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 One Star Instructor Master Baek RAW novel - Chapter 332
331화. 바야흐로
다음 날 아침.
연무장에 모인 상검연 학생들은 낯선 모습을 하고 나타난 위지천을 보곤 눈을 휘둥그레 떴다.
“반갑습니다. 오늘 하루 동안 여러분의 검술을 지도할 위지천 교관입니다.”
어디서 구해 왔는지, 위지천은 이마에 붉은 영웅건을 두르고 있었다. 질끈 동여맨 영웅건의 중앙에는 필사(必死)라는 자수가 새겨져 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상검연 학생들은 가볍게 웃어넘겼다.
“하하! 천이가 오늘 제대로 해 보려고 작정을 했구나.”
“그래, 열심히 해 보자. 우리도 최선을 다할 테니까.”
“너 혹시 백수룡 선생님 따라 한 거야? 귀엽다, 진짜…….”
학생들은 전날 모닥불에 앉아 수줍은 목소리로 “저는 선생님이 되고 싶어요.”라고 말하던 위지천을 떠올렸다.
다들 소년의 꿈을 응원해 주기로 했고, 그래서 오늘 하루는 위지천에게 검술 지도를 받기로 결정했다. 상검연 전원이 동의한 내용이었다.
문제는, 학생들이 위지천의 각오를 너무 얕보았다는 것이다.
“교육생들. 본 교관은 여러분과 소꿉놀이나 하려고 여기 온 것이 아닙니다.”
스릉.
검집에서 뽑혀 나온 시퍼런 칼날이 아침 햇살을 반사했다.
검혼이 주인의 의지에 반응해 스산한 기운을 뿜어냈다.
“미리 경고하겠습니다. 오늘 하루 동안 본 교관에게 반말을 하거나, 지시에 따르지 않을 경우…….”
상검연에서 가장 체구가 작고 성격이 순한 소년은, 이 순간 다른 사람으로 돌변했다.
서걱!
가볍게 휘두른 검이 커다란 나무를 두 동강 냈다. 선명하고도 예리한 검기가 만들어 낸 광경이었다.
“나, 나무는 왜…….”
“저, 저기요?”
비로소 뭔가 잘못됐다는 것을 느끼고 당황하는 학생들을, 위지천은 희번덕거리는 눈으로 바라봤다.
“본 교관에 대한 반항으로 간주하고 일대일 지도 대련을 진행하겠습니다.”
“……!!”
저건 농담이 아니다.
위지천의 눈빛을 본 순간 모두가 같은 생각을 했다.
‘쟤 눈빛이 돌았잖아!’
잊고 있었다.
검재 위지천.
평소에는 누구보다 순하고 착한 소년이지만, 검만 손에 쥐면 사람이 바뀌는 녀석이라는 것을.
“어, 음. 그게…….”
“우리가 원한 건 이렇게까지는…….”
“너무 흥분한 거 아니니……?”
위지천은 선배들의 말을 가볍게 무시했다.
“우선.”
오늘 하루는 가장 존경하는 스승을 따라 하기로 작정한 소년은, 검 끝을 들어 학생들의 뒤편으로 보이는 산봉우리를 가리켰다.
“아침 식사 전에 가볍게 체력 단련부터 시작하겠습니다. 제가 그동안 살펴본 결과, 여러분의 기초체력이 형편없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가장 체력이 약하게 생긴 위지천의 입에서 나온 말이기에 더 가슴에 푹푹 박혔다. 몇몇은 불만스러운 듯 입을 삐죽 내밀었다.
“전원 저기 보이는 산봉우리를 찍고 옵니다. 실시.”
그러나 다들 바로 움직이지 않고 서로 눈치를 보며 미적거렸다.
‘역시 선생님처럼 하는 건 쉽지 않구나.’
위지천은 기선제압의 필요성을 느꼈다. 그래서 조금 더 강하게 나가기로 마음먹었다.
“전부 귓구멍이 막혔습니까? 아니면 본 교관이 우습게 보입니까?”
평소 수줍음 많고 귀엽기만 하던 후배의 폭언에, 선배들이 입을 떡 벌렸다.
“아무리 일일 강사라도 그렇지, 말이 좀 심한 것…….”
“그래서, 하기 싫습니까?”
우우웅!
위지천이 치켜든 검에서 검기가 피어오르는 것을 본 순간, 불만스레 튀어나왔던 입들이 쏙 들어갔다.
“시, 싫다는 건 아니고.”
“아니고?”
“아니고, 요…….”
“처음 한 번은 봐드리겠습니다.”
백수룡 같았으면 말대답한 학생의 머리통을 냅다 후려쳤겠지만, 위지천은 아직 그렇게까지 물들지는 않았다.
“정확히 일 각 드리겠습니다. 정해진 시간보다 늦는 학생은 오늘 아침밥은 없다고 생각하십시오.”
“일각 안에 저길 찍고 오라고, 요?”
“무리지, 요! 그건!”
다들 여전히 상황파악을 못 하고 투덜대는 가운데, 유일하게 움직인 사람이 있었다.
“이럴 시간에 움직이는 게 나아.”
휘익!
바로 유이란이었다.
한 마리 사슴처럼 우아하게 경공을 펼치는 그녀의 뒤로, 상검연의 간부들, 그리고 다른 학생들이 따라붙었다.
“선배! 혼자 치사하게!”
“같이 가요!”
“……에라 모르겠다!”
다른 학생들도 그제야 꼬리에 불붙은 망아지처럼 달리기 시작했다. 위지천이 가리킨 산봉우리를 일 각 안에 찍고 오는 것은 굉장히 촉박한 일이었다.
결국 상검연 전원이 아침밥을 사수하기 위해 전력으로 질주하는 진풍경이 펼쳐졌다.
하지만 그들 대부분은 아직까지도 현실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일부는 이런 상황이 재미있다는 듯 피식피식 웃기까지 했다.
“……지금 많이 웃어 두십시오. 나중에는 입꼬리도 움직이기 힘들어질 테니까.”
위지천은 그 모습을 보며 웃었다. 누군가를 무척이나 닮은 웃음이었다.
* * *
간신히 산봉우리를 찍고 돌아온 학생들 앞에는, 영약 요리 연구회에서 개발한 정체불명의 특식이 마련돼 있었다.
“이게…… 뭐야?”
“우리보고 이걸 먹으라고?”
“혹시 독공 대비 훈련인가?”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식당에 들어선 학생들을 향해, 위지천이 뿌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본 교관이 새벽에 산에서 구해 온 재료로 만든 특식입니다. 다양한 영양소가 포함된 여러 재료를 넣었고, 체내 흡수를 돕기 위해 죽처럼 만들었습니다.”
위지천이 만들었다는 특식은, 어딘가 불길한 녹색을 띠고 있는 잡탕죽이었다. 과거 혈교에서 무인들에게 배급하던 음식의 변형이란 사실은 백수룡만 아는 비밀이었다.
“정말 먹어도 되는 건가요? 맛이 끔찍할 것 같은데…….”
누군가의 소심한 반항에 위지천이 미간을 찌푸렸다.
“학생은 이곳에 맛있는 것만 먹으려고 왔습니까?”
“……아니요.”
더 이상의 불만은 없었다.
위지천이 준비한 특식은 맛이라곤 전혀 느낄 수 없는 음식이었지만, 허기가 반찬이라고 다들 열심히 먹었다.
위지천은 그 모습을 바라보며 흡족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침을 든든히 먹어 두십시오. 저녁은 지옥에서 먹게 될 겁니다.”
“쿨럭!”
입에서 죽을 뿜는 학생이 속출했지만, 워낙에 소화가 잘되는 음식인지라 체하는 학생은 없었다.
“다 먹었으면 오전 훈련을 시작하겠습니다.”
이어진 것은 단체 검술 훈련.
학생들은 위지천의 지도하에, 땡볕 아래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검을 휘둘렀다.
위지천은 그들 사이를 지나다니며 학생들의 자세를 지적했다.
“전체적으로 여러분의 검술에는 겉멋이 잔뜩 들었습니다. 남을 의식하지 마십시오. 검에 더 집중합니다.”
학생들을 살피는 위지천의 눈빛이 예리했다.
위지천은 모든 학생을 평등하게 갈궜다.
그것이 백수룡에게 배운 첫 번째 교육 원칙이었다.
따악!
“전력을 다한 검술이 이겁니까? 아니면 적당히 시간이나 때우다가 끝내자는 생각입니까?”
“죄송합니다!”
따악!
“자꾸 어딜 봅니까? 검에 집중하라고 했습니다. 지금 교관에게 반항합니까?”
“아닙니다!”
따악!
“흐느적거리지 않습니다. 정신 똑바로 차리십시오. 아침밥 안 먹었습니까?”
“먹었습니다!”
“그런데 목소리가 왜 이렇게 작습니까?”
“먹었습니다아-!!”
일일 강사 위지천의 수업은 혹독하고 엄격했다. 학생들을 한계까지 몰아붙였다.
처음에는 가벼운 마음으로 임하던 학생들도 점점 안색이 하얗게 질렸다.
결국 반발이 일어났다.
“젠장! 난 더 이상 못해!”
상검연의 간부 중 한 명이었다. 사 학년 조연걸. 점창파의 속가제자로, 사일검법을 상당한 수준으로 익힌 검객이었다.
“위지천 네가 잘난 건 알겠어. 하지만 사람마다 수련하는 방식은 달라. 나는 내 검이 이렇게 무식한 방식으로 수련한다 해서 더 빨라질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아.”
“…….”
조연걸의 발언에 다들 위지천의 눈치를 살폈다.
몇몇은 속으로 조연걸을 응원했다. 그들도 이 무식한 수련에 회의를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좋습니다.”
위지천은 예상외로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내공 없이 순수한 쾌검만으로 저와 겨뤄 보죠. 만약 조연걸 학생이 절 이긴다면 수련을 종료하겠습니다.”
“……진심이냐?”
“물론입니다.”
“하!”
조연걸은 헛웃음을 흘렸다.
아무리 위지천이 검의 천재라고 한들, 내공도 없이 쾌검의 초식만으로 겨룬다면 자신이 질 거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일검 승부라면 내가 이긴다.’
조연걸이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말했다.
“좋아. 내가 지면 군말 없이 네 지도 방식을 따르겠다.”
더 이상 여러 말을 할 필요는 없었다. 두 사람이 마주 섰다. 신호도 따로 없었다. 검객들의 손이 동시에 검파에 닿는 순간이 승부의 시작이었다.
스악!
조연걸이 자랑하는 쾌검이 빛살처럼 뽑혀 나왔다. 그는 승리를 의심치 않았다. 전체적인 능력에서는 미치지 못할지언정, 쾌검만으로는 상검연에서 최고로 인정받는 그였다.
‘내가 더 빨랐어!’
그렇게 확신한 순간.
채앵!
위지천의 한발 늦게 뻗은 검이 조연걸의 검을 위로 튕겨 냈고, 활짝 열린 품으로 위지천이 파고들었다.
‘분명히 내가 더 빨랐는데?’
위지천은 작지만 차돌 같은 주먹을 단단히 움켜쥐었다. 승부는 났지만, 그는 수업 분위기를 해치는 불순분자를 용서할 생각이 없었다. 이것 또한 백수룡에게 보고 배운 것이었다.
“쾌검? 느려 터진 주제에.”
위지천의 주먹이 조연걸의 콧등을 강하게 때렸다.
빠악!
“커헉!”
쌍코피가 터진 조연걸은 뒤로 비척비척 물러나더니 그대로 주저앉았다. 그 앞에 선 위지천이 오만한 눈으로 그를 내려봤다.
“조연걸 학생. 코피가 멈추면 바로 수련에 복귀하십시오.”
“큭…….”
“대답 안 합니까?”
“아, 알겠습니다.”
그렇게 반란의 불씨는 커지기 전에 무참히 짓밟혔다.
위지천은 다른 학생들을 스윽 둘러보며 말했다.
“불만이 있는 학생은 언제든지 나오십시오. 대신 그만한 각오를 해야 할 겁니다.”
“…….”
오늘의 위지천은, 작은 백수룡 그 자체였다.
* * *
고된 수련은 밤까지 이어졌다.
예정된 일정을 모두 소화한 후, 위지천은 이마의 붉은 영웅건을 풀었다.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저 영웅건에 무슨 술법이라도 걸려 있는 건지, 영웅건을 풀자마자 위지천은 악마 교관에서 순박한 눈망울의 소년으로 돌아왔다.
“다들 괜찮으세요?”
소심하게 묻는 소년을 향해, 바닥에 주저앉은 상검연의 선배들이 일제히 삿대질을 했다.
“너어……!”
“위지천 이 자식!”
“나 아까 너 때문에 울 뻔했어!”
위지천은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는 선배들을 바라보며 미안함이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
“죄송해요. 하지만 진심으로 하지 않으면 효과가 없어서 어쩔 수 없었어요…….”
일일 강사 위지천의 지도 방식은 혹독했다.
지금 멀쩡히 두 다리로 서 있는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였다.
그래도 다들 끝까지 따라왔다.
정말 힘들었지만, 학생들은 묘한 성취감을 느꼈다.
‘재미있었어.’
위지천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다른 학생들 이상으로 피곤했지만, 얼굴은 무척 밝았다. 기회만 있다면 또 가르쳐 보고 싶을 정도였다.
“좀 쉬고 계세요. 저녁 차릴게요!”
위지천이 자리를 비운 사이, 여기저기서 한숨이 쏟아졌다.
“백룡장 애들은 매일 이런 무식한 방식으로 수련한다고?”
“사람이 할 짓이 아니에요…….”
“전 내일이면 앓아 누울 거예요.”
“가장 존경하는 사람이 백수룡 선생님이라고 할 때 알아챘어야 했는데…….”
“아까 듣기로는 이것도 백수룡 선생님에 비하면 약과라던데요?”
“미친 거 아니야?!”
다들 오늘 하루의 수련을 되새기며 진저리를 칠 때였다.
짝!
유이란이 박수를 쳐서 모두의 시선을 끌었다.
다른 학생들보다는 나았지만, 유이란 역시 상당히 지친 모습이었다.
그녀는 상검연 회장으로서, 일일 강사 위지천의 실력을 객관적으로 평가했다.
“힘들었던 건 맞지만……. 생각보다 잘 가르치지 않아?”
“……그렇긴 해요. 거친 것 같아도 정확하고, 한계 이상으로 몰아붙이진 않더라고요.”
부회장 정연희도 피곤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간부들도 비슷한 의견이었다.
과격하고 폭력적인 면에 가려져 있지만, 위지천의 검술 지도는 굉장히 꼼꼼하고 세심했다.
다른 학생들도 동의하는지 하나둘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지도를 받아 보니 알겠더라고요.”
“한계까지 몰리니까, 평소에는 안 되던 초식이 어느 순간 펼쳐지더라.”
“살기가 얼마나 찌릿찌릿한지……. 열심히 할 수밖에 없었어요.”
오늘 하루 위치전에게 지도를 받아 보면서, 다들 그동안 얼마나 안일한 수련을 반복하고 있었는지 깨달았다. 그 탓에 전체적으로 스스로를 돌이켜보고 반성하는 분위기였다.
유이란이 그런 학생들을 둘러보며 입을 열었다.
“……그래서 말인데.”
이건 위지천에 대한 마음과는 별개였다.
유이란은 진심으로, 위지천의 검술 지도가 상검연에 큰 도움이 될 거라고 느꼈다.
“며칠 더 위지천에게 배워 보는 건 어때? 다신 없을 기회라고 생각하는데.”
“으음…….”
“며, 며칠이나 더요?”
“좋은데 싫다…….”
상검연의 학생들은 모두 검을 좋아하는 소년·소녀들이었다.
더 강해질 수 있다면, 더 검을 잘 쓸 수 있게 된다면, 힘든 것은 얼마든지 감수할 각오가 돼 있었다.
다들 고민하긴 했지만, 결국 모두가 동의했다.
유이란은 직접 위지천에게 가서 그 이야기를 전했다.
“너만 괜찮다면 며칠만 더 검술 지도를 부탁해도 될까?”
“……정말이요?”
풀이 다소 죽었던 위지천의 얼굴이 환해졌다.
다른 사람들에게 가르치는 능력을 인정받았다는 의미였으니까.
위지천이 활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그, 너무 열심히는 하지 말고…….”
“안 그래도 오늘은 눈치가 보여서 평소보다 약하게 했거든요. 내일은 강도를 더 높일게요!”
“……애들한테는 비밀로 하자.”
그렇게 그날 이후로도, 위지천은 종종 붉은 영웅건을 매고 상검연 학생들의 검술을 지도했다.
합숙소의 시간은 유독 빠르게 지나갔다.
무성하게 자라난 나무와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아침이슬에 맺혀 반짝이는 햇빛.
필사적으로 울어대는 매미와, 그에 못지않은 힘찬 기합을 넣으며 검을 휘두르고 땀 흘리는 청춘들.
“교육생들! 정신 똑바로 차립니다!”
바야흐로, 여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