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 One Star Instructor Master Baek RAW novel - Chapter 590
590화. 자네도 많이 변했어
권패! 권패! 권패!
별호의 새 주인을 연호하는 관중들의 목소리에 천무학관이 들썩였다.
수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무림의 신성이 탄생한 순간이었다.
입이 가벼운 호사가들이 향후 천하제일권이 될 재목이라고 떠들던 천무학관의 초일이 비무대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그를 쓰러뜨린 상대는 놀랍게도, 천무제에서 만년 최하위를 피하지 못했던 청룡학관의 사 학년이었다.
“…….”
거상웅은 멍하니 고개를 들어 관중석을 둘러봤다.
그의 새로운 별호를 연호하는 사람들의 목소리에 천무학관이 들썩였다.
“하하……!”
비로소 이겼다는 사실이 실감 났다. 짜릿한 희열감에 온몸이 부르르 떨렸다. 그러던 중에 시선이 거일산과 마주쳤다.
-아부지! 저는 커서 천하제일권이 될래요!
-금룡상단을 천하제일상단으로 만드는 것보다 그게 더 어려울지도 모르는데?
-그래도 하고 싶어요!
-하하하! 알았다. 하고 싶은 건 뭐든지 해 봐야지. 이 애비가 힘껏 밀어주마.
어린 시절, 아버지와 약속했던 순간이 문득 떠올랐다.
흐뭇하게 웃어 주며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던 아버지의 두꺼운 손.
지금은 자신이 아버지보다 더 커졌지만, 여전히 거상웅에게 아버지란 태산처럼 커다란 존재였다.
거상웅은 순간 감정을 참지 못하고 힘껏 외쳤다.
“아버지! 약속은 꼭 지키겠습니다! 계속 지켜봐 주십시오-!”
거상웅이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소리치자, 잠시 눈이 커졌던 거일산이 이내 껄껄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주름진 눈가에는 작게 눈물이 맺혀 있었다.
반면, 의식을 잃은 초일은 천무제 진행 요원들에게 실려 나갔다.
우우우우우우!
처참한 몰골로 쓰러졌음에도 관객들은 초일에게 동정이 아닌 야유를 보냈다.
초일은 외공 대결에서 패색이 짙어지자, 내공을 사용해서 살수를 펼치는 비겁한 모습을 보였다.
번외로 치른 비무에서 이겼다면 어느 정도는 만회할 수 있었겠지만, 그마저도 패배하면서 여론을 뒤집을 일말의 여지조차 사라졌다.
결과는 늘 패자에게 더 잔인한 법이었다. 여기에 판돈을 잃은 사람들의 원성과 조롱까지 더해졌다.
‘다시 재기하기는 불가능하겠군.’
백수룡은 밖으로 실려 나가는 초일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초일이 그간 쌓아 온 명성은 한순간에 바닥에 처박혔고, 무인의 명예라고 할 수 있는 별호마저 빼앗겼다.
비열하다고 낙인찍힌 후기지수를 좋아할 정파의 문파는 없으니, 천무학관에서 쌓은 인맥도 그 힘을 잃을 것이다. 혈교의 세작으로서 가져야 할 쓸모마저 대부분 사라진 셈이었다.
‘게다가 비무 도중에 흔적이 드러났어.’
초일은 거상웅과 비무 도중 몇 번인가 저도 모르게 마공을 사용할 뻔했다.
최소한의 자제력은 있는지 끝까지 참아 내긴 했지만, 그 찰나의 갈등만으로도 절세고수들의 의혹을 사기엔 충분했다.
벌써 몇몇 의심 어린 시선들이 초일을 향하는 것이 보였다.
“끝났군.”
짧게 혀를 찬 백수룡이 초일에게 완전히 관심을 거뒀다.
마침 천무학관주가 자리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청룡학관 사 학년 거상웅의 승리를 선언한다. 약조에 따라, 권패라는 별호 또한 지금 이 시간부로 거상웅이 가지게 될 것이다. 나 천무학관주 진량이 그 사실을 보증한다.”
천무학관주의 공식적인 선언에 관중석에서 또다시 함성이 터져 나왔다.
하지만 천무학관주의 말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단, 패배를 인정한 상대를 공격해 다치게 한 것에 대해서는 향후 징계를 받게 될 것이다. 물론 초일에게도 똑같이 징계가 내려질 것이다.”
“예.”
거상웅은 각오했다는 듯 덤덤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얼굴에는 한 점의 후회도 없었다.
다시 하라고 해도 마지막 한 방은 반드시 먹여 주었을 것이다.
“모두 감사드립니다!”
거상웅은 자신을 응원해 준 관중들에게 포권을 취한 후, 비무대에서 내려와 절뚝거리며 청룡학관 진영으로 걸어갔다.
이겼지만 그 역시 몸이 만신창이였다. 아마 며칠은 끙끙 앓게 될 터였다.
“녀석. 고생했다.”
누구보다 먼저 제자를 맞이하러 나온 백수룡에게, 거상웅은 멋쩍게 웃으며 뒤통수를 긁적였다.
“선생님 덕분입니다. 어느 순간부터 그 자식이 하는 공격이 눈에 훤히 보이더라고요. 마치 전에 겪어 본 것처럼…….”
전생에 혈룡대에서 초혁을 상대한 경험이 있는 백수룡은 단혼염라수에 대해서도 알고 있었다.
초일과 다시 만났을 때, 거상웅이 무의식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수련시킨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거상웅의 승리가 빛바래는 일은 없었다.
“네 실력으로 이긴 거다. 그러니까 당당해도 된다.”
“……예.”
백수룡은 수고했으니 쉬고 있으라며 제자의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이후 거상웅은 헌원강, 위지천, 여민을 비롯한 청룡학관 학생들에게 축하 세례를 받은 후, 마지막으로 야수혁에게 다가갔다.
일성과의 사투로 인해 부상자로 분류돼 있던 야수혁이었다. 전신에 붕대를 감은 그가 거상웅을 보곤 입꼬리를 씰룩였다. 은호가 그 머리 위에서 늘어져라 하품을 했다.
“꼴이 그게 뭐요? 엉망진창이구만.”
“네 얼굴이나 보고 말해라. 일성이 너보다 멀쩡하더라.”
서로를 한 번씩 타박한 그들은 동시에 웃음을 터트렸다.
“하여간 고생하셨수다.”
“그래. 너도 고생했다.
두 소년은 큼직한 주먹을 가볍게 부딪쳤다.
그리고 부상자석에 나란히 앉아 나머지 경기를 관람하려고 했지만…….
드르렁~ 피유우…….
드르렁~ 피유우…….
소란이 진정된 후 다른 경기가 시작되었으나, 서로 어깨를 기대고 코를 골기 시작한 두 사람은 깨어나지 않았다.
학생들은 곤히 잠든 두 사람을 바라보며 킥킥 웃었다.
“이러고 있으니 영락없이 곰 두 마리라니까.”
“누가 아니래.”
권패(拳覇)와 맹호권(猛虎拳).
향후 주먹으로 천하제일을 다투게 될 두 사람.
그러나 청룡학관에서 그들은 여전히 흑백쌍웅이었다.
* * *
천무제 첫날의 경기가 전부 마무리되었다.
외공 종목에 참가한 학생들의 점수가 학관별로 매겨졌고, 그에 따라 계산된 순위가 천무학관의 가장 높은 건물 벽에 현수막으로 게시되었다.
“…….”
남궁수는 첫날의 성적표를 올려보다가 고개를 돌려 백수룡을 바라봤다.
“첫날 성적에 만족하나?”
마침 백수룡도 고개를 들어 성적표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가 어깨를 으쓱이며 피식 웃었다.
“이 정도면 나쁘지 않지.”
一 二 三 四 五
주 백 청 현 천
작 호 룡 무 무
성적순으로 좌측부터 게시된 오대학관의 현수막이 불어오는 바람에 가볍게 펄럭이고 있었다.
첫날 외공 대결 종목에서 가장 높은 종합 점수를 얻은 것은 주작학관이었다.
그들은 천무학관과 청룡학관 학생들이 초반부터 맞붙으면서 어부지리를 챙겼다고 할 수 있었다.
“두 녀석 모두 다음 경기에 나가는 건 무리였으니까.”
흑백쌍웅은 전력을 쏟아 낸 한 번의 비무로 완전히 탈진했다.
물론 둘 다 다음 비무에도 나가겠다는 의지를 피력했지만, 백수룡이 나설 것도 없이 남궁수 선에서 칼같이 차단당했다.
-고집을 부리겠다면 짐을 싸서 집으로 돌려보내겠다.
그 모습이 얼마나 서슬 퍼렇던지, 거상웅과 야수혁은 얌전히 자리에 다시 누워야 했다. 지금은 치료를 받으며 쉬고 있었다.
“주작학관은 예상했지만, 백호학관도 제법이던데.”
백수룡은 두 번째 순위에 걸린 백호학관의 현수막을 바라보며 말했다.
외공 대결 종목의 결승은 주작학관과 백호학관 학생의 대결이었다.
비록 청룡학관과 천무학관의 대결만큼 이목을 끌지는 못했지만, 두 학관의 학생들 또한 수준 높은 외공 대결로 박수를 받았다.
“천무제에 만만한 상대는 하나도 없다. 천무학관만 신경 쓰다가는 오늘처럼 다른 곳에 점수를 빼앗길 수도 있지.”
“내일부턴 조금 더 신경 써야겠네.”
그리고 세 번째가 청룡학관이었다.
거상웅과 야수혁이 첫 경기 이후로 기권했음에도, 그들이 보여 준 비무는 관중들에게 가장 깊은 인상을 남겼다.
비록 다섯 학관 중 세 번째라는 성적표는 다소 아쉬웠지만, 첫날 천무제의 진정한 주인공이 청룡학관이라는 것을 부정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허허. 아무래도 전략적이지 못했지.”
노군상이 뒷짐을 진 채로 두 사람에게 다가왔다.
대회 내내 노군상은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그저 학생들을 지켜보며, 청룡학관의 누구보다 천무제를 즐기는 모습이었다.
그랬던 노군상이 짓궂게 웃으며 백수룡에게 말했다.
“백 선생. 자네가 도중에 나서지 않았다면, 첫날 외공 종목을 석권하는 것도 가능했을 게야.”
그는 실격패로 처리된 초일과 거상웅을 다시 싸움 붙인 것에 대해서 말하고 있었다.
그때도 거상웅은 지쳐 있었지만, 다음 대결에 나설 만한 여력은 충분히 남아 있었다. 그대로 결과를 받아들이고 다음 경기에 나섰다면, 첫날 대회의 우승도 노릴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백수룡은 굳이 나서서 거상웅과 초일의 비무를 추진했다. 노군상은 그 이유에 대해 묻고 있었다.
“자네처럼 똑똑한 사람이 예상하지 못했을 리 없는데, 왜 그랬나?”
천무제 우승을 호언장담한 백수룡이었다.
그리고 지난 일 년 동안 그 목표를 위해 달려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하지만, 백수룡은 거상웅이 점수와 상관없는 비무에 나서게 해 오히려 청룡학관이 손해를 보게 만들었다.
잠시 생각하던 백수룡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때 상웅이의 얼굴을 보는데, 천무제 우승보다 저 녀석이 초일을 때려눕히는 걸 더 보고 싶더라고요. 그게 전부였습니다.”
“비슷한 상황이 생기면, 그때도 같은 결정을 내릴 텐가?”
“글쎄요. 아마 그럴 것 같습니다.”
“나중에라도 후회하지 않을 자신이 있나?”
조금은 의미심장하게 들리는 노군상의 질문에, 백수룡이 고민하지 않고 대답했다.
“후회하지 않을 겁니다. 조금도.”
노군상의 주름진 눈가에 부드러운 미소가 맺혔다. 천무제 우승보다 중요한 것이 생겼다는 백수룡의 말 때문이었다. 남궁수는 그 옆에서 묘한 표정을 지었다.
“자네도 많이 변했어.”
“물론 천무제는 우승할 겁니다. 아직 엿새나 남아 있지 않습니까? 앞으로 전부 이기면 되지요.”
“……여전히 욕심은 많지만 말이야.”
피식 웃은 백수룡은 슬쩍 고개를 돌려 한 방향을 바라봤다.
“그리고…… 저는 저희가 일등을 못 한 것보다 저쪽이 꼴등을 한 게 더 기분이 좋은데요?”
백수룡의 시선이 향한 곳에는 천무학관 강사들과 학생들이 굳은 표정으로 모여 있었다.
“……이제 첫날에 불과합니다. 성적에 연연할 것은 없습니다.”
천무학관의 최하위.
아무리 첫날이라고 해도, 수십 년 만에 처음 받아 보는 성적표일 것이다.
외공 종목에는 참가하는 데만 의의를 두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현무학관보다도 처지는 순위.
초일이 받은 징계와 벌점 때문이었다.
“쓸데없는 체력 소모를 줄이고자 일성과 초일 선배만 참가시킨 것이 패착이었습니다.”
“변명의 여지가 없습니다. 완벽한 패배였어요.”
“그냥 패한 것도 아니고, 학관의 이름에 먹칠을 하다니……!”
시종일관 여유롭던 천무학관 학생들이 동요하고 있었다. 그만큼 결과가 충격적이었던 탓이었다.
승패는 병가지상사라며 학생들을 진정시키던 소림신룡 일각의 표정도 좋지 않았다.
“아미타불…….”
늘상 온화하게 외던 불호에서, 이제는 경계심과 투지가 느껴지고 있었다.
다른 학생들도 마찬가지였다. 구파일방의 학생들의 표정에도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진즉 그렇게 나왔어야지.”
백수룡은 기분 좋게 웃으며 천무학관의 그런 반응을 즐겼다. 대회가 점점 재미있어질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그렇게, 만족스러운 천무제의 첫날 밤이 저물고 있었다.
* * *
그날 밤.
도시의 객잔과 주점은 밤새도록 불이 꺼지지 않았다. 밀려든 손님들로 인해 점소이들은 잠시도 쉴 틈이 없었다.
“권패 거상웅! 크으! 초일을 바닥에다 때려눕히는데 어찌나 박력이 넘치던지 말이야!”
“으하하하! 내 오늘 큰돈을 땄으니 한턱내겠네!”
“이 사람 보게? 오늘은 금룡장주가 사는 술이니 공짜로 마시고, 내일 사게나.”
도시 전체가 왁자지껄한 분위기였다.
관중석에서 직접 대회를 지켜본 이들은 후기지수들에 대해서 열렬한 토론을 벌였다.
누가 더 강하고 누가 더 약한지, 아직 대회에 참가하지 않은 각 학관의 후기지수들에 대해서도 떠들어 댔다.
“초일한테는 크게 실망했네. 비겁한 것도 정도가 있지…….”
“그 실력도 의심스러워. 그간의 평가가 지나친 감이 있었다니까.”
“자네들이 돈을 잃어서 그런 건 아니고?”
“크흠!”
사방에서 들려오는 자신에 대한 조롱과 비난을 들으며, 인파에 몸을 숨긴 초일은 이를 꽉 악물었다.
‘빌어먹을!’
거상웅에게 얻어맞은 전신이 아직도 욱신거렸다. 며칠은 요양을 해야 할 테지만, 지금은 그럴 시간이 없었다.
생존본능이 위험하다고 경고하고 있었다. 의원에서 의식을 차린 이후부터였다.
자신을 의심스럽게 바라보는 묘한 시선들이 느껴졌고, 천무학관주에게 부상이 다 나으면 따로 보자는 말을 전해 들었다.
‘설마…… 들킨 건가?’
초일은 그 즉시 의원에서 탈출해 인피면구를 뒤집어썼다.
수많은 인파 속에 몸을 숨기는 것은 쉬운 일이었다. 흔적을 지우는 것도 간단했다.
이 많은 사람들 중에서 자신을 찾아내는 건 절세고수라도 불가능에 가까웠다.
‘어떻게든 이곳만 벗어나면…….’
혈교에서 철저하게 받은 세작 훈련이 도움이 되었다. 기척을 죽이고, 흔적을 지우고, 쉬지 않고 움직인 끝에 초일은 중심지에서 빠져나와 인적이 드문 곳까지 다다르는 데 성공했다.
“후우…….”
이제 안심해도 되었다. 야심한 밤이었고, 조금만 더 가면 교의 안전가옥이 있었다. 초일이 겨우 안도의 한숨을 내쉴 때였다.
“어딜 그리 급히 가나.”
“……!”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초일의 몸이 뻣뻣하게 굳었다. 그는 천천히 돌아서며 내공을 끌어올렸다.
그러나 상대를 확인한 순간, 안색이 하얗게 질린 초일은 곧바로 무릎을 꿇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