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 One Star Instructor Master Baek RAW novel - Chapter 35
34화. 월영(月影)
“그 야장은 어떤 사람이랍니까?”
야장의 천막은 낭인 시장이 열린 야산에서도 가장 구석진 곳에 있었다.
복만춘을 따라 구불구불한 산길을 걸어가는 중에, 나는 시간도 때울 겸 우리가 만날 야장에 대해서 물었다.
“본명은 아무도 모르고, 다들 위 노인이라고 부른답니다. 야장들이 거의 그렇지만 곰 같은 덩치에 인상이 무뚝뚝하고, 고집이 보통이 아니라더군요.”
“고집만큼 실력도 있으면 좋겠네요.”
“실력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고 합니다. 처음 낭인 시장에 나타났을 때는 다들 뭐 하는 양반인가 했는데, 속는 셈 치고 그 양반이 파는 칼을 사 갔던 낭인 몇 명이…….”
“낭인들이 뭐요? 어떻게 됐는데요?”
온갖 곳을 돌아다니며 굴러먹은 낭인이라 그런지, 복만춘에게는 이야기꾼의 재능이 있었다.
딱 궁금한 부분에서 말을 멈춘 그가 날 돌아보더니 히죽 웃었다.
“몇 번이나 목숨을 건졌답니다. 싸구려 칼인 줄 알고 사 갔던 것이 웬만해서 이가 나가지도 않고, 전투를 수십 번이나 치르고도 멀쩡했더랍니다.”
“……보검이었던 거네요.”
“진짜 재미있는 이야기는 이제부터입니다. 그 칼 덕분에 목숨을 건진 낭인 중 하나가 고마운 마음에 사례하려고 찾아갔는데, 글쎄 위 노인이 뭐라고 말한 줄 아십니까?”
큼큼 헛기침을 한 복만춘이 본 적도 없는 위 노인의 목소리를 흉내 냈다.
“그건 대충 만든 싸구려 칼이니 돈은 더 필요 없소.”
지나칠 정도로 굵고 거친 목소리에 나는 피식 웃었다.
“실력은 확실한 것 같네요.”
“하하. 예. 그때부터 위 노인이 낭인 시장에서 유명해진 겁니다. 그에게 무기를 사겠다는 낭인들이 줄을 섰지요. 이런, 길이 갑자기 어두워졌군요.”
낭인 시장의 중심에서 점점 멀어지자 길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치익…….
품에서 화섭자를 꺼내 불을 붙인 복만춘이 앞길을 밝히며 말했다.
“어디까지 말했더라……. 아, 위 노인이 낭인들에게 의뢰하기 시작한 것이 그때부터입니다.”
“의뢰요?”
“예. 자신의 의뢰를 들어주면 보검을 만들어 주겠다고 호언장담을 했다더군요.”
“호오…….”
보검이라는 말에 흥미가 생겼다.
세상에 수많은 야장이 있지만, 보검을 만들 수 있다고 호언장담할 수 있는 야장은 거의 없었다.
지난 생에서도 그런 수준의 야장은 거의 보지 못했다.
굳이 한 명 꼽으라면 혈마검을 만든…….
복만춘의 흥분한 목소리가 나를 다시 현실로 데려왔다.
“보검을 싸구려라고 말하는 장인이 보검이라고 호언장담할 정도의 물건이라니! 어떤 물건을 만들어 줄지 상상이나 되십니까?”
“신병이기를 만들어 주겠다는 말이라 생각해도 무리가 아니겠네요.”
“꼭 검이 아니라도 상관없습니다. 도, 창, 봉, 갑옷까지 쇠로 만들 수 있는 건 뭐든지 만들어 주겠다고 했답니다.”
이쯤 되니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그 의뢰가 뭔데요?”
“저는 모릅니다.”
“예?”
“그 의뢰를 받아들였던 낭인들이 전부 죽었거든요.”
“…….”
이 인간이 지금 장난하나…….
내 눈빛이 심상치 않게 변하자 복만춘이 급히 수습하듯 말했다.
“물론 죽지 않은 자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도 의뢰 내용은 절대 말하지 않았습니다.”
“……비밀을 지켜야 한다고 맹세라도 한 겁니까? 복 총관님 앞에서 이런 말하는 건 조금 그렇지만, 낭인들이 그렇게 입이 무거운 자들은 아닌 거로 아는데…….”
“그게 아니라 전부 미쳐 버렸거든요. 의뢰에 실패한 자들은 한 명도 빠짐없이.”
이쯤 되면 복만춘이 나를 은밀한 곳으로 데려와 죽이거나 미치게 하려고 계획했다고 생각하는 쪽이 충분히 합리적이지 않을까.
“이제야 본색을 드러내는군. 내 재산을 노리는 거냐?”
“고, 공자님. 사람 말은 끝까지 들어주십시오.”
내가 주먹을 슬그머니 말아 쥐자 복만춘이 식은땀을 흘리며 변명했다.
“위 노인이 꼭 의뢰를 받아들여야만 물건을 만들어 주는 건 아닙니다. 돈을 받고도 만들어 주지요.”
“…….”
“신병이기는 아니더라도, 충분히 어디 가서 보검이라고 불릴 만한 물건을 만들어 줄 겁니다. 공자님께서 어떤 물건을 원하시는지는 잘 모르지만요.”
“진작 그렇게 말할 것이지.”
오해가 풀린 나는 주먹을 내렸다. 복만춘이 장난스럽게 휴- 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하여튼 그런 노인이라고 합니다. 고집 세고, 실력 있고, 입도 무겁다 하니, 공자님께서 찾는 야장에 딱 맞는 인물일 겁니다.”
“그런 사람이 왜 낭인 시장에 있는지 모르겠네요. 그 실력이면 받아 줄 곳은 얼마든지 있을 텐데.”
“그건 묻지 않는 편이 좋으실 겁니다.”
복만춘이 자신의 왼쪽 눈의 안대를 매만지며 흐릿하게 웃었다.
“이 바닥에 있는 놈치고, 사연 없는 놈 없으니까요.”
“이제 와서 그래 봤자 하나도 안 멋져 보입니다.”
“쩝…….”
우리는 두런두런 대화를 나누며 계속 산을 올랐다.
야산의 중턱에서 한참을 올라가 거의 꼭대기에 도착하자 천막 하나가 보였다.
천막 옆에 걸린 횃불이 일렁였고, 그 앞쪽으로 서 있는 두 사람이 보였다.
“공자님. 거의 다 도착했…….”
터어어엉!
북이 터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천막 앞에 서 있던 사내 중 한 명이 허공을 붕 떠서 내 옆을 지나쳐 날아갔다.
“끄아아악! 빌어먹을 늙은이!”
다행히 소리만큼 심하게 얻어맞은 건 아닌지, 나동그라졌던 사내가 벌떡 일어나더니 천막 쪽을 향해 소리쳤다.
“왜 안 된다는 건데! 돈 준다고 했잖아!”
사내는 핏발 선 눈으로 천막 쪽을 향해 소리를 질러댔다.
얼굴이 검고 묘하게 약 향이 풍기는 것이, 마약에 중독된 것처럼 보였다.
그때 사내를 후려친, 천막에 남아 있던 자가 말했다.
“썩 꺼져. 네놈한테는 아무것도 안 판다.”
횃불 앞에 서 있는 바람에 역광이 비쳐 얼굴이 제대로 보이지는 않았으나, 늙수그레한 음성이 노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빌어먹을! 이러고도 무사할 줄 알아?”
“더 맞고 갈 테냐?”
감히 다시 덤빌 용기는 없는지, 사내는 온갖 창의적인 욕을 노인에게 퍼붓더니 몸을 돌려 달아났다.
나는 귓속말로 복만춘에게 물었다.
“저 노인이 그 야장이에요?”
“정황상 그런 것 같습니다.”
“무공이 강하다는 얘기는 안 했잖아.”
“제가 그것까지 어떻게 알겠습니까.”
그때까지 천막 앞에 묵묵히 서 있던 노인이 고개를 돌려 우리를 바라봤다.
“댁들은 뉘쇼?”
* * *
한곳에서 천년을 버틴 바위처럼 단단한 사내.
위 노인을 가까이에서 보고 가장 먼저 떠올린 생각이었다.
수십 년 넘게 쇠를 다뤄서인지, 그의 육체는 그 어떤 쇠보다 단단해 보였다.
그리고 왠지 어디서 본 듯한 얼굴이었다.
‘얼굴이 익숙한데.’
위 노인의 어깨와 팔에는 여러 문신이 있었는데, 그중 왼쪽 어깨에 있는 붉은 용이 내가 아는 것과 흡사했다.
그 문신을 본 순간, 불현듯 하나의 이름이 떠올랐다.
‘저 문신은 설마…….’
내가 말없이 서 있자, 복만춘이 눈치껏 앞으로 나서며 포권을 취했다.
“위 노야(老爺). 저희는 위 노야의 크신 명성을 듣고 멀리서 말을 달려 찾아왔습니다.”
“사탕발림은 됐고 용건만 말하시오.”
“……흠흠. 무기 제작을 의뢰하려고 합니다.”
“무기라……. 보아하니 이쪽 청년이 쓰려는 무기 같은데.”
위 노인은 피곤해 보이는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
그의 시선이 내 전신을 꼼꼼하게 훑어 내렸다.
얼굴은 피곤해 보였으나, 시선은 잘 벼린 칼날처럼 날카로웠다.
그 순간 나는 확신했다.
이 노인은 내가 아는 가문의 사람이었다.
나는 복만춘을 제치고 노인을 향해 나아갔다.
“신병이기를 만들어 준다는 그 의뢰. 아직도 유효합니까?”
“고, 공자님! 그건 그냥…….”
“가만히 계세요.”
“…….”
나는 싸늘한 목소리로 복만춘의 입을 다물게 했다.
잠시 날 바라보던 위 노인이 피곤해 보이는 눈가를 손등으로 문지르며 말했다.
“그 이야기도 들었소? 내 의뢰를 받아들인 낭인은 모두 죽었소.”
“알고 있습니다. 모두 죽거나 아니면 미쳐 버렸다면서요.”
“그래도 내 의뢰를 받아들이겠다고?”
“음. 그게…….”
그러면 그렇지, 라는 표정으로 날 바라보는 위 노인에게 나는 뺨을 긁적이며 말했다.
“의뢰 자체는 문제가 아닌데, 좀 나중에 처리해 드려도 되겠습니까? 제가 며칠 후에 큰 시험이 있어서 당장은 좀 어려울 수도 있거든요.”
“……뭐? 푸하하!”
내 말에 위 노인이 웃음을 터트렸다.
잠시 후 그가 조금 진지해진 눈빛으로 날 바라봤다.
“날 보고 똑바로 서시오.”
위 노인이 나를 똑바로 바라봤다.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두 눈에서 불꽃이 터져 나올 듯 형형한 시선.
어떤 분야든 장인에게는 ‘안목’이 있다.
위 노인은 한 자루의 검을 평가하듯, 나라는 인간을 자신의 안목으로 평가하고 있었다.
나는 그의 시선을 피하지 않고 마주 보았다.
잠시 후, 위 노인의 눈동자에 놀라움의 빛이 스쳐 갔다.
“묘하군…… 묘해. 허어.”
그렇게 위 노인은 한참을 더 나를 살펴보더니, 결국 고개를 저었다.
“돌아가시오. 당신에겐 내 의뢰를 맡기지 않겠소.”
“제게 확신이 안 드십니까?”
위 노인은 덤덤히 고개를 끄덕였다.
“당신은 아직 완성되지 않은 검이오. 완성되면 어떤 형을 갖출지 상상도 되지 않으나…… 아직은 그 강도나 예기가 부족해 언제든지 부러질 수 있는 검이오.”
꽤나 예리한 지적이었다.
야장답게 위 노인은 나를 검으로 비유했는데, 내 무공이 아직 부족하며 육체도 완성되지 않았다는 의미였다.
하지만 위 노인의 안목으로도 알 수 없는 것이 있었다.
“저는 지금도 꽤 단단한 검입니다.”
“내 눈엔 아니오. 나는 아직 완성되지 않은 검을 내 손으로 부러뜨리고 싶지 않소.”
고개를 절레절레 저은 위 노인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견문을 넓혀 준 보답으로 내가 만든 검 중 제대로 된 것을 하나 주겠소. 훗날 스스로가 완성되었다고 생각하면 그때 다시 나를 찾아오시오. 그땐 의뢰를 맡기지.”
그것은 나를 향한 호의이자, 훗날 맡길 의뢰의 선수금이었다.
하지만 내가 다시 자신을 찾아오지 않는다고 해도, 위 노인은 나를 원망하거나 찾으려 들지 않을 것이다.
‘조금 답답하지만 마음에 들어.’
나는 위 노인이라는 한 명의 장인이 마음에 들었다.
동시에, 저렇게 고집이 센 노인은 한번 마음을 정하면 설득도 고문도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에 답답했다.
결국 나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알겠습니다. 오늘은 일단 돌아가고, 조만간 다시 찾아오겠습니다.”
“기대하겠소. 여기서 잠시 기다리시오. 검을 가져다줄 터이니.”
사실 운철로 만든 무기가 지금 당장 필요한 것은 아니었다.
내 무공과 위치가 충분해질 때까지.
그때까지는, 지금 위 노인에게 건네받은 이 검으로도 충분했다.
“월영(月影)이라는 놈이오. 그럭저럭 쓸 만할 거요.”
나는 위 노인이 건네준 검을 받아들었다.
아무런 무늬도 없는 흑색의 검집에 그 흔한 수실도 달려 있지 않았다.
하지만 검을 받아 드는 순간, 명검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달그림자라…….
이름도 마음에 쏙 들었다.
“조만간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잘 가시오.”
위 노인과 인사를 나누고 돌아섰을 때였다.
“늙은이! 내가 후회할 거라고 했지-!”
산 아래쪽에서 수십 개의 횃불이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사납게 소리친 목소리의 주인은, 아까 위 노인에게 맞고 쫓겨났던 사내였다.
“가서 천막에 불 지르고 안에 있는 물건은 다 챙겨! 저 늙은이가 도망 못 치게 포위하고!”
사내의 명령에, 횃불을 든 낭인들이 아래에서 흩어지더니 우리를 포위하며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 숫자가 적어도 수십.
전부 무공을 익힌 자들이라 그 움직임이 신속했다.
“감히 낭인 시장에서 이런 짓을…….”
복만춘이 온몸에서 살기를 내뿜으며 칼을 뽑아 들었다.
위 노인도 굳은 얼굴로 천막 안에서 커다란 칼을 가지고 나왔다.
그때 내가 두 사람을 제지했다.
“두 분은 여기서 가만히 계십시오.”
“예?”
“무슨?”
마침 몸이 근질근질하던 차였다.
혈교 시절이 떠오르는 거친 낭인들의 세계에 들어와서, 남들이 싸우는 모습을 구경하려니 묘하게 갈증이 생겼다.
스르릉.
위 노인이 건네준 검을 검집에서 뽑아내자, 듣기 좋은 검명이 울렸다.
‘보기 드문 명검이군.’
나는 위 노인을 돌아보며 씩 웃었다.
“보여 드리죠. 지금의 제가 어느 정도의 검인지.”
“……그러다 부러질 수도 있소.”
“설마요.”
나는 밀려오는 낭인들을 홀로 상대하기 위해 앞으로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