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989
989회. 쓸 만한 애는 하나 보이던데요?
하남성.
낙양.
맹진현 고성촌.
점심 식사를 마치자 남궁연과 양이화는 지안, 월아, 금아와 함께 마을로 나갔다.
장날이라고 아이들과 함께 구경을 간 것이다.
객청 마루에서 한가하게 차를 마시던 연적하가 눈살을 찌푸렸다.
이윽고 그의 시선이 연무장 쪽을 향했다.
연적하의 경지에 이르면 오감이 발달되어 어지간한 소리는 주의를 집중하지 않아도 잘 들린다.
연가무관의 수련생들이 소윤을 조롱하고 있었다.
“야, 너는 아직도 비룡승천이냐?”
“와아! 진짜 돌머리다. 어떻게 칠 개월 동안 비룡승천의 반 초식도 못 배우냐. 그 머리 나쁜 소칠도 석 달 만에 뗐는데.”
“크큭! 쟤 머리 나빠서 거지들에게도 맞고 다녔대.”
“소윤! 너 어디 가서 연가무관 출신이라고 하지 마라. 쪽팔린다. 알겠냐?”
“이 새끼 대답 안 하지?”
“……어.”
“어? 맞아야 정신 차릴래?”
“…….”
“제대로 대답 안 해? 죽는다?”
“대답해 새끼야!”
수련생들은 윽박지르기만 했지 차마 손을 쓰지는 못했다.
아직은 주위의 눈치를 보는 것이다.
하지만 누군가 때리면 그 뒤로 눈치를 보는 일은 없을 터였다.
객청에 있던 연적하는 어기적어기적 연무장으로 향했다.
연적하가 나타나자 수련생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흩어져 열심히 목검을 휘둘러 댔다.
연적하는 연무장 한편의 의자에 걸터앉았다.
차핫!
핫!
고금제일인인 남천 대협의 눈에 들어 일초반식이라도 가르침을 받으려는 수련생들의 기합 소리가 높아졌다.
뚱한 얼굴로 수련생들을 둘러보던 연적하의 시선이 소윤에게서 멈췄다.
다른 수련생들이 왜 소윤을 놀리는지 알것도 같았다.
소윤은 일단 몸이 따라가질 못했다.
근골이 워낙 허약해 자세가 나오지 않으니 검로를 따라가지도 못하는 것이다.
‘어라?’
소윤을 자세히 보던 연적하가 고개를 갸웃했다.
자신도 오봉산에서 의형제들에게 구천검을 가르쳤었다.
의형제들과 연가무관 수련생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검로를 따라가기에 급급해 자세가 미묘하게 어긋난다는 것이다.
나이 든 의형제들은 몸을 쓰던 버릇 때문에 그랬다.
그런데 연가무관의 어린 수련생들은 체력이 받쳐 주질 않자, 적당히 얼버무리고 다음 동작으로 넘어갔다.
그러다 보니 전체적인 모양새는 비룡승천이지만, 비룡승천의 정수와는 거리가 멀었다.
무당파 오룡궁에서 공진검과 포룡검을 배우던 시절 광해 도사가 해 준 말이 떠올랐다.
―무당파의 본산제자와 속가제자의 차이가 뭔지 아느냐? 같은 검법을 배워도 본산제자는 정수를 취하고, 속가제자는 껍데기만 취한다. 가르치는 내용이 달라서 그런 줄 아느냐? 천만의 말씀. 가르치는 것은 똑같다. 하지만 본산제자들은 손끝과 발끝, 시선이 향하는 방향과, 마음가짐까지 검법의 가르침에 어긋남이 없어야 다음 단계로 넘어간다. 그게 안 되면 다음 초식은 가르치지 않는다. 그런데 속가제자들은? 검로에서 벗어나지만 않으면 다음 단계로 넘어가 준다. 왜냐고? 자기도 그렇게 배웠으니까. 그리고 수련생들이 빨리 다음 단계를 가르쳐 달라고 아우성을 하니까. 대충 형태만 갖추고, 검로를 외웠다 싶으면 익힌 것으로 간주해 주지. 그래서 속가제자들은 영원히 본산제자를 넘어서지 못한다. 너희는 어떤 것을 원하느냐? 더디더라도 정수를 취하고 싶으냐? 빨리 배우고 싶으냐?
연가무관의 수련생들은 연승백에게 배우고 있었다.
그리고 연승백은 다른 무관의 무술 사범들처럼 검로를 우선시해서 속성으로 가르친 것 같았다.
십 대 수련생들이 벌써 이 식인 용무천상을 펼치고 있는 걸 보면 의심의 여지가 없다.
수련생들은 마치 춤추듯 검로를 따라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단체로 그러고 있으니 왠지 멋스럽고 역동적인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저 소윤은 몸이 안 따라가는 부분에서 머뭇거린다.
남들은 대충 비슷하게 넘어가는데 그러지 못했다.
그 머뭇거림의 끝에 소윤이 선택한 것은 원점으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쯧! 저러니 반년 동안 비룡승천의 일 초식도 못 배운다는 말이 나오지.’
똑같은 지점에서 반년이나 뱅뱅 돌고 있으니 바보로 보일 만도 하다.
하지만 고금제일인인 연적하의 눈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보였다.
때마침 연승백이 연무장으로 다시 나왔다.
잠시 자리를 비웠던 모양이다.
수련생들과 함께 있는 연적하를 본 연승백이 반색을 했다.
“어쩐 일이냐?”
“기합 소리가 들리기에 와 봤어요. 그런데 뭐 좀 물어봐도 돼요?”
“어, 뭔데?”
“소윤이 말이에요. 비룡승천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가르쳤어요?”
“그야 당연하지. 그런데 검술에는 재능이 없는지 많이 느려.”
“가르치기는 다 가르친 거죠?”
“그렇지. 수련생들을 똑같이 지도하고 있으니까. 이 식인 용무천상까지 다 익힌 애들도 수두룩해. 특히 저기 맨 앞에 있는 녀석은 천재야. 형도 나도 저 녀석에게 거는 기대가 커. 네가 보기에는 어때? 쓸 만해 보여?”
연적하가 맨 앞에 있는 소년을 힐끔 보았다.
검로를 따라 열심히 목검을 휘두르고 있지만 정수와는 거리가 멀었다.
광해 도사가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알 것 같았다.
“잘 키우면 무관의 사범까지는 될 수 있겠네요.”
‘무관 사범’이라는 말에 연승백의 얼굴이 우거지상이 됐다.
연적하는 자리에서 일어나 어슬렁어슬렁 연무장을 벗어났다.
장구경을 간 남궁연과 양이화, 지안, 월아, 금아는 해거름 무렵이 되어서야 연가무관으로 돌아왔다.
하루 종일 돌아다녀 지쳤는지 지안은 저녁 식사도 하지 않고 소리 없이 잠들었다.
재잘대던 지안이 빠진 저녁 식사 자리는 조용했다.
양이화가 허전하다고 하자 사람들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저녁 식사 뒤에 연무백 일가와 연적하, 남궁연은 따로 차를 마셨다.
문득 연무백이 연적하에게 물었다.
“오늘 연무장에서 수련생들을 봤다지?”
“예.”
“우금이를 보고 사범까지 될 것 같다고 했다면서?”
“그 녀석 이름이 우금이에요?”
“그래, 승백이와 내가 눈여겨보고 있는 녀석이다. 승백이는 사범까지 될 거라는 말에 충격을 받은 모양이더라. 어디가 부족해 보이더냐?”
연승백도 궁금하다는 눈으로 연적하를 빤히 보았다.
연적하는 광해 도사에게 들은 이야기를 꺼냈다.
“……우금이라는 녀석은 구천검을 배울 때 나쁜 버릇이 들었어요. 그 때문에 정수와 거리가 멀어진 거예요. 잘못 든 버릇을 고치는 게 새로 배우는 것보다 힘들다고 하더라고요.”
연무백과 연승백은 한동안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그것까지는 생각하지 못한 때문이다.
연승백이 변명하듯 말했다.
“무관에서는 칠파이문처럼 기초부터 하나하나 가르치질 못해. 그렇게 하면 지겹다고 다른 곳으로 옮겨 버리거든. 그래서 크게 잘못되지 않으면 다음 단계로 넘어가야 돼.”
“알아요. 그래서 무관 출신의 절정고수를 보기가 힘든 거예요.”
“아! 그래도 무관 사범은 좀 너무했다. 큰형처럼 성급(省級) 고수가 나오나 기대했는데.”
“그래도 쓸 만한 애는 하나 보이던데요?”
“그래? 쓸 만하면 어느 정도 수준까지 가능한 건데?”
“십 년쯤 지나면 강호에서 후기지수 소리를 들을 정도?”
“후기지수?”
“정말이냐? 그런 자질을 가진 애가 우리 연가무관에 있다고?”
얼마나 놀랐는지 연무백이 훅 치고 들어왔다.
칠파이문이나 무림세가의 제자가 아니고서는 후기지수 소리를 듣기 어려운 까닭이다.
“있더라고요? 석경장에 데려가고도 싶은데, 형수님이 아끼는 아이라고 해서 포기하려고요.”
양이화가 고개를 갸웃했다.
소윤 말고 딱히 떠오르는 아이가 없어서다.
연무백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소윤이를 두고 하는 말이냐?”
“예.”
그러자 연승백이 대번에 실망한 얼굴로 말했다.
“에이, 소윤이는 아니지. 형수를 위해서 그러는 모양인데……. 솔직히 소윤이보다는 우금이가 낫다.”
하지만 연무백은 조금 달랐다.
무엇보다 연적하가 거짓말할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소윤이의 어떤 점이 그렇게 마음에 들더냐?”
“잘못된 버릇이 없어요. 그 애가 비룡승천을 익히지 못하는 건 몸이 못 따라가서예요.”
“그 애가 몸이 허약한 것은 사실이다만……. 그래도 다른 아이들은 잘 따라가지 않느냐?”
“내가 다른 건 몰라도 눈썰미 하나만큼은 진짜 좋거든요.”
그는 거울 속에 들어앉은 소년의 흉내를 내면서 구천검을 익혔다.
그러다 보니 사소한 동작 하나도 흘려버리지 않았다.
“소윤이는 형님들이 보여 준 검술을 똑같이 따라 하려고 해요. 그런데 자기 몸이 안 받쳐 주니까, 딱 할 수 있는 데까지만 하는 거예요. 다른 애들은 대충 비슷한 동작으로 휙휙 넘어가는 거고.”
“하지만 본래 뭔가를 처음 배울 때는 다들 그렇게 하지 않느냐? 처음부터 어찌 그 정수를 알고 거기에 맞추려 한단 말이냐?”
연무백의 말에 연승백이 맞장구를 쳤다.
“맞아. 자꾸 하면서 조금씩 바른 자세를 몸에 익히는 거지. 처음부터 완성된 사람이 어디 있다고!”
연무백과 연승백은 좀처럼 소윤을 인정하려 하지 않았다.
그들이 알고 있는 상식과 너무도 궤를 달리해서다.
보다 못한 남궁연이 한마디 거들었다.
“백인백색(百人百色)이라고 하잖아요. 소윤에게 그런 재능이 있다면 연가무관의 큰 복이 아닌가요? 형님에게도요.”
남궁연이 양이화를 향해 웃어 보였다.
양이화가 얼른 말을 받았다.
“소윤에게 정말 그런 재능이 있으면 좋겠네요. 그런데 우리 연가무관에서 그 아이의 재능을 살려 줄 수 있을까요?”
양이화의 말에 모두의 눈이 연적하를 향했다.
“몸이 약해서 그러는 거니까 몸을 만들어 주면 되지 않을까요? 소림사의 역근경 같은 걸로.”
연무백이 급히 물었다.
“너는 역근경을 알고 있느냐?”
“모르는데요?”
“쩝, 그럼 도로아미타불이구나. 소림사에 부탁을 할 수도 없고…….”
모두가 실망할 때 남궁연이 말했다.
“소림사의 역근경보다 더 좋은 공법을 제가 알아요.”
남궁연은 구주에서 벌모세수(伐毛洗髓)에 관한 공법을 읽은 적이 있다.
읽기만 하면 머릿속에 남으니 실행만 하면 된다.
“영단이 하나 있으면 좋겠는데……. 적하야, 소림사에서 대환단 하나를 얻어 올 수 있겠어?”
“하나면 돼요?”
연적하는 마치 대환단이 자기 것인 양 말했다.
“충분해. 너무 지나쳐도 좋을 게 없어.”
“알았어요. 얼른 얻어 올게요.”
연적하가 벌떡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낙양에서 소림사까지 백 리(약 40킬로미터)가 넘지만, 운종술로는 금방이라 곧 올 것처럼 말한 것이다.
이윽고 남궁연은 양이화에게 고개를 돌렸다.
“형님은 소윤이를 데리고 와 주세요.”
“지금요?”
양이화는 남궁연이 어려운지 쉽게 말을 놓지 못했다.
“네, 적하가 돌아오기 전에 우리도 준비를 해야죠.”
“서방님이 소림사에 다녀오려면…….”
“훗, 적하 성격에 한 식경(약 30분) 정도 걸릴 거예요.”
“그, 그렇게나 빨리요?”
양이화가 반신반의한 눈으로 남궁연을 보았다.
백 리가 넘는 거리를 왕복하는 데 한 식경이라니?
게다가 소림사에서 대환단을 준비하고 있다가 줄 것도 아닌데, 그게 가능할까?
연무백이 웃으며 양이화에게 말했다.
“부인, 적하가 구름을 타고 다닌다는 걸 잊었소? 우리 상식으로 잴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니 소윤이를 데리고 오시오.”
“그, 그럴까요?”
양이화가 얼떨떨한 얼굴로 일어나 나갔다.
잠시 후에 그녀는 소윤을 데리고 객청으로 돌아왔다.
남궁연이 ㅡ안쓰러운 눈으로 소윤을 보고 있는ㅡ 양이화에게 물었다.
“소윤이 이름인가요? 아니면 윤이 이름인가요?”
그러자 양이화가 소윤의 등을 슬쩍 떠밀었다.
“네가 말씀 드려.”
눈을 끔뻑이던 소윤이 자신 없는 얼굴로 답했다.
“저도 몰라요. 그냥 소윤이라는 것만 알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