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 One Star Instructor Master Baek RAW novel - Chapter 110
109화. 간단하네거상웅은 백수룡의 제안을 거절하고 떠났지만, 야수혁은 아직 자리에 남아 있었다.
“야수혁. 넌 어떻게 할 거냐?”
“…….”
헌원강에게 허무하게 패배한 충격으로 멍하니 누워 있던 야수혁은 천천히 상체를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 헌원강과 눈이 딱 마주쳤다.
“뭘 꼬나봐?”
헌원강이 인상을 팍 쓰자 야수혁이 자기도 모르게 움찔했다. 그 사실을 깨닫고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젠장…….”
야수혁은 지금껏 또래에게 한 번도 져 본 적이 없는 건 물론, 주눅 들어 본 적도 없었다.
그러나 살면서 처음으로 자신을 흠씬 두들겨 팬 상대 앞에서는 자기도 모르게 움츠러들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하필이면 그 상대가 청룡학관의 전직(?) 망나니였다.
“젠장? 선배 앞에서 젠자아앙?”
헌원강이 말꼬리를 늘리며 야수혁 앞에 쪼그려 앉았다.
건들거리는 태도 하며 표정이, 뒷골목에서 애들 돈 뜯는 파락호나 다름이 없었다.
“이게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네. 어이 일학년. 너 내가 누군지 알…….”
따악!
정수리를 감싸 쥔 헌원강이 원망스러운 눈으로 뒤를 돌아봤다.
“왜 자꾸 때려요. 후배 기강 좀 잡으려는데…….”
“잘하는 짓이다. 기강? 네가 기강을 왜 잡아?”
헌원강은 나름 다 이유가 있다며 말을 이었다.
전직 망나니로서의 감이었다.
“이런 자식들은 지금 안 잡아 두면 나중에 기어오른다고요. 저 반항적인 눈빛 안 보이세요? 초장에 확 눌러 놔야…….”
“……너나 잘해라, 이 자식아.”
백수룡은 어이가 없는지 흑룡편으로 헌원강의 뒤통수를 퍽퍽 때렸다.
“아 진짜!”
“어쭈? 피해? 피해애애? 어디 계속 피해 봐!”
야수혁의 공격은 한 번도 허용하지 않았던 헌원강.
하지만 백수룡의 흑룡편에는 자석이라도 붙었는지, 내리치는 족족 그의 정수리를 후려쳤다.
“악! 윽! 그만! 그마안!”
결국 헌원강이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 쥐고 백기를 들었다.
코웃음을 친 백수룡이 그제야 흑룡편을 내려놓았다.
“하여튼 이건 태생이 망나니야, 태생이. 괜히 후배들 괴롭히지 마라. 걸리면 뒈진다 진짜.”
“예…….”
헌원강의 눈치를 보며 대답하는 가운데, 그 모든 광경을 지켜본 야수혁이 말했다.
“……그 수업 들을게요. 저도 무공 가르쳐 주세요.”
평소에 부탁이란 걸 해 본 적도 잘 없어서, 야수혁의 말투는 어색하기 짝이 없었다.
백수룡이 피식 웃더니 야수혁의 손에 수강 신청 서류를 건넸다.
“잘 생각했다. 여기 서명해.”
신청서를 받아든 야수혁은 서명을 대충 휘갈기더니 백수룡에게 돌려줬다.
“신청서는 대신 좀 내주세요. 전 갔다 올 곳이 있어서.”
“어딜?”
야수혁은 대답 대신 고개를 돌려 거상웅이 나간 방향을 바라봤다.
그 눈빛이 이글이글 타오르고 있었다.
“……빚진 건 갚아야죠.”
“거상웅 쫓아가려고?”
“예.”
그 단호한 대답에 백수룡은 혀를 한번 차고 야수혁의 앞을 가로막았다.
“또 싸울 생각이면 관둬라. 아깐 저 녀석이 많이 봐준 거야.”
“알아요.”
야수혁은 분하다는 듯 이를 갈았지만, 그렇다고 현실을 부정하지는 않았다.
거상웅은 자신보다 강했다.
처음엔 비슷한 줄 알았지만, 알고 보니 적당히 맞춰 준 것이었다.
야수혁은 그 사실이 못 견딜 만큼 분했다.
그렇다고 앞뒤 못 가리고 다시 덤빌 생각은 없었다.
“비켜 주세요. 안 싸울 겁니다. 아직 못 이기니까.”
“흐음…….”
잠시 야수혁의 눈을 바라보던 백수룡이 옆으로 비켜섰다.
거짓말을 할 녀석처럼 보이진 않았으니까.
“뭘 하려는지 모르겠지만, 수업 시간에는 늦지 마라.”
“예.”
무뚝뚝한 표정으로 대답한 야수혁은 성큼성큼 걸어 객잔을 나갔다.
백수룡은 그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몸을 돌려 헌원강을 바라봤다.
‘큰 쓸모는 없을 줄 알았는데…….’
의외로 같이 다니면서 조수 역할을 잘 해 주고 있었다.
헌원강이 야수혁을 상대로 압도적인 실력을 보여 주지 않았다면, 야수혁도 이토록 쉽게 수강신청서를 쓰진 않을 것이다.
“……왜 그렇게 봐요? 또 때리려고?”
워낙 맞아서 그런지, 일단 머리부터 막고 보는 헌원강이었다.
백수룡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아무것도 아니다. 아무튼 둘 중 하나는 됐고, 하나는 사정이 있는 것 같으니 좀 더 두고 보자고.”
“거상웅 선배는 글렀다니까요. 무공을 배울 마음이 아예 없는 것 같던데.”
“내기할래?”
잠시 고민하던 헌원강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헌원강이 아는 백수룡은 귀신과 내기를 해도 어떻게든 이겨 먹을 인간이었다.
백수룡이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셨다.
“사내 녀석이 쫄긴. 그럼 다른 녀석을 만나러 가자.”
두 사람은 객잔을 나서며 당소소가 건네준 명단을 확인했다.
“어디 보자…….”
명단을 훑던 백수룡의 시선이 한 곳에서 멈췄다.
이학년 여민.
청룡학관 보충반의 유일한 여학생이자, 아직 기숙사에 복귀하지 않은 학생이기도 했다.
아니, 애초에 올해부터는 기숙사에 머물지 않는다고 들었다.
“올해부터는 금룡객잔에서 일하면서 숙식을 한다라…….”
밖으로 나온 두 사람은 곧장 금룡객잔으로 향했다.
금룡객잔은 도시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고급 객잔으로, 무려 7층짜리 건물이었다.
“너 여민이랑도 아는 사이냐?”
백수룡의 질문에 헌원강이 고개를 저었다.
“실제로 본 적은 없어요. 보충반 수업에서도 마주친 적 없고.”
각 학년의 문제아들을 모아 놓은 만큼, 보충반 학생들은 보충반 수업에도 거의 출석하지 않는다고 했다.
여민은 그중에서도 출석률이 제일 좋지 않았다.
‘성적은 의외로 나쁘지 않은데……. 출결 일이 아슬아슬하군.’
여민에 대한 서류를 뒤적거리는데, 헌원강이 옆에서 머뭇거리며 말했다.
“그……. 소문은 몇 번 들어 보긴 했는데.”
“무슨 소문?”
백수룡이 고개를 돌려 묻자, 헌원강이 난감한 듯 목을 긁적이며 말했다.
“돈만 주면 뭐든지 한다고요.”
“…….”
백수룡은 여민의 특기 사항에 적힌 을 유심히 보았다.
* * *
“손님 받아라!”
저녁 시간이 된 금룡객잔은 몰려드는 손님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남창에서 가장 큰 금룡객잔은 총 7층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층마다 손님을 가려 받는 것으로도 유명했다.
일 층과 이 층은 돈만 있으면 누구나 갈 수 있고,
삼 층부터 사 층까지는 호패로 신분을 증명해야만 출입할 수 있으며, 오층과 육층은 지역유지나 관아의 인물들, 무림명숙들만 출입할 수 있었다.
최상층인 칠 층은 금룡객잔주의 초대를 받은 사람들만 올라갈 수 있다고 했다.
“금룡객잔에서 일하는 숙수만 서른이 넘고, 점소이는 백 명이 넘는다고 하더라고요.”
금룡객잔의 거대한 현판이 보이자 헌원강이 얼굴에 화색을 띠며 흥분한 채 떠들기 시작했다.
“또 여기 가희와 무희들도 아름답기로 유명하고요. 예전에 삼 층까지 가 봤는데 여기 술맛이 진짜 죽여 주…….”
“이쯤 되면 맞는 걸 즐기는 거지?”
따악!
헌원강의 머리에서 울리는 경쾌한 소리를 음악 삼아 백수룡은 금룡객잔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잠시 후, 두 사람은 오 층에서 제지를 당했다.
“죄송하지만 이 위로는 가실 수 없습니다.”
딱 봐도 무공깨나 익혔을 것 같은 사내들이 앞을 가로막았다.
말하는 태도는 정중했으나, 물러서지 않는다면 무력도 불사하겠다는 듯 허리춤의 무기에 손을 올리고 있었다.
백수룡이 온화하게 웃으며 앞으로 나섰다.
“술을 마시러 온 게 아니고, 이곳에서 저희 학생이 일하고 있다고 들어 만나러 왔습니다.”
“……학생이요?”
미간을 찌푸리는 선두의 무사에게 백수룡은 용건을 전달했다.
“여민. 청룡학관 이학년입니다.”
“…….”
백수룡은 여민의 이름이 나온 순간 무사들의 표정이 살짝 변하는 것을 놓치지 않았다.
선두의 사내는 누군가와 전음을 나누는지 입술을 달싹이더니, 고개를 끄덕이고는 백수룡에게 말했다.
“이쪽으로 오십시오.”
무사는 두 사람을 손님들이 다니는 계단이 아닌 일꾼들이 다니는 통로로 안내했다.
허리를 굽혀야만 들어갈 수 있는 낮은 통로의 계단을 오르던 것도 잠시, 두 사람은 분 냄새가 짙게 풍기는 방에 도착했다.
“절 찾아왔다고요?”
그곳에서 여민이 두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다.
화려하고 붉은 궁장 사이로 은근히 드러난 긴 팔다리.
틀어 올린 머리에는 가채를 올렸고, 화장도 상당히 짙었다.
옆이 시원하기 트인 붉은 치마 사이로 새하얀 다리가 드러나 있었다.
“객잔에서 일한다더니…….”
“꿀꺽……. 흠흠!”
여민의 옷차림을 본 백수룡은 미간을 가늘게 좁혔고, 헌원강은 민망한 듯 기침을 하며 돌렸다.
두 사람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뻔히 보인다는 듯, 여민은 팔짱을 끼더니 코웃음을 쳤다.
“무희예요. 두 분이 기녀를 기대했다면 미안하지만.”
금룡객잔에서는 무희와 가희, 광대들을 불러 자주 공연을 했다.
여민은 그중에서도 오 층 이상에서만 춤을 추는, 실력이 매우 뛰어난 무희였다.
무공으로 단련된 그녀의 춤 선은 무척이나 매혹적이었고, 그 춤을 보러 오는 손님들이 있을 정도였다.
“무슨 일이죠? 남은 시간이 반 각 정도밖에 없으니까 용건 있으면 빨리 말하고 가세요.”
여민은 그렇게 말하며 연초를 꺼내 태우기 시작했다.
그녀가 “후우-.” 하고 숨을 내뱉자, 입에서 짙은 연기가 뿜어져 나와 방을 채웠다.
백수룡이 앞으로 나서며 물었다.
“내가 누군지 알아?”
“……백수룡 선생님. 새로운 보충반 담당이잖아요? 학관에 잘 나가는 건 아니지만, 이런저런 이야기는 전해 듣고 있어요.”
“알고 있다면 이야기가 빠르겠네.”
백수룡은 품에서 수강신청서를 꺼냈다.
그리고 거상웅과 야수혁에게 했던 이야기를 조금 바꿔서 전달했다.
이에 대한 여민의 대답은…….
찌이익.
“관심 없어요.”
여민은 신청서를 받아 찢어 버린 후 그대로 바닥에 버렸다.
백수룡은 찢어진 서류를 잠시 바라보다가, 품에서 새로운 서류를 꺼내며 웃었다.
“그럴 줄 알고 여러 장을 가져왔지.”
“한 번에 다 주세요. 전부 다 찢어 버리게.”
여민은 올해로 스물두 살이었다.
입관 시기가 다소 늦어, 이학년이지만 사학년인 거상웅보다 나이가 많았다.
잠시 그녀를 관찰하던 백수룡이 물었다.
“넌 왜 무희 일을 하지? 춤추는 게 좋아서?”
“돈을 많이 주니까요.”
여민은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다.
그리고 엄지와 검지를 모아 동그라미를 만들더니 눈웃음을 지었다.
“전 졸업하면 돈을 많이 주는 곳으로 취직할 거예요. 객잔도 좋고, 상단이나 표국도 상관없어요. 청룡학관에 다니는 것도 그래서예요.”
명문 학관 졸업장이 있으면 취업할 때 도움이 되니까, 라고 중얼거린 여민이 백수룡에게 물었다.
“이런 제가 속물 같나요?”
그녀는 말하며 차갑게 웃었다.
‘어디 한번 설득해 봐.’
백수룡이 그녀를 찾아온 첫 번째 선생인 것은 아니었다.
그동안 여러 명이 이곳에 찾아왔고, 설득하려 하기도 했다.
나쁜 길에 빠진 학생을 계도하겠답시고 와서 일장 연설을 늘어놓다가, 결국엔 얼굴이 빨개져서 화를 내고 가 버렸다.
‘당신도 똑같겠지. 이상적인 말만 잔뜩 늘어놓다가…….’
그런데 그 순간, 백수룡은 활짝 웃었다.
“그럼 간단하네. 내가 돈을 줄게.”
“……예?”
순간 여민은 얼빠진 소리를 냈다.
백수룡은 오히려 잘됐다는 듯 눈을 빛냈다.
“무희? 얼마나 받는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그것보다 더 많이 주겠다.”
백수룡은 고리타분한 정파인이 아니다.
사람마다 무공을 배우는 목적이 다르다는 것을 알고, 그에 따라 동기부여를 다르게 해야 한다는 것도 충분히 알고 있었다.
여민이 무공을 배우는 목적이 돈이라면, 돈을 보상으로 무공을 열심히 익히게 하면 되는 것이다.
“그 대신.”
백수룡의 시선이 치마 사이로 드러난 여민의 다리를 향했다.
헌원강이 여민의 다리를 보며 침을 꼴깍 삼킬 때, 백수룡은 그녀의 다리의 형태와 근육을 살피고 있었다.
“천무제 우승에 일조해. 너라면 경공 대회에서 우승할 수 있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