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 One Star Instructor Master Baek RAW novel - Chapter 145
144화. 악인곡으로 (3)
“언제부터 알고 있었어요?”
여민의 목소리가 갑자기 싸늘하게 변했다.
마치 가시를 잔뜩 세운 고슴도치처럼, 몸을 웅크리며 백수룡을 노려봤다.
그러나 백수룡은 제자의 날 선 반응에도 덤덤하게 대답했다.
“좀 됐지. 하루 두 번, 아침저녁으로 환(丸)으로 된 약을 몰래 먹던데.”
“…….”
여민도 조심한다고 조심했겠지만, 백룡장 안에서 백수룡의 눈을 속일 수는 없었다.
“병이 있는 거냐? 체질의 문제라거나. 평소에 수련하는 걸 보면 크게 아픈 곳은 없어 보이던데.”
“그건…….”
누구나 감추고 싶은 일이 있기 마련이고, 백수룡도 굳이 그런 걸 먼저 캐묻는 성격은 아니다.
하지만 그 상대가 무공을 가르치는 학생이고, 몸에 관련된 일이라면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고 보니, 이 녀석하고는 제대로 이야기해 본 일이 없었지.’
단순한 사내놈들과 달리, 여민과는 따로 긴 이야기를 나눠 본 적이 없었다.
여자이기에 불편해서는 아니었다.
단지, 여민이 먼저 거리를 두며 이런 자리를 피해 왔기 때문이었다.
“때가 좀 그렇지만, 오늘이 아니라면 또 언제 너한테 이런 걸 물어볼 수 있을지 몰라서 말이다.”
“…….”
“비밀이라면 지켜 줄 테니 말해 봐. 내가 도와줄 수 있을지도 모르잖아? 알다시피 내가 주화입마 치료 및 망나니 갱생 전문…….”
“……선생님이 신경 쓰실 일은 아니에요.”
여민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백수룡이 물끄러미 바라보자, 그녀는 애써 웃음을 지었다.
누가 봐도 억지웃음이었다.
“어차피 저희는 돈으로 엮인 고용 관계잖아요? 고용주가 피고용주에 대해서 너무 자세히 알려고 하면 부담스럽다고요.”
“…….”
다른 제자들과 달리, 여민이 무공을 익히는 이유는 오로지 ‘돈’ 때문이었다.
백수룡은 금룡객잔에서 무희로 일하고 있던 그녀에게 더 많은 월봉을 제안해 백룡장으로 데려왔다.
‘돈에 집착하는 것도 혹시 먹는 약과 관련이 있는 건가.’
여민의 머리카락 사이로 드문드문 보이는 하얀 새치를 보며 백수룡은 그런 생각을 했지만, 여민에게 직접 묻지는 않았다.
아무것도 묻지 말라는 듯한 그녀의 표정이, 어쩐지 너무나 절박해 보여서였다.
“천무제 경공 대회에 나가서 우승해 볼게요. 솔직히 자신은 없지만, 돈을 받았으니까 죽어라 노력할 거예요. 우승하면 선생님이 성과급도 많이 주기로 했으니까. 그럼 아무 상관없잖아요?”
잠시 대답을 고민하던 백수룡은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럼 상관없지.”
“…….”
백수룡의 대답에 순간 여민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
하지만 이내 평소대로 돌아왔다.
“휴. 다행이다. 계속 알려 달라고 질척대면 어쩌나 싶었는데.”
“넌 내가 그런 사람으로 보였냐?”
“아니면 말고요.”
혀를 내민 여민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백수룡이 의아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어디 가려고?”
“좀 씻고 오려고요. 아까 이 앞에 냇가가 있는 걸 봤거든요. 이틀이나 달렸더니 몸에서 얼마나 냄새가 나는지……. 설마 따라와서 훔쳐볼 생각은 아니죠?”
“어린애한테는 관심 없다.”
“몇 살이나 차이 난다고.”
입술을 삐죽거린 여민은 경공을 펼쳐 순식간에 멀어졌다.
잠시 멀어지는 여민의 뒷모습을 보던 백수룡은 두 팔로 머리를 받치고 바닥에 누웠다.
새카만 밤하늘에 별이 쏟아질 듯 가득했다.
“단순한 고용 관계라……. 그런 것치곤 후배를 구하려는 모습은 진심이던데.”
백룡장에 온 녀석들.
어떻게 이리도 사연 없는 녀석 하나가 없을까.
작게 한숨을 내쉰 백수룡은 잠시 눈을 붙였다.
* * *
그로부터 이틀이 더 지난 후.
일행은 적호방주의 흔적을 거의 따라잡았다.
“일각 안에 따라잡을 수 있겠어.”
중얼거린 백수룡은 제자들을 돌아보며 물었다.
“다들 몸 상태는?”
“괜찮습니다.”
“충분히 싸울 수 있어요.”
“얼마든지요.”
다들 나흘 만에 뺨이 홀쭉해졌다.
그동안 쉬지 않고 산을 타며 경공을 펼쳤다.
그 과정에서 몇 번이나 한계를 경험하고, 쓰러질 뻔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었다.
‘절반은 낙오할 줄 알았는데.’
백수룡은 뒤따라오는 제자들의 사정을 봐주지 않았다.
위지천을 구하는 것이 최선이었다. 그래서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렸다.
그럼에도 제자들은 끝까지 그를 따라왔다.
서로의 등을 밀어주고, 때론 부축하며, 이를 악물고 서로를 독려하면서 여기까지 왔다.
‘눈빛들이 전보다 훨씬 좋아졌군.’
무공을 수련함에 있어서, 기간이 절대적으로 중요한 것은 아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얼마나 절실한 마음을 가지고 집중하느냐.
그 기준에서 봤을 때 지난 나흘의 시간은, 네 명의 학생이 최고의 집중력을 끌어낸 시간이었다.
‘다들 잘했다.’
말로 하는 칭찬은 위지천을 구한 이후에 해도 늦지 않을 것이다.
백수룡은 모두에게 긴장하라는 의미에서, 더 사무적인 목소리로 말했다.
“적이 눈치챌 수도 있으니 여기서부터는 속도를 조금 늦춘다. 언제든 싸울 수 있도록 준비해.”
“예.”
잠시 후, 드디어 적호방주와 그의 어깨에 짐짝처럼 얹힌 위지천의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따라잡았다.”
백수룡이 스산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학생들의 눈빛 또한 그에 못지않게 날카롭게 빛났다.
일행은 적당한 거리를 두고 조용히 적호방주의 뒤로 따라붙었다.
“다들 오면서 이야기한 것 기억하지? 계획대로 간다.”
모두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속도를 늦추는 대신 몸을 싸우기 최적의 상태로 만들기 위해 근육을 풀고, 몸 안에 기를 돌렸다.
만약 적호방주가 위지천을 붙잡고 인질극을 벌이면 상황이 곤란해진다. 그래서 일행은 계획을 세웠다.
“시작해.”
백수룡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헌원강, 거상웅, 야수혁이 세 방향으로 나뉘어 달려나갔다.
타닷!
백수룡과 눈빛을 주고받은 여민은 나무 위로 뛰어올랐다. 가볍고 탄력적인 몸이 나뭇가지를 타고 순식간에 높이 올라갔다.
그리고 잠시 후,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산천초목을 흔들었다.
“멈춰라, 이 개새끼야!”
“호오?”
적호방주는 자신을 가로막은 청년을 보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헌원강이 흉신악살처럼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성큼성큼 다가왔다.
위지천이 그 목소리를 듣고 고개를 홱 돌렸다.
“서, 선배님!”
“위지천. 괜찮냐?”
헌원강뿐만이 아니었다.
좌우에서 나타난 거상웅과 야수혁이 한껏 기세를 피워 올리며 적호방주를 포위하듯 다가왔다.
“막내야. 구하러 왔다.”
“새끼. 잘난 척은 혼자 다 하더니 납치나 당하고.”
세 사람에게 포위당한 적호방주가 자리에 우뚝 멈춰 섰다.
그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슬슬 추격대가 붙을 거라고 생각은 했는데……. 설마 이런 어린애들이 가장 먼저 올 줄은 몰랐군.”
“어이. 뒈지기 싫으면 우리 후배 거기 얌전히 내려놔라!”
헌원강이 도를 들어 적호방주를 겨눴다. 살기가 뚝뚝 묻어나는 말투였다.
“그러지. 안 그래도 잠깐 쉬려고 했으니.”
적호방주는 피식 웃더니 위지천을 짐짝 내려놓듯 바닥에 내려놓았다.
털썩.
마혈이 짚인 위지천은 힘없이 바닥에 쓰러졌다.
위지천은 고개를 돌려 소리쳤다.
“도, 도망치세요! 선배님들만으로는 절대 이자를 이길 수 없어요!”
“……막내야. 선배들도 자존심이 있다.”
“까불지 마. 우리 셋으로 차고 넘치니까.”
헌원강, 거상웅, 야수혁 세 명이 서서히 포위망을 좁히며 다가왔다.
적호방주는 여유롭게 웃으며 그 모습을 바라봤다.
“정말로 너희들뿐이냐? 아니면 뭐가 더 있으려나?”
적호방주가 느물거리며 웃는 순간, 헌원강이 고함을 지르며 달려들었다.
“죽여!”
“으라아앗!”
“하아압!”
좌우에서 거상웅, 야수혁도 동시에 달려들었다.
그 움직임을 본 적호방주가 나직이 감탄했다.
“다들 나이에 비해 움직임이 좋구나. 하지만…….”
히죽 웃은 적호방주의 손톱이 피처럼 붉게 물들었다.
“오늘 내 손에 죽을 테니 더 이상 좋아지진 못하겠구나.”
적호방주가 정면에서 덤벼드는 헌원강을 향해 손톱을 휘두르는 순간이었다.
“죽엇!”
하늘 위에서 무수히 많은 암기가 쏟아졌다. 나무 위로 이동한 여민이 일제히 던진 것이었다.
“하하하! 내 이럴 줄 알았다! 이 앙큼한 녀석들!”
까가가강!
적호방주는 머리 위에서 날아온 암기들을 오른손으로 쳐 내고, 왼손으로는 헌원강의 도를 쳐 냈다.
그 순간 좌우에서 달려든 거상웅과 야수혁이 동시에 주먹을 휘둘렀다.
후우웅!
바람을 찢으며 날아온 두 개의 주먹이 시야를 가득 채웠다.
적호방주는 몸을 젖혀 공격을 피했다.
그는 동시에 네 명을 상대하면서도 여유가 있어 보였다.
“제법이구나!”
하지만, 적호방주는 한 명이 더 숨어 있을 거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그것도 상대가 이 정도 거리까지 기척을 숨기고 다가올 수준의 고수일 거라고는.
“웃기냐? 난 안 웃긴데.”
“……!!”
등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적호방주가 전력으로 몸을 틀었다.
그의 손톱에서 열 개나 되는 검기가 쏟아지며 바닥에 깊은 상흔을 남겼다.
촤아아아악!
하지만 백수룡은 이미 적호방주의 간격으로 파고든 이후였다.
두 사내의 눈이 마주치고, 백수룡이 씩 웃었다.
“넌 쉽게 안 죽인다.”
“……씨발.”
월영이 허공에 은빛 궤적을 그렸다.
푸화아악!
적호방주의 왼쪽 어깨에서 오른쪽 하복부에 붉은 선이 그어지더니 그곳에서 핏물이 터져 나왔다.
“커헉…….”
“아직 안 끝났어.”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나는 적호방주를 향해 백수룡이 성큼 다가갔다.
어느새 월영을 집어넣은 그는 흑룡편을 꺼내 적호방주의 전신 혈도를 짚었다.
파바바박!
점혈에 당한 적호방주는 풍 맞은 사람처럼 몸을 부르르 떨더니 털썩 무릎을 꿇었다.
백수룡은 비로소 몸을 돌려 위지천에게 다가갔다.
“서, 선생님…….”
“잠깐만 가만히 있어라.”
백수룡은 위지천의 점혈을 풀고, 일으켜 앉혀서 몸 상태를 살폈다.
“크게 다친 곳은 없어 보이는데. 괜찮냐?”
“…….”
위지천은 말없이 창백한 표정으로 그를 올려다봤다.
백수룡이 무언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낀 순간, 뒤에 있던 헌원강이 비명을 질렀다.
“선생님! 저 자식!”
“크흐흐흐…….”
점혈에 당해 쓰러진 줄 알았던 적호방주가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그의 가슴에 난 커다란 자상에서 흐르던 피가 스르륵 멎고, 상처마저 빠르게 아물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기괴한 일인데, 봉두난발의 머리가 순식간에 백발로 물들며 두 눈의 흰자위가 모조리 검게 변했다.
“네가 그 녀석이 말한 선생인 모양이지? 과연 강하구나. 강해.”
귀신처럼 변한 적호방주가 킬킬 웃었다. 목소리가 갈라져 듣기 싫은 소리가 났다.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이 강렬한 기파를 뿜어내는 상대를 보며, 백수룡은 어이가 없다는 듯 혀를 찼다.
“평화로운 무림? 개나 소나 다 마공을 익히는 세상이 퍽도 평화롭겠군.”
전혀 예상치 못한 것은 아니었다.
사람 한 명을 업은 채 나흘 동안 거의 쉬지도 않고 달리는 일은 ‘보통’ 사람의 체력으로 불가능에 가까웠으니까.
“너희는 천이를 데리고 물러나 있어.”
백수룡은 위지천을 제자들에게 맡기고 다시 앞으로 나섰다.
백발괴인으로 변한 적호방주가 활짝 웃으며 말했다.
“싸우기 전에 한 가지 알려주마. 아까 네 제자에게 독을 먹였다.”
“뭐?”
백수룡의 걸음이 우뚝 멈춰 섰다. 그 모습을 본 적호방주가 더욱 사악하게 웃었다.
“해독제 같은 건 없다. 오직 악인곡에 있는 마의(魔醫)만이 해독할 수 있는 독이지.”
“…….”
위지천의 창백한 표정이 그 말이 사실임을 증명했다.
백수룡과 제자들의 표정이 굳어지는 가운데, 적호방주가 어깨를 들썩이며 낄낄 웃었다.
잠시 후 백수룡이 입을 열었다. 그 목소리가 착 가라앉아 있었다.
“너한테는 해독제가 없다고? 정말이냐?”
“그래. 날 죽여 봤자 해독제 따위는 나오지 않는다. 그 녀석을 살리려면 악인곡에 데려가는 수밖에 없지.”
“…….”
“자, 다시 그 녀석을 내게 넘겨라. 십 년 안에 무림의 사흉(四凶)으로 만들어서 돌려보내 주마.”
적호방주는 지독할 정도로 위지천에게 집착했다. 그 광기에 학생들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하지만 백수룡은 아니었다.
그가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럼 널 죽이고 악인곡으로 가서 그 마의라는 놈을 족쳐야겠군.”
“크흐흐…… 뭐?”
적호방주의 웃음이 뚝 멈췄다. 잘못 들었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다 문득 바라본 백수룡의 눈동자.
‘무슨 눈이…….’
그 시리도록 투명한 눈동자를 본 순간, 적호방주는 온몸의 솜털이 곤두서는 것을 느꼈다.
“이 쓰레기들이…… 감히 누구 제자를 건드려.”
백수룡의 눈동자가 서서히 붉게 물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