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 One Star Instructor Master Baek RAW novel - Chapter 111
110화. 이렇게 한자리에“돈을…… 주겠다고요?”
“그래.”
얼빠진 얼굴로 되묻는 여민을 보며, 백수룡은 단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여민은 그 대답을 이해할 수 없었다.
“……왜요?”
“말했잖아. 대신 천무제 우승에 일조하라고. 너한테선 경공 대회에 우승할 만한 가능성을 봤거든.”
백수룡의 말은 진심이었다.
여민의 체형을 본 순간, 경공을 펼치는 데 최적화되어 있다는 것을 한눈에 알아보았다.
‘경공만 본다면, 환생한 이후로 본 사람 중에 가장 뛰어난 재능이야.’
여민은 헌원강이나 위지천 같은 종류의 천재는 아니지만, 한 분야에 있어서만은 대가가 될 수 있을 자질을 타고났다.
‘어쩌면…… 빙월신녀의 경공을 가르칠 수 있을지도 모르겠네.’
빙월신녀 은예린.
반경 수십 장을 단숨에 얼릴 수 있는 빙공의 고수였던 그녀는, 빙공에 가려져 잘 알려지진 않았지만 경공의 대가이기도 했다.
네 명의 사부 사이에서도 경공만은 그녀가 가장 뛰어나다는 걸 모두가 인정했을 정도였다.
‘같은 성별에 체형도 흡사해. 이 녀석이라면…….’
빙월신녀의 경공을 충분히 익힐 수 있을 터였다.
물론 절대로 쉽지는 않겠지만 말이다.
생각을 정리한 백수룡이 말했다.
“이참에 무희 일은 관두고 백룡장으로 들어와. 숙식도 해결해 주고 무공도 매일 봐줄 테니까.”
백수룡은 아예 합숙을 제안했다.
돈을 주고 가르치려는(?) 만큼, 대충 할 생각은 없었다.
순식간에 휙휙 진행되는 이야기에 여민은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잠깐, 잠깐만요. 제가 얼마나 받는 줄 알고 돈을 주겠다는 거예요?”
“얼마나 받는데?”
여민이 금룡객잔에서 얼마를 받던 백수룡은 감당할 자신이 있었다.
돈이라면 얼마 전 공손수에게서 받은 사례금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그 자신만만한 미소에 여민은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그리고 아까부터 천무제에서 우승할 거라고 말하는데……. 우승 못 하면요? 돈도 안 줄 건가요?”
백수룡은 고개를 저었다.
“애초에 월봉으로 지급할 거니까 걱정할 것 없어. 그리고 우승하면 월봉의 다섯 배를 성과급으로 줄 거다.”
사람은 보상이 약속돼 있어야 더 열심히 하거든, 라고 중얼거린 백수룡이 씩 웃었다.
여민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물었다.
“선생님 맞아요? 이렇게 돈으로 학생을 꼬드겨도 돼요?”
“여민.”
갑자기 백수룡의 표정이 조금 진지해졌다.
“나는 네가 어떤 사정 때문에 돈에 집착하는지 몰라.”
“…….”
당소소에게 건네받은 서류에는 여민에 관한 정보가 그리 많지 않았다.
간단한 신상명세와 특기 사항에 이라고 적혀 있던 것, 그리고 그 아래 당소소가 적어 둔 짧은 이야기가 전부였다.
‘이건 도벽이 아니라…….’
백수룡이 보기에, 여민은 실제로 물건을 훔치지 않았는데 도둑으로 오해받고 있을 확률이 높았다.
“하지만 돈이 없을 때 사람이 얼마나 초라해지는지는 나도 잘 알아.”
“…….”
백수룡은 여민의 눈을 똑바로 보았다.
화려한 옷을 입고, 입은 웃고 있지만, 그 눈은 삶에 찌들어 있었다.
저런 눈을 한 사람에게 섣부른 위로나 따뜻한 말 따위는 통하지 않는다.
“어떤 자식들은 무공을 대성하려면 물욕을 지우고 무공에만 모든 정신을 집중해야 한다고 지껄이던데, 배부른 놈들이나 하는 개소리야. 그런 말 하는 놈들 중에 가난한 놈은 본 적이 없거든.”
“크흠!”
옆에서 듣고 있던 헌원강이 민망한 듯 고개를 돌렸다.
비록 헌원세가가 무가로서의 세력이 쇠하긴 했지만, 헌원강 또한 자라면서 크게 궁핍함을 느끼지는 못했다.
“……풉.”
여민은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지금 백수룡이 하는 말은, 그녀가 무공을 배워오면서 단 한 번도 들어 본 적 없는 이야기였다.
-돈은 무인에겐 하등 쓸모없는 것이다.
-속물적인 욕망을 버려야 무공에 대성할 수 있느니라!
-쯧. 너는 재능이 있는데 물욕이 너무 심한 것이 문제다. 돈 몇 푼에 무인의 혼을 팔 테냐?
지금까지 무공을 가르치던 선생들은 모두 돈을 멀리하라고 가르쳐 왔다.
‘자기들도 돈을 받고 무공을 가르치는 주제에.’
돈에 집착하는 그녀의 행동을 마치 죄악처럼 여겼다.
무공을 배워서 부자가 될 거라는 말을 하면 모두가 한심하게 바라봤다.
어릴 때부터 악착같이 돈을 벌어야만 했던 그녀에게, 그런 선생들의 말은 항상 공허한 메아리일 뿐이었다.
하지만 백수룡은 달랐다.
“내게서 무공을 배우면 더 많은 돈을 벌게 될 거다.”
새로운 수강신청서를 꺼낸 백수룡이 짓궂게 웃으며 말했다.
“여기다 서명만 하면 말이지.”
“……아하, 아하하하!”
여민이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배를 잡고 웃었다. 얼마나 웃었는지 눈가에 눈물이 맺힐 정도였다.
잠시 후 겨우 웃음을 멈춘 여민이 소매로 눈물을 닦으며 말했다.
“이렇게 속물적인 선생님은 살면서 처음 봐요. 제안도 마음에 쏙 들고요.”
여민은 건네받은 신청서를 웃으며 잠시 내려다보다가, 다시 백수룡에게 돌려주었다.
“하지만 거절해야겠어요.”
“어째서?”
백수룡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미간을 찌푸렸다.
대충 둘러대는 대답으론 물러서지 않을 것 같았기에, 여민은 솔직하게 이야기했다.
“이미 금룡객잔에서 거액의 계약금을 받았거든요. 이 일을 관두려면 열 배의 위약금을 내야 해요.”
“열 배면…….”
그때, 방 밖에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홍매! 잠시 후면 네 차례다!”
홍매는 금룡객잔에서 무희로 활동하는 여민의 가명이었다.
여민이 놀라서 소리쳤다.
“잠깐만요! 화장만 고치고 바로 나갈게요!”
여민은 서둘러 화장을 고치기 시작하면서 두 사람에게 말했다.
“들어온 통로로 나가시면 돼요. 제안은 감사하지만, 오늘 얘긴 못 들은 거로 할게요. 이만 가 주세요.”
하지만 백수룡은 움직이지 않았다. 그가 팔짱을 끼며 물었다.
“위약금이 얼만데?”
“……말하고 싶지 않아요. 제가 돈을 좋아하는 건 맞지만요, 남한테 제가 빚지는 건 또 엄청 싫어하거든요.”
여민은 백수룡이 그 위약금을 내준다고 해도 거절할 생각이었다.
아무리 돈이 절실하게 필요했어도, 스스로에게 당당하지 못한 짓을 하면서까지 번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 순간 문이 벌컥 열리고 누군가가 성큼 들어왔다.
“홍매! 빨리 나오라니까!”
오 층에서 백수룡은 가로막았던 무사였다.
그는 매서운 눈으로 방 안을 둘러보더니 백수룡을 발견하곤, 무슨 일인지 알 만하다는 듯 혀를 찼다.
“아직도 있었나? 빨리 나가시오. 홍매는 곧 공연을 준비해야 하니까. 수작을 부릴 거면 때와 장소를 좀 가려야지…….”
“…….”
백수룡은 그 무사를 빤히 바라보다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안내해.”
“……뭐라?”
“금룡객잔 주인한테 안내하라고. 내가 지금 당장 만나야겠다.”
“하. 이자가 간이 부었나.”
사내는 황당하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젓더니, 성큼성큼 백수룡에게 다가왔다.
“어이. 기생오라비.”
백수룡 앞에 선 사내가 뺨에서 목으로 이어지는 지렁이 같은 흉터를 꿈틀대며 말했다.
“당장 여기서 꺼져라. 처맞고 울면서 나가기 싫으면.”
“어휴.”
백수룡이 손으로 코를 틀어막으며 한숨을 쉬었다.
“입에서 썩은 내 풍기지 말고, 너야말로 좋게 말할 때 안내하지?”
“이 새끼가!”
무사가 주먹을 휘두르려는 순간, 전광석화처럼 움직인 백수룡의 손이 사내의 목을 움켜쥐었다.
“컥, 커헉!”
“여러 번 말하게 하지 마라. 나도 기분이 별로 좋진 않으니까.”
백수룡의 두 눈이 은은한 붉은빛을 띠었다.
그 눈과 정면으로 마주한 사내는 본능적인 두려움에 몸을 덜덜덜 떨기 시작했다.
“사, 살려…….”
“금룡객잔의 주인한테 안내해.”
“예, 예. 이쪽으로 따라오십시오…….”
태도가 돌변한 무사는 곧장 돌아서더니 눈치를 보며 길을 안내했다.
백수룡이 그 뒤를 따르고, 헌원강도 얼떨결에 따라갔다.
여민도 황급히 뒤따라왔다.
“선생님! 뭐 하는 짓이에요!”
“위약금이 열 배라며? 솔직히 나도 그걸 다 내는 건 너무 호구 같거든. 그래서 협상을 좀 하려고.”
그 태연한 말에 여민은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것 같았다.
“협상이라니……. 금룡객잔의 주인이 어떤 사람인지나 알고 하는 말이에요?”
“뭐, 부자겠지?”
귀를 후비며 걷는 백수룡의 뒤를, 여민이 따라가며 발을 동동 굴렀다.
“이러다 정말 큰일 나요! 금룡객잔에 고수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르죠? 밉보이기라도 하면 쥐도 새도 모르게…….”
그녀가 발을 동동 구를 때마다, 화려한 궁장이 이리저리 흔들렸다.
특히 치마가 흔들리며 새하얀 다리가 드러났다.
‘이런 걸 입고 춤을 춘단 말이지.’
백수룡은 한숨을 내쉬더니, 옆에 있던 헌원강에게 말했다.
“원강아. 장포 좀 벗어 봐라.”
“예? 제가요?”
따악!
“그럼 내가 하리?”
괜히 한 대 얻어맞은 헌원강은 장포를 빼앗기듯이 백수룡에게 넘겼고, 백수룡은 그것을 여민에게 두르게 했다.
“잘 들어라. 경공을 펼치는 데 있어서 다리 관리는 무엇보다 중요하다. 앞으로 이런 옷, 이런 신발은 다 금지다. 알았냐?”
“……네.”
간단하게 설교를 끝낸 백수룡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안내하는 사내의 뒷목을 잡고 두 사람에게 말했다.
“먼저 갈 테니 너희는 천천히 따라와라.”
“예?”
휘익!
백수룡은 사내의 뒷목을 잡고 경공을 펼쳤다.
갑자기 아래에서부터 낯선 얼굴이 올라오자, 층계를 지키던 금룡객잔의 무사들이 급히 앞을 가로막았다.
“뭐 하는 놈이야!”
“여기가 어디라고…….”
그러나 그들이 미처 무기를 뽑기도 전에, 백수룡이 먼저 움직였다.
빠악! 빠바바박!
무기를 휘두르는 일은 없었다. 가로막는 무사는 모두 주먹으로 때려눕히며 순식간에 층을 돌파했다.
애초에 여민이 있던 곳이 오 층이었던 터라 칠 층까지는 금방이었다.
소란이 커지기 전에, 백수룡은 금룡객잔의 주인이 머무는 처소에 다다랐다.
“여, 여기로 들어가면 됩니다.”
“수고했다.”
퍼억!
겁먹은 사내의 뒷목을 쳐서 기절시킨 후, 백수룡은 문을 발로 뻥 걷어차며 안으로 들어갔다.
콰앙!
“여기 금룡객잔의 주인이 어느 분이십니까?”
마침 술을 마시고 있던 풍채 좋은 중년의 사내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누구신가?”
백수룡이 정중하게 포권을 취하며 자신을 소개했다.
“청룡학관 강사 백수룡이라 합니다. 저희 학생 하나가 신세를 지고 있어서 찾아뵙게 이렇게 되었습니다. 듣기로는 저희 학생이 이곳에서 불공정계약을 맺고 일을 시작했다고……. 어?”
청산유수처럼 말을 쏟아내던 백수룡은 갑자기 말문이 막혀 눈을 크게 뜨고, 금룡객잔 장주의 옆을 바라봤다.
마침 그와 눈이 마주친 상대도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백수룡을 바라보고 있었다.
두 사람이 동시에 입을 열었다.
“거상웅?”
“선생님?”
금룡객잔의 장주 바로 옆자리에서, 거상웅이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네가 왜 여기……. 어?”
백수룡의 시선이 이번에는 거상웅의 뒤쪽으로 향했다.
거기에도 아는 얼굴이 하나 있었다.
“야수혁?”
“……헐.”
거상웅의 뒤쪽에, 시중드는 하인처럼 서 있던 야수혁이 멍청한 소리를 냈다.
“니들이 왜 여기 있어?”
“……제가 더 하고 싶은 말인데요.”
그리고 그때, 뒤늦게 쫓아온 헌원강과 여민이 헐레벌떡 방으로 들어오며 소리쳤다.
“선생님! 같이 좀 가요!”
“제발 미친 짓 그만하고…….”
거상웅. 헌원강. 여민.
그리고 어쩐지, 이 조합에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일학년 야수혁까지.
금룡객잔 최상층에 모인 청룡학관의 문제아들을 쭉 둘러보며, 백수룡은 헛웃음을 지었다.
“이야. 이게 이렇게 다 모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