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rthern Swordsmith RAW novel - Chapter 147
4.
등봉현 소림사에 도착하자 해는 힘차게 올라가기 시작했다.
전갈을 받은 터라 소림사의 의승들이 친히 마중 나와 부관승의 마차를 인계받았다.
그들이 의생각으로 사라지는 걸 보며 목계백과 흑호단은 접객당으로 인도받았다. 인원이 백 명이나 됐지만 소림접객당은 머물기에 충분했다.
“이거 새로 지은 것 같은데?”
하대구가 접객당의 기둥을 보고 말하자 조승이 동의하며 대꾸했다.
“혈천의 침공 당시에 당한 걸 거야. 들어오면서 봤지만 곳곳에 흔적이 있더라.”
“그렇지? 복구가 다 안됐지? 그래서 우리를 이리로 곧장 데려온 거지?”
“맞아. 소림방장에게 인사도 시키지 않잖아? 하다못해 그 밑의 다른 인물이라도 얼굴을 보여야 예의가 아니겠냐? 그런데 좌군총사만 딱 받아가잖아?”
접객당 안에 들어 엉덩이를 붙인 목계백이 미소 품은 얼굴로 입을 열었다.
“소림사에게 우리는 반가운 손님이 아니다.”
조승과 하대구는 고개를 끄덕였다.
항주에서 소림과 무당이 당한 일을 생각하면 당연한 반응이라고 생각해서다.
광인대사와 광법대사, 십팔나한이 항주에 왔다가 죽었다.
방장 광현대사도 왔다가 곤욕을 치렀다.
그래서 항주무림맹에 대한 감정이 좋지 않음을 안다. 어찌 보면 치졸하다.
“잡생각들은 털어버리고 이제 쉬자. 여기선 그래도 된다.”
그렇게 말하고 목계백은 벌렁 드러누워 버렸다. 그걸 본 태웅도 피곤한 어깨를 주무르더니 곁에 누웠다. 조승과 하대구도 에라 모르겠다는 얼굴로 누웠고, 흑호단 일백이 전부 누웠다. 정말 오랜만의 휴식이다.
금세 누군가의 코 고는 소리가 들리는 가운데 태웅이 목계백에게 물었다.
“좌군 총사의 안전은 괜찮겠습니까?”
“걱정하지 마라. 여긴 소림사다. 혈천이 침공했었지만 끝내 도모하지 못하고 물러간 곳이다. 숨은 고수들이 모래알처럼 많은 곳이 이곳이다.”
“소림이 지킨다는 말씀입니다만, 우군 내에도 내통세력이 있는 걸로 확신 되는 마당이 아닙니까? 그들이 무리해서라도 암살을 도모한다면……”
“가능성이 있지. 그들에게 부관승은 생각지도 못한 재앙이니까. 눈 앞에 나타났으니 발등에 불이 떨어졌지. 하지만 더 이상은 무리하지 않을 걸로 본다. 그들이 취할 방법이라면 부관승의 패주를 이용한 모함이겠지.”
“좌군총사가 패배의 책임을 돌리기 위해 거짓을 꾸미는 걸로 몰아간다는 말씀입니까?”
“누구도 결정적인 증거는 없으니까. 말하기 나름이다.”
듣고 있던 조승이 끼어들었다.
“그게 먹히겠습니까?”
“먹히고 안 먹히고는 문제가 아니야. 이 형세에서 더는 후퇴가 없어야 한다는 백혈맹의 상황이 문제지.”
이번엔 하대구가 입을 열었다.
“주장과 설전으로만 끝날 것이라고 보시는 거로군요?”
“그렇게 될 수밖에 없다. 부관승과 우리는 좌군의 정보를 누설한 자가 제갈세가라고 확신하고 있다. 뭐, 증거가 없으니 추정이라고 해야겠군.”
두 손을 모아 머리 뒤에 받치고 천장을 보며 목계백은 말을 이어냈다.
“어쨌든 우리는 그들을 지목하고 있지. 부관승은 그걸 말할 거다. 당연히 제갈세가는 부인하고 화를 내겠지. 패장의 더러운 모함이라고 소리칠 거다. 무당에서도 달려올 것이고, 당연히 양측의 설전이 소란을 일으키겠지. 하지만 결론이 나진 않을 거다. 만일 제갈세가가 백혈맹에서 이탈해 나간다면 세력에 균열이 생긴다. 제갈세가에 동조하는 다른 곳이 또 이탈할 수도 있지. 그걸 막기 위해서라도 중재와 화해가 이뤄질 거다.”
태웅이 결론을 말했다.
“문제를 덮는 봉합이로군요.”
조승이 상체를 들고 목계백을 향해 물었다.
“하지만 이게 이대로 덮을 문제가 아니지 않습니까? 제갈세가와 우군 내의 또 다른 세력이 혈천과 내통하고 있다면, 결국 백혈맹의 목에 비수를 들이대고 있는 마당인데, 그것을 덮는 것으로 끝낸다는 건 말이 안 됩니다.”
조승에게 고갤 돌려 엷은 미소를 지은 목계백은 대답했다.
“맞다. 말이 안 되지. 그래서 소림과 무당은 뒤로 움직일 거다.”
“뒤로 움직인다면……”
“확인에 들어가겠지. 누가 진정한 아군이고 누가 적인고 간자인지. 그게 확인되면 응징에 돌입할 거다. 그때는 가차 없고 무자비한 공격이 되겠지.”
하대구가 이어 제 생각을 말했다.
“제갈세가도 그 정도는 생각하고 대비하지 않겠습니까? 소림과 무당을 주축으로 한 암중의 움직임이 있을 거라고 판단하면 그대로 있지 않을 텐데요?”
다시 천장을 보는 목계백의 입가 미소가 짙어졌다.
“그럴 거다. 대비하겠지. 그래서 결국 그들은 드러난다. 그리고 그걸 두려워하지 않아. 혈천과 내통하던 순간부터 각오하던 일일 거다. 그 집안이 백혈맹을 배신한 건 철저한 계산에서야. 전쟁의 흐름과 형세를 보고 판단한 거지. 자신들의 기득권을 유지하고 영세적으로 고착하기 위해서다. 그들은 그런 생각으로 사는 자들이야. 때문에 당연한 결정이지.”
태웅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러한 생각과 가치관으로 살아가는 자들이지만, 이번 일을 결정한 원인이 있다고 봅니다. 결정적인 촉발의 계기지요. 아마 그 막내 아들놈의 일일 겁니다. 그 일로 당한 치욕을 좌군총사는 무시하고 넘어갔습니다.”
조승과 하대구는 고개를 끄덕였고, 그 일을 만든 당사자인 목계백은 미소만 흘렸다. 그 미소는 점점 더 짙어지며 끈적한 살기로 변해갔다.
“제갈세가, 그들은 저희가 유리한 점을 취하여 그런 선택을 하였는데, 과연 그들의 선택이 성공적인 결과를 가져다 줄 것인가가 의문이지. 혈천은 곧 해남파, 그들은 멸문의 복수를 하고자 하는 자들, 그 음모에 가담한 제갈세가와 이 전쟁을 맞아 암중으로 손을 잡는다고 해도, 그렇게 해서 전쟁에 이긴 다음엔…… 해남파가 제갈세가를 용인할 것인가?”
태웅과 하대구와 조승이 미간을 깊게 찌푸린 가운데 목계백은 계속 말했다.
“머리 좋은 자들이니 그런 것까지를 다 생각했겠지. 그런데도 혈천과 내통하고 있는 것이야. 그건 지금으로선 그게 이득이라는 판단에서지. 차후의 경우에는 그에 맞는 대비를 하고 있을 것이야. 만일 백혈맹이 지고 혈천이 이기는 경우라면 그때에 맞춘, 그 반대라면 승리의 주역으로서.”
입가에 문 미소에 진득한 살기를 더욱 배가시키며 목계백은 남을 말을 뱉었다.
“이 전쟁은 더러운 이전투구에 불과해. 적도 없고 동료도 없는. 그게 강호지. 진실과 정의는 창칼 앞에 무력하게 짓밟히고 묻히는, 그게 세상이야.”
큰 눈을 치켜뜬 태웅이 몸을 일으켰다.
“그런 자들을 잡아 없애야 하지 않겠습니까?”
목계백은 너무도 간단하게 대답했다.
“없애야지. 칼이 안 들어가는 모가지는 없다.”
* * *
향냄새와 약재냄새가 가득 찬 의생각 안에서 광현방장은 깊은 고뇌에 잠겼다.
부관승이 시침 전에 한 말 때문이다.
제갈세가가 혈천과 내통하고 있다는 말이다. 그로 인해 좌군은 기습공격을 받아 궤멸하고 말았다는.
“아미타불.”
불호를 탄식처럼 흘려낸 광현방장은 잠이 든 부관승의 얼굴을 내려다보며 중얼거렸다.
“사마의 힘이 이처럼 강고한데 어이하여 등을 돌리고만 있으려는가.”
광현방장의 등 뒤, 의생각의 입구에 그림자가 나타났다.
중천으로 올라가는 해의 기운이 장한 가운데, 그 빛을 받아 안쪽으로 길게 드리운 그림자의 주인, 빛바랜 회색승포의 중년 승려는 천천히 걸어들어와 합장했다.
“아미타불.”
불호를 읊으며 고개를 숙인 중년 승려는 깡마른 얼굴에 피부는 창백했다. 마치 수년간 햇빛을 보지 못한 사람 같았다. 부관승을 내려다보는 시선엔 한 점의 동요도 없었다. 물처럼 고요하고 가을 하늘처럼 깊었다.
“광일(光日), 자네와 다른 사제들의 도움이 다시 필요한 때일세.”
간곡한 광현방장의 목소리를 들으며 깡마른 중년승려는 합장을 풀었다. 승포를 가볍게 흔들며 광현반장의 옆, 부관승이 누워 있는 침상 옆의 의자에 앉았다. 그 얼굴을 광현방장이 고개를 돌리고 물끄러미 응시했다.
“면벽을 깨고 나왔으니 이제 사문을 위해 도움을 주시게.”
광일이라고 불린 중년승려는 마른 입술을 벌렸다.
“사형, 소림을 위한 일이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보고 겪고도 그런 소리를 하는가? 혈천이라는 사마외도가 본사를 침범하여 피를 흘렸네. 하마터면 소림의 역사가 사라질 뻔하였던 일일세. 천만 다행히도 자네와 사제들이 나서주어 화를 면하였네. 그걸 말함이 아니겠나? 혈천 무리를 응징하지 않으면 천하는 도탄에 빠지고 말 것이야.”
“소제와 사형제들의 힘이 그들을 물리친 것이 아닙니다. 소림의 모든 형제들이 일심으로 막아낸 일입니다. 소제가 면벽을 깨고 나온 것은 소림의 위난을 파훼하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이 업보의 사슬을 끊기 위해서입니다. 그건 결코 소림을 위해서도, 이 전쟁의 승패를 위한 일이 아닙니다.”
광현방장은 흰 눈썹을 치켜세우며 반색한 표정을 지었다.
“도움을 주려는가?”
광일은 감정을 알 길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십 년 전의 그 일은 결국 이러한 결과를 만들었습니다. 소림을 위시한 강호의 야욕이 빚은 업보입니다. 어쩌면 소림은 그 업을 탕감키 위해 사라져야 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 육신이 디딘 땅이 소림…… 십년을 면벽페관 했지만…… 그것조차도 떨쳐내지 못하여 이렇게 나왔습니다.”
광일의 얼굴에 경련같인 것이 스쳐 지나갔다.
그 이유를 알기에 광현방장은 할 말이 없었다.
천근의 무게로 쌓인 가슴속의 숨만 내쉬었다.
안다, 어찌 잊으리.
십 년 전 점창파의 주도로 이뤄진 제남회합, 그곳에 참가하는 것을 광일은 극구반대했다.
소림의 세속적인 사업과 세력확장에도 언제나 반대를 하던 이가 광일이다.
그러한 성품이니 해남파를 도모하려 하는 제남회합의 의도를 알고 가만있지 못한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광현방장은 제남회합에 참여했고, 광일은 그 길로 면벽에 들었다.
그 시간이 십 년이다. 젊은 광일을 따르던 사부의 마지막 제자들, 광조(光照)와 광해(光解)도 같이 면벽에 들었다. 그들을 존경하는 현자배의 사질들도 암굴을 찾아 들어갔다. 그들 중에 광일과 광조와 광해가 나왔다.
그래서 부처님의 가호로 여긴다.
저들 셋이 나왔으면 다른 사질들도 나올 것이기에 그렇다.
혈천의 공격을 막아낸 것도 세 사제가 지휘하며 선두로 나서 혈승들을 물리쳤기 때문이다.
저들이 없었다면 소림은 사라졌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켜냈다.
그래서 고맙다. 그리고 죄스럽다.
광현방장은 불호와 더불어 작게 말했다.
“아미타불. 모든 것이 소림을 위해서였네.”
표정없던 광일의 얼굴에 노기가 드러났다. 힘이 들어간 그의 눈이 광현방장을 응시했다.
“소림을 위해서라고요?”
광현방장은 당황한 얼굴로 광일을 보다가 얼른 시선을 내렸다.
그런 광현방장을, 흰수염과 흰눈썹이 흔들리는, 늙고 초라한 옆모습을 광일은 한참을 노려봤다. 그 시선에 흔들림이 찾아들고 끝내는 탄식이 나왔다.
느릿하게 일어선 광인은 광현방장을 두고 돌아서며 작게 말했다.
“사형과 소제는 지옥에 떨어질 겁니다.”
* * *
은은한 다향이 퍼지고 있는 방장실엔 무거운 침묵이 함께 휘돌았다.
우군장로원의 인물들인 화산장문인과 공동과 종남의 장문인과 팽가주, 아무도 입을 열지 않고 찻잔만 내려다봤다.
광현방장에게서 들은 이야기의 충격과 그 내용의 심각함 때문이다.
때문에 그들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들릴 듯 말듯한 소리로 광현방장이 불호를 읊는 순간 밖에서 전갈이 왔다.
“방장, 좌군장로원의 어른들께서 도착하시었습니다.”
어서 모시어라, 하는 광현반장의 대답 뒤 얼마후 그들이 들어왔다.
좌군이 무영사에서 패주해 퇴각하던 때에 북상하며 상황을 파악 중이던 좌군장로원의 인사들이다.
청성과 점창 장문인과 무당의 원혜진인, 제갈세가와 황보세가의 가주들이다.
그들 중에 원혜진인이 가장 다급히 입을 열었다.
“좌군 총사의 사태가 어떠합니까?”
불호를 낸 광현방장은 자리를 권했다.
“위험한 고비를 넘겼습니다. 우선 좌정하시지요.”
인사도 없이 나선 자신의 실태를 깨달은 원혜진인은 도호를 소리 내며 포단 위에 앉았다. 그를 필두로 좌군장로원인사들이 모두 자리에 앉았다.
형식적이고 의례적인 수인사가 오고 간 후에 광현방방이 본론을 꺼냈다.
“오늘 이렇게 얼굴을 마주하고 앉은 것은 참으로 뜻깊고 반가운 일입니다. 하지만 뜻하지 않은 급변과 충격적인 전황을 이야기해야 함이 현실이라,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길이 없지만, 이 밤이 가기 전에 논의해야 함이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이 자리는 백혈맹의 미래를 위한 자리입니다……”
거기까지 말하고 말끝을 흐린 광현방장은 다시 목소리를 이어냈다.
“진실을 밝히고 이 난국을 타개하기 위해선 무엇이라도 필요한 시기입니다. 얼굴을 붉히는 일이 생기더라도 양해라고 협조해 주시길 바랍니다.”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려고 저러나 하는 얼굴이던 좌군장로원 인사들은 표정을 경직했다.
그런 그들의 표정 중에 제갈세가주의 표정을 광현방장은 유심히 살폈다.
그러나 그런 기색을 숨기고 하고자 하는 말을 뱉었다.
“혈천과 내통하는 간자가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습니다.”
좌군장로원 인사들의 눈이 커진 가운데 광현방장은 뒷말을 이어냈다.
“내통자가 좌군집결지 대한 정보를 제공하여 혈천의 기습공격을 받았다는 내용입니다. 좌군총사는 혈천의 집요한 추적을 피해 우군에게로 와서 그 사실을 알렸습니다. 이 주장의 진위를 우리는 밝혀내야 합니다.”
점창파의 문주가 치켜 세운 눈으로 물었다.
“좌군총사가 내통자의 정체를 밝혔습니까?”
모두가 광현방장에게 시선을 모았다. 칼날 같은 그들의 시선을 받으며 광현방장은 대답했다.
“제갈세가입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