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rthern Swordsmith RAW novel - Chapter 11
3. 진실.
1.
뜻밖의 상황으로 격전은 중지됐다.
모두가 목계백을 바라봤다.
동시에 죽어버린 청의사내를 보고, 대동보주 명세기를 이어봤다.
이 상황에 얽힌 음모를 모를 수 없기 때문이다.
너무나 명확하다.
청의사내가 대동보주 명세기를 노렸다. 그런데 흑의청년이 나타나서 그 암격을 분쇄했다.
명세기가 돌처럼 경직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죽이지 않았다면 좋았을 텐데, 하긴, 소용없었겠지.”
청의사내의 시신을 응시하던 명세기는 목계백을 향해 뜨거운 시선을 던졌다.
“목숨을 빚졌구나.”
분명히 그렇다.
옆에서 공격해 오는 청의사내의 일격은 피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운악형제와 접전을 벌이던 순간을 노린 암격이다.
알고 피했다고 해도 팔 하나를 버려야 했을 공격, 그것을 목계백이 막았다.
“좋은 수하를 뒀구나, 그 덕에 모가지를 보존했어.”
운악이 갈라진 손목에 제 옷을 찢어 동여매며 차가운 목소리를 던졌다. 명세기와 목계백을 번갈아 바라보는 눈동자에도 시린 냉기가 넘쳤다.
“네놈, 비금동(秘禁同) 안에서 나왔지? 막내를 네놈이 죽인 게로구나?”
목계백은 운악과 시선을 맞추고 고개를 끄덕였다.
“이걸 쓰려던 놈이라면 그랬지.”
허리 뒤로 매달았던 검은 가죽주머니를 목계백은 툭 던졌다.
그 위치가 공교로워 명세기와 오세명과 호일도가 한걸음만 내딛으면 되는 중간이다.
“이게 뭐지?”
파랑검 호일도가 제일 먼저 움직여 가죽주머니를 잡아 열었다.
“독!”
냄새를 맡자마자 독임을 안 호일도는 명세기와 오세명을 응시한 후 다시 독을 살폈다.
조심스럽게 가루를 덜어내 바닥에 뿌려보고 이름을 외쳤다.
“오독문의 칠채화독이다!”
군웅들은 흠칫한 얼굴로 독주머니에 시선을 모았다.
정말로 호일도가 바닥에 덜어낸 독가루가 일곱 가지 빛깔을 내고 있었다.
저런 특성을 가진 독은 오독문의 칠채화독 하나뿐이다.
불속에서 말라죽는 것 같다는 독.
명세기가 운악을 노려보며 이를 갈았다.
“더러운 놈!”
운악은 손목의 고통을 참아내며 냉소를 뿌렸다.
“그게 나에게 할 소리냐? 네놈은 뭐가 다른데? 너나 나나 혁리세가의 칼이었지 않나? 그것들 장단에 놀아나지 않기 위해서 조심하고 경계했건만, 결국은 맞춰 놀아난 꼴이지. 그 힘을 피하지 못해 이런 꼴을 당하는 것이야.”
“닥쳐라!”
“그러고 싶으면 너나 그래라. 난 할 말은 해야겠다.”
“헛소리는 그 목을 자른 후에 듣겠다!”
목을 자른 후에 듣겠다는 건 듣지 않겠다는 말, 명세기는 대호검을 세우고 움직였다. 그러나 그 순간 운악이 은천장주 은발야를 향해 소리쳤다.
“은천장의 장녀는 혁리세가가 죽인 것이다!”
삼살비를 겨우 빼내고 점혈을 하고 주저앉아 있던 은발야, 그의 창백한 얼굴이 번쩍 들렸다.
“무, 무슨 소리냐?”
부들거리며 입을 여는 은발야의 가슴엔 한 가닥 의혹의 그림자가 기억으로 솟구쳤다.
혁리세가란 이름을 들어서다.
그 이름을 큰 딸 은세희의 참변과 한 번도 엮어서 생각해 본적이 없지만, 희미한 예감은 있었다.
삼년 전이다.
큰 딸을 데리고 혁리세가에 갔었다. 태상가주 혁리장천의 칠순이었기 때문이다.
그곳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런데 돌아오는 길에 큰 딸 은세희가 말했었다.
혁리세가의 후계자 혁리검천이 바라보는 눈이 아주 기분나빴다고.
마치 벌레가 온 몸을 더듬는 것 같았다고.
그 일이 있은 후에 딸은 뱃놀이를 나갔다가 참변을 당했다.
비금도의 악적들에게 납치를 당했고, 그러한 배경을 알아냈을 때쯤에 시체로 발견됐다.
장소는 부춘강(富春江)이다.
혁리세가가 있는 항주로 이어지는 강.
창백한 안색으로 눈을 부릅 뜬 은발야에게 운악은 다시 소리쳐 말했다.
“네 딸 은세희는 혁리세가의 독자 혁리검천 놈이 겁간을 하고 죽여서 버린 것이다!”
은발야는 컥, 하는 소릴 내더니 피를 토했다.
심장을 피했지만 폐부를 상한 몸이 충격을 견디지 못했다.
피륙은 점혈했지만 심부는 그러지 못했다.
“혁리, 혁리세가가……”
땅을 짚고 부들거리는 은발야를 보던 명세기는 경악한 눈으로 운악을 돌아봤다.
“그 말이 진실이냐?”
운악은 민대머리를 흉악하게 번들거리며 웃었다.
“크하하하! 진실이냐고? 으하하하하!”
피투성이 다섯째와 첫재, 넷째와 셋째를 옆에 두고 웃는 운악의 모습은 처절했다.
사지에 몰린 그가 벗어나기 위한 방법으로는 전혀 맞지 않는 말이다.
그래서 귀를 열고 운악의 말을 들은 군웅들은 충격에 휩싸였다.
웃음을 그친 운악이 한기 머금은 눈동자로 입을 열었다.
“우리가 아는 진실이 언제는 정말 진실이었느냐? 우리가 진실이라고 믿는 순간에 그것은 이미 진실이 아닌 거다. 조장된 진실이지. 혁리세가와 같이 힘 있는 자들이 만들어내고 용인한 진실. 진정한 진실은 그들밖에 몰라.”
대동보주 명세기는 당황을 삼키고만 있었다.
은천장주의 딸과 관련한 이야기는 전혀 예상도, 상상도 못한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 알았다. 혁리세가가 왜 자신에게 제안을 했는지.
그 이유는 바로 이것이다.
“내가 했다!”
운악은 거칠게 고함치고 뒷말을 이어냈다.
“바로 내가 은천장주의 딸을 납치했단 말이다! 왜 그랬냐고? 혁리세가의 청부를 받았던 거다!”
동요하며 술렁이는 무인들을 향해 운악은 숨겨왔던 진실을 쏟아냈다.
“그 빌어먹을 집안이 나에게 청부를 했단 말이다! 거부 할 수 없는 조건을 제시했다! 난 그걸 받아 들였어! 납치해서 넘겼지! 그게 다야! 그 이후엔 어떻게 됐는지 모른다! 하지만 알았지! 겁간하고 죽여서 버렸다는 걸!”
은발야가 처절한 비명을 질렀다.
“크아아아아!”
피를 토하며 땅에 엎어진 그는 경련하며 몸부림쳤다.
운악은 차가운 눈으로 바라보며 계속 말했다.
“혁리세가는 자신들의 이름을 한 번도 내비치지 않았다. 하지만 난 그들임을 알았지. 모를 수가 없어. 청부를 하러 날 찾아온 자는 해상으로서 이름을 감리호(甘利鎬) 라고 하는 자다. 혁리세가와 거래를 하는 자지. 그자가 혁리세가의 수족임을 모를 만큼 나 운악이 멍청하진 않아.”
명세기는 그 순간 흠칫했다. 자신을 찾아왔던 자도 그자이기 때문이다.
‘감리호!’
운악이 다시 목소리를 높였다.
“명세기! 네놈도 혁리세가의 청부를 받았음을 알고 있다!”
춘추검 오세명과 파랑검 호일도를 비롯한 무인들은 명세기에게 시선을 돌렸다.
“닥쳐라!”
호통으로 반발하는 명세기의 반응을 비웃으며 운악은 내막을 토해냈다.
“나처럼 혁리세가의 개가 찾아왔겠지. 거부 할 수 없는 제안을 했을 거야. 하지만 그 제안은 독이든 독배다. 혁리세가 같은 곳에서 대동보라는 가시를 계속 두고 볼 것이라고 생각하진 않았겠지? 언젠가는 도모해야 할 곳인 거야. 너도 그걸 염려하고 경계했을 테지. 하지만 이번 제안엔 그런 것까지 들어있었을 테지. 비금도와 온주만 일대의 이권을 주고 대동보를 정식으로 인정해 준다는 그런 제안. 어때? 그렇지 않으냐?”
옆에서 본 사람처럼 짚어 말하는 운악의 이야기에 모두가 술렁였다.
“그 더러운 입으로 모함하지 마라!”
명세기는 검을 후리며 거세게 반발했다. 하지만 설득력이 떨어지는 모양새였다. 때문에 오세명과 호일도를 비롯한 무인들은 의혹의 눈을 보냈다. 그 중엔 엎어져서 비통함으로 경련하던 은천장주 은발야도 있었다.
“보, 보주, 저 말이, 저놈의 말이 정말이오?”
창백한 얼굴로 피 흘리며 엎어져 물어보는 은발야, 그의 눈을 명세기는 마주 보지 못했다.
“모, 모함이오! 저놈들이 궁지에 몰리자 더러운 흉계를 낸 것이오!”
운악은 코웃음 쳤다.
“흥, 난 더러운 놈이 맞지만 명세기 너는 치졸한 놈이다. 너나 나나 다를 게 없어.”
명세기는 다시 고함쳤다.
“닥쳐라! 이개도적놈아!”
그 순간 은발야가 엎어졌던 몸을 일으켰다.
제 입으로 흘려낸 피로 앞섶을 다 적신 모습으로, 부들거리며 일어나더니 명세기를 보며 말했다.
“무엇이 진실인지 따져봅시다. 운악 저놈을 잡아 비금도를 나가서, 혁리세가를 찾아가 물어봅시다. 강호의 협사들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도움을 청합시다. 무림명숙들과 함께 라면 혁리세가도 우릴 피하지 못할 겁니다.”
은발야의 목소리는 단 한 번의 떨림도 없었다.
눈동자도 그랬다.
삼살비를 맞았던 가슴의 부상도, 피토하며 엎어졌던 심부의 통한도, 이순간은 모두 잊은 듯했다.
지금만 보면 아무 부상도 입지 않은 사람 같다.
그럴 수 있는 이유가, 저 몸을 지탱하는 의지가 무엇인지 모두들 알고 있다.
은발야는 걸음을 내디뎠다. 하지만 역시 휘청했다.
그 걸음으로 명세기에게 다가가며 말했다.
“그렇게 합시다. 진실이 무엇인지 알아봅시다.”
다가오는 것 자체가 압박인 은발야의 걸음을 바라보며 명세기는 눈동자를 흔들었다.
“장주, 마땅히 그래야 할 것이나……”
그때까지 지켜보던 목계백이 명세기의 옆으로 붙어서 작게 말했다.
“운악을 살려서 거래를 하십시오.”
명세기가 그 말에 든 뜻을 깨닫고 눈을 치켜뜰 때였다.
오인의 무사가 벼락처럼 움직였다.
은천장 초빙 고수들, 춘추검 오세명과 파랑검 호일도를 제외하면 명색만 고수인 무사들, 그들 사이에서 비호처럼 튀어나온 다섯 그림자들.
그들이 운악과 칠주해룡의 남은 형제들을 공격했다.
그 광경은 너무 놀라웠다.
“크악!”
칠주해룡의 첫째가 제일먼저 비명을 질렀다. 황의를 입은 자의 일도에 어깨가 잘려나갔다.
피를 뿜으며 비명을 지르는 그의 목에 두 번째 칼이 지나갔다.
“으악!”
거의 동시에 다섯째의 처절한 비명이 터졌다. 회의를 입은 자의 박도에 두 다리가 잘렸다. 땅바닥으로 허물어진 그의 정수리에 칼이 또 박혔다.
모두가 경악해 하는 그 순간 목계백은 움직였다.
빛바랜 청의를 입은 또 다른 두 사내가 칠주해룡의 셋째와 넷째를 공격하는 걸 보며, 자신처럼 흑의를 입은 남은 한명이 운악에게 섬전 같은 검을 찌르는 걸 후려쳤다.
오척장도에서 칼바람이 일었다.
무게가 스물다섯근에 달하는 중병, 그것을 양손으로 잡은 목계백의 일도는 흑의사내의 등을 갈랐다.
그 순간 흑의사내의 검은 운악의 팔 방어를 파고 들어가 심장을 노렸다.
경악하는 운악이 검을 맞을 찰나다.
흑의사내는 거짓처럼 돌아서며 검을 후렸다.
등판을 가르려던 장도는 검과 부딪쳤다.
아니 내리쳤다.
그 강력한 일격은 흑의사내를 놀라게 했다. 누구라도 그러하지 않을 수 없는 일격.
강력한 일격에 이어지는 이격을 목계백은 후렸다.
분섬보과 함께 폭발해 나간 목계백의 이격은 흑의사내의 어깨를 갈랐다.
“크악!”
검잡은 팔과 어깨가 떨어져 나간 흑의사내, 그의 뒤에서 운악이 육장을 뻗어냈다.
“죽어라 개자식아!”
펑 소리와 함께 흑의사내는 피를 토하며 몸이 떴다.
마주 선 목계백을 향해 한자가량 떠올랐던 몸은 바닥에 엎어졌다.
최후경련은 짧고 강렬했다.
목계백이 운악을 응시하는 순간 명세기와 호일도가 청의 습격자 하나와 검을 섞고 있었다.
다른 놈도 춘추검 오세명과 어우러졌다.
그런 그들의 발치에는 칠주해룡의 셋째와 넷째가 갈라진 모습으로 버르적거리고 있었다.
아우들의 최후를 본 운악이 이를 갈았다.
“개같은!”
목계백은 운악에게로 성큼 다가가며 물었다.
“목응신라의 행방을 아느냐?”
순간 운악은 경직했다.
“모, 목응?”
주춤 물러난 운악은 긴장과 당혹, 경계와 놀람의 눈으로 목계백에게 되물었다.
“너, 너는 누구냐?”
피 묻은 오척장도를 휙 뿌린 목계백은 칼날 같은 눈동자를 곤두세웠다.
“살고 싶으면 말해.”
“너, 너는 북천의?”
“대답해. 알아 몰라?”
계속 뒷걸음질 하며 운악은 대답했다.
“나, 나는 목응신라의 행방 같은 건 모른다. 그를 본 적도 없어.”
대답한 운악은 자신이 상대의 기세에 눌러 뒷걸음질 하고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
그게 아무도 모르는 자신형제들의 비밀을 상대가 물어왔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한순간의 공격으로 아우들을 참살한 습격자들, 그 중의 한명을 단 두 번의 칼부림으로 베어버린 이 자의 기세 때문이다.
“너, 너는 누구냐?”
운악의 물음에 대답대신 목계백은 다른 말을 던졌다.
“살고 싶으면 알아서 판단해라.”
목계백이 비켜난 자리, 그 뒤에서 은발야가 휘청거리며 다가오고 있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