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 One Star Instructor Master Baek RAW novel - Chapter 258
257화. 은호
백수룡은 격체전력이 끝나자마자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우리를 이렇게 만든 건 당신이야.
그는 꿈을 꾸었다.
피투성이가 된 옛 제자들이 감정 없는 눈으로 백수룡을 바라보았다. 그의 손은 제자들의 피로 얼룩져 있었다.
‘너희만은 내 손으로 죽이고 싶지 않았어.’
백수룡은 피 묻은 손을 물로 씻어 내고자 했다. 하지만 아무리 씻어도 씻겨 나가지 않았다. 오히려 비릿한 혈향만 점점 진해질 뿐이었다.
‘이건 꿈이야.’
백수룡은 고개를 숙여 옛 제자들의 시선을 외면했다. 이 악몽에서 빨리 깨어나고 싶었다.
차라리 혈마와 싸우는 꿈이었다면 이렇게까지 괴롭지는 않았을 것이다.
-우리를 봐. 우리를 이렇게 만든 건 당신이야.
울컥한 백수룡은 고개를 들어 옛 제자들을 노려봤다.
‘빌어먹을! 다 끝난 얘길 가지고 나보고 어쩌라는 거…….’
그 순간, 백수룡의 눈동자가 거세게 흔들렸다.
옛 제자들은 어느새 백골로 변해 있었다. 텅 빈 눈구멍에서 벌레가 기어 나왔다. 삐걱거리며 다가온 제자들이 사방에서 그를 포위했다.
-당신이 우릴 이렇게 만들었어.
-당신은 우릴 이용하고 버렸어.
-우리에게 거짓말을 했어.
-믿었는데, 정말 믿었는데…….
백수룡은 주저앉아 몸을 웅크렸다. 두 손으로 머리를 감쌌다. 온몸이 사시나무처럼 떨렸다.
‘나는…….’
당시에는 아무런 죄책감도 느끼지 않았다.
살아남기 위해서라면 어린아이들이 아니라 그 어떤 것이라도 이용할 수 있었으니까.
남을 속이고, 훔치고, 강탈하고, 죽여야만 혈교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으니까.
고문이나 다름없는 훈련으로 어린아이들의 감정과 인격을 말살하고, 힘들다고 우는 아이의 뺨을 때리고, 지쳐 쓰러진 아이를 걷어차고, 명령에 따르지 않으면 죽이겠다 협박하고…….
그 녀석들에게 단 한 번이라도 웃어 주거나 따뜻하게 대해 준 적이 있었던가?
-교관님…… 도와주세요…….
-교관님…… 저 너무 아파요…….
-잠깐만 쉬면 안 될까요……?
-제발 저희를 버리지 마세요…….
이건 꿈이다.
백수룡의 오랜 죄책감이 만들어 낸 꿈.
스스로도 잘 알고 있었다.
어쩌면 저 녀석들 중에는 죽지 않고 살아남은 아이가 있을지도 모른다. 당시 백수룡은 혈마와 싸우느라 정신이 없었으니까. 사부들과 맞붙은 저 녀석들이 정확히 어떻게 되었는지까지는 보지 못했다.‘전부 큰 상처를 입은 건 보았지만…….’
그 순간, 배경이 뒤바뀌었다.
옛 제자들의 어린 시절이다.
지금 청룡학관에서 가르치는 제자들보다 훨씬 어린아이들.
하나같이 몸이 상처투성이다. 대부분 백수룡 자신이 만든 것이었다.
-교관님!
-교관님…….
자신을 바라보는 아이들의 눈에는 두려움과 존경심이 뒤섞여 있었다.
‘이리 오거라.’
백수룡은 어린 제자들을 끌어안았다. 아이들이 놀라서 눈을 휘둥그레 떴다. 지금껏 단 한 번도 이런 적이 없었으니까. 당황해서 몸을 비틀기도 했다.
‘미안하다.’
더 세게 끌어안았다. 불편한 듯 꿈틀대던 아이도 이내 얌전해진다. 녀석들이 헤헤 웃으며 말했다.
-교관님. 이젠 어디 가지 마세요.
-이제 저희랑 같이 있어요!
-저희가 청룡학관 애들보다 먼저잖아요? 그렇죠?
천진난만한 얼굴로 자신을 올려다보는 아이들을 향해, 백수룡은 흐릿하게 웃어 주었다.
‘그래. 이제 아무 데도 가지 않으마.’
주화입마(走火入魔)였다.
독각마룡이 남긴 공력은 인간에 대한 지독한 증오, 분노, 악의가 담긴 마기(魔氣)였다.
백수룡은 온몸으로 그것을 받아들였다. 다행히 은호의 도움으로 몸이 터지기 전에 그 공력을 제자들에게 나눠 주었으나, 그 마기는 온전히 스스로가 감당해야 했다.
전신 세맥과 혈도가 상처를 입었고, 마기가 골수까지 침범했다. 주화입마가 일어나는 게 당연했다.
‘영원히 너희와 함께 있으마.’
알고 있음에도, 거부할 수 없었다.
옛 제자들에게 약속하자, 비로소 마음이 편안해졌다.
앞으로 이 아이들을 보살피며, 과거에 저지른 잘못을 만회할 것이다.
백수룡은 눈을 감았다. 잠이 쏟아진다. 피곤한 일이 너무 많았다. 한숨 자고 일어나서, 제자들과 밥을 지어 먹을 것이다…….
-선생님! 정신 차려요!
익숙한 목소리가 잠을 깨웠다. 백수룡은 내려앉은 눈꺼풀을 힘겹게 들어 올렸다.
-교관님! 듣지 마세요!
-무시해요! 마귀의 속삭임이에요!
-우리랑 이곳에 함께 있어요!
품에 안겨 있던 옛 제자들이 눈을 사납게 뜨고 하늘을 올려다봤다. 그들은 백수룡을 더욱 세게 끌어안았다.
-정신 좀 차려 보라고요!
쿠구궁……!
세상이 흔들린다.
차갑던 몸 안에 따뜻하게 온기가 돌고, 어둠뿐이던 공간에 한줄기 서광이 비친다.
익숙한 목소리는 서광이 비치는 곳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아니, 이제는 목소리‘들’이었다.
-몸이 얼음장이야…….
-팔다리를 주물러 보자. 선생님이 우리한테 해주던 것처럼 추궁과혈을 하는 거야.
-……몇 대 때리면 깨어나지 않을까?
-선배! 선생님 지금 아프다고요!
-난 진지한데? 일단 정신을 차리게 하는 게 먼저잖아.
목소리들이 점점 많아지고, 커졌다.
백수룡은 고개를 들어 그 빛을 바라봤다.
주화입마로 인해 멍해졌던 정신이 돌아오고 있었다.
이대로 가만히 있으면 한 대 맞을 거라 생각하니, 정신이 더 빨리 들었다.
‘보나 마나 원강이 놈이겠지.’
피식 웃은 백수룡은 빛을 따라 손을 뻗었다.
그러자 그의 품에 매달린 옛 제자들이 소리를 질렀다.
-교관님! 가지 마요!
-또, 또 우리를 버리려고!
-당신은 거짓말쟁이야!
-제발 부탁이에요. 가지 마세요…….
피눈물이 맺힌 아이들이 절규한다. 백수룡은 손을 뻗어 제자들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미안하다.”
처음으로, 선명한 육성으로 말했다. 꿈에서 빠져나가고 있다는 증거였다.
“너희에겐 미안하다. 하지만 밖에 날 기다리는 제자들이 있어. 저 녀석들에겐, 너희에게 했던 것처럼 상처를 주고 싶지 않구나.”
옛 제자들의 모습이 서서히 흐릿해졌다. 백수룡은 그 얼굴들을 하나하나 눈에 담았다.
이 아이들을 잊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더 이상 과거에 얽매이지도 않을 것이다.
“난 현실을 살아야겠다.”
잠시 후, 백수룡은 정신을 차렸다.
* * *
“허어억!”
소스라치게 놀라며 잠에서 깨어난 백수룡은 주위를 둘러봤다.
““선생님!””
스승의 팔다리를 열심히 주무르던 제자들이 앞다투어 백수룡의 얼굴 쪽으로 머리를 내밀었다. 그러느라 서로 머리가 부딪쳤다.
““아악!””
동시에 머리를 움켜쥐는 다섯 제자들.
그 얼굴을 하나하나 확인한 백수룡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다들 무사한 거냐? 다친 사람은?”
“크게 다친 사람은 없어요. 기를 많이 흡수해서 그런가, 속이 좀 더부룩하긴 한데…….”
백수룡은 천천히 제자들을 살폈다.
다들 몸에 상처가 많았다. 대수롭지 않은 척해도, 전부 힘든 싸움을 했다는 의미였다.
“고생했다. 영물들을 상대하기가 쉽지만은 않았을 텐데…….”
“선생님.”
위지천이 갑자기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응?”
평소의 착하고 소심한 소년의 표정이 아니었다.
위지천은 작심한 듯 평소에 생각했던 것을 말했다.
“가끔 보면 선생님은 너무 저희를 과보호하려고 하는 것 같아요. 수련시킬 땐 저희를 엄청 굴리면서, 정작 위험한 일은 매번 혼자 하려고 하시잖아요.”
“……내가 그랬나.”
그러자 다른 제자들도 모두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다들 쌓인 불만이 있는 듯했다.
“내 말이! 평소엔 우릴 거의 죽이려고 하면서 왜 이럴 땐 혼자 죽으려는 건데!”
“저희는 어린애가 아닙니다.”
“선생님이 보기엔 부족해 보이겠지만, 저희도 정말 열심히 하고 있다고요.”
“그러니까 애 취급하지 마십쇼.”
차례대로 헌원강, 거상웅, 여민, 야수혁의 말이었다.
백수룡은 멋쩍은 듯 뺨을 긁적였다.
아마도 과거의 기억 때문일 것이다. 자신의 손으로 제자들을 해친 경험 탓에, 청룡학관의 제자들을 가르치면서 자기도 모르게 과보호하게 되었던 것 같다.
마치, 그것으로 과오를 덮으려는 듯이 말이다.
“……미안하다.”
명백히 자신의 잘못이었다. 백수룡은 순순히 인정했다. 꿈속에서 옛 제자들을 만나고 나니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앞으로는 안 그러마. 필요하면 너희에게 도움도 받고, 너희들이 내 학생이라고 감싸고 돌지 않을 거야.”
그 대답에 제자들도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백수룡은 헌원강의 부축을 받아 몸을 일으켰다.
몸 내부가 엉망이었다. 돌아가서 최소 열흘은 요양만 해야 할 듯했다.
그러다 문득 잊고 있던 사실이 떠올랐다.
“어미 은호는?”
“저희를 기다리고 있어요.”
야수혁이 말했다. 그의 품 안에는 지친 새끼 은호가 곤히 잠들어 있었다.
“시간이 없으니 선생님이 깨어나면 바로 와 달라고 했어요.”
* * *
어미 은호는 산속 깊은 동굴 안에 몸을 숨기고 있었다.
[……왔구나.]은호는 움직이고 싶어도 움직일 수 없는 상태였다.
찢어진 옆구리에서 내장이 흘러내렸고, 온몸에는 독각마룡의 독으로 인한 검은 얼룩이 군데군데 퍼져 있었다.
어미 은호는 죽어 가고 있었다.
끼이. 끼이잉.
잠에서 깬 새끼 은호가 달려가서 어미에게 치댔다.
어미는 혀로 천천히 새끼를 핥아 주었다. 그러자 새끼의 몸에 난 상처가 아물었다.
[……이제 남은 시간이 많지 않으니.]새끼가 완전히 잠든 후, 은호는 고개를 돌려 자신을 찾아온 인간들을 바라봤다. 지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내 아이를 돌봐줘서 고맙다는 인사를 먼저 해야겠구나.]은호의 시선은 야수혁을 향했다. 야수혁은 멋쩍은 듯 머리를 긁적였다.
호환으로 아버지를 잃은 자신이 호랑이한테 고맙다는 소리를 듣다니. 살다 보니 별일이 다 있었다.
“됐어. 그 쬐깐한 놈한테 우리도 도움을 받았으니까.”
[그래도 은혜는 갚고 싶단다.]그 순간, 은호의 몸에서 흘러나온 하얀 빛이 야수혁의 몸에 깃들었다.
“뭐, 뭐야?”
당황한 야수혁이 자신의 몸을 바라봤다. 빛은 금방 사그라들었고, 몸이 따뜻해진 느낌 외에 다른 변화는 없었다.
[앞으로 산의 짐승들이 너를 따를 것이다. 나무와 새들이 너를 반길 것이고, 꽃들이 길을 알려 줄 것이다.]하얀빛은 은호의 축복이었다. 야수혁은 얼떨떨한 표정이었다.
은호가 조금 더 지친 얼굴로 다른 인간들을 둘러봤다. 목소리가 힘겨워 보였다.
[너희 모두에게 축복을 나눠 주고 싶지만, 내겐 그만한 힘이 남아 있지 않구나.]“어차피 산에 자주 가는 녀석은 이 녀석뿐이야. 우린 별로 필요 없어.”
백수룡이 앞으로 나서며 은호의 모습을 살폈다. 그의 눈에 이채가 어렸다.
‘예상은 했지만, 평범한 영물은 아니로군.’
평범한 영물이 이토록 신령스러운 기운과 능력을 가지고 있을 리 없었다. 영물보다는 신수(神獸)라고 불러야 마땅한 존재였다.
“우릴 부른 이유가 뭐지? 부탁이란 건 또 뭐고?”
[역천(逆天)의 운명을 타고난 인간이여. 그대는 어디까지 알고 있는가?]그 순간, 백수룡의 표정이 굳었다.
“……너희는 잠깐 나가 있어라.”
백수룡은 제자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그의 진지한 분위기에 제자들이 조용히 밖으로 나갔다.
모두가 밖으로 나간 후, 백수룡이 미간을 찌푸리며 은호에게 물었다.
“알고 있냐고? 무슨 말이지?”
그 순간, 은호의 눈이 신령스러운 푸른빛으로 물들었다.
[앞으로 세상은 더 큰 혼란에 빠질 것이다. 독각마룡과 같은 마물이 또 다시 나타날 것이고, 괴력난신(怪力亂神)이라 불릴 괴이한 일이 늘어날 것이니…….]은호가 백수룡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이것은 그대의 운명과도 무관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