 가지고 있다면 버리도록 하시오. 이 자리에서 그를 죽이지 못하면 우리가 죽을 테니까.”
“검왕에 대한 연민이라니 농담이 지나치시구려.”
의천검존이 고개를 저었다.
검왕 남궁벽의 무위를 생각하면 그건 지나친 낙관인 까닭이다.
세 사람 사이에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때 산문으로 검왕 남궁벽이 천천히 걸어 들어왔다.
검왕이 안마당까지 들어오자 무상도제와 의천검존이 포위하듯 품자(品字) 형태로 그를 에워쌌다.
기이한 눈으로 그들을 보던 검왕이 무극상인에게 물었다.
“이건 또 무슨 뜻이오?”
“검왕께서 달아나실 때를 대비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무극상인은 교묘하게 대답을 회피했다.
검왕이 기막힌 얼굴로 되물었다.
“달아난다고? 내가?”
“유비무환이라는 말도 있지 않습니까? 그러려니 하십시오.”
“지난번 비무만 해도 이런 일은 없었거늘. 설마 이제 와서 갑자기 합공을 하시겠다?”
무극상인은 대답 대신 검을 뽑았다.
그에 호응하여 무상도제와 의천검존이 각자의 병기를 뽑았다.
뒤이어 무극상인과 무상도제, 그리고 의천검존이 검왕을 향해 바람처럼 달려갔다.
반사적으로 검을 뽑았지만 검왕은 누굴 상대해야 할지 몰라 한순간 갈팡질팡했다.
바로 그때 하늘에서 벼락처럼 세 자루 검이 떨어져 내렸다.
쿠쿠쿵―!
거대한 검이 마치 성벽처럼 달려가던 무극상인과 무상도제, 그리고 의천검존의 앞을 막았다.
“헉!”
“이 무슨!”
“아아!”
세 사람의 입에서 각기 다른 의미의 탄성이 흘러나왔다.
그렇다고 멍하니 바라만 볼 세 사람이 아니다.
무극상인의 검이 거검을 두드렸다.
쾅! 쾅! 콰앙―!
검신을 세 번 후려쳤던 무극상인은 감당하기 어려운 반탄력에 결국 뒤로 물러났다.
뒤이어 무상도제가 도를 휘둘렀다.
한 아름 넘는 붉은 도강이 일직선으로 날아갔다.
그가 최근에 터득한 일낙대수(日落大水)의 수법이다.
쿠쿵―!
묵직한 폭발음과 함께 도강이 터졌다.
그러나 정작 도강에 직격당한 검신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무상도제가 반발력으로 뒤로 세 걸음이나 물러났다.
“으음!”
내부가 진탕됐는지 무상도제의 입에서 가벼운 신음이 흘러나왔다.
의천검존은 잠시 머뭇거렸다.
무극상인과 무상도제가 실패한 것을 보니 영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그렇다고 손 놓고 있을 수도 없는 노릇.
결국 의천검존은 현천팔극검 일 초식 천궁섬을 펼쳤다.
파파팟―.
그의 검 끝에서 번갯불 같은 검강이 쏘아져 나갔다.
쿠쿠쿵―!
결과는 무상도제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검강이 터지면서 그 반탄력으로 의천검존 역시 서너 걸음 뒤로 물러나야 했다.
의천검존이 황망한 눈으로 무극상인과 무상도제를 보았다.
저 검은 남천 연적하의 것이 분명했다.
그가 어떻게 알고 이 자리에 나타났단 말인가!
게다가 세 사람의 공격을 아무렇지도 않게 막아 내다니!
무극상인과 무상도제, 의천검존이 주위를 두리번거릴 때다.
하늘 위에서 한 덩어리 구름이 천천히 떨어져 내렸다.
그제야 연적하를 발견한 무극상인, 무상도제, 의천검존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아! 이 뻔뻔한 노인네들. 설마설마했는데 진짜 셋이서 우리 장인어른을 공격하네? 천하십대고수의 자존심은 어디에 팔아 먹은 거야?”
말과 함께 연적하가 손가락을 까딱거렸다.
스스슥―.
땅에 박혀 있던 구천검령 세 자루가 하늘로 날아올랐다.
구천검령 세 자루는 각각 무극상인, 무상도제, 의천검존의 머리 위에 자리 잡았다.
뒤이어 구천검령에서 가공할 암경이 쏟아져 나왔다.
‘헉!’
‘윽!’
‘으음!’
세 사람의 천하십대고수들은 즉시 내력을 끌어 올려 머리 위에서 떨어져 내리는 태산과 같은 암경에 저항했다.
세 사람의 천하십대고수들이 구천검령과 대치할 때, 연적하는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검왕에게 다가갔다.
“장인어른. 제가 눈치 없게 끼어든 거 아니죠?”
“허허허! 아니다. 네가 아니었으면 나는 이 자리에서 한 줌 고혼이 됐을 게다. 천하십대고수들끼리의 싸움에 합공이라니? 쯧쯧!”
검왕이 한심하다는 얼굴로 혀를 찼다.
연적하가 설명하듯 말했다.
“칠파이문에서 천하십대고수 다섯을 모아 저를 죽이기로 했대요. 혹시 장인어른이 제 편을 들어줄까 봐 장인어른부터 죽이기로 한 거고요.”
“저런 한심한 사람들을 봤나. 그런 헛된 망상에 사로잡혀 천하십대고수의 자존심마저 내버리다니.”
“똥인지 된장인지 꼭 찍어 먹어 봐야 아는 사람들이 있더라고요.”
연적하가 손가락을 까딱이자 세 자루 구천검령이 아래로 뚝 떨어져 내렸다.
콰드드득―.
“크윽!”
세 사람의 천하십대고수들 입에서 신음이 흘러나왔다.
전심전력으로 막고 있다 생각했는데 검은 어느새 그들의 정수리 한 치 위까지 내려와 있었다.
세 사람의 얼굴에서 식은땀이 줄줄 흘러내렸다.
눈으로 뻔히 보면서도 막을 수 없는 검이라니!
그때 돌연 연적하가 손을 흔들었다.
순간 크기가 십여 장(약 30미터)에 달하는 검들이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그제야 세 사람은 어깨를 들썩이며 숨을 몰아 쉬었다.
“허억! 허억! 허억!”
“헉! 헉!”
“하아! 하아!”
헐떡이는 세 노인을 물끄러미 보던 연적하가 물었다.
“장인어른이 나를 도와줄까 봐 미리 손을 쓰기로 했다 들었는데, 맞아요?”
무극상인이 자포자기한 얼굴로 답했다.
“맞소.”
“장인어른. 제가 저 사람들과 싸울 때 돕지 마세요. 아니, 아예 다른 곳에서 놀고 계세요. 아셨죠?”
“그러마. 내가 너를 도울 거라고 생각했다니……. 저들이 너를 몰라도 한참 모르는 모양이다.”
“그러게 말이에요. 갑자기 기분이 나빠지려고 그러네요?”
연적하가 세 사람을 쏘아보았다.
그의 사나운 눈빛에 세 사람은 슬그머니 시선을 돌렸다.
“이봐요. 두 사람 더 불러 모으는 데 얼마나 걸려요?”
호천맹 맹주인 무극상인이 대표로 나섰다.
“원공 선사와 태허 진인이 호천맹에 계시니 전서구를 보내면 늦어도 열흘이면 오실 수 있을 것이오.”
“열흘이나 뭐하게요? 지금 호천맹으로 가면 내일이면 도착하겠네. 장인어른은 남맹에서 쉬고 계세요. 그동안 이 늙은이들 원하는 대로 머릿수 맞춰서 한번 놀아 주려고요.”
“그런 뒤에 저 음험한 자들을 어쩔 셈이냐?”
“머리가 나쁜 게 죽을죄는 아니잖아요? 칠파이문을 한 십 년쯤 봉문시키면 정신 차리겠죠.”
머리가 나쁘다는 건 핑계고, 그래도 한때 동료라고 살심이 생기지 않았다.
검왕의 입꼬리가 위로 올라갔다.
칠파이문이 십 년간 봉문하면 호천맹도 십 년간 유명무실해진다.
남맹의 세를 키워 나가기에 더없이 좋은 기회였다.
잠시 후 연적하가 운종술의 주문을 외우자 눈처럼 하얀 구름이 그의 발아래로 몰려들었다.
“안 올라오고 뭐해요?”
연적하의 채근에 세 사람이 쭈뼛쭈뼛 구름에 올라갔다.
출발에 앞서 연적하가 세 사람을 노려보았다.
“이봐요 호천맹의 자칭 대협객 노인장들. 문파의 이익 앞에서는 협의고, 도덕이고, 다 필요 없죠? 그냥 우리 편이 이기는 게 최고의 선이다 뭐 그런 거예요? 그게 녹림하고 뭐가 다른데? 녹림이 하면 악행이고, 당신들이 하면 그럴 수도 있는 일이야?”
“…….”
세 사람은 답하지 않았다.
이왕 엎어진 물, 세 사람의 머릿속은 ‘어떻게 연적하를 제압할 수 있을까?’에 대한 생각으로 꽉 차 있었다.
네 사람을 태운 구름이 하늘 위로 둥실 떠올랐다.
그러자 세 사람은 거의 동시에 서로를 보았다.
그러고 보니 연적하는 내일 호천맹에 도착할 것처럼 말했다.
합비에서 정주까지 하루 만에 간다고?
운종술이 대단한 술법이라는 건 인정하지만 그게 정말 가능할까?
쐐애액―!
구름이 쏜살처럼 날아가자 ―머리털이 쭈뼛 설 정도로 놀란― 세 사람은 다급하게 서로를 붙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