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 One Star Instructor Master Baek RAW novel - Chapter 522
522화. 이제야 내가 아는
창에 꿰여 날아온 가주의 머리.
그 참상을 목격한 악가의 무인들은 공황에 빠졌다. 나이가 많든 적든, 지위가 높든 낮든 다르지 않았다. 소가주 역시 마찬가지였다.
“아, 아버님…….”
악연화는 도저히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부친의 얼굴을 바라봤다. 끔찍한 고통의 순간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명문무가의 소가주로서 흔치는 않아도 적지 않게 시체를 보았다.
하지만 지금 눈앞에 죽어 있는 사람은 자신의 아버지였다.
평생 자신을 억압해 온 존재였지만, 오히려 그래서 더 세상이 무너진 듯한 충격이었다.
“어째서 당신이…….”
악연화는 넋이 나간 얼굴로 천천히 부친에게 다가갔다. 눈알이 뽑혀 나가고 적지 않은 이빨이 부러진 모습. 죽이기 전에 모진 고문이 있었음을 짐작게 했다.
소가주로서 그래선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악연화는 분노와 두려움으로 사시나무 떨듯 떨리는 몸을 주체할 수 없었다.
“……누님.”
뒤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그녀는 퍼뜩 정신을 차리고 돌아봤다. 악연호가 염려 가득한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괜찮으세요?”
“……그래.”
악연화는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전혀 괜찮지 않은 표정이었으나, 악연호는 더 이상 묻지 않고 조용히 물러났다. 죽은 악비의 머리를 힐긋거리는 그의 시선이 복잡했다.
“대체 누가 십존의 일원을…….”
“저 시체가 진짜 창왕이라고?”
“대체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겁니까!”
악가의 무인들뿐만이 아니었다.
청룡학관과 주작학관의 강사들, 학생들 대부분이 큰 충격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했다.
산동악가의 가주이자 십존의 일인이 살해당했다. 심지어 자신의 창에 꿰여서 머리만 돌아온 모습으로.
강호를 들썩이게 할 충격적인 사건에 다들 어찌할 줄 모르고 웅성거리기만 할 때였다.
“뭣들 하는 겐가! 적의 공격에 대비해 싸울 준비를 갖추지 않고!”
노군상의 일갈이 모두에게 경각심을 일깨웠다.
‘적’이라는 말에 혼란에 빠졌던 이들이 퍼뜩 정신을 차렸다. 강사들은 학생들을 인솔하고, 악연화는 악가의 무인들에게 싸울 준비를 하라고 명했다.
그사이 백수룡과 염왕은 곧바로 분가의 정문으로 향했다. 창이 날아온 방향이었다.
휘이익!
훌쩍 높은 곳으로 뛰어오른 백수룡이 산 아래를 내려보며 침음했다.
“혈교…….”
검붉은 파도가 숲을 물들이며 밀려오고 있었다.
두두두두!
먼지구름을 일으키며 진군해 오는 혈교의 군세.
그들이 내뿜는 짙은 마기에 수풀이 말라 죽고, 산짐승들이 놀라 비명을 질렀다. 하늘을 날던 새들은 지상으로 추락하였고, 맹수들도 겁에 질려서 바위에 스스로 머리를 들이받았다.
‘혈랑대, 귀살대, 마령혼…….’
다른 무인들의 눈에는 다 검붉은 무복으로 보이겠지만, 백수룡에게는 조금씩 다른 복장과 각 부대가 익힌 무공의 특색이 보였다.
이곳에 동원된 혈교의 무력대만 셋. 그 인원은 족히 수백에 이르렀다. 한 지역을 쑥대밭으로 만들고도 남을 만한 큰 전력이었다.
“이 새끼들……. 작정을 했구나.”
표정을 굳힌 백수룡은 아래로 훌쩍 뛰어내렸고.
쿵!
정문을 홀로 가로막은 채 몰려오는 적들을 노려봤다. 곧이어 염왕이 그 옆에 장포를 펄럭이며 내려섰다.
“……자네 말대로 혈교였군.”
“저희가 이곳에서 최대한 시간을 벌어야 합니다.”
“시간? 나는 모조리 불태워 버릴 셈이었는데?”
이 와중에도 농담을 건네는 염왕의 넉살에 백수룡은 피식 웃었다. 그가 적월을 단단히 움켜쥐며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그러나 혈교의 병력은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멈춰 서서 더 이상 전진해 오지 않았다.
뒤늦게 달려온 악연화와 악가의 무인들이 도착할 때까지도, 혈교 측에서는 별다른 움직임이 없었다.
“무슨 꿍꿍이지? 왜 바로 공격하지 않고…….”
미간을 좁힌 염왕이 의심스러운 목소리로 중얼거릴 때였다.
강호의 잡것들은 듣거라!
대기를 떨어 울리는 카랑카랑한 목소리였다.
앞뒤 좌우를 가리지 않고 사방에서 소리가 울려 대는데, 그 사악한 음성을 듣는 것만으로도 대다수의 무인들은 기혈이 울렁거릴 정도였다.
“유, 육합전성(六合傳聲)!”
“내공을 끌어올려 기혈을 보호하라!”
고절한 경지는 물론이고, 어마어마한 내공을 보유해야만 펼칠 수 있다고 알려진 기예가 육합전성(六合傳聲)이었다. 하지만 상대는 그것을 광범위하게 펼치면서도 전혀 힘든 기색이 없었다.
“이토록 넓은 범위의 육합전성이라니…….”
“내공의 화후가 대체 어느 정도이기에…….”
경악한 무인들이 질린 표정으로 혈교의 병력을 둘러볼 때였다.
핏빛 장포를 두른 건장한 체구의 노인이 몇 걸음 앞으로 걸어 나오며 말했다.
노부는 혈마신교의 대장로 불사마존이니라.
염왕과 노군상이 동시에 반응했다. 그들은 오래된 악몽을 떠올린 것처럼 잔뜩 일그러진 표정으로 불사마존을 노려봤다.
“어쩐지 들어 본 목소리다 싶더니…….”
“과거에 저 노괴를 태워 죽이지 못한 것이 천추의 한이구나!”
클클. 익숙한 얼굴들이 있구나. 오십 년 전에는 애송이에 불과했던 놈들이 늙은이가 되었어.
반가움이 가득한 목소리는 도리어 상대를 깔보는 듯했다.
마치 지난 수십 년간 승리와 평화에 취해 있던 정파 무림인들을 한껏 조롱하는 듯했다.
내 너희에게 한 가지 제안할 것이 있다. 해서 특별히 선물도 주었느니라.
“선물?”
이미 받지 않았더냐? 창에 잘 꿰어서 보냈는데. 저런, 혹 날아가는 중에 알아보지 못하게 부서졌는가?
불사마존의 ‘선물’이 무엇을 말하는지 깨달은 악가의 무인들이 분노해 기함을 터트렸다.
“이노옴!”
“네놈이 가주님을!”
“죽여 버리겠다!”
그러나 분노와 동시에, 악가의 무인들은 가주를 죽인 적에게 두려움을 느꼈다. 가문의 절대자로 군림했던 가주였기에 더욱 그러했다.
클클. 본교가 원하는 것은 하나다. 청룡신협. 놈을 내놓는다면 우리는 이곳에서 순순히 물러나마.
“그따위 헛소리를 믿으라는 게냐!”
화르르륵!
염왕이 만들어 낸 커다란 화염구가 불사마존을 향해 날아갔다.
그러나 그것은 불사마존에게 채 닿기도 전에 사방에서 날아온 날카로운 검기와 장풍으로 흔적도 없이 흩어졌다.
순간 백수룡의 표정이 굳었다.
‘장로급 이상의 고수가 적어도 셋 이상이다.’
상대의 전력이 만만치 않다고 느낀 것은 백수룡만이 아니었다. 염왕과 노군상의 표정도 돌처럼 굳었다.
불사마존은 그런 반응을 즐기기라도 하듯 느긋하게 반문했다.
허면 다른 방도라도 있더냐? 본교가 공격을 시작하면 전부 죽을 터인데, 아직 꽃 피우지 못한 어린 무인들의 목숨이 아깝지도 않은가 보구나.
“…….”
악가의 분가는 절벽으로 둘러싸인 협곡에 위치한 천혜의 요새였다.
적으로부터 방어하기에는 좋으나, 반대로 말하면 밖으로 나가려면 정면을 돌파하는 수밖에 없었다.
노부의 명예를 걸고 약조하겠다.
일부러 잠시 뜸을 들인 불사마존은 마지막으로 제안했다.
해가 지기 전까지 청룡신협을 보낸다면 본교는 놈을 데리고 물러날 것이다. 허나 너희가 끝내 본교의 자비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육합전성에 담긴 내공과 살기가 한층 진해졌다. 카랑카랑하고 불길한 목소리가 분가 전체에 전해졌다. 거의 음공에 가까웠다.
그 안에 있는 것은 개미 새끼 한 마리 살아남지 못하리라!
할 말을 끝낸 불사마존이 뒤로 물러나자, 혈교의 군세도 십여 장가량 뒤로 물러나 진을 쳤다.
“…….”
“…….”
악가의 분가에는 한동안 무거운 적막이 흘렀다.
“결국…….”
그 적막을 깬 것은 악가의 무인들 중 한 사내였다. 그가 원망이 담긴 시선으로 백수룡을 바라봤다.
“청룡신협 때문에 혈교가 이곳에 몰려왔다는 것이 아닙니까?”
백수룡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를 대신해 화를 낸 것은 악연호를 비롯한 그의 주변 사람들이었다.
“지금 그게 무슨 말입니까? 이게 형님 탓이라니요!”
“내 말이 틀렸단 말이냐? 따지고 보면 가주님도 청룡신협 때문에 변을 당하신 게 아니냐! 그리고 어디 감히 양자 따위가……!”
한 명이 아니었다. 비슷한 생각을 하는 악가의 무인들이 적대적인 시선으로 백수룡을 바라보며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본인 때문에 일어난 일이라면, 스스로 책임을 져야 마땅하지요.”
“어째서 청룡신협 한 명 때문에 저희 모두가 위험에 처해야 합니까?”
“책임 소재를 분명히 해야 할 필요가…….”
그 모습을 보며, 백수룡은 불사마존의 의도를 파악할 수 있었다.
‘처음부터 우리의 내분을 노렸구나.’
혈교가 곧바로 공격하지 않은 이유는 이곳이 천혜의 요새이기 때문이었다.
청룡학관, 주작학관, 산동악가가 합심해 버티기 시작하면 모자란 전력으로도 대규모의 적을 막아 낼 수 있을 터.
그래서 본격적인 공격을 시작하기 전에 내분이 일어나도록 유도한 것이다. 안에서부터 스스로 무너지게끔.
“이런 답답한 작자들을 보았나! 우리를 분열시키려 하는 것이 혈교의 의도임을 정녕 모르겠단 말인가!”
염왕이 불같이 화를 내 보았으나, 한 번 이성을 잃은 악가의 무인들은 쉽게 냉정을 되찾지 못했다.
“하! 같은 오대학관에 몸담고 있다고 편을 드시는군요. 저희는 가주님을 잃었습니다!”
“믿을 사람이 없어서 혈교도의 말을 믿는 것이더냐?”
“무인이 자신의 명예를 걸고 약속했습니다. 단순히 혈교도라고 하여 그것을 거짓이라고 치부할 수 있습니까?”
“허어! 이토록 어리석은…….”
한쪽에선 악가의 무인들이, 반대쪽에선 청룡, 주작학관의 강사들이 설전을 벌이며 팽팽하게 맞섰다.
악가는 하루아침에 구심점을 잃었다.
그들을 이끌어야 할 가주는 죽었고, 총관과 외당주, 내당주 등의 주요 인사들은 대부분 산동의 본가에 남아 있었다.
가주가 본가에서 데려온 심복들이 있었으나, 그들 대부분은 가주가 지난 밤에 데리고 나가 돌아오지 않았다. 모두 가주와 함께 죽었을 것이다. 통솔할 자들이 대부분 사라진 탓에, 분열은 쉬이 진정되지 않았다.
몇 안 되는 남은 이들은 넋이 나갔거나 목에 핏대를 세우며 청룡신협을 내보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청룡신협을 보내야 합니다!”
“헛소리하지 마시오!”
설왕설래가 길어지며 양측으로 나뉜 무인들이 서로 날을 세웠고, 혼란은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아군이 분열하면서 전체적인 사기가 저하되는 중이었다. 학생들은 불안해하며 눈치를 보고 있었다.
그때였다.
“……청룡신협께 묻겠습니다. 아까 가주님의 입에서 무언가를 꺼내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게 무엇입니까?”
한동안 조용히 있던 악연화가 백수룡에게 다가와 물었다. 그 눈빛이 죄인을 취조하듯 서늘했다.
“……이겁니다. 방금 불사마존에게 들은 이야기가 그대로 적혀 있습니다.”
백수룡은 구겨진 서찰을 악연화에게 건넸다.
빠르게 그 내용을 읽어 내려가는 악연화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그녀는 서찰의 아래에 피가 번진 부분을 가리키며 물었다.
“이건…… 무엇입니까?”
청룡신협을 내놓으면 물러나겠다는 내용 아래, 알아보기 힘들게 휘갈긴 낙서 같은 것이 적혀 있었다.
백수룡은 모르겠다며 고개를 저었다.
“글쎄요. 아마 글을 쓰던 중에 피가 번진 것이겠지요. 혹은 입안에 들어가 있는 동안 번졌거나.”
“…….”
악연화가 이를 악물고 부친의 피로 쓰인 서찰을 바라보고 있자, 악가에서는 청룡신협을 내보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점점 커져 갔다.
백수룡은 당장이라도 자신을 내쫓고 싶어 하는 악가의 무인들을 바라봤다.
‘이대로는 불사마존의 의도대로 흘러간다. 내분이 일어나게 두느니…….’
설령 전력이 줄어들더라도 악가의 무인들을 먼저 제압하는 것이 나을 수도 있었다.
혈교와의 싸움에 앞서 한 명의 무인이라도 더 필요한 상황이지만, 지금은 어쩔 수 없는 고육지책이라도 써야 할 상황이었다. 믿을 수 없는 아군은 적보다 더 위험하니까.
‘우선 소가주부터 제압해야겠군.’
마음을 굳힌 백수룡이 은밀하게 내공을 끌어올리는 순간이었다.
“너희는 부끄럽지도 않더냐!”
내공이 담기지 않은 목소리였다.
그럼에도 모두의 이목을 끈 것은, 그 목소리가 이곳에 있는 누구보다 결사적이었기 때문이었다.
한 사내가 다리를 절뚝이며 걸어오고 있었다. 한 손에 꼬나쥔 창을 지팡이 삼아, 불편한 몸을 이끌고 무인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성큼성큼 다가왔다.
“아버지!”
깜짝 놀란 악연호가 달려가 악진헌을 부축하려고 했다.
“비키거라.”
그러나 악진헌은 단호하게 아들의 도움을 뿌리치며 혼자서 걸어왔다. 매서운 눈빛으로 가문의 무인들을 한 명씩 노려보면서.
“진헌 숙부님?”
악연화가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악진헌을 바라보았다.
잔뜩 화가 난 얼굴의 그를 보는 것도 처음이었지만, 변변한 무공을 익히지 못한 그가 무기를 든 모습이 걱정부터 된 것이다.
그러나 악가의 소가주가 한 가지 간과한 것이 있었다.
무인이 가진 기백과 용기는 무공 성취의 높고 낮음과 별개라는 것을.
“가주를 해친 자들이 저기 있는데, 어째서 그 원인을 다른 곳으로 돌리는 것이냐!”
악진헌의 한마디에 방금 전까지 떠들던 악가의 고수들이 입을 다물었다. 가장 열성적으로 청룡신협을 비난하던 무인조차 악진헌과 눈이 마주치자 시선을 피했다.
자리에 멈춰 선 악진헌이 거칠어진 호흡을 정리하고 다시 물었다.
“대답해 보거라. 가주의 수급을 선물이라며 보낸 자들이 본가를 조롱하고 겁박하는데, 어째서 싸울 생각은 않고 손님을 쫓아내려는 것이냐? 무인의 긍지는 대체 어디로 간 것인가!”
“…….”
“아니면 설마, 가주를 죽인 적들에게 겁을 먹은 것이더냐?”
악진헌은 분가에 남아 있는 악씨 성을 지닌 가솔 중 최고 어른이었다. 그의 말에 불만을 가진 이들이 없는 것은 아니었으나, 공식적인 자리에서 대놓고 무시할 수는 없었다.
악진헌은 가문의 무인들을 둘러보며 말을 이었다. 억지로 화를 참는 목소리였다.
“나는 열다섯에 부상을 입어 더 이상 무공을 익히지 못하게 되었다.”
“창을 놓은 후에는 총관에게 일을 배웠다. 너희들이 들고 있는 창, 입고 있는 의복, 매일 먹는 음식이 어디서 왔고 얼마의 품이 들어가는 줄 아느냐?”
대부분의 무인들이 신경 쓰지 않는 일을 수십 년간 묵묵히 해 오며, 다른 방식으로라도 가문에 도움이 되고자 살아온 사내의 회고.
“너희들에겐 하찮아 보이겠지만, 이렇게 가문의 뒷바라지를 하는 것이 내 일이다. 허나 나는!”
악진헌은 오랜 잡무로 굽어진 어깨를 펴며 당당하게 말했다.
“단 한 번도 스스로가 산동악가의 무인임을 잊어 본 적이 없다. 비록 무인이라고 부르기에도 부끄러운 육신이지만, 내 기개만큼은 너희들처럼 못나지 않기 때문이다.”
무언가 반박하기 위해 입술을 달싹이던 자들조차 부끄러움에 고개를 숙였다.
“나는 죽더라도 악가의 무인으로서 당당하게 죽을 것이다. 결코 비겁자로 살지 않을 것이야.”
악진헌은 지팡이 대용으로 쓰던 창을 힘껏 쥐더니, 그대로 소가주를 지나쳐 걷기 시작했다. 적진으로 향하는 사내의 얼굴은 결사의 각오를 다지고 있었다.
쿵! 쿵! 쿵!
바닥을 찍는 작은 울림이 그 어떤 진각보다 크게 울렸다.
악진헌은 그렇게 정문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 서슬 퍼런 눈빛에 누구도 그를 붙잡지 못했다.
악연호가 어쩔 줄 모르며 양부의 뒤를 따르다가 결국 앞을 막아섰다.
“아버지. 제발 진정하세요!”
“비키거라. 어차피 싸움에 도움이 되지 못할 바에야, 악가의 창 중에 가장 먼저 부러지는 창이 될 것이다.”
“아버지가 왜 그래야 하는데요! 진짜로 죽을지도 모른다고요!”
악진헌은 당장이라도 울 것 같은 얼굴로 소리치는 아들을 보며 단호하게 말했다.
“연호야. 너는 애비가 죽는 걸 무서워하는 겁쟁이인 줄 알았더냐? 네가 나를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면, 비켜다오.”
누구도 그 고집을 말릴 수 없었다.
이 자리에서 그를 말릴 수 있는 건 한 사람뿐이었다. 모두의 시선이 소가주를 향했다.
“……본가는.”
악연화가 갈라진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녀는 절뚝거리며 적진으로 걸어가는 늙은 창수의 뒷모습을 잠시 바라보았다. 복잡한 표정에 서서히 단호한 결심이 어렸다.
쿠웅-!
창으로 바닥을 찍은 악연화가 내공을 담아 외쳤다. 쩌렁쩌렁한 음성이 바깥에 있는 혈교의 군세까지 닿았다.
“가주님을 해친 흉수들과 맞서 싸울 것이다. 악가의 창수들은 모두 창을 들어라!”
여전히 불만을 가진 무인도, 혈교에게 두려움을 가진 무인들도, 속으로 악진헌을 욕하는 악가의 무인들도 있었다.
하지만 가주가 죽은 상황에서 소가주가 내린 결정이었다. 납득할 수 없어도 따르는 것이 무림세가의 핏줄에 새겨진 본능이었다.
““명을 받듭니다!””
악가의 무인들이 일제히 창을 하늘로 치켜들었다. 햇살이 창날에 닿아 동시에 부서지는데, 그 기세가 하늘을 찌를 듯했다.
“……이제야 내가 아는 악가의 무인들답구나.”
악진헌은 그 모습을 보고 난 후에야 노기를 가라앉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