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 One Star Instructor Master Baek RAW novel - Chapter 453
453화. 녹림맹주
승패가 갈렸다.
명확하고도 압도적인 결과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끄윽…….”
“커헉…….”
바닥에 처박힌 두 거한은 고통스럽게 꿈틀거렸다. 전신이 피투성이인 데다가 언뜻 보아도 뼈마디가 열 개는 부러진 듯했다.
반면, 유일하게 서 있는 사내는 가슴을 들썩이며 가빠진 호흡을 정리했다.
“후우…….”
격렬한 싸움으로 무복이 찢어지고 머리는 산발이 되었으나, 사내는 허리를 꼿꼿하게 펴고 두 다리로 굳건히 바닥을 디뎠다.
지금 이 순간에는 흑사련주조차 사내의 존재감을 침범하지 못했다.
“녹의수사가…… 이겼다.”
“그것도 혼자서 둘을…….”
“바, 방금 호문채주를 내리꽂은 초식 말이오. 이야기로만 들었던 녹림투왕의 무공과 똑같지 않았수?”
“녹림맹은 어찌 되는 거지? 정말로 다시 결성되는 겐가?!”
혼란이 극에 달했다. 산적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마구 떠들어 댔다. 누구 하나 흥분하지 않은 자가 없었다.
염라채. 거령채. 호문채.
녹림칠십이채를 삼분하는 삼대 세력의 주인들이 오늘, 형산 축융봉 정상에서 자웅을 겨뤘다.
그 결과 거령채주와 호문채주가 쓰러지고, 염라채주인 녹의수사만이 당당히 두 발로 서 있었다.
“둘이 함께 덤볐는데도 졌으니, 변명할 거리도 없는 완패지.”
백수룡은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며 녹림의 반응을 살폈다.
개중에서도 일부 나이가 많은, 머리카락이 희끗희끗한 녹림의 사내들은 울컥한 표정으로 녹의수사를 바라보고 있었다.
“내가 살아서 맹호투를 볼 줄이야…….”
“저것이 녹림투왕께서 남기신 무공…….”
그들은 녹림투왕의 전설을 기억하는 자들이었다.
두 주먹으로 녹림칠십이채를 통일하고, 녹림의 전성기를 이끈 사내의 이야기를 들으며 어린 시절을 보낸 사내들.
그들의 눈에는, 녹의수사의 뒤편으로 사자 갈기와 같은 머리칼을 휘날리는 거인의 모습이 겹쳐지고 있었다.
“녹림왕…….”
몇몇은 벅차오르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해 그 단어를 중얼거렸다.
어쩌면, 그들은 이 자리에서 녹림의 새로운 전설이 탄생하는 것을 목격하는 중일지도 몰랐다.
“……또 나설 자가 있는가?”
녹의수사가 지친 목소리로 녹림의 사내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그의 몸 상태 또한 좋지만은 않았다.
마공을 사용한 거령채주와 호문채주의 공격은 하나하나가 스치기만 해도 치명적이었다. 몸에서 적지 않은 피가 흘렀다.
“누구든 맹주가 되고 싶다면 나서라. 얼마든지 받아 주겠다!”
다치고 지쳤음에도 녹의수사의 눈빛과 언행에는 변함이 없었다.
그가 위엄 어린 눈빛으로 산적들을 둘러보자, 눈이 마주친 자들은 시선을 피하거나 고개를 숙였다.
“……아무도 나서지 않겠다면, 나를 맹주로 인정한 것이라 생각해도 되겠나?”
분위기를 휘어잡은 녹의수사의 물음에, 녹림의 사내들이 하나둘 고개를 끄덕일 때였다.
“커허억!”
쓰러져 있던 거령채주가 피를 왈칵 토하더니,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나는…… 인정할 수 없다!”
부러졌던 뼈가 어느새 다시 붙고, 몸에 난 상처들이 눈에 띄게 아물고 있었다.
도저히 인간 같지 않은 치유력. 거령채주가 익힌 마공의 공능이었다.
“크르륵…….”
호문채주도 마찬가지였다. 바닥에 처박혀 있던 그가 몸을 일으키며 구덩이에서 빠져나왔다.
송곳니가 점점 길게 솟고, 손톱 역시 길게 자라나는 모습은 더 이상 인간이라 부를 수 없었다. 마치 지옥의 야차를 보는 듯했다.
‘불사야차마공(不死夜叉魔功)이었군.’
백수룡은 눈을 가늘게 뜨고 두 채주의 변화를 살폈다.
불사야차마공은 인간의 신체 능력과 회복 능력을 극단적으로 끌어올리는 마공이었다.
물론 이름처럼 진정한 불사는 아니다.
인간의 생명력인 진원진기를 불태워 회복력을 급증시키는 편법일 뿐.
지금의 회복으로 저들은 십 년 이상의 수명이 줄어들었을 것이다.
“내 도끼를 가져와라!”
어느 정도 몸을 회복한 거령채주가 부하들에게 소리치자, 부하 중 하나가 허겁지겁 도끼를 들고 왔다.
“흐흐. 녹림맹주로 인정하라고? 여기서 살아 돌아가지도 못할 놈을? 모두 무기를 들어라!”
거령채주가 약속을 어기고 싸울 준비를 하라는 명령을 내리자, 산적들이 당혹스러운 표정이 되었다.
그의 부하 중 하나가 조심스럽게 거령채주를 말렸다.
“채주님. 일단은 조금 진정하시는 것이…….”
콰직!
거령채주는 머리가 반으로 쪼개진 부하의 시체를 옆으로 밀어 버렸다. 그리고 공포에 질려 자신을 바라보는 부하들을 무시무시한 눈빛으로 쏘아봤다.
“또 떠들 반역자 새끼가 있느냐?”
“……!!”
오랜 시간 동안 새겨진 공포는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거령채와 그 산하에 있는 산적들은 공포에 질려서 무기를 들었다.
“여기서 녹의수사와 그 일당을 모두 죽인다!”
호문채와 그 산하의 세력들도 마찬가지였다.
송곳니를 드러낸 호문채주가 주위를 둘러보며 명령을 내리자, 그 살기 어린 눈빛을 견디지 못한 산적들이 무기를 들었다.
“이런 육시랄 새끼들이!”
“약속이 다르잖아!”
장걸과 구길이 즉시 달려나가 녹의수사를 좌우에서 호위했다. 백수룡은 녹의수사의 앞을 막아섰다.
거령채주와 호문채주를 필두로 이백의 산적들이 그들을 포위하며 다가왔다. 하나같이 살벌한 기세를 뿜어내고 있었다.
“혀, 형님. 저 새끼들이 진짜 해보려는 모양인데 어떻게 합니까?”
긴장한 장걸의 말에, 백수룡은 스산하게 눈을 빛내며 대답했다.
“싸워야지. 자근자근 밟아서 더 이상 덤비는 놈이 없을 때까지.”
백수룡도 더 이상은 참지 않을 생각이었다.
그의 사제는 최선을 다했다.
모두가 보는 앞에서 녹림투왕의 무공을 계승했음을 증명했고, 두 채주를 죽이지 않음으로써 자비를 베풀었다.
그런데도 녹림의 사내들은 여전히 망설이고 있었다.
“녹림도가 전부 너희와 같은 겁쟁이라면, 너희에게는 녹림왕을 가질 자격이 없다.”
맹룡휘의 일침에 산적들 중 일부가 이를 꽉 악물었다. 그러나 서로 눈치만 볼 뿐, 선뜻 용기를 내진 못했다. 그 사이에도 포위망은 점점 좁혀졌다.
“쯧. 마무리가 지저분하군.”
흑사련주는 미간만 가볍게 찌푸릴 뿐, 적극적으로 중재하거나 끼어들 생각은 없어 보였다.
결국 녹림 내부의 일이기 때문이었다. 오히려 이참에 맹룡휘의 도법을 조금 더 감상할 생각에, 흑사련주는 입꼬리를 슬며시 말아 올렸다.
다른 사파의 종주들도 비슷했다. 귀령왕은 강 건너 불구경하듯 흥미롭게 지켜봤고, 벽안귀는 팔짱을 낀 채 상황을 주시했다.
“죽은 놈들은 강시로 만들어도 상관없겠지?”
“…….”
정파였다면 의와 협을 논하며 분개하고 나섰겠지만, 이들은 근본적으로 그런 것과는 거리가 먼 자들이었다.
언제 싸움이 벌어져도 이상하지 않은 일촉즉발의 분위기.
백수룡이 유엽도를 도집째로 끌러서 단단히 쥘 때였다.
캬앙!
녹의수사의 어깨 위로 아기 맹수가 올라왔다.
은호는 잔뜩 화가 난 얼굴이었다.
야수혁과 백수룡 다음으로 좋아하는 인간인 녹의수사가 많이 다쳤기 때문이었다.
캬아아앙-!
작고 긴 울음이었다.
몇몇은 상황의 경중도 잊고 헛웃음을 지었다.
그러나 그 작은 포효가 만들어 낸 일은 놀라웠다.
크르르르…….
크르르르…….
“뭐, 뭐냐?”
“너희들이 왜…….”
“이놈들아! 멋대로 움직이지 마!”
거령채주가 기르는 맹수들이 산적들을 헤치고 앞으로 나아가더니, 돌아서며 사나운 이빨을 드러냈다.
그 모습이 마치 녹의수사를 호위하려는 것처럼 보였다.
“이 배은망덕한 놈들! 당장 돌아오지 못하겠느냐!”
얼굴이 시뻘게진 거령채주가 고함을 쳤으나, 대호는 그보다 훨씬 더 큰 포효로 대답했다.
크허어어엉-!
쩌렁쩌렁한 포효가 산봉우리를 뒤흔들었다. 그 머리 위로 폴짝 뛰어오른 은호가 잘했다는 듯 앞발로 대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갑자기 이게 무슨…….”
“저놈들이 왜 저래?”
맹수들의 돌발행동에 다들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가운데, 나이가 지긋한 산적 중 하나가 멍하니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과거 녹림투왕께서 산에 발걸음을 하시면, 천하의 영물들과 맹수들이 먼저 찾아와 고개를 조아렸다 했는데…….”
“설마…….”
“허……!”
전설이 된 녹림투왕의 일화가 흘러나오자, 산적들이 놀란 표정으로 녹의수사와 그를 호위하는 맹수들을 바라봤다.
‘아니 뭔 개소리야?’
정작 그 실체를 아는 백수룡은 황당하다는 표정이었다.
맹사부 그 양반이 영물을 얼마나 많이 잡아먹은 인간인데, 미쳤다고 영물들이 스스로 찾아온다는 말인가.
‘마주치면 무서워서 오줌을 지리긴 했겠지.’
아마 그런 모습이 시간이 지나면서 와전된 것이 아닐까.
백수룡은 혼자 그렇게 납득하곤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때로는 오해가 전설을 만드는 법.
하나뿐인 제자가 아는 녹림투왕은 고기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는 양반이었지만, 녹림의 사내들에게는 전설 속의 신선과 다름이 없었다.
녹의수사의 모습에서 녹림투왕의 전설을 떠올리게 되자, 산적들의 눈빛이 더 크게 흔들렸다.
결국, 누군가가 먼저 용기를 냈다.
“……빌어먹을. 더 이상은 못 참겠군.”
아까 녹의수사에게 ‘왜 맹호투를 익힌 것을 진작 말하지 않았냐.’고 따져 물었던 사내였다.
그가 부하들과 함께 반대편으로 돌아서며 외쳤다.
“북명채는 오늘부로 거령채 산하를 떠나겠다! 북명의 호걸들은 녹의수사를 지켜라!”
““예!””
십여 명의 산적들이 채주와 함께 돌아서며 방금 전까지 아군이었던 자들에게 무기를 겨눴다.
고작해야 십여 명.
이백 명이라는 숫자에 비하면 초라한 숫자.
하지만 첫 시작이 어려울 뿐이었다.
북명채의 결정은 두 채주로부터 마음이 떠난 산하의 산적들에게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흑풍채도 더 이상 호문채주를 지지하지 않겠다!”
열 명은 스무 명이 되었고.
“웅한채도 마찬가지다! 너희 두 놈은 녹림맹주가 될 자격이 없다!”
스무 명은 금세 서른, 마흔이 되었으며.
“진광채는 이 순간부터 녹의수사를 녹림맹주로 지지하겠다!”
거령채와 호문채에서 직접 데려온 자들을 제외한 대부분의 산적들이 녹의수사를 지지하겠다며 돌아섰다.
그중에는 거령채와 호문채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녹림칠십이채에 속한 큰 산채의 채주들도 있었다.
“이 새끼들이……!”
“전부 죽고 싶으냐! 이건 반란이다!”
당황한 거령채주와 호문채주가 뒤늦게 상황을 수습하려 했으나, 이미 분위기는 걷잡을 수 없이 변한 후였다.
“누가 감히 녹림맹의 형제들을 해친단 말이냐!”
다시 앞으로 나선 녹의수사가 형형한 눈빛으로 거령채주와 호문채주를 노려봤다. 그 서릿발 같은 기세에 두 채주가 흠칫했다.
“거령채주. 호문채주. 너희는 아직도 나를 맹주로 인정할 생각이 없는가?”
“…….”
“…….”
어느덧 녹의수사 쪽에 가세한 숫자가 전체의 절반이 넘었다.
게다가 거령채와 호문채에서 직접 데려온 부하들은 사기가 바닥인 상황.
“선택해라. 무릎을 꿇고 나를 맹주로 인정할 것인지, 아니면 이 자리에서 생사결로 결판을 낼 것인지.”
이만한 명분이라면, 설령 녹의수사가 이 자리에서 둘의 목을 베어도 문제가 없었다.
“큭……!”
거령채주와 호문채주는 대답하지 못하고 한참을 망설였다. 치솟는 살기를 겨우 억누르고, 싸웠을 때의 승산을 가늠하는 듯했다.
그들과 잠시 눈이 마주친 맹룡휘가 차갑게 웃었다.
“그냥 싸우지? 이 자리에서 네놈들 모가지를 그어 버리게.”
“이 하룻강아지가 감히……!”
사라지던 거령채주의 살심이 다시금 솟아올랐다.
그러나 호문채주가 그의 팔을 붙잡고 고개를 저었다.
둘은 잠시 전음을 주고받는 듯했다. 거령채주의 일그러진 표정이 서서히 가라앉았다.
그리고 결국.
“……인정하겠소.”
“……인정하겠소.”
배신자들의 후손답게 생존을 선택했다.
털썩.
털썩.
두 채주가 스스로 무릎을 꿇는 순간, 녹의수사의 곁에 선 산적들이 일제히 함성을 내질렀다.
우와아아아아!
수십 년 만에 녹림에 새로운 맹주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맹수들도 고개를 치켜들고 일제히 포효하고, 장걸이 녹의수사를 목말을 태워 번쩍 들어 올렸다.
녹의수사도 활짝 웃으며 즐거워했다.
“……보고 계시오?”
백수룡은 한 걸음 물러나서 그 모습을 지켜봤다.
함께 이 모습을 봤다면 껄껄 웃으며 누구보다 좋아했을 텐데.
-으하하하하!
맹사부의 호탕한 웃음을 떠올리며, 백수룡은 미소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