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 One Star Instructor Master Baek RAW novel - Chapter 185
184화. 아버지들선우진은 비무대 주변으로 몰려든 엄청난 인파를 보고 안색이 창백하게 질렸다.
“헌원강 이 미친놈. 이렇게까지 판을 벌이다니…….”
비무 장소는 헌원강 쪽에서 정하겠다고 했을 때 순순히 승낙한 것이, 이렇게까지 일을 크게 만들 줄이야.
아무리 공개 비무라고 해도 그렇지.
헌원강은 비무 장소를 청룡학관이 아닌 도시 한복판, 그것도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모여드는 대로변으로 정했다.
‘도대체 관주님한테 허락은 어떻게 받은 거야?’
이해가 안 되는 것은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한눈에 보아도 값비싼 자재들로 지은 비무대와 대기실, 비무대 주변에 설치된 수백 석의 관객석을 살피며 선우진은 입을 떡 벌릴 수밖에 없었다.
‘이 비무대를 짓는 데 필요한 돈은 또 어디서 난 거고?’
오늘 한 번만 쓰이고 말 비무대였다.
그런데 웬만한 진각으로는 흠집도 나지 않을 단단한 바닥은 기본이고, 일부 관객석에는 값비싼 탁자와 의자까지 갖춰놓았다.
“줄을 서십시오! 비무 시작 반 시진 전부터 차례대로 입장하겠습니다!”
“초대권을 받은 분들께서는 이쪽으로 오십시오!”
여기에 관의 포졸들까지 동원돼, 혹시나 있을지 모를 사고를 대비하고 있었다.
눈앞의 광경에, 선우진은 마치 꿈을 꾸는 것 같았다.
“이 무슨 말도 안 되는…….”
후기지수의 비무가 아니라, 무림 백대고수 간의 생사결 정도는 되어야 이만한 사람들이 모여들 가치가 있지 않을까?
청룡학관이 매년 여름에 여는 청룡제도, 최근에는 이 정도까지 인파가 모이지는 않았다.
비무의 규모에 당황하기는 헌원강도 마찬가지였다.
“아니, 이게 이렇게까지 할 일이야?!”
선우진의 반대편 대기석에서 나온 헌원강도 비무대 주변을 둘러보고는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 옆에 있던 거상웅이 뿌듯한 표정으로 웃었다.
“우리 아버지가 네 이야기를 듣더니 돈을 좀 쓰셨다.”
“선배. 돈이 그렇게 썩어나면 그냥 나한테 줘.”
“그게 내 돈이냐? 다 금룡상단 돈이지.”
백룡장 제자들에겐 별것 아닌 대화였지만, 멀리서 그들의 대화를 몰래 엿들은 선우진의 눈은 찢어질 듯 커졌다.
‘금룡상단이라고?’
천하십대상단의 이름이 왜 여기서 나온단 말인가!
하지만 놀랄 일은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음? 청천 포두님. 이건 또 뭐예요?”
인상이 얼음처럼 차가운 포두 차림의 사내가 헌원강에게 다가오더니, 포졸들을 시켜 커다란 화환과 서찰을 전달했다.
“지부대인께서 보내신 선물이다. 그리고 이건 승상께서 보내신 서찰이고…….”
헌원강이 깜짝 놀라서 되물었다.
“어? 공손 할배가 편지를 보냈어요?”
“……조금 더 존경심이 들어간 표현을 쓰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에이. 뭐 우리 사이에. 그런데 할배가 저 오늘 비무하는 건 어떻게 알았대요?”
청천이 한숨을 푹 내쉬며 대답했다.
“백수룡이 서찰로 소식을 알린 모양이다. 도시 한복판에 비무대를 설치할 수 있도록 허락받으려고 말이다.”
청천은 ‘갑자기 승상한테 서찰을 받은 지부대인이 자기 목이 날아가는 줄 알고 오열했다더라.’라는 이야기는 전하지 않았다.
“선생님이요? 진짜 동네방네 소문을 다 냈네.”
한숨을 내쉰 헌원강은 그 자리에서 공손수가 보낸 서찰을 읽었다.
짧은 안부 인사와 꼭 이기라는 응원의 말이 적혀 있었다.
아울러, 만약에 지면 자신이 복학해서 복수해 주겠다는 농담까지.
“이 할배도 참…….”
헌원강의 입가에 훈훈한 미소가 번졌다.
하지만 그 이야기를 전부 엿들은 선우진으로선 충격과 공포 그 자체였다.
‘스, 승상이라고!?’
금룡상단도 모자라서 승상이라니!
중원에서 가장 돈이 많은 사람과 가장 권력이 큰 사람이 헌원강의 인맥이란 말인가?
그게 사실이라면, 선우세가의 인맥을 모두 동원해도 비교조차 안 되는 인맥이었다.
“후우…….”
선우진은 거칠어지려는 호흡을 정리했다.
‘진정하자. 이건 놈이 노린 고도의 심리전일 거야.’
금룡상단? 승상?
상식적으로, 아무리 생각해 봐도 말도 안 되는 헛소리였다.
비무가 시작되기 전에 자신을 심리적으로 흔들려는 수작이 분명했다.
……분명 그럴 것이다.
선우세가의 가주와 가솔들이 도착한 것은 그때였다.
“진아!”
“아, 아버님? 여긴 어떻게 아시고?”
선우진은 갑자기 나타난 아버지를 보고 크게 당황했다.
선우 가주의 얼굴에 화색이 만연했다.
인파로 가득한 비무대 주변을 둘러본 그가 아들과 꼭 닮은 미소를 지으며 다가왔다.
“어떻게 알긴. 초대장을 받아서 왔단다. 헌데, 설마 이 정도로 규모가 클 줄은 몰랐구나. 허허!”
“……누가 초대장을 보냈습니까?”
선우진은 불안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는 가문에 초대장을 보낸 적이 없었다. 애초에 그만한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설마…….’
가주의 입에서 나온 대답은 선우진의 예상과 거의 비슷했다.
“백수룡 선생님이라는 분께 받았다. 네가 주인공인 무대이니 꼭 참석해 달라고 하시더구나. 허허. 감사하게도 가장 잘 보이는 곳에 자리를 마련해 주셨어. 내 당장 감사 인사를 드려야겠다. 그 선생님은 어디에 계시느냐?”
“백수룡 그자가…….”
“어허! 어찌 선생님의 함자를 함부로 부르느냐!”
깜짝 놀란 선우 가주가 목소리를 높이며 주위를 둘러봤다.
선우진이 나직한 목소리로 가주를 불렀다.
“아버님.”
“응? 왜 그러느냐?”
선우진은 선우세가와 청룡학관의 거리를 가늠했다.
비무가 결정된 날을 기준으로 삼으면, 특급 전서구로 초대장을 보내야 오늘 날짜에 맞춰 가주와 가솔들이 도착할 정도로 거리 차이가 있었다.
그 말은 즉…….
“아무래도, 상대가 저를 아주 만만히 보는 것 같습니다.”
“뭐라?”
마냥 사람이 좋게 보이던 선우 가주의 표정에 살짝 금이 갔다.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었다.
선우진의 성격은 아버지의 성격을 그대로 닮은 것이었다.
[전음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선우진은 헌원강과 자신 간에 있었던 사건을 짧게 설명했다.
[감히!]예상대로 선우 가주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그가 힐긋 헌원강을 보며 전음을 보냈다.
[저 녀석의 무공 수위는?] [제법 강한 편이지만 제 적수는 아닙니다. 팽사혁이 떠나기 전에 싸워서, 열 합도 버티지 못하고 패했습니다.]헌원강이 대연무장 한복판에서 팽사혁에게 무참히 패배한 것은 유명한 이야기였다.
[열 합이라……. 너는 팽사혁을 상대로 얼마나 겨룰 수 있느냐?]이길 수 있냐고는 묻지 않았다. 애초에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선우진이 입술을 살짝 깨물며 대답했다.
[팽사혁과 마지막으로 겨루었을 때, 오십 합 이상을 접전으로 겨루었습니다.]그 말에 선우 가주는 안심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열 합과 오십 합.
짧은 시간에 결코 극복할 수 없는 격차였다.
[오히려 잘되었다. 오늘 일을 기회로 삼아 무림에 네 이름과 가문의 명성을 드높이면 될 것이다.] [예.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부자가 스산하게 눈을 빛냈다. 독을 숨긴 두 마리 뱀처럼 마주 보며 은밀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버님. 제가 놈을 좀 거칠게 대해도 되겠습니까?] [아무렴. 팔 하나 정도는 잘라야지.]선우 가주는 아들의 말을 단번에 이해했다. 그의 입가에 스산한 미소가 맺혔다.
[뒷일은 가문의 힘으로 수습할 터이니 걱정 말거라. 저 주제도 모르는 놈에게 선우가의 도를 새겨 주도록 해라.]가문의 허락까지 받았겠다, 선우진에겐 더 이상 거리낄 것이 없었다.
“예. 반드시 그렇게 하겠습니다.”
헌원강을 노려보는 선우진의 눈에 살기가 가득했다.
* * *
웅성웅성.
금룡상단에서 마련한 관객석은 순식간에 가득 찼다.
미처 자리에 앉지 못한 관객들은 비무대 주변으로 빙 둘러서 섰다. 어찌나 사람이 많은지 발 디딜 틈도 없을 정도였다.
“아, 쫌만 더 들어갑시다!”
“밀지 마시오! 나도 안 보인단 말이오!”
“떡 사세요! 비무 보면서 먹기 좋은 달착지근한 떡입니다!”
그것으로도 모자라, 비무대 인근의 건물이란 건물의 지붕에는 무공을 배운 무인들이 올라가 자리를 잡았다.
무인들은 안법을 단련한 덕에 멀리서도 비무를 관람하는 데 큰 무리가 없었다.
“거참. 새파란 후기지수들의 비무가 뭐라고 이렇게 요란인지…….”
“그래서 더 궁금한 거 아닌가? 이만큼 꾸며 놨으면 뭔가 있기는 하다는 소리 아니겠어?”
“요즘 청룡학관에서 온갖 이야기가 흘러나오는군.”
“올해는 정말 다른 것 같기도 하고.”
무인들은 지붕 위에 모여 이런저런 대화를 나눴다.
누가 이길지 승패를 가늠하기도 하고, 최근 청룡학관의 행보가 심상치 않다는 이야기도 나눴다. 간간이 ‘청룡신협’이란 별호도 언급되었다.
하지만 모두가 가벼운 마음으로 비무를 구경하러 온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저쪽은…….”
“건드리지 말자고. 분위기 살벌한데.”
인상이 사나운 중년 사내가 홀로 앉아 있었다.
모진 풍파를 겪으며 살아온 분위기의 사내였다. 멀리서 달려온 듯 옷은 먼지투성이였고, 거뭇한 수염은 제대로 정리되지 않았다.
사내의 무거운 분위기에, 웬만큼 간이 큰 무인들도 가까이 다가가지 않았다 방금까지는 그랬다.
“옆에 좀 앉아도 되겠소? 근처에 여기 말고 자리가 마땅치 않아서.”
옆에서 들려온 소리에 사나운 인상의 중년인이 돌아봤다. 그러곤 상대를 보자마자 생각했다.
‘재수 없을 정도로 잘생겼으면서, 상당한 고수로군.’
보자마자 잘생겼다는 말부터 나올 정도의 남자였다.
자세히 보니 자신과 또래의 나이로 보였는데, 나른한 미소와 어딘가 달관한 분위기가 느껴지는 미중년이었다.
눈가의 잔주름마저도 세월이 더해 준 매력처럼 느껴졌다.
인상이 사나운 중년인이 무뚝뚝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앉으시오.”
“고맙소이다.”
두 중년인은 적당한 거리를 두고 나란히 앉았다.
미중년이 품에서 호리병과 잔을 꺼내더니, 인상이 사나운 중년인에게 물었다.
“한잔하시겠소?”
“괜찮소이다.”
“혼자 마시면 적적한데…….”
“술 마실 기분이 아니외다.”
인상이 사나운 중년인은 비무대 위에 시선을 고정하며 단호하게 말했다.
미중년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고 혼자 한 잔을 마셨다. 그리고 다시 사나운 인상의 중년인에게 말을 걸었다.
“아들을 보러 오셨소?”
“그걸 어떻게…….”
사나운 얼굴의 중년인이 고개를 홱 돌리며 물었다.
자신이 아들을 보러 온 것은 아무도 모른다.
그런데 어찌 이 자가 그 사실을 안단 말인가!
눈이 마주친 미중년이 피식 웃었다.
“나도 아들을 보러 왔거든. 동병상련이랄까. 형장 얼굴에 아들 걱정이 가득한 것 같아서 말이오.”
“설마…….”
사납게 생긴 중년인의 표정이 심각해지자, 미중년이 고개를 저었다.
“걱정 마시오. 내 아들은 당신 아들의 비무 상대가 아니니까.”
“…….”
미중년은 긴 손가락을 뻗어 이제 막 비무대 위에 올라온 헌원강을 가리켰다.
“저 아이가 당신 아들 맞소?”
“당신 점쟁이요? 저 아이가 내 아들인 건 어떻게 아셨소?”
“빼다 박았구먼, 뭘. 인상이 험악한 건 집안 내력인가 보오.”
“……그러는 댁의 아들은?”
그 질문에 미중년이 기분 좋게 웃으며 말했다.
“청룡학관 강사요. 저어기 바쁜 척하면서 빈둥대는 녀석이 내 아들이지.”
미중년이 손가락으로 비무대 주변을 가리켰다.
새파란 무복을 입은 훤칠한 미청년이 한눈에 들어왔다.
‘이쪽은 아들도 잘생겼군.’
사나운 인상의 중년인은 괜히 자기 아들에게 미안해졌다.
“헌데 나는 그렇다고 치고, 형장은 왜 이런 데서 구경하는 거요? 아들한테 가서 응원이나 좀 해 주지.”
“…….”
미중년은 자연스럽게 술잔을 권했다.
아들 가진 아비라는 동질감 때문일까. 사나운 인상의 중년인은 더 이상 거절하지 않았다.
한입에 술잔을 털어 넣은 그가 한숨을 푹 쉬었다.
“나는 못난 아비이기 때문이오.”
“음?”
사나운 인상의 중년인이 씁쓸한 표정으로 한숨을 쉬었다.
“가전무공이 유실되어 아들에게 제대로 된 무공을 가르치지 못했소. 천고의 자질을 타고났으면 뭘 하나? 그래서…… 아들이 삐뚤어진 걸 알면서도 훈계 한번 제대로 못 했소. 학관에 찾아와 보지도 못했고.”
“거참. 안 그렇게 생겨서 은근히 아들 자랑이로군.”
“해 준 것도 없는 아비가 어찌 가까이 가서 응원을 한단 말이오. 행여나 비무에서 지면 나를 원망할 텐데…….”
멀리서 아들을 지켜보는 아버지의 눈에 미안함과 안타까움이 가득했다.
미중년이 혀를 찼다.
“별 시답잖은 걱정을 다 하는군.”
“뭣이?”
“나 역시 못난 아비요. 아들 녀석이 어려서부터 몸이 약했거든. 천하를 다 뒤졌지만, 아들의 몸을 고쳐 줄 의원을 찾지 못했소. 그래서 평생 품에 안고 살려 했지.”
“…….”
“그러다 한 방 먹었지 뭐요? 무림에 나가겠다는 녀석에게 날 이기면 보내 주겠다고 했는데, 세상에나! 녀석이 나를 때려눕히지 뭐요!”
미중년은 술잔을 들이키며 껄껄 웃었다.
백수룡을 바라보는 그의 눈빛에 신뢰와 애정이 가득했다.
“애들은 무섭게 크더이다. 그 작았던 녀석이, 어느새 품 안에 두기에는 감당이 안 될 만큼 말이오.”
“…….”
“형장 자식도 그럴 거요. 내 미리 축하주를 드리지.”
“고맙소이다.”
두 중년인은 그제야 통성명을 나눴다.
“헌원수요.”
“백무흔이오.”
두 아버지가 대화를 나누는 동안, 비무대 위에서는 두 학생을 소개하고 차례대로 올라왔다.
관중석에서 기대에 찬 함성이 터져 나왔다.
“곧 시작하려는 모양이오.”
헌원수가 자세를 바로 했다.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백무흔이 잔을 권하며 물었다.
“한잔 더 하시겠소?”
“그만 마셔야겠소. 비무가 끝날 때까진 목구멍에 뭐가 넘어갈 것 같지 않으니.”
헌원수는 마른 침을 꿀꺽 삼켰다.
상대는 선우세가의 후계자라고 했다.
자질이야 자신의 아들이 월등하겠지만, 익힌 무공의 차이가 컸다.
‘불완전한 진천도만으로는 한계가 있거늘…….’
헌원강을 바라보는 아버지의 두 눈에 걱정이 가득했다.
잠시 후 비무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헌원수는 비명을 지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