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rthern Swordsmith RAW novel - Chapter 99
2.
용태성은 숫돌 판을 어깨에 메고 반점 안을 돌아다니며 노래하듯 자신을 알렸다.
“항주 제일 칼갈이장인이 왔습니다. 삼년 동안 안 뽑아 녹슨 칼, 이빨 빠진 칼, 아예 날 없는 칼, 뭐든 다 갈아 드립니다. 이 손을 거치면 숙수의 식칼도 천하제일 명도가 되나니, 그 누가 그 영광을 누리시려오.”
흥얼흥얼 거리며 반점 안을 누비는 용태성을 항주에 모여든 무림인들이 힐긋거리며 관심을 보였다.
모두가 병기를 가졌기도 하고, 녹림과의 결전을 앞둔 항주에 들어온 터라 칼이든 검이든 날을 갈고 싶은 마음이 생겨서다.
칼갈이가 흥얼대는 말처럼 되지는 않겠지만 날은 서리라.
“이봐, 칼갈이.”
부르는 자리를 돌아본 용태성은 얼른 다가가 반색한 얼굴로 굽신거렸다.
“칼 갈아 드릴깝쇼?”
건장한 몸을 가진 장한들 넷이 모여 있는 자리였다. 그 중에서 손짓 해 부른 자가 자신의 사척직도를 내밀었다.
“천하제일 명도로 한번 만들어 봐.”
“예예, 걱정마십쇼.”
직도를 받아든 용태성은 바로 사내들의 옆으로 물러나 벽을 등지고 숫돌판을 내렸다. 안에서 꺼낸 대나무 물통을 기울여 숫돌 위에 뿌려 적시고 바로 칼을 갈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귀는 열어 사내들의 대화를 들었다.
“생각보다 항주무림맹의 위세가 옹색하지?”
“왜 아냐? 맹주도 부상 중이라고 하던데? 맹호라는 자는 누워있고.”
“혈뢰인을 쓰는 흉수를 상대해서 그렇다잖아? 그중 둘을 죽였다던데?”
“지금 문제는 그런 일들이 아니라 녹림이 곧 들이닥친다는 거야.”
칼을 맡긴 장한이 심각한 눈으로 다른 자들의 시선을 잡아끌며 말을 이어냈다.
“소림과 부당 본산에서 곧 도착한다지만, 그전에 녹림이 들이치면 낭패지. 거의 그렇게 될 걸로 보이고 항주무림맹도 예측하고 있는 바일 거야. 그런데 여기 모인 자들의 형세를 보라고. 변변한 이름을 가진 문파가 얼마나 돼? 칠도문하고 해룡문, 남경제검문을 제외하면 떨거지들이야.”
듣고 있던 장한 중 한명이 맞장구쳤다.
“맞아. 정의검문(正義劍門)이니 숭천문(崇天門)이니 하는 문파들은 들어본 적도 없다고. 뜻이 맞는 강호인들이 모여 결성한 신생문파라고는 하지만 결국 뜨내기들 아냐? 그런 자들이 숫자가 많으면 뭐하겠어?”
다른 장한도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삼류무인들이 모여서 세를 한번 불려보자고 만든 문파들이지. 강서 땅 남부에서 자생한 문파들이잖아? 그들에 대한 소문을 약간 들었지. 남궁세가의 위세에 눌려 숨도 못 쉬고 있던 무인들이 이번에 결성했다 하더군. 그래서 항주무림맹의 일에 더욱 동참하려한 다는 거지.”
다른 장한은 다른 의견을 내놨다.
“그보다는 전쟁을 기회로 삼아 이름을 알려보겠다는 수작이겠지. 말 그대로 변방의 삼류문파밖에 더 되겠나? 이런 기회에 항주무림맹에 가입할 수도 있을 것이고, 소림과 무당이 온다하니 뱃심이 생기겠지.”
“우리도 뜻이 맞는 자들을 규합해서 무리를 만드는 게 나을까?”
열심히 이야기 하며 술과 음식을 먹는 장한들의 옆에서 용태성은 칼을 갈며 눈빛을 번득였다.
자신처럼 여러 가지 모습으로 변장한 흑전형제들이 항주 속을 누비고 다니는 중이다.
반점과 주루와 객잔, 강호인들이 있는 곳은 다 정탐하고 있다. 특히 어제오늘 들어온 자들을 집중적으로.
‘슬슬 나가봐야겠군.’
칼날에 물을 뿌린 후 면포를 깨끗이 닦은 용태성은 장한에게 칼을 내밀었다.
“다 됐습니다요.”
“그래? 어디 볼까? 호? 제법 예리해졌는 걸?”
생각보다 흡족한자 장한은 두 배의 값을 치렀다.
허리 숙여 그 돈을 받아들고 반점을 나온 용태성은 정해진 장소로 이동했다.
기녀들이나 찾을 성 싶은 화려한 장신구들을 파는 가게다. 그 뒷문으로 들어가 형제들을 만났다.
“자, 취합한 정보들을 추려보자.”
흑전형제들과 함께 서둘러 정보를 추리고 정리한 용태성은 용인성을 찾아 갔다.
* * *
“정의검문과 숭천문?”
용태성이 정리해온 문서를 보며 용인성은 미간을 찌푸렸다.
이 이름을 알기 때문이다.
칠도문과 해룡문과 남경제검문을 제외하면 가장 세가 큰 문파들이다.
명성에선 뒤지지만 숫자에서는 오히려 능가하는 형세다.
‘이들이 수상하다고?’
이 두 문파의 문도숫자만 각기 사백씩, 합하면 팔백이다.
남경제검문이 사백, 칠도문과 해룡문이 각기 삼백씩의 무사들을 데리고 왔다.
그들만 천이다. 그걸 제외하면 이 두문파가 가장 많은 팔백이다.
그밖에는 수명에서 십여 명에 이르는 무리를 지은 자들로서 문파라고 하기에도 어렵다.
용태성이 예리한 눈으로 입을 열었다.
“형님, 보시면 아시겠지만 그들은 신생문파입니다. 강서 땅에 근거를 둔 자들로서 남궁세가의 위세에 눌려 이름을 내걸지 못했던 자들이라 합니다. 이름 없는 삼류무인들이 의기투합해 결성한 조직이라는 거지요. 그 배경에 관해서 하오문에 협조를 구했습니다만, 정확히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의심할 근거가 없지 않느냐?”
“아닙니다. 최근에 몇 가지 유의할 만한 일들이 있었다고 합니다.”
“유의할 만한 일?”
“남궁세가 멸문 후 급거 규합해 이름을 내건 일은 맞지만, 그 일을 주도한 처음의 수뇌부는 지금의 수뇌부가 아니라고 합니다. 내부에서 암투가 벌어져 문주를 비롯한 핵심인사들이 바뀐 것이지요. 기존인사들은 척살당했거나 실종 상태이고, 그 때문에 문도들 역시 거의 물갈이가 됐다고 합니다.”
용인성의 미간이 확 곤두섰다.
“수뇌부부터 문도들까지 전부 물갈이가 됐다?”
“그렇습니다.”
용인성과 용태성, 형제는 서로를 바라보며 말이 없었다. 시선만 부딪치며 무거운 숨을 내쉬었다. 그러다가 용인성이 먼저 의자를 밀고 일어섰다.
“형제들을 준비시켜라.”
“알겠습니다.”
형제는 각자 가야 할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 * *
심각하고 경직한 눈으로 문서를 들여다 본 명세기는 용태성에게 물었다.
“그들이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항주객잔에 거처를 두도록 했습니다. 그 주변에 중소객잔과 객관들이 밀집해 있는 고로, 그 두 문파의 인원을 수용하기에 적합하다고 판단해서 그리했습니다만, 오히려 잘된 것 같습니다. 그 지역은 차단이 용이한 곳입니다.”
“그래요?”
“이미 흑전형제들로 하여금 필요한 조치들을 준비하도록 지시했습니다.”
흑전형제들 이란 용태성의 말에 명세기는 속으로 다른 생각을 순간적으로 품었다.
‘너희 역시도 언젠가는 손을 봐야 할 터인데……’
그러나 그건 바람, 현재의 위기를 타개하지 못한다면 일장춘몽으로 끝날 일이다.
“그들이 녹림의 일원인지를 확실하게 알자면……”
“부딪침 밖에 없지요.”
용태성의 강한 눈동자를 응시하던 명세기는 대호검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해가 지기 전에 끝냅시다.”
* * *
태원자를 비롯한 무당이십팔검 팔인과 함께 항주객잔을 찾은 명세기는 그들과 마주했다.
정의검문의 문주 이세홍(李世洪)과 숭천문의 문주 송학선(宋鶴瑄)이다.
두 사람은 갑작스러운 방문에 놀람과 반가움을 드러냈다.
“맹주께서 친히 어인 행차이십니까?”
“드디어 결전이 임박한 것입니까?”
객잔 안의 다탁을 사이에 두고 앉은 명세기는 두 사람의 신흥문파 문주들을 향해 미소를 던졌다.
“본맹의 누란지위를 해소할 타결책을 찾고자 두 분을 찾았습니다.”
창백한 안색이지만 시종일관 차분하고 담담한 명세기의 미소, 그 얼굴을 보며 정의검문주 이세홍과 숭천문주 송학선은 역시 미소로 말했다.
“허, 그렇습니까? 녹림을 물리칠 신기묘산을 준비하신 겁니까?”
“옳아, 그러한 일에 우리 문파들의 힘이 필요하신 것이로군요? 그렇다면 무엇이든 마다하겠습니까? 항주무림맹의 대의에 동참코자 온 길, 분골쇄신하겠습니다.”
“이를 말이겠습니까? 하명만 하여주십시오.”
이세홍과 송학선, 두 사람 다 진정어린 눈동자로 결심을 드러내듯 말했다. 그러나 두 사람의 눈길은 빠르게 태원자를 스치고 지나가며 빛을 냈다.
명세기는 흡족한 듯이 미소를 지었다.
“두 문주님의 말씀만 들어도 힘이 납니다. 천군만마를 얻은 기분입니다.”
이세홍이 다른 이들이 눈치 채지 못하게 곁눈질했다. 말없이 앉아 있는 태원자와, 명세기와 태원자의 뒤로 서 있는 무당이십팔검의 팔인이다. 그들과 마주 앉아 명세기와 태원자의 의중을 헤아리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어떠한 복인을 가지고 계신지……”
명세기는 여전히 미소 지은 얼굴로 대답했다.
“우선은 녹림의 계교를 파훼하는 것이 우선입니다.”
이번엔 송학선이 물었다.
“녹림의 계교라 하면 무엇을 말씀하심입니까?”
미소를 잃지 않은 얼굴로 태원자와 시선을 맞췄다가 다시 두 사람을 응시한 명세기는 말했다.
“항주무림맹의 내부로 침투해 들어온 적들을 섬멸함입니다.”
그 순간 이세홍과 송학선의 표정이 경직했다. 하지만 그것은 순간, 정말로 그런 일이 있느냐는 얼굴로 표정을 바꾼 두 사람 중에 이세홍이 먼저 입을 열었다.
“그 말씀은, 현재 항주 내에 녹림의 간세들이 들어와 있다는 말씀입니까?”
“허어, 그렇다면 정녕 큰일이 아닙니까?”
놀랍고 미더워 하지 않는 얼굴의 두 사람에게 태원자가 한마디를 던졌다.
“강소 땅에서 온 무리들로서, 그 세가 팔백을 헤아린다 하더이다.”
이세홍과 송학선의 표정은 다시 경직했다.
이번엔 그 반응이 달랐다.
태원자의 말이 뜻하는 바가 너무나 명백한 바, 누명쓴 자의 얼굴로 변했다.
“말씀이, 지나치시오!”
격하게 외친 이세홍 뒤로 송학선이 역시 큰 목소리를 냈다.
“지금 이 말의 진의가 무엇이오! 우리들에게 혐의를 씌우고 있음이 아니오! 허어, 이건 고약한 노릇이 있나! 대의에 동참코자 달려온 우리를 이따위로 매도하다니! 무당의 이름이 높다하나 돼먹지 않은 수작이로다!”
정말로 억울해 분노한 자들처럼, 모욕을 참지 않는 강호인들처럼 두 사람은 반응했다. 그러나 명세기와 태원자는 표정 없는 얼굴로 바라보기만 했다.
“맹주! 강서에서 온 팔백의 무리라 함은 당연히 본 정의검문과 숭천문을 가리키는 것! 그러한 조건에 부합하는 문파가 없으니 우리들을 지적함이 분명한 바! 이 자리에서 하신 그 말씀에 대한 해명 있어야 할 것이오!”
이세홍이 소리치며 의자를 밀고 일어섰다. 송학선도 바로 뒤따랐다.
“더 이상의 모욕은 참지 않겠소!”
그 순간이었다.
“맹주, 찾았습니다.”
비격이 엄한 기세로 다가와 명세기에게 뭔가를 바쳤다.
보자기로 싼 작은 물건이다.
그걸 받아든 명세기는 느릿하게 보자기를 펼쳤다. 그리고 작은 동패 하나를 꺼내 들어 올렸다.
앞면과 뒷면에 글자가 양각된 동패다.
“녹림패라, 앞면엔 그렇게 되어 있고 뒷면엔 이세홍이라 되어 있군.”
담담한 명세기의 목소리가 이세홍과 송학선은 들리지 않았다.
명세기가 들고 있는 패, 녹림패를 본 순간 얼어붙었다.
품 안에 있어야 할 저것이 왜 명세기의 손에 있는 지 알 수 없다. 한시도 떼어놓지 않는 저것이.
엷은 미소를 지은 명세기는 의자를 밀고 일어나며 말했다.
“제 버릇 개 못준다고, 내부공격의 임무를 맡아 들어왔으면 그 일에만 전념할 것이지 왜 기녀는 불러 품었나? 내가 오기 직전까지 놀았다면서?”
이세홍과 송학선은 이제 영문을 알았다. 그러나 너무 늦었다.
“이, 이런 개 같은!”
이세홍이 이를 악물 때 송학선이 소리쳤다.
“신호를 올려라! 총공격이다!”
소리친 송학선과 이세홍이 칼과 검을 빼들고 명세기와 태원자를 공격했다. 그 순간 석상처럼 서 있던 무당이십팔검이 검과 함께 쇄도했다.
* * *
혼곤한 무기력함이 전신을 짓눌렀다. 한없이 가라앉는 느낌이다. 끝없는 나락으로 추락하는 이 무력함, 용악대연무를 익히고 나서 단 한 번도 가져 보지 못한 느낌이다. 그래서 더욱 암담하고 당황스럽기만 하다.
하지만 목계백은 의지를 잃지 않았다. 그러기엔 지나온 날들이 너 무 억울하다. 그렇게 어렵게 생사고비를 넘기며 하루하루를 살아왔건만, 하루도 피를 보지 않고 살아온 날이 없건만, 이렇게 쓰러질 수는 없다.
목계백은 문득 미소를 지었다. 운기중의 그 미소는 입가에 희미하게 걸렸다.
‘뭐가 두려워? 나는 이미 지옥까지 갔다 왔다. 이세상의 온갖 무서움과 험악함을 다 겪었어. 이런 일쯤은 아무 것도 아니야. 내가 두려워 해야 할 것은 단 하나야. 북천형제들의 원한을 갚지 못하는 것, 그것 하나뿐이야.’
언제나 변함없지만 더욱 새롭고 강렬한 그 의지가 마음속에 날을 세웠다.
거대한 칼날이다.
천지를 가르는 날, 그 무엇이든 베어버리는 북천의 칼날이다.
그 칼날을 중심으로 회오리가 치기 시작했다.
용악대연무다.
‘된다. 새롭게 일어선다.’
목계백은 내부로부터 힘차게 일어서는 용악대연무의 회오리에 전율하며 큰 숨을 들이마셨다. 혈뢰인의 사기를 몰아내느라 텅 비었던 단전, 몸과 마음에 새로운 힘이 들어차기 시작했다. 그것은 더할 수 없이 격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