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 One Star Instructor Master Baek RAW novel - Chapter 301
300화. 생각보다 별것 아니군
백수룡 일행은 사냥꾼 부부가 알려 준 지름길로 움직였다.
폭우는 그쳤지만, 밤새 내린 비로 바닥이 무너지고 질퍽질퍽해진 탓에 말에서 내려 걸어야 했다.
“……사냥꾼들이 말한 산신령의 정체가 뭘까요?”
곰곰이 생각에 잠겨 있던 제갈소영의 말에, 옆에서 걷던 백수룡이 피식 웃었다.
“아까부터 혼자 뭐가 그렇게 심각한가 했더니, 계속 그걸 생각하고 있었던 거야?”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하잖아요.”
제갈소영이 눈을 반짝였다.
무림사와 기관진식이 전공인 만큼, 그녀는 무림의 신비로운 소문을 접하면 그냥 넘어가지 못했다.
“비와 바람을 부리고, 벼락을 떨어뜨린다고 했어요. 흔치 않은 뛰어난 술법을 익혔거나, 그렇게 착각할 만큼 무공의 경지가 높다는 뜻이잖아요.”
“떠오르는 사람이라도 있어?”
제갈소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곤 눈을 초롱초롱하게 빛내며 자신의 추리를 설명했다.
“혈기린, 구유마녀, 벽력마. 최근 수십 년 동안 종적을 감춘 고수들 중에서 그만한 능력이 있는 후보를 추려 보면 이 셋 정도예요. 하나같이, 다시 나타나면 무림이 술렁일 악인들이죠.”
“전부 사파네?”
“정파의 고수가 이런 숲에 은둔하는 일은 거의 없으니까요.”
“하긴…….”
백수룡이 고개를 끄덕였다.
정파의 고수들은 보통 금분세수를 하고 문파나 가문의 원로가 되거나, 한적하고 경치 좋은 곳에 정자를 지어 놓고 신선놀음을 하며 여생을 보낸다.
이런 산에 은거하는 자들은 대부분 과거에 지은 죄가 많은 자들이다.
뒤에서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남궁수가 중얼거렸다.
“벽력마라…….”
“너도 알아?”
남궁수가 남궁미의 외투를 단단히 여며 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빗방울이 조금씩 떨어지고 있었다.
“과거 본가와 충돌했던 사파의 초고수다. 흡성대법으로 다른 무인들의 정기를 갈취하다가 무림공적이 되었지. 마침 놈이 활동하던 지역이 본가와 가까워서…….”
남궁수는 잠시 말을 멈췄다. 불편한 이름을 언급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창천검왕이 직접 놈을 추살하기 위해 나섰다. 놈은 열흘이 넘게 싸우면서 도망 다녔다고 하더군.”
“열흘이나?”
창천검왕과 싸우면서 열흘이나 도망을 다녔다?
웬만한 고수는 꿈도 꾸기 힘든 일이었다.
남궁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당시에는 창천검왕이 무림십존이라 불리기 전이긴 하지만……. 마지막에는 일백 합을 넘게 겨뤘다고 들었다. 결국 큰 상처를 입은 벽력마가 절벽에서 뛰어내렸지.”
“그럼 죽은 거 아니야?”
“시체를 못 찾았으니 확신할 수 없다. 가문에서도 살아 있을 거라 추측하고 있고.”
남궁수는 과거 창천검왕이 혈족들이 모여 있던 자리에서 해 준 이야기를 떠올렸다.
-벽력마는 죽지 않았을 게다. 지독하기가 거머리 같은 놈이 그렇게 쉽게 죽을 리 없지. 아마 어딘가에 숨어서 무공을 회복하고 있을 것이야.
창천검왕은 종종 벽력마에 대해서 말하곤 했다.
특히 벽력마가 익힌 벽력마공은 무서울 정도로 강력한 무공이었다고.
심지어 이렇게까지 말했다.
-놈의 무공이 완성되어 있었다면, 당하는 것은 나였을지도 모른다. 놈이 뿜어내는 벼락은, 가까이 접근하기도 힘들 정도로 무시무시했지.
-허어…….
-설마 그 정도로…….
창천검왕의 그 충격적인 발언을 계기로, 남궁세가에서는 거의 사장되었던 천뢰검법이 잠시 재조명되기도 했었다.
남궁수의 돌아가신 어머니도, 어디서 그런 말을 듣고서 아들에게 천뢰검법을 익히게 했다.
-천뢰검법을 익히려무나. 이 어미가 들어보니, 조금 아프기는 해도 창궁무애검법보다 성취가 빠르고, 대성에 이르면 뇌신의 경지에 이른다고 하더구나. 그것만이 네 형제들을 압도할 수 있는 길이란다.
-……알겠습니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 천뢰검법을 제대로 익힌 사람은 남궁수뿐이었다. 워낙에 익히기 까다롭고 과정이 고통스럽기 때문이었다.
결과적으로 지금 남궁수는 유력한 소가주 후보가 되긴 했지만, 그건 천뢰검법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었다.
오히려,
-아직 늦지 않았다.
신입 강사 연수가 끝나고 남궁세가를 떠나기 전, 남궁세가주가 남궁수를 불러서 권유했다.
-지금이라도 창궁무애검법을 익히는 것이 어떻겠느냐?
천뢰검법은 대성하기가 극히 까다롭고 고통스러운 무공이지만, 그에 비하면 창궁무애검법은 훨씬 더 안정적이고 위력도 결코 부족하지 않은 신공이었다.
-본가에는 천뢰검법에 대해서 네게 조언해 줄 사람이 없다. 하지만 창궁무애검법이라면 다르다.
-…….
그 사실은, 남궁수가 어느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남궁수는 잠시 고민한 후에 고개를 끄덕였다.
-익히겠습니다.
-그래! 잘 생각했다. 검법이란 것의 본질은 크게 다르지 않으니, 너라면 금방 따라올 수 있을…….
-단, 천뢰검법을 먼저 대성한 후에 익히겠습니다.
-허어! 이런 고집불통 같으니! 대체 누굴 닮아서…….
-아버님. 제가 누굴 닮았겠습니까.
-끄응!
남궁수는 뭐든 시작을 하면 끝장을 보는 성격이었다.
익히기 까다롭고 고통스러운 무공을 익혔다 해도, 중간에 도망치고 싶지 않았다.
굳이 어려운 길을 고집하는 모습을 어리석다고 보는 시선들이 있었지만, 그러한 고집이 지금의 남궁수를 만들었다.
-……천뢰기가 주는 고통에는 익숙합니다. 그리고 조금만 더 하면, 실마리가 보일 것 같습니다.
조금만 더.
그 말이 무인을 얼마나 희망고문하는지 잘 아는 남궁세가주였지만, 아들의 단호한 눈빛 앞에서 결국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알겠다. 대신 뇌룡검 대협에게 서찰을 써 둘 터이니, 방학 때 찾아뵙고 무공에 조언을 구해 보도록 해라.
-예? 굳이 그러실 필요는…….
-이것까지 거절하면 널 가문에서 내쫓을 생각이다.
-……감사합니다.
이번 방학에 남궁수가 안휘가 아닌 호북으로 가게 된 이유였다.
“너 벽력마에 대해서 굉장히 잘 안다?”
백수룡의 말에, 남궁수는 과거에서 현실로 돌아왔다. 그가 덤덤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가문과 은원이 얽혀 있는 인물이다. 또한 뇌기를 다루는 무공으로 한정한다면, 벽력마는 지금은 은퇴하신 뇌룡검 대협과 함께 천하제일을 논하던 무인이었다.”
“생각보다 훨씬 거물이었군.”
백수룡이 조금 놀란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대화를 듣고 있던 제갈소영이 신중한 표정으로 말했다.
“만약 그런 악인이 이곳에 숨어 있는 거라면, 찾아서 잡아야 하지 않을까요?”
“이 넓은 산을 뒤지자고? 어느 세월에? 상대는 가만히 기다리고 있겠어?”
백수룡은 수색에 회의적인지 고개를 저었다.
상대는 산속 깊은 곳에 은둔해 있는 무인이다. 그것도 상당한 고수로 추정되는 인물.
무작정 산을 뒤진다고 찾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남궁수도 고개를 저었다.
“섣불리 나서는 건 안 하느니만 못하다.”
대신, 남궁수는 도시에 도착하면 남궁세가에 전서구를 보낼 생각이었다.
산신령이라는 자가 정말 벽력마라면, 남궁세가가 직접 나서서 과거의 악연을 결자해지하는 것이 마땅하니까.
설령 벽력마가 아니더라도, 악인임이 분명하니 마땅히 잡아들여야 한다고 서찰에 적어서 보낼 생각이었다.
“잡으려면 확실하게 준비를 해서 천라지망을 펼쳐 잡아야 한다. 우리가 놓치면, 놈은 또 어딘가로 도망쳐서 해악을 끼칠 테니까.”
“제 생각이 짧았어요. 이 넓은 산에서 적을 추적하는 게 쉬운 일도 아닌데…….”
제갈소영은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지만, 백수룡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어제 만난 사냥꾼 부부. 뭔가 이상했어.’
자신들을 탐색하듯 훑던 시선, 오해를 푼 이후에도 그들의 표정에서 느껴지던 알 수 없는 두려움과 죄책감.
처음에는 이해할 수 없었지만, 방금 남궁수에게 들은 정보를 조합하자 어떤 가설이 완성되었다.
‘산신령과 직접 관련된 자들이었을지도 몰라.’
전생에서, 백수룡은 마두들의 노예가 된 사람을 여럿 보았다.
사냥꾼 부부의 눈빛은 그들과 닮아 있었다.
물론 억측일 수도 있었다.
‘굳이 말할 필요는 없겠지. 그냥 내가 예민하게 생각하는 것일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나쁜 예감이라는 것은 언제나 좋은 예감보다 훨씬 잘 들어맞기 마련이었다.
멈칫.
백수룡이 걸음을 멈추고, 이어서 남궁수와 제갈소영도 걸음을 멈췄다.
남궁미만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일행을 둘러봤다.
“왜요?”
“적이다.”
우거진 수풀의 사이사이, 나무 위, 그리고 바위 뒤.
이십여 명 정도 되는 기척이 일행을 포위했다.
“혈교는 아니야. 그렇다기엔 너무 어설퍼.”
“산적이라기엔 살기가 너무 옅다. 겁에 질려 떠는 자들도 보이는군.”
“무공은 기껏해야 삼류에서 이류. 완전 오합지졸이야.”
“당장 우릴 공격할 생각은 아닌 것 같군.”
적에게 포위된 상황에서도, 백수룡과 남궁수는 냉정한 눈으로 주변을 살폈다.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 같은데…….”
백수룡은 말을 멈췄다. 그가 한숨을 내쉬며 한쪽 방향을 바라봤다.
“어제 그 사냥꾼 부부야.”
그 말에 제갈소영과 남궁수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설마…….”
“함정이었나.”
사냥꾼 사내가 오르막에서 이쪽을 향해 빠른 속도로 달려 내려오고 있었다.
이제는 일행에서 가장 어린 남궁미마저 함정에 빠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너무해! 착한 사람인 줄 알았는데!”
“…….”
백수룡은 씁쓸하게 웃었다. 이런 상황에서 자신의 예측이 맞았다는 사실은 결코 기쁘지 않았다.
그는 곧 나타날 진짜 적에 대비해서 기감을 넓혔다.
“……잠깐. 뭔가 이상한데?”
이쪽으로 달려오는 사냥꾼 사내의 등에 아내가 업혀 있었다.
그런데 아내의 상태가 이상했다. 생기가 전혀 느껴지지 않았던 것이다.
백수룡이 미간을 좁히며 중얼거렸다.
“여자 쪽은 죽었어.”
“……뭐?”
“네?”
사냥꾼 사내도 아내의 죽음을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잔뜩 일그러진 얼굴이 눈물로 범벅되어 있었다.
사내가 달려오면서 필사적으로 외쳤다.
“어서 도망치십시오! 산신령이 곧 이곳에 도착할……!”
사냥꾼 사내는 말을 끝맺지 못했다. 뒤에서 날아온 새하얀 벼락이 그를 휘감았다.
파지지지지직!
“끄아아아악!!”
엄청난 격통에서 사내는 끔찍한 비명을 지르며 넘어졌다. 오르막길에서 달려오던 그대로 넘어져 데굴데굴 굴렀다.
치이이익…….
잠시 후, 새카맣게 탄 두 구의 시체가 천천히 굴러와 일행 앞에 멈췄다.
“쯧쯧. 쓸데없는 말로 명을 재촉하는구나.”
“…….”
뒷짐을 진 채 다가오는 노인은 일견 신선 같은 모습이었다.
새하얀 도포와 배꼽까지 기른 긴 수염. 허공에 한 치쯤 발이 떠 있는 모습은 신령스럽기까지 했다.
그리고 그가 나타난 순간, 백수룡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무시무시한 내공이다.’
위압감만으로 보면, 거의 십존에 육박하는 수준이었다.
다른 일행도 비슷한 압박감을 느낀 듯했다.
제갈소영의 얼굴이 창백하게 굳었고, 남궁수는 남궁미를 자신의 등 뒤로 보냈다.
“저 무공…… 설마.”
상대의 정체를 짐작한 남궁수가 무거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너는 벽력마인가?”
“호오. 아직 노부를 알아보는 자가 있구나. 혹시 네가 남궁세가의 핏줄이더냐? 남궁제학 그놈의 젊은 시절과 닮은 것도 같은데.”
남궁수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함부로 그 이름을 언급하지 마라.”
“클클. 핏덩이가 건방지구나. 노부가 속세를 떠나 있었을 동안, 세상이 많이 변하긴 한 모양이야.”
클클 웃은 벽력마는 어깨 위에 있는 금색의 거머리를 쓰다듬었다.
“뇌령(雷靈)아. 저 녀석 정도면 최후의 만찬으로 충분하겠구나. 안 그러냐?”
거머리가 꾸물거리는 순간, 벽력마의 온몸에서 새하얀 전류가 들끓기 시작했다.
파직, 파지지직-!
몸을 완전히 휘감은 백색의 뇌전. 벽력마가 떠 있는 곳의 주변이 새카맣게 타들어 갔다.
“다들 뒤로 물러서!”
백수룡이 선두로 나서며 일행을 보호했다.
한눈에 봐도 쉽지 않은 상대다. 백수룡은 심각한 표정으로 빠르게 말했다.
“저자는 내가 상대할 테니, 너희는 그동안 멀리…….”
“백수룡. 둘을 데리고 물러나라.”
남궁수가 백수룡의 어깨를 잡아 뒤로 당겼다. 그러곤 말릴 새도 없이, 성큼성큼 혼자 앞으로 나섰다.
“남궁수?”
백수룡은 놀란 눈으로 남궁수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이런 상황에서 사리판단을 못 할 녀석은 아닌데…….’
벽력마의 몸 주변에 들끓는 저 새하얀 벼락 줄기들은, 백수룡조차 막을 방법이 쉽게 떠오르지 않을 정도로 강렬했다.
그럼에도 남궁수는 거침없이 앞으로 나섰다.
“크하하하! 친구를 생각하는 마음이 가상하구나!”
“…….”
벽력마가 광소를 터트리며 가볍게 손을 뻗자, 그의 손에서 새하얀 벼락이 뿜어져 남궁수를 덮쳤다.
파지지지지직!
눈앞을 새하얗게 물들일 정도의 전류.
남궁수는 미처 피하지 못했다.
아니, 피하지 않았다.
벼락을 그대로 뒤집어썼다.
“안 돼애애!”
“오라버니이!”
제갈소영과 남궁미가 비명을 질렀다. 백수룡은 이를 악물고 눈을 부릅떴다.
그리고, 그들의 비명은 점점 당혹스러운 감탄사로 변했다.
“어……?”
“오, 오라버니!”
“……저 자식.”
남궁수는 정면으로 벼락을 맞고도 멀쩡했다.
그저 미간을 평소보다 조금 더 찌푸렸을 뿐이었다.
“생각보다 별것 아니군.”
“어떻게……!”
그 경악할 광경에 벽력마가 눈을 부릅떴다.
혼원벽력신공의 6성에 이르는 공격이었다.
죽일 작정은 아니었지만, 내공이 약한 무인 정도는 단숨에 잿더미로 만들 수 있을 만큼 강력한 벼락.
하지만 남궁수는 아무렇지도 않아 보였다.
벽력마가 눈을 크게 떴다. 그는 남궁수의 몸 위로 흐르는 뇌기를 보았다.
“너도…… 뇌기를 다루는 무공을 익혔더냐?”
“네 벼락은 내게 통하지 않는다.”
천뢰검법.
남궁세가에 존재하는 유일한 뇌기를 다루는 무공.
어려서부터 오직 그 한 가지만을 익혀 온 남궁수였다.
뇌기에 대한 내성이라면, 그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스릉.
남궁수가 검을 뽑아 들었다. 그의 시선이 잠시 죽은 사냥꾼 부부를 향했다가 다시 벽력마를 향했다.
“가진 재주가 벼락을 뿜는 것뿐이라면, 너는 오늘 내 검에 죽는다.”
“건방진 놈! 잿더미로 만들어 주마!”
벽력마가 두 손을 뻗자, 그 전과는 비교도 안 될 강력한 벼락이 뿜어졌다. 마치 한 마리의 백룡이 날아오는 것 같았다.
“…….”
그러나 남궁수는 동요하지 않았다. 자신을 가로막는 벼락을 베어 넘기고, 놀라서 눈을 부릅뜬 벽력마를 향해 질주했다.
그의 눈동자는 한없이 무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