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rthern Swordsmith RAW novel - Chapter 142
3.
해가 정오를 지나 서편으로 눈에 띄게 이동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를 가늠하며 종패는 말을 달렸다. 하지만 서두르지 않았다.
맹호를 추적해 간 장문의 일은 그의 일이다.
그가 시작했고 끝낼 일이다.
그 일에 끼어들 필요는 없다. 결과가 어떻게 날지 모르나 짐작은 간다.
‘맹호를 그렇게 쉽게 도모할 순 없을 것이야.’
맹호의 얼굴을 떠올리며 가슴속의 무거움을 어루만지던 종패는 불현 듯 이를 물었다.
‘상관없는 민가의 사람들을 그렇게 죽이다니.’
장문이 의원 등을 죽이던 일을 생각하면 분노가 치솟는다.
이젠 아주 대놓고 그런 짓을 벌이고 있다.
해남파의 포한이 얼마나 깊고 큰지 짐작 못 하는 바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그런 행동이 정당화되진 않는다.
녹림도 그런 무차별의 살육은 저지르지 않는다.
물론 과거에는 그랬다. 그래서 무자비한 산적들이라는 손가락질을 받아야 했다.
그런 수치 때문에 더욱 기를 쓰고 살인방화와 약탈을 저질렀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젠 아니다. 그러한 오욕의 구렁텅이에서 벗어나기 위해 기율을 세웠다.
그것이 이뤄진 녹림이다. 앞으로 나가야 할 방향을 잡고 꿈을 키우던 녹림이다. 그래서 방학천의 등장에 손을 잡았고 해남파와 형제가 됐다.
그런데 이건 뭔가? 시간이 지날수록 보이는 해남파의 저 횡포는 무엇인가? 저러한 행위들은 사마외도와 다를 바가 무엇인가? 그냥 흑도가 아닌가?
어금니에 힘을 준 채 말을 달리던 종패는 전방에서 올라오는 신호폭죽을 봤다.
‘저건? 그들이다. 천군의 지원병력이 도착했구나.’
방향은 관도에서 우측으로 벗어난 산이다. 그곳을 향해 종패는 말을 달렸다.
가슴이 뛰었다. 맹호를 추적해 간 장문이 어떤 결과를 냈는지 궁금해서다. 천군의 지원병력까지 도착했다면 맹호로서는 헤어나기 어렵다.
뒤따르는 지군병력들을 개의치 않은 채 종패는 홀로 말을 질주했다.
그 달림은 확산이라는 이름을 가진 산의 초입에 이르렀다.
양쪽으로 둔덕이 솟아 성문과도 같은 형상의 그곳엔 천군지원병력이 있었다.
기마대로 이뤄진 일천의 병력이다. 범 같은 눈빛을 뿌리는 그들에게 신분을 밝혔다.
길을 여는 천군 기마대의 사이를 뚫고 들어간 종패는 협곡길의 주검들을 목격했다.
완만한 경사로 난 양쪽 협곡 위에서 화살 공격을 퍼부은 결과다.
지친 말을 노렸다. 말이 쓰러지면서 달리던 진형이 무너지고 동료끼리 충돌했다.
쓰러진 자들에게 다시 화살이 날아와 숨통을 끊었다.
‘역시 맹호로군.’
눈썹을 치켜뜬 채 종패는 안으로 들어갔다.
불길이 보였다. 확 트인 공간 저편으로, 오르막비탈이 시작되는 곳에서 오르는 불길이다.
마치 접근을 막은 것 같다. 아니 그것이다.
불길 속에 보이는 무더기를 보니 땔감용 장작들이다.
그곳에 이르기까지 넓은 분지의 바닥이 거의 타서 새카맣다.
초지가 타 버린 흔적이다.
비탈 위에 남아 있는 건축물들을 보고 산 안의 형세를 보니 마장이다.
곳곳에 흔적들이 보인다. 이곳에서 맹호는 농성전을 벌인 거다.
하지만 오래 버티지 않았다. 계획을 바꿔 빠져나갔다.
그걸 말해주는 증거는 오르막을 올라가 정상에서 서성대는 해남파다.
‘완전히 빠져나갔구나.’
이상한 쾌감으로 종패는 희열을 씹었다.
맹호는 적이거늘, 그가 위험을 헤치고 도주했다는 것이 기분을 좋게 만들었다. 여기 오기 전까지 우울하고 답답하던 것들이 일거에 날아갔다.
장문의 일그러진 얼굴이 눈앞에 선연했다. 맹호를 잡기 위해 전력 질주한 그는 닭 쫓던 개가 됐다.
‘어떻게 빠져나간 건가? 참으로 대단한 자다.’
감탄이 일었다.
장문이 데리고 간 추적대는 이천의 기마병력이다.
지군이 보유한 기마전력 삼분지 이의 숫자다. 거기에 흑혈승들 서른 명을 대동했다. 그 형세에 더해 천군지원병력이 일천 기마대로 합세했다.
그런데도 우롱하듯이 빠져나간 거다. 천군지원이 도착하기 전이 분명 하다.
‘그렇다면 아직 멀리 가진 못했다는 것.’
쾌감을 털어내고 다시 미간을 찌푸리던 종패는 그들을 봤다.
불이 번져 나오다 멈춘 초지 위에 선 자들이다.
해남파무사들이다.
그들 중에 한 사람을 알아봤다. 장문과 같은 일대제자의 한 명이다. 지원군의 수령이다.
‘호인량, 네가 천군지원기마대 일천을 데리고 왔구나.’
일천의 기마대를 지원병력으로 보낸 것은 대단한 일이다.
지군에도 기마병력을 꾸릴 수 있는 숫자는 삼천 정도다. 천군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런데 일천을 보냈다는 건, 부관승의 척살을 매우 중요하게 여겼다는 거다.
또한 백혈맹 우군의 지원병력이 올 것을 대비한 대응의 수다.
그런데 백혈맹 우군의 지원은 없었다.
그런 흔적은 어디에도 없다.
집단으로 전투를 벌였다면 사상자들이 즐비하고 이런 결과가 나지 않았을 터다. 적어도 지금까지 교전이 진행 중이거나 대치상태가 벌어졌을 것이다.
그런데 그게 아니다. 맹호와 혹호단만 없다. 그들만 도주한 거다.
‘접전은?’
의아한 눈길을 던지던 종패는 그때야 봤다.
해남파 인물들이 둘러싸고 있어서 보이지 않았던 초지의 시체들이다.
검은 승복을 입은 그들이 누구인지 물어볼 필요가 없다.
조각나서 흩어진 그들의 시신은 수십 구다.
‘맹호가 죽였구나! 그럼 장문은?’
경악한 눈을 치뜬 종패가 다가가자 그가 드디어 아는 체를 했다.
“녹림신군을 뵙겠습니다.”
포권하며 예를 취하는 호인량에게 마주 예를 취한 종패는 다급히 물었다.
“어찌 된 상황이오?”
그렇게 묻던 종패는 호인량의 바로 뒤에 있는 시신을 봤다.
세 동강이 난 시체다.
안면이 박살이 난 모습이라 바로 알아볼 수 없었지만, 복장과 눈에 익은 체구와 흔적들로 판별했다. 다름 아닌 해남폭풍검 장문이다.
‘이자까지 죽였다!’
장문의 시신을 종패가 알아봤다는 걸 호인량을 알아챘다. 그래선지 눈동자에 마주 보기 힘든 살기가 이글거렸다.
“맹호란 놈에게 사형이 희생되셨습니다. 놈과 흑호단이 이곳에서 흑혈승들을 모두 베고 산을 넘어 도주했습니다. 포위했던 추적대와 부딪쳤지만 포위망을 뚫고 달아났습니다. 추적대의 말을 뺏어 타고 도망간 겁니다.”
호인량이 말하는 소릴 들으면서도 종패는 충격을 다스리느라 귀가 먹먹했다.
장문을 세 동강으로 만들고 흑혈승 서른을 베고 맹호를 이곳을 벗어났다.
그 과정에서 흑호단의 희생은 없었던 거다.
그들의 시신은 한 구도 보이지 않는다.
그랬다면 호인량이 시체라도 그냥 두지 않았을 것이다.
‘위기를 벗어나는 능력이 엄청난 자로구나.’
한눈에 모든 것이 파악되고 보였다.
맹호는 일부러 이곳으로 들어왔다. 이쪽 형편을 모를 테니 부관승이 준 정보를 토대로 행동했을 터다. 마장으로 사용하던 이곳에서 농성을 계획했다.
백혈맹 우군의 지원을 받으려는 의도였다. 하지만 그게 틀어졌다.
바로 계획을 바꿔 이곳을 벗어났다.
그 과정에서 화공을 비롯해 주변의 모든 것을 이용했다.
이런 건 생각만으로 되지 않는 거다. 경험으로부터 우러나와야 하는 거다.
그래서 더욱 놀랍다. 맹호는 젊다. 서른도 안된 자다. 본 바로는 이십대 초중반이다.
그런 자가 도대체 어떠한 경험을 했기에 이런 결과를 만들어 낸단 말인가?
호인량의 살기에 찬 목소리가 상념을 깨웠다.
“도주한 지 얼마 되지 않습니다. 따라잡을 수 있습니다. 놈들이 향하는 목적지도 압니다. 여남에 숨겨둔 백혈맹 우군의 별기군 진영입니다. 그곳으로 진군해서 놈들을 쓸어버릴 겁니다. 지군의 진로는 이제 그곳입니다.”
교묘한 언사다. 이후 상황을 알려주는 것 같지만 결정이다.
지군을 끌고 여남으로 가겠다는 거다.
그곳에 백혈맹 우군의 별기군이 있다면 공격하는 것이 당연하겠지만, 장문도 없는 상황에 지군을 이끄는 것은 당연히 종패의 몫이다.
그런데 이렇게 말하는 것은 지휘권의 행사와 같다.
종패는 호인량을 말없이 응시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히 그래야겠지요.”
호인량은 바로 돌아서며 큰소리로 명령을 내렸다.
“출발한다! 목표는 이곳에서 도주한 혹호단이다! 놈들의 가는 곳은 여남이다! 백혈맹 우군의 별기군진영이다! 지군과 합세해 놈들을 쓸어버린다!”
함성을 지르는 추적대와 천군지원대의 기세를 바라보며 종패는 다른 생각을 했다.
‘너희는 백핼맹 내에 끈을 가지고 있구나.’
이젠 확신한다. 좌군의 집결지를 찾아 공격을 감행했을 때도 느낀 것이지만, 이제는 확신한다.
여남에 별기군이 있다는 정보를 지금 호인량이 말했다.
그건 백혈맹의 기밀일 터다. 그걸 호인량이 안다는 것은 상대에게서 기밀이 넘어왔다는 소리다.
과연 그 출처가 누구일지 궁금하다.
‘물이 새는 걸 백혈맹은 알고 있는가?’
지그시 어금니에 힘을 주는 종패의 귀에 호인량의 외침이 다시 파고 들었다.
“천군기마대는 나와 같이 선두로 나간다!”
말에 올라탄 호인량과 그의 측근들이 말을 질주해 산을 빠져나갔다. 그 뒤에서 마장의 꺼져가는 불길을 다시 돌아본 종패는 말에 올라 중얼거렸다.
“이번엔 뭘 노리는 건가? 여남으로 간다는 건 무슨 의미지?”
맹호의 의도를 알 것도 같고 모를 것도 같았다.
그는 여남의 별기군에게 갔다.
당연히 지군과 천군의 지원병력들이 추적해 올 것을 알면서도 간 거다.
여남의 별기군 병력이 얼마나 될지 모르지만, 그들도 위험해진다.
“그래선가? 그걸 바라는 건가?”
허공에 중얼거림을 다시 던진 종패는 말머리를 돌리고 배를 찼다. 그 재촉에 울음을 토한 말은 앞선 자들이 빠져나간 길을 무섭게 달려갔다.
* * *
숙압호(宿鴨湖)에 다다르자 해가 완연히 기울었다.
확산으로부터 이곳까지의 거리는 지척이라고 까진 할 수 없지만 멀지 않다.
숙압호의 남쪽에 닿았으니 이제 여남이다.
별기군의 진영은 호수 북쪽 대유장(大劉莊)이라 했다.
그곳까지는 반 각도 안 걸릴 거리다. 이젠 서두를 필요 없다.
목계백이 속도를 늦추자 태웅을 비롯한 흑호단 전부가 보조를 맞췄다.
태웅과 같이 말을 탄 부관승은 떨어지지 않게 몸을 동여맨 면포의 압박 때문인지 얼굴을 잔뜩 찡그렸다. 하지만 상황이 상황인지라 작은 신음도 내지 않았다. 그게 좌군총사로서의 자존심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그랬다.
“별기군의 병력이 정확히 얼마나 됩니까?”
갑자기 목계백이 질문을 던지자 부관승은 감았던 눈을 떴다.
“정확히는 모르지만…… 최소한 삼대 정도의 병력이지 않을까 싶은데……”
“그렇다면 삼천 정도로군요.”
목계백의 표정을 힘겨운 눈으로 바라보던 부관승은 갑자기 미간을 뒤틀었다. 그게 부상의 고통 때문이 아니라는 건 이어나오는 말로 알았다.
“맹호, 그대의 의도는 무엇인가?”
힘주어 나온 부관승의 목소리에 목계백은 고개를 돌렸다. 나란히 속보로 전진하는 말 등의 태웅, 그 굳건한 등에 매달린 것 같은 부관승의 파리한 얼굴에 한 가닥 의혹과 분노가 곤두섰다. 그 이유를 알기에 대답했다.
“의도야 한가지 아니겠습니까? 혈천의 추적으로부터 구명도생하는 거지요.”
부관승은 더욱 미간을 찌푸리며 물음을 던졌다.
“그게 다라고? 지금 우리가 이동하는 행적을 좇아 혈천이 오는 게 아닌가? 그건 결국 우리가 별기군에게 위험을 몰고 가는 셈이지 않나?”
“그것까진 몰랐습니다만, 말씀을 듣고 보니 그렇기도 하군요.”
“몰랐다고?”
“알았어도 지금 다른 무슨 수가 있겠습니까? 우리에게 다른 수단이 있습니까? 등 뒤에 혈천의 칼이 임박했는데 기다리다 맞아야 합니까? 아니면 도움을 청해야 합니까? 여남에 아군이 있는 걸 알았으니 피해가야 합니까? 그들에게 위험이 닥칠 것을 염려해서요? 우리의 위험은 왜 아무도 도와주지 않았을까요? 총사의 전서구는 도대체 어떻게 된 걸까요?”
즉답을 못 내는 부관승에게 목계백은 표정없는 얼굴로 말했다.
“무엇을 짐작하셨는지 모르겠지만, 신양을 떠날 때부터 정해진 우리의 행로였습니다. 그 전후 사정과 만들어질 결과는 모르셨을 리가 없습니다.”
표정없는 얼굴이지만 목계백의 눈동자는 시린 빛을 냈다.
“여태까지 입을 다물고 계시다가 이제 그런 의문을 제기하시는 이유를 짐작은 합니다만, 그런다고 해서 마음속의 분노나 죄책감이 사라지지 않습니다. 누구에게 향하는 분노와 죄책감인지 명확히 하는 것이 나을 겁니다.”
부관승은 다시 눈을 감고 입을 다물었다.
‘나는 이제 무엇을 어찌해야 하는가?’
심중에 다스리기 힘든 분노와 슬픔과 비통과 격정이 해일처럼 넘실거렸다. 태풍이 불고 있다. 그 거센 힘에 정신이 무너져 버릴 것만 같다.
버림받아서다. 좌군총사인 자신을 백혈맹이 버렸다. 구원요청이 묵살됐다.
그게 누구의 결정이고 어느 선에서 이뤄진 것인지를 모른다.
무당은 당연히 모르고 있을 터다.
제갈세가가 혈천과 내통하고 있다는 의혹까지 알린 전서다.
그게 묵살 된 이유는 그걸 알고 있는 자가 그랬다는 방증이다.
그건 우군 내에도 제갈세가와 같은 세력이 있다는 말이 된다.
누구인지 모르지만 우군의 수뇌부에 있다. 제갈세가와 선이 닿아 있다.
그런 인물이 전서구를 가로채서 없앴다.
어쩌면, 우군총사 유위명이 그랬을 수도 있다.
‘나를 없애고 실질적인 백혈맹의 대총사가 되려 했다면……’
모든 가능성이 있다. 어찌 됐든 이 결과는 참담하다.
더욱 참담한 것은 흑호단과 맹호에게 구함 받았다는 사실이다.
없애려 했던 이들로부터 구해진 목숨을 지금도 맡기고 있다. 그러나 이 상황이 감사하지만은 않다.
이들은 노리는 바가 있다. 그래서 자신을 구해 이렇게 보호하고 있는 거다.
‘별기군으로 향하는 이유와 같겠지.’
혈천을 꼬리에 달고 별기군에게 가는 이유는 불을 보듯 뻔하다.
내도록 알고 있었으면서도 모르는 척하다가 입 밖에 낸 이유는 최후의 자존심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그걸 맹호는 냉소했다. 저자는 정말 무서운 자다.
‘태무와 태원사질은……’
털어내려 해도 자꾸만 윤곽이 뚜렷해지는 그들의 안위, 그것을 이제는 받아들여야 할지 모른다.
그들은 맹호에게 죽었다. 저자를 죽이러 갔는데 저자만 돌아봤다.
그들이 멀쩡하게 나타나리라 기대하는 건 부질없다.
‘장문을 죽이고 흑혈승들을 도륙한 자.’
맹호는 그런 자다. 그 광경을 지켜봤다.
불길 너머에서 어른대던 맹호의 칼질, 그것에 다 죽어 넘어갔다.
무섭고 두려운 자, 그자의 손에 잡혀 있다.
그렇다. 이건 잡혀 있는 거다. 맹호의 목적을 위해 사용될 수단이다.
부관승이 이를 악무는 그때, 뒤로 처졌던 흑호단원들이 말을 달려왔다.
“혈천이 닥쳤습니다!”
드디어 추적은 등 뒤에까지 닿은 형국이다. 부러 시간을 지체하던 목계백은 즉시 외쳤다.
“대유장으로 전력질주한다!”
목계백과 흑호단은 별기군의 진영을 향해 다시 달렸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