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 One Star Instructor Master Baek RAW novel - Chapter 254
253화. 독각마룡 (1) 약 한 시진 후.
눈탱이가 밤탱이가 된 산적들이 구일채로 집합했다. 그 숫자가 얼추 이백이었다.
백수룡은 산적들을 이끌고 온 제자들을 바라보며 미간을 좁혔다.
“저 녀석들…….”
산적들을 ‘설득’하는 과정이 꽤나 만족스러웠는지, 하나같이 입가에 기분 좋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동안 쌓인 게 많았던 모양.
“큰형님! 저희 왔습니다!”
헌원강이 멀리서부터 손을 흔들며 외쳤다. 백수룡은 부끄러운 제자의 시선을 피하며 모른 척했다.
잠시 후, 제자들이 다시 한자리에 모였다.
백수룡은 혹시나 하는 노파심에 그들에게 물었다.
“죽이거나 하진 않았지?”
이번 작전은 산적들의 자발적인 협조를 얻어야 의미가 있었다.
약간의 손찌검 정도야 괜찮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피를 봤다면, 저들을 공포로 잠시 강제할 수는 있어도 제대로 된 협조를 얻기는 어려웠다.
녹의수사의 이름을 내건 야수혁도 곤란해졌을 것이다.
다행히 그런 일은 없었다. 다들 야수혁의 입장을 배려했던 것이다.
“에이. 우릴 뭐로 보고.”
“일단 공문부터 보여 주고, 못 믿겠다고 해서 실력으로 믿게 해 줬죠.”
“두목만 좀 쥐어패니까 바로 믿던데요?”
“저 녀석들. 우릴 완전히 녹림맹의 고수로 생각하더라고요.”
산적들은 갑자기 나타난 청룡학관 학생들을 같은 녹림이라고 철석같이 믿었고, 그들의 무공 실력을 보고 난 후에는 그들이 가져온 녹림맹의 공문 역시 진짜라고 믿을 수밖에 없었다.
빠른 시간 안에 산적들을 데려올 수 있었던 건 녹림맹의 공문과 제자들의 무공, 두 가지의 적절한 조화라고 할 수 있었다.
다만…….
조용히 수군거리는 산적들 사이에서 ‘녹림오마’니 ‘녹림오귀’니 하는 말이 들려오는 걸 보면, 제자들이 어지간히 무섭게 ‘설득’한 모양이었다.
절로 한숨이 나왔다.
“정파 후기지수란 놈들이 잘하는 짓이다.”
이런 놈들을 대체 누가 가르쳤는지…….
아, 내가 가르쳤지.
살짝 헛기침을 한 백수룡은 야수혁을 돌아보며 말했다.
“다 모인 것 같으니까, 가서 계획을 설명해 줘.”
“예? 제가요?”
야수혁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곳으로 산적들만 데려오면, 나머지는 백수룡이 알아서 해 줄 거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저는 싸움이나 할 줄 알지, 말주변도 별로 없고…….”
“이건 네가 직접 해야 한다.”
백수룡이 야수혁의 말을 끊었다. 그리고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우리는 결국 외부인이야. 힘으로 저들을 제압하는 건 쉬워도, 저들이 진심으로 협력하도록 이끄는 건 같은 녹림도인 너만 할 수 있는 일이다.”
“…….”
무공과는 관련이 없지만, 이것 또한 하나의 수업이었다.
스스로 시작한 일을 끝까지 마무리 짓는 것.
백수룡은 야수혁의 커다란 등을 밀어주며 말했다.
“걱정 말고 해 봐. 정 못하겠다 싶으면 내가 도와줄 테니까.”
“……네.”
고개를 끄덕인 야수혁이 큼직한 바위 위로 휙 뛰어올랐다.
“후우…….”
야수혁은 자신에게 모여드는 시선에 잠시 호흡을 가다듬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생각을 정리하면서, 한자리에 모인 이백에 가까운 산적들을 바라봤다.
못마땅한 표정이 많았다.
여기 있는 산적들 대부분은 녹의수사의 이름이 걸린 공문 때문에, 또는 난데없이 등장한 고수들이 무서워서 어쩔 수 없이 따라온 자들이었다. 마음속에 불만이 가득할 것이다.
‘차라리 당장 독각사랑 싸우는 게 낫겠어.’
꽉 쥔 주먹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그냥 주먹을 휘두르면 간단히 해결될지도 모른다. 목숨을 두고 협박하면, 대부분은 억지로라도 시키는 대로 할 테니까.
하지만 다른 사람은 몰라도 자신이 그래서는 안 된다. 그건 녹림을 천대하고 무시하는 자들과 다를 바가 없는 짓이었다.
‘이들 모두가 녹림의 형제들이다.’
그 순간, 야수혁은 자신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깨달았다.
쿵!
발을 구른 야수혁이 말했다.
“나는 녹의수사의 아들 야수혁이오.”
야수혁의 첫마디를 듣는 순간, 백수룡은 팔뚝에 살짝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저 녀석. 타고났군.’
방금까지 잔뜩 긴장했던 소년은 온데간데없었다.
마치 거대한 호랑이 한 마리가 아래에 모인 짐승들을 내려다보는 듯했다.
그것은 무공의 재능과는 전혀 다른 기질.
타고난 지배자의 기질이 드러나고 있었다.
“이미 들었겠지만, 독각사라는 마물이 구일채를 덮쳐서 많은 형제들이 죽고 다쳤소. 모두 주위를 한번 둘러보시오.”
산적들은 야수혁이 시키는 대로 주위를 둘러봤다.
독각사에게 공격당한 구일채의 모습이 보였다.
시체를 치우고 파괴된 흔적을 지웠다지만, 그 처절했던 싸움의 흔적은 지우지 못한 핏자국과 함께 그대로 남아 있었다.
야수혁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두 눈으로 직접 보시오. 그들이 싸우고 죽어 간 흔적을.”
……꿀꺽.
침묵 속에서 누군가가 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야수혁은 묵념을 하듯 잠시 눈을 감았다가 천천히 떴다.
그리고 굳은 표정으로 천천히, 하고 싶은 말을 정리하면서 입을 열었다.
“빨리 놈을 잡지 않으면, 곧 다른 산채도 습격당할 것이오. 그게 어디가 될지는 모르지.”
“형제들을 이렇게 한자리에 모은 것도 그 때문이오. 또 다른 피해가 생기기 전에 대비하기 위해서.”
“그 과정에서 약간의 충돌이 있었지만, 이해해 주길 바라오.”
야수혁은 달변가가 아니었다. 목소리는 거칠었고, 사용하는 단어는 투박했다.
하지만 사람들을 집중시키는 힘이 있었다.
그 순간, 백수룡의 눈에는 야수혁의 얼굴 위로 맹호악이 겹쳐 보였다.
녹림의 역사상 가장 강하고 패도적이었던 지배자.
녹림투왕은 말 한마디로 녹림 72채의 산적들을 지옥 불에 뛰어들게 할 수 있는 사내였다.
오죽하면 혈교가 녹림투왕의 수하들을 꼬드겨 내부에서 반란을 일으키도록 했던 게, 녹림의 세력이 혈교를 위협할 정도로 커질까 봐 우려해서였을까.
“독각사란 놈은 아주 위험하오. 그래서 수색만 부탁할 생각이오. 놈의 흔적을 찾아주면, 나와 여기 있는 고수들이 놈을 쳐 죽이겠소.”
야수혁은 그 기질이 맹호악과 닮았다.
물론 아직 둘을 비교하는 것은 어불성설이었다.
맹호악이 말 그대로 산중호걸(山中豪傑)이었다면, 야수혁은 아직 이빨도 다 자라나지 않은 새끼 호랑이에 불과했다.
하지만 새끼도 호랑이는 호랑이였다.
“녹림은 결코 은원을 잊어선 안 된다! 나는 양부이신 녹의수사에게 이렇게 배웠소.”
“그 값을 상대에게 확실하게 셈해 주지 않으면, 녹림은 영원히 천대와 멸시를 받을 것이라고 하셨소.”
“또한 우리가 아무리 천대받고 무시당하더라도, 녹림의 형제들끼리는 서로 도와야 한다고 배웠소.”
야수혁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듣는 이들의 가슴에 비수처럼 박혔다.
강제로 끌려와 불만이 가득하던 눈빛에 부끄러운 감정이 스며들고, 대충 시키는 대로 시간이나 때우다가 돌아가려 했던 마음은 용암처럼 뜨겁게 끓어 올랐다.
쿵-!
다시 한번, 야수혁이 발을 굴렀다.
“맹세하건대, 나는 녹림의 형제들을 죽인 뱀 새끼를 찾아 토막 내고, 그 고기를 삶아 먹을 거요. 아무도 돕지 않더라도, 나 혼자서라도 죽어 간 형제들을 기릴 것이오.”
“……!!”
“……!!”
아직 앳된 흔적이 남아 있는 젊은 녹림도의 선언이, 듣는 이들의 가슴 속에서 무언가가 울컥하게 했다.
“젠장! 나도 돕겠소!”
산적들 중 더 이상 참지 못한 누군가가 외쳤다.
처음이 어려울 뿐, 그다음부터는 봇물 터지듯 연이어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녹림은 은원을 잊지 않는다!”
“은혜는 열 배로 갚고, 원한은 백 배로 갚아야 녹림이지!”
“반드시 그 뱀 새끼를 찾아냅시다!”
“형제들의 복수를 합시다! 우리 구역은 우리가 지켜야지!”
산적들은 어느새 이 젊은 지배자에게 진심으로 열광하기 시작했다. 감정이 북받친 녹림의 사내들이 일제히 함성을 내질렀다.
우와아아아!
함성이 어마어마했다. 무기를 뽑아 든 산적들은 목이 터지도록 함성을 질렀다.
캬앗!
야수혁 주위를 맴돌던 은호가 폴짝 뛰어올라 그의 어깨 위에 올라섰다. 그리고 산적들과 함께 포효했다.
낯선 야수혁의 모습에, 청룡학관 선배들과 동기들은 팔에 돋은 닭살을 쓸어내렸다.
“저 녀석…….”
“우리가 알던 야수혁이 아닌 것 같아.”
“……나 지금 소름 돋았어.”
하지만 누구보다 놀란 사람은 백수룡이었다.
“허어…….”
산적들에게 계획만 제대로 설명해도 성공이라 생각했다.
자신이 아는 야수혁은 말재주가 뛰어난 녀석이 아니었으니까.
그런데 야수혁은 보란 듯이 이백여 명의 산적을 휘어잡았다.
저들은 이제, 야수혁의 명령에 불구덩이라도 뛰어들 기세였다.
백수룡은 과거 녹림투왕의 모습을 떠올렸다.
“……맹사부. 내가 당신의 후인을 찾은 것 같소이다.”
단순히 무공을 전수한 후계자를 말하는 것이 아니었다.
녹림십팔식의 오의를 익힌 건 거상웅도 마찬가지였으니까.
“당신이 꿈꾼 평생의 숙원을 이뤄 줄 녹림의 후계자를 말이오.”
어쩌면 이 순간, 새로운 녹림투왕의 탄생을 지켜보고 있는 것일지도 몰랐다.
* * *
이백여 명의 산적이 독각사와 은호가 사라진 마지막 흔적을 중심으로 천라지망을 펼쳤다.
“반드시 찾아내라!”
“개미 새끼들이 기어간 흔적까지 찾아내!”
따로 명령을 내릴 필요도 없었다. 각 산채의 채주들이 알아서 구역을 나눴고, 산을 샅샅이 뒤지기 시작했다.
녹림의 형제들을 죽인 원수를 찾는 일이었다. 눈이 벌게진 녹림도들은 식음을 잊고 몰두했다.
그렇게, 산적들이 집요하게 산을 뒤져 댄 결과.
“찾았습니다!”
수색을 시작한 지 이틀 만에 독각사가 숨은 곳을 찾아냈다.
“저 아래에 숨겨진 연못이 하나 있는데, 그 주변으로 해괴한 짐승들이 하나둘 모여들고 있습니다.”
“해괴한 짐승들이라니?”
“팔이 넷인 성성이, 눈동자가 푸른 곰, 꼬리가 여럿인 여우도 봤습니다. 생전 처음 보는 놈들입니다. 대체 지금까지 어디에 숨어 있었던 건지…….”
“영물들이로군.”
조용히 듣고 있던 백수룡이 대화에 끼어들었다.
그동안 산적들이 많은 흔적을 찾아냈지만, 전부 독각사와는 상관없는 것들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뭔가 달랐다.
영물들이 모여드는 연못이라니. 그런 일이 자연적으로 생길 리는 없었다.
“거기가 어디야? 안내해.”
백수룡은 산적들을 따라 연못 앞에 도착하자마자 느꼈다.
‘이곳이다.’
안개 낀 연못 안에서 거대한 기가 꿈틀거리는 것이 느껴졌다.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강렬한 마기(魔氣).
그리고 연못 주변을 눈자위가 검게 변한 짐승들이 지키고 있었다.
크르르르……
크르르르……
연못을 둘러싼 짐승의 숫자는 수십 마리가 넘었고, 점점 늘어나고 있었다.
‘영물로 보이는 놈들만 넷이군.’
평생 하나의 영물만 만나도 기연이라고들 하는데 네 마리면, 이 일대에 있는 영물이 전부 모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저게 대체…….”
“다 어디서 나온 거야?”
백수룡을 따라온 제자들의 표정도 하나같이 굳었다.
짐승들이 내뿜는 기운이 만만치가 않았다.
연못 가까이 인간들이 접근하면 당장이라도 덤벼들 기세였다.
백수룡이 야수혁에게 말했다.
“녹림도들에게 대형을 갖추라고 해. 섣불리 움직이지 말라고도 하고.”
“예!”
그때였다.
안개 낀 연못 전체가 부글부글 끓어오르더니, 그 중심에서 물줄기가 하늘로 폭발했다.
푸화아악!
물방울이 사방으로 비산했다. 연못에서 거대한 존재가 솟구쳐 올랐다. 순간적으로 하늘이 어두워졌다.
하늘을 올려다본 녹림도들이 겁에 질려 뒷걸음질을 쳤다. 일부는 다리가 풀려 주저앉기까지 했다.
“뭐야 저게…….”
“배, 뱀이라고 하지 않았어?”
저렇게 거대한 것을 뱀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하늘에 떠 있는 놈은 몹시 신령스러운 동시에, 새카만 몸에서는 불길한 기운이 흘러나왔다. 뿔의 길이만 해도 육 척이 넘었다.
백수룡은 구일채의 부채주를 불러서 물었다.
“네가 본 독각사가 저놈 맞아?”
“비, 비슷하긴 한데 저것보다 훨씬 작았습니다. 두 배는 더 커졌습니다…….”
“……탈피라도 했나 보군. 저건 더 이상 독각사 따위가 아니야.”
백수룡은 오래전에 읽은 책에서 저것과 비슷하게 묘사된 존재를 떠올렸다.
“독각마룡…….”
승천에 실패한 이무기가 마물이 되고, 그 마물이 인간과 영물을 잡아먹으며 더욱 강해진 괴물이었다.
크롸라라라라라라!
독각마룡이 포효하자, 연못을 둘러싼 짐승들의 눈이 뒤집혀 인간들을 향해 달려오기 시작했다.
그에 맞서, 백수룡이 앞으로 나서며 외쳤다.
“대형을 갖춰라! 여기서 못 막으면 다 죽는다!”
곧, 싸움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