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 One Star Instructor Master Baek RAW novel - Chapter 39
38화. 갈 데 없으면 저랑 같이 가시죠? 나는 쓰러진 위지천에게 다가갔다.
‘기절했군.’
내가 펼친 무극일섬은 위지천의 심장이 아니라 손등을 꿰뚫었다.
검을 놓치게 하기 위해서였는데, 녀석은 손에서 피를 철철 흘리면서도 검은 놓지 않았다.
의식을 잃고 기절한 와중에도 말이다.
“쯧. 끝까지 검을 놓지 않은 건 훌륭하다만, 기절해 버리면 그게 다 무슨 소용이냐.”
혀를 찬 나는 위지천의 손에서 검을 빼내고 상처를 지혈했다.
위지천은 자신의 마지막 공격에 모든 내공을 쏟아부었다.
동귀어진(同歸於盡)이나 다름없는 수법.
다행히 내가 녀석의 초식을 모두 알고 있기에 망정이지, 하마터면 사이좋게 삼도천을 건널 뻔했다.
“멍청한 녀석.”
나는 검집으로 위지천의 머리를 한 대 후려친 후에 어깨에 둘러멨다. 다행히 당장 위지천의 생명에는 지장이 없었다.
나는 녀석을 봉분 옆에 있는 초옥으로 데려가 침상에 눕혔다.
누더기가 된 옷을 벗기자, 무공을 익혔다고 보기에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앙상한 몸이 드러났다.
몸의 주요 혈도를 따라 곳곳에 피멍이 들어 있었다.
‘주화입마가 상당히 진행됐군.’
그때, 벗긴 옷가지 안에서 서책 하나가 툭 하고 떨어졌다.
“이건…….”
서책의 겉에는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았다.
하지만 첫 장을 펼친 순간, 나는 그것이 내가 혈교를 엿 먹이기 위해 만든 가짜 무극검의 비급임을 알아보았다.
동시에 흑립인이 이 소년에게 이 비급을 건네며 했다는 말이 떠올랐다.
-세상에 복수하고 싶으냐? 그렇다면 이 무공을 익혀라. 십 년을 익힐 수 있다면 천하제일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다시 생각해 보니 뭔가 이상했다.
‘십 년? 이 비급으로는 오 년도 못 가서 주화입마에 걸려 죽는다. 그걸 모르지 않을 텐데…….’
설마 알고도 건네준 건가?
알고도 건넸다면, 그 흑립인은 악랄하기 그지없는 놈일 것이다.
나는 왠지 놈의 의도를 알 것 같았다.
‘불완전한 무공을 완성하기 위한…… 실험대상으로 삼았군.’
아주 간혹, 불완전한 무공을 스스로 완성하는 천재들이 있었다.
흑립인은 아마도 그 낮은 가능성을 보고 위지천에게 이 불완전한 무공을 건넸을 것이다.
그리고 종종 찾아와 멀리서 관찰하고 돌아갔겠지.
‘어쩌면 다른 곳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나고 있을 수도 있겠군.’
내가 뿌린 씨앗이 이런 식으로 자라나고 있다는 생각이 들자, 마음이 조금 심란해졌다.
나는 순진하게 생긴 소년의 얼굴을 내려 보며 낮게 중얼거렸다.
“……스승도 없이 잘도 혼자서 이 정도나 익혔구나.”
무극검은 심오하고 난해한 무공이다.
게다가 이 비급은 아주 정교하게 만든 가짜였다.
검존에 버금가는 천재가 아닌 이상에야, 익히면서 어디가 잘못됐는지 깨닫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런데 삼 년이나 익혔음에도 죽지 않고 이만한 성취를 이뤘으니, 그것만으로도 어마어마한 재능이라 할 수 있었다.
나는 위지천을 보며 일전에 청룡학관 축제에서 만났던 헌원강을 떠올렸다.
‘재능만 따지면 그 녀석에 못지않아. 아니, 오히려 그 이상일지도.’
누군가 옆에서 다듬어준다면 찬란하게 빛날 재능.
나는 양손을 뻗어 왼손은 위지천의 배에 올리고, 오른손은 이마 위에 올렸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역천신공의 기운을 불어넣었다.
“끄윽…….”
고통스러운지 위지천이 몸을 비틀며 신음했다. 나는 흔들리는 몸을 지그시 누르며 기로 위치천의 몸 안을 계속 탐색했다.
‘탁기가 몸 전체, 그리고 뇌에도 일부 스며들었군.’
애초에 익히는 자를 주화입마에 걸리도록 만든 비급이었기에, 나는 위지천이 어떤 상태인지 쉽게 파악할 수 있었다.
‘이 정도라면…… 아직 구할 수 있다.’
타다다닷!
나는 빠르게 위지천의 혈도를 몇 군데 짚은 후, 역천신공을 본격적으로 끌어올렸다.
내가 흘려보낸 한줄기 내공이 위지천의 몸 안을 일주천했고, 그 안에 쌓여 있던 탁기를 내 장심으로 끌어들이기 시작했다.
“끄윽……!”
위지천은 식은땀을 흘리며 괴로워했다. 온몸에 오한이 드는지 몸을 덜덜 떨었다. 코에서 피가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버텨라. 버티지 못하면 어차피 죽는다.’
위지천의 몸 안에는 삼 년 동안 잘못된 운기법으로 쌓인 탁기가 고스란히 쌓여 있었다.
그렇게 쌓인 탁기가 끝내 골수까지 스며들었고, 그것이 곧 위지천이 광증(狂症)을 일으킨 원인이었다.
나는 역천신공을 이용해 그 탁기를 모두 내 몸 안으로 흡수할 생각이었다.
‘천음절맥도 이럴 때는 쓸모가 있군.’
내가 익힌 역천신공은, 일정한 성취까지는 몸 안에 있는 탁기를 단전으로 모아 내단처럼 만들어야 한다.
바로 여기에 영약의 힘이 필요했다.
그리고 지금 내 몸 안에는, 아직 다 흡수하지 못한 칠지구엽초의 약력이 어느 정도 남아 있었다.
“끅, 끄으, 끄으윽……!”
위지천의 코와 귀, 눈에서 피가 줄줄 흘러내렸다.
마른 몸에 핏줄이 터질 듯 불거지고, 입에서는 하얗게 거품이 일었다.
하지만 살살 해 줄 수가 없었다.
나는 더욱 역천신공으로 위지천의 몸 안을 구석구석 청소해 탁기를 흡수했고, 마지막으로 뇌에 스며든 탁기까지 모조리 빨아들였다.
“후우…….”
곧바로 가부좌를 틀고 자리에 앉았다.
몸 안으로 흘러들어온 탁기를 흡수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이 몸이 어떤 몸인데.’
자랑은 아니지만, 천음절맥으로 삼십 년 가까이 몸 안에 탁기를 쌓아 둔 몸이다.
그에 비하면 고작 삼 년 정도 모아둔 애송이의 탁기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으음?’
오히려 다른 종류의 탁기가 단전으로 흡수되자, 두 가지 기운이 뒤섞이며 상승작용을 일으켰다.
나는 단전 안의 내단이 확장되는 느낌에 당황했다.
2성에 머무르던 역천신공의 성취가 어느새 3성을 돌파한 것이다.
잠시 후, 나는 천천히 눈을 뜨며 중얼거렸다.
“……살다 보니 이런 일도 다 있군.”
뜻하지 않은 기연에 어안이 벙벙했다.
나는 가부좌를 풀고 일어나, 완전히 탈진해 버린 위지천을 내려다봤다.
“…….”
피투성이에 몰골이 시체나 다름이 없는 상태였지만, 호흡이 안정됐고 안색은 한결 편안해 보였다.
“대충 고비는 넘긴 것 같군.”
아까 벗겨낸 옷으로 얼굴과 몸에 묻은 피를 적당히 닦아 주었다.
그때, 초옥 밖에서 위지열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천아야! 천아! 대체, 대체 둘 다 어딜 간 게야!”
나는 초옥 밖으로 나가 위지열을 맞이했다.
곧 나를 발견한 위지열이 경공을 펼쳐 날듯이 달려왔다.
“대체 어찌 된 겐가? 내 손자는 어디로 가고 자네만 여기 있어!”
나는 뭐라고 말을 꺼낼까 하다가, 일단 의뢰에 대한 결과부터 알려 주기로 했다.
“어르신. 죄송하지만 의뢰는 실패했습니다.”
“아…….”
위지열은 그제야 내 몰골을 보고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지금 나는 옷 여기저기가 찢기고 베이고, 찔린 상처도 제법 많았다.
“……도망친 건가? 그래. 살아남은 것만으로 대단한 게지……. 그런데 내 손자는 어디로 갔나?”
직접 자신의 손자를 죽여 달라고 부탁했으면서도, 막상 눈에 보이지 않으니 불안한 모양이었다.
위지열은 불안한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보며 중얼거렸다.
“설마 진법 밖으로 나간 것은 아니겠지? 그랬다간 감당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질 텐데…….”
“지금 저 안에서 자고 있어요.”
“……뭐?”
위지열이 멍한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
나는 친절하게 손으로 내 뒤에 있는 초옥을 가리켰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인가. 광증이 심해진 이후로, 그 아이는 부모 무덤 곁에서 떠난 적이 없네.”
“못 믿으시겠으면 한번 들어가 보시죠.”
위지열은 여전히 못 믿겠다는 표정을 하면서도, 무언가에 홀린 듯이 초옥 안으로 들어갔다.
잠시 후, 그는 곤히 잠들어 있는 손자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처, 천아?”
비록 격전의 흔적과 주화입마를 치료하며 흘린 피 때문에 피골이 상접했지만, 마성이 사라진 평온히 잠든 소년의 얼굴을.
위지열의 표정이 서서히 경악으로 물들었다.
“설마, 설마…….”
“그 설마가 맞습니다.”
“어떻게…….”
“죽일 필요가 없었거든요. 몸과 뇌에 스며든 탁기를 다 빼냈으니, 곧 정신을 차릴 겁니다.”
“그, 그게 정말인가?”
나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노인에게 부드럽게 웃어 주었다.
“대신 내공을 상당 부분 잃겠지만, 그래도 금방 정신을 차릴 겁니다.”
“그런 건 상관없네! 대체 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지…….”
그때 위지천이 천천히 눈을 뜨더니, 잠이 덜 깬 얼굴로 자신의 할아버지를 올려보며 중얼거렸다.
“할아버님……?”
그 목소리는 전과 달리 공손했으며, 눈빛에는 붉은 혈기가 아닌 정광이 감돌았다.
소년은 날 보더니 흠칫 놀라 몸을 일으키려고 했다.
위지열이 그런 손자를 부축했다.
“처, 천아! 정신이 드느냐?”
“제가 왜 여기 있죠? 이분은…….”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느냐?
“아, 어떤 검법을 익히다가, 언제부턴가 기억이…….”
위지천은 어지러운 듯 할아버지에게 몸을 기댔다.
소년은 추운 듯 몸을 으스스 떨었다.
“할아버님. 저, 악몽을 꾼 것 같아요…….”
노인은 몇 년 새 앙상해진 손자를 와락 끌어안으며 울음을 터트렸다.
“으헝헝헝헝!”
바위처럼 단단해 보이는 노인의 눈에서 닭똥 같은 눈물이 흘러내렸다.
“…….”
나는 두 사람을 잠시 지켜보다 조용히 초옥을 빠져나왔다.
* * *
털썩.
내 앞에 무릎을 꿇은 위지열이 비장한 목소리로 말했다.
“내 자네가 원하는 것이라면 뭐든지 들어줄 것이네. 설령 내 목숨을 달라고 해도!”
“하, 할아버님!”
그 옆에서는 위지천이 어쩔 줄 모르며 내 눈치를 보고 있었다.
농담이라도 했다간 진짜 자해라도 할 기세여서, 나는 최대한 부드럽게 말했다.
“목숨까지는 필요 없고. 검 하나만 만들어 주시면 됩니다.”
“내 최선을 다해 가진 재주를 모두 동원해 보겠네. 반드시 자네가 만족할 수 있을 만한 명검을…….”
“겨우 명검 정도로는 안 됩니다.”
나는 위지열의 말을 중간에 끊고, 정확히 내가 원하는 수준의 검이 어떤 것인지 말했다.
“적어도 혈마검 정도는 되어야지요.”
“그, 그건…….”
말문이 막힌 위지열은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만약 내가 손자의 은인이 아니었다면, 당장 뭐라도 던졌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은혜를 아는 노인인지라, 이내 한숨을 길게 내쉬더니 고개를 숙였다.
“……정말 미안하네만, 혈마검은 만들 수 있는 물건이 아니네. 일단 재료부터 구할 수가 없을뿐더러…….”
“이게 있다면 가능하지 않을까요?”
나는 품에서 운철을 꺼내 그에게 보여 주었다.
잠시 이게 뭔가 하고 운철을 살펴보던 위지열의 눈동자가 곧 경악으로 부릅떴다.
“우, 우, 우, 운철……!”
얼마나 놀랐는지 운철을 받아든 팔이 덜덜 떨리고 있었다.
그럴 수밖에.
쇠를 다루는 야장에게 운철은 무인으로 치면 대환단이나 공청석유보다 더한 보물이니까.
나는 진지한 목소리로 물었다.
“혈마검보다 더 뛰어난 검을 만들어 주실 수 있겠습니까?”
그 순간, 자존심 강한 장인의 두 눈이 용광로처럼 뜨겁게 달궈졌다.
“자네가 원하는 것이 내 평생의 목표였다고 하면 믿겠나?”
그 어떤 다짐보다 믿음직한 말이었다.
그런데 위지열의 표정이 금세 어두워졌다.
“한 가지 문제가 있네. 운철을 다루려면 제대로 된 시설이 있어야 해. 큰 도시에나 있는 규모가 큰 대장간에, 필요한 재료도 여럿이고…….”
당장 그만한 대장간을 구할 수가 없어 곤란하다는 이야기였다.
잠시 듣고 있던 내가 말했다.
“흐음. 마침 잘됐네요.”
“잘됐다니?”
마침 허 노인이 남긴 사업체 중에 대장간도 하나 있거든.
위조 호패 두 개쯤 구해다 줄 포두 친구도 있고.
“두 사람. 갈 데 없으면 저랑 같이 갈래요?”
그날 밤.
나는 오랜 세월 도망자로 살아온 늙은 야장과, 제대로 된 스승이 필요한 소년과 함께 길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