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 One Star Instructor Master Baek RAW novel - Chapter 302
301화. 딴말하기 없다?
“저, 저, 무식한 놈…….”
백수룡은 입을 떡 벌리고 벽력마와 싸우는 남궁수를 바라봤다.
전신에 벼락을 휘감은 채 검을 휘두르는 모습은, 벼락으로 악귀와 요괴를 멸한다는 전설 속 뇌공(雷公)의 강림 같았다.
문제는 저 가공할 벼락이 본인이 만들어 낸 게 아니라는 것이었다.
“갈(喝)!”
벽력마의 쩌렁쩌렁한 고함이 산천초목을 뒤흔들었다.
새하얀 뇌기가 두 사람을 휘감고 있었지만, 은밀히 혈마안을 사용한 백수룡은 당황한 벽력마의 표정을 볼 수 있었다.
“저리 꺼지지 못하겠느냐!”
일갈을 터트린 벽력마는 양손에 벼락을 휘감아 쌍장을 휘둘렀다. 그때마다 벼락 줄기가 뿜어져 남궁수를 휘감았다.
파지지지직-!!
그러나 남궁수는 멈추지 않았다. 벼락을 온몸으로 뒤집어쓰고도, 그의 속도는 전혀 줄어들지 않았다.
오히려 더 빨라진 듯한 착각이 들 정도였다.
휘익!
순식간에 벽력마의 지척까지 접근한 남궁수가 싸늘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말했을 텐데. 네 벼락은 내게 통하지 않는다고.”
“……!!”
남궁수가 휘두른 검의 궤적이 벽력마의 목을 노렸다.
서걱!
하얀 수염이 잘려 허공에 흩날렸다.
조금만 몸을 피하는 것이 늦었어도 목이 잘렸을 것이다.
아슬아슬하게 뒤로 물러선 벽력마는 혼원벽력신공을 10성까지 끌어올렸다.
“정녕 죽고 싶은 게로구나!”
파지지지지직-!
무시무시한 벼락이 정면에서 폭발했다.
남궁수도 이번 공격은 감히 경시하지 못하겠는지, 마주 천뢰기를 끌어올려 검에 뇌기를 둘러 휘둘렀다.
번쩍! 번쩍!
벼락과 벼락이 충돌할 때마다 일대의 빛이 명멸했다. 뇌신들의 싸움으로 멸망의 날이 도래한 것 같았다.
“도, 도망쳐!”
“으아아아!”
일행을 포위했던 자들이 사방으로 흩어져 도망쳤다.
백수룡은 그들을 내버려 두었다.
저들 모두가 벽력마의 강요에 어쩔 수 없이 나선, 죽은 사냥꾼 부부와 같은 사람들일 것이기 때문이었다.
백수룡의 시선은 오로지 남궁수에게 못 박혀 있었다.
‘괜찮은 척하지만 고통이 없을 리 없어. 무리하고 있는 거야.’
아무리 뇌전을 다루는 무공을 익혔다고 한들, 저 정도 벼락을 몸으로 받아 내는 데 충격이 없을 수는 없었다.
하지만 벽력마가 느끼기에는, 남궁수가 아무런 타격도 입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그렇게 벼락을 맞고도…… 어째서 멀쩡한 것이냐!”
벽력마는 경악을 넘어 두려움이 깃든 얼굴로 남궁수를 바라봤다.
수십 줄기의 벼락을 맞았음에도 표정 변화조차 없는 얼굴. 사람이 아니라 귀신으로 보였다.
“사술! 사술을 썼구나!”
사술이라 느껴질 만큼 경이로운 인내심과 참을성.
아무리 뇌기를 다루는 무공을 익혔다 한들, 인간이 어떻게 벼락을 맞고도 눈 하나 깜빡하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벽력마는 그만한 인내심을 가진 인간이 있으리라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정파라는 놈이 사술을 쓰다니! 부끄럽지도 않단 말이냐! 남궁제학이 알면 네놈의 사지를 찢어서 죽일 것이다!”
“말이 많군.”
상대의 헛소리에도 남궁수는 냉정하게 검을 휘둘렀다. 벽력마의 도포 자락이 잘려 나가고, 몸에 생채기가 늘어났다.
‘……강해.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더.’
백수룡은 감탄 어린 표정으로 남궁수가 승기를 잡아 가는 모습을 지켜봤다.
-최근 다음 단계로 나아갈 실마리를 얻었다.
동굴에서 남궁수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검술, 보법, 내공과 외공의 조화까지.
남궁수의 움직임에는 백수룡도 흠잡을 곳이 거의 없었다.
혼자서 벽력마를 상대하겠다고 나선 자신감도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
“필요한 건 계기뿐이었을지도.”
그러나 한편으로는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곧 한계가 온다.’
남궁세가에 있을 때, 백수룡은 남궁세가주의 허락하에 천뢰검법의 비급을 읽은 적이 있었다.
천뢰검법은 무공 자체로는 나무랄 데 없이 뛰어난 신공이었으나,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다.
‘지나치게 고통스러운 수련법을 강요하는 무공이야.’
보통 뇌기를 다루는 무공들은 통증을 경감시키거나, 감각을 속이는 구결이나 방법을 하나씩은 가지고 있다.
하지만 천뢰검법에는 그런 방법이 전혀 존재하지 않았다.
몸 내부를 뇌기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호신구결은 있지만, 말 그대로 보호만 할 뿐, 통증은 시전자가 온전히 감수해야 한다.
그 탓에 입문 과정부터 열에 아홉은 포기하는 무공이라고 했다.
‘그런 과정을 겪은 덕분에, 뇌기 무공을 익힌 다른 무인에겐 천적이나 다름없는 내성의 육체를 얻은 것 같지만…….’
결코 무적이라는 뜻은 아니다.
백수룡은 남궁수의 움직임이 아주 조금씩 느려지는 것을 눈치챘다.
근육에 쌓인 피로감, 검을 휘두를 때마다 느껴지는 끔찍한 고통이 움직임을 방해하고 있을 것이다.
아직은 초인 같은 인내력으로 버텨 내고 있지만, 당장 한계가 찾아온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은 상태.
“오라버니 혼자서는 위험해요! 도와주세요!”
발을 동동 구르며 지켜보던 남궁미가 백수룡의 소매를 붙잡고 외쳤다. 제갈소영도 함께 싸우자고 말했다.
하지만 백수룡은 고개를 저었다.
“나도 그러고 싶지만, 지금은 그러면 안 되는 순간이야.”
“왜요?”
백수룡은 울먹이는 남궁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진지한 표정으로 남궁수를 바라봤다.
평소와 다름없이 냉정한 얼굴.
그러나, 그 눈빛은 벽력마가 내뿜는 그 어떤 벼락보다 더 뜨거웠다.
조금만, 조금만 더.
남궁수는 본인도 의식하지 못하는 혼잣말을 중얼거리고 있었다.
“조금만 더…….”
지금 백수룡이 끼어들면 싸움은 쉽게 정리될 것이다.
하지만 그 순간 남궁수의 집중력은 깨진다.
저 ‘조금만 더.’가 무슨 의미인지 알기에, 백수룡은 함부로 남궁수의 싸움에 끼어들 수 없었다.
조금만 더 가면, 닿는다.
남궁수는 지금 무아지경에 빠져 있었다.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깨달음의 순간.
저 순간을 방해받는 걸 원하는 무인은 세상 어디에도 없다.
백수룡은 불안에 떠는 남궁미를 진정시키며 말했다.
“조금만 더 지켜보자. 못 이길 싸움에 도박을 걸 만큼 무모한 녀석은 아니니까.”
“……네.”
세 사람 모두,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남궁수의 싸움을 지켜보았다.
* * *
‘조금만 더.’
고통으로 머릿속이 새하얗게 될 것만 같은 순간, 남궁수는 그렇게 중얼거렸다.
파직! 파지지직!!
벽력마가 쏟아낸 벼락이 끊임없이 몸을 두드린다. 온몸을 찢어발길 것만 같은 통증에 정신이 나갈 것만 같았다.
그러나 겉으로 드러난 남궁수의 표정에는 미묘한 변화조차 없었다.
‘아픈 건 익숙하다.’
검을 쥔 손이 덜덜 떨린다.
벼락을 정통으로 맞아도 끄떡하지 않는 몸이지만, 감각은 생생하게 살아 있다.
천뢰검법의 대성에 가까워질수록, 뇌기를 느끼는 감각은 오히려 더 예민해지고 예리해진다.
지금, 남궁수의 감각은 최고조였다.
‘조금만 더.’
벽력마의 뇌기와 자신의 뇌기가 명백히 구분된다.
이렇게까지 뇌기에 자극을 받아 본 적이 한 번이라도 있었던가.
적과 살결을 맞댄 것처럼 오감이 활성화된다.
남궁수는 무아지경에 빠져들어 한없이 검을 휘둘렀다.
‘조금만 더 가면, 닿는다!’
벽력마는 과거 시대를 풍미했던 고강한 무인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조금도 질 것 같은 기분이 들지 않았다.
적의 모든 공격이 보이고, 느껴진다. 시간이 한없이 감속한다. 빈틈이 보인다.
서걱!
“끄아아아악!”
벽력마의 끊어진 손목에서 피가 뿜어지다가 순식간에 멈췄다. 뇌기로 절단면을 지져 버린 것이다.
적의 손목을 하나 베어냈지만, 남궁수도 무사하진 못했다.
“이 버러지 같은 놈이!”
퍼어어어엉!
복부에 일장을 얻어맞은 남궁수가 허공을 날아 십여 장을 날아갔다.
무아지경이 깨지며, 의식이 아득해진다.
그 순간, 남궁수는 자신을 바라보는 백수룡과 눈이 마주쳤다.
‘내가 쓰러지더라도, 저 녀석이 나서겠지.’
안도의 한숨이 새어 나왔다.
백수룡이라면 손목이 하나 날아간 벽력마를 어렵지 않게 처리할 테니까.
그런데 그 순간, 백수룡이 피식 웃더니 입모양만으로 이렇게 말했다.
‘벌써 끝이냐?’
남궁수는 오기가 치밀었다. 이렇게 쓰러지면 저 녀석에게 두고두고 놀림당할 것이 뻔했다.
“……아직, 아니다.”
남궁수는 아득해지려는 의식을 붙들기 위해 혀를 깨물었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휘리릭!
허공에서 몸을 비틀어 바닥에 두 발로 내려선 남궁수는 조용히 이를 악물었다. 넘어오려는 핏물을 다시 삼켰다. 흐릿해지던 눈동자에 빛이 돌아왔다.
그 모습을 본 벽력마가 경악했다.
“이놈! 대체 어디서 그런 힘이……!”
벽력마는 남궁수에게 공포를 느꼈다.
산속에 은둔한 수십 년 동안, 사실 그는 제대로 된 싸움을 해 본 적이 없었다.
흡성대법으로 쌓은 내공은 십존에 육박할 정도로 비대해졌지만, 자신보다 한참 약한 상대만 고른 탓에 실전 감각은 오히려 예전보다 퇴보했다.
수십 년 전, 창천검왕에게 당하면서 생긴 두려움 때문이었다.
부상이 다 나은 후에도, 벽력마는 혼원벽력신공의 완성을 핑계로 무림에 다시 출도하지 않았다.
“보, 본좌가 신공만 완성했다면, 너 같은 애송이 따위는!”
상대는 결코 애송이가 아니다.
남궁수의 검술은 젊은 시절의 창천검왕을 떠오르게 할 만큼 예리하고, 절대량은 적지만 뇌기를 다루는 솜씨도 감탄이 나올 수준이다. 지독하기는 살막의 살수들 못지않았다.
마음속 깊이 알고 있었지만, 벽력마는 결코 인정하지 않았다.
“아직 더 할 수 있다.”
남궁수가 중얼거리며 다시 달려들었다. 그 눈은 다시 무아지경에 빠져들었다.
“꺼져라! 제발 좀 꺼지란 말이다!”
안색이 창백해진 벽력마는 주춤주춤 뒤로 물러났다. 끊임없이 벽력을 뿌려 댔지만, 여전히 남궁수에게는 먹히지 않았다.
“빌어먹을!”
미련, 그리고 죽음에 대한 두려움.
치미는 공포를 이기지 못한 벽력마는 결국 등을 돌려 도망쳤다.
“……놓칠 것 같나.”
남궁수는 남은 내공을 모두 쥐어짜 내 벽력마를 뒤쫓았다.
지쳤다는 것을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그의 신형이 한줄기 벼락처럼 빠르게 쏘아졌다.
휘익!
단전이 텅 비었다. 혀를 깨물어 억지로 의식을 차린 탓에 시야가 어지러웠다.
그럼에도 정신은 한없이 맑았다. 손에 든 검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가볍게 느껴졌다.
깨달음의 순간, 남궁수는 한없이 상쾌한 기분을 느꼈다. 그가 확신에 찬 음성으로 말했다.
“……닿는다.”
순간, 남궁수의 검이 아름다운 궤적을 그렸다. 검에 휘감긴 한줄기 백색 뇌전이 벽력마의 두 다리를 베었다.
촤아아악!
두 다리가 잘린 벽력마가 팔로 몸을 끌며 어딘가로 향했다. 그는 미친 사람처럼 마구 고함을 질러 댔다.
“신공만 완성했으면, 신공만 완성했으면 네놈 따위는 단숨에 죽일 수 있었다! 남궁제학을 죽이고, 천하를 발아래에 둘 수 있었단 말이다! 눈앞에 있었다! 혼원벽력신공을 완성할 준비는 이미 완벽하게 끝나 있었단 말이다! 열흘만, 아니 사흘만 더 있었다면……!”
악인의 절규가 폐허가 된 산등성이에 공허하게 울려 퍼졌다. 남궁수는 그 앞에 걸어가 멈춰 섰다.
푸욱.
더 이상의 말은 필요 없었다. 그는 벽력마의 단전 깊숙이 검을 찔러넣었다.
“커헉……”
벽력마는 수십 년간 쌓아 온 뇌기가 빠르게 흩어지는 것을 느꼈다. 회생 불가의 상처였다. 생사신의가 와도 고치지 못할 것이다.
벽력마는 흔들리는 눈으로 남궁수를 올려봤다.
“……이름과 별호가 무엇이냐. 내가 누구에게 죽는지는 알고 가게 해다오.”
남궁수가 지친 얼굴로 대답했다.
“청룡학관 일타강사, 남궁수. 별호는 삼절검이다.”
벽력마는 그 대답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세차게 고개를 저었다.
“날 죽인 무인이, 그런 하찮은 별호로 불리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 앞으로 네 별호는 뇌룡신검(雷龍神劍)이다. 알겠느냐? 뇌룡신검이란 말이다!”
“무슨 헛소리지?”
“뇌룡신검이 벽력마를 죽였다! 뇌룡신검이……!”
털썩.
벽력마의 몸이 옆으로 기울었다. 억울함에 눈을 부릅뜬 채로, 숨이 끊어진 것이다.
“후우…….”
남궁수는 그 앞에 주저앉았다. 울컥 피를 토했다.
처절한 싸움이었다.
온몸에 성한 곳이 하나도 없었고, 내상도 심각했다.
호북에 도착하면, 최소 보름은 정양에 집중해야 할 것 같았다.
“그래도…… 닿았군.”
바닥에 대자로 드러누운 남궁수가 피식 웃으며 하늘을 올려다봤다. 그는 자신이 보는 세상이 조금 달라졌음을 느꼈다.
“남궁수!”
의식이 흐릿해지는 와중에 백수룡의 목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리자 백수룡이 보였다.
괜찮냐?
가까이에서 말하는데 목소리가 아주 멀리서 들리는 듯했다. 남궁수는 괜찮다는 의미로 고개를 끄덕였다.
우선 남궁수를 응급처치한 백수룡은 바닥에서 금색 거머리를 주워 들었다. 벽력마가 가지고 다니던 영물이었다.
‘응? 뭐라고 하는 거지?’
백수룡이 뭐라고 뭐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기연, 까지는 들었는데, 그 이후로는 하나도 알아듣지 못했다.
‘도대체 무슨 말인지를 모르겠군.’
상대해 주기엔 너무 피곤하다.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잠이 쏟아졌다. 남궁수는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마음대로 해라…….”
그것이 남궁수의 마지막 기억이었다. 그대로 의식을 잃은 남궁수는 스르륵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너 분명히 내 마음대로 하라고 했다? 나중에 딴말하기 없다?”
백수룡은 의식을 잃은 남궁수에게 거듭 물었다. 남궁수에게선 아무런 대답도 들을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