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 One Star Instructor Master Baek RAW novel - Chapter 602
602화. 저 또라이
“이 밤에 대체 어디를 가겠다는 거지?”
“잔말 말고 따라와. 끝내주게 좋은 곳으로 데려가 준다니까?”
“설마 술을 마시려고? 조금이라도 더 수련을 해도 모자랄 판에……!”
“아, 싫으면 숙소로 돌아가든가.”
독고준은 자신을 무시하고 성큼성큼 걸어가는 헌원강의 뒷모습을 노려보다가, 이내 나직이 한숨을 쉬곤 따라붙었다.
지금이야 예전의 망나니 같은 모습이 많이 사라졌다지만, 헌원강은 학생회 입장에서는 여전히 어디로 튈지 모르는 요주의 인물이었다.
‘밖에서 싸움이라도 했다간 용봉비무에 나설 자격이 박탈될 수도 있다. 절대로 안 될 일이야.’
처음으로 외출 허락을 받은 날이었다. 청룡학관 학생들 역시 대부분 숙소 밖으로 나가서 가족이나 지인들을 만나거나, 끼리끼리 뭉쳐서 축제를 즐기는 중이었다.
독고준도 가족과 짧게 만난 후 독고구검을 수련할 생각으로 숙소로 돌아왔다. 그러다 헌원강이 갑자기 찾아와 놀러 나가자고 하는 바람에 다시 끌려 나온 참이었다.
‘이럴 때일수록 학생회장인 내가 중심을 잡아 줘야 한다.’
모두의 염원이던 종합 순위 일 위를 달성한 날이었다. 들뜬 마음에 사고가 벌어지기에 너무나 좋은 환경이니까. 헌원강이 사고 치지 않도록 감시할 필요가 있었다.
학생회에 저 녀석을 말릴 수 있는 사람이 자신 말고 또 누가 있겠는가? 절대로 놀고 싶어서가 아니었다.
“선배님하고 같이 나오니까 좋아요!”
독고준의 옆에서 위지천이 천진난만한 얼굴로 떠들었다.
그렇다. 헌원강 하나만 문제가 아니었다. 그에 못지않은, 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 위험할 수도 있는 위지천도 함께 밖으로 나온 것이다.
독고준은 경계하는 눈빛으로 위지천을 바라보며 말했다.
“위지천. 너도 학생회의 특별 감시 대상이다.”
“네? 제가 왜요?”
“왜냐니…….”
눈을 동그랗게 뜨고 되묻는 천진난만한 저 얼굴에 속을 사람은 청룡학관에서 유이란뿐일 터.
하지만 독고준의 미간이 찌푸려지거나 말거나, 위지천은 생글생글 웃으며 주변을 둘러봤다.
청룡학관이 있는 남창도 큰 도시였지만, 천무제가 열리는 이곳 호북은 천하무림의 중심지였다.
청룡학관에 입학하기 전까진 산에서만 살았던 위지천에게는 별세계나 다름없었다.
그때, 몇 걸음 앞서가던 헌원강이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독고. 지천이 잘 챙겨라. 촌뜨기라서 복잡한 곳에선 길 잃어버리기 십상이거든. 그러다가 어디서 못된 파락호들이라도 만나면 큰일이라고.”
“……그 파락호들을 걱정해야 하는 게 아니고?”
“내 말이. 피비린내 나는 사건의 참고인으로 따라가긴 너도 싫지?”
“유념하지.”
고개를 끄덕인 독고준은 위지천의 무복 소매를 살짝 쥐었다. 어디로 튈지 모를 막냇동생을 챙기는 큰형 같은 모습이었다.
‘……설마 날 보모처럼 써먹으려고 데려온 건가?’
불현듯 뇌리를 스치는 의심에 독고준이 헌원강의 뒤통수를 매섭게 노려볼 때였다.
“저, 저기 청룡학관 학생들 아니야?”
“맞네! 한 명은 학생회장 같은데?”
“가까이서 보니 셋 다 헌앙하니 잘생겼구나!”
“한 명은 좀 무섭게 생긴 것 같은데…….”
세 사람을 알아본 군중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청룡학관의 단체복이 아닌 사복을 입고 나왔음에도 눈썰미 좋은 사람들이 먼저 알아본 것이었다.
도시를 순찰하는 무림맹의 무사들이 있어서 큰 소란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들에게 말을 걸어 왔다.
“힘내시게! 청룡학관 학생들!”
“한번 끝까지 이변을 일으켜 봐! 응원하고 있다!”
“내일 대회도 기대하고 있어요!”
독고준은 주변에서 쏟아지는 수많은 응원의 말들을 멍하니 듣다가, 저도 모르게 입술을 꽉 깨물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올해로 세 번째, 독고준은 매년 빠지지 않고 천무제에 참가했다.
그러나 단 한 번도 이렇게 왁자지껄한 도시의 분위기를 즐겨 보지 못했다.
청룡학관 학생들에게 천무제는 즐길 수 있는 축제가 아니었으니까.
항상 죄인처럼 고개를 푹 숙이고 다녀야 했고, 주변에서 들려오는 이야기 역시 대부분 동정 아니면 조롱의 말들이었다.
-준아. 그래도 내년에는 다를 거다. 그렇지?
-……예.
문득 다음에는 더 나아질 거라며 어깨를 두드려 주던 학생회 선배들의 얼굴이 떠올라, 그만 울컥하는 감정이 올라왔다.
‘선배님들. 올해는 정말 달라졌습니다. 다들 어딘가에서 보고 계셨으면 좋겠습니다.’
올해는 학생들 전부가 당당히 어깨를 펴고 다닐 것이다. 자신들이 청룡학관 소속이라는 사실을 자랑스럽게 여기면서.
마음이 다소 부드럽게 풀린 독고준이 헌원강과 위지천에게 물었다.
“너희들. 가족은 만나고 왔나?”
둘 다 아까 만나고 왔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헌원강은 생각만 해도 질린다는 듯 투덜거렸다.
“말도 마라. 다들 얼마나 유난이던지, 난리도 아니었어. 아버지가 나보다 더 감격해선 눈물까지 찔끔하더라니까? 그리고 어디서 무슨 이야기를 들었는지, 여민이랑 무슨 사이냐고 자꾸 물어봐서…….”
얼굴이 조금 붉어진 헌원강은 말꼬리를 흐렸다.
그에 반해 위지천은 마냥 밝은 얼굴이었다.
“저도 할아버지랑 간단히 저녁 먹고 나왔어요. 아직 몸이 다 낫지 않으셔서 오랫동안 같이 있지는 못했지만요.”
그때, 헌원강이 위지천의 어깨에 팔을 두르며 은근한 어조로 물었다.
“넌 유이란이랑 따로 약속 없냐?”
“매일 새벽마다 비무하고 있는데요?”
“……딴 건 안 해?”
“딴 거 뭐요?”
“아니다……. 길게 말해 봤자 나만 나쁜 새끼지.”
한숨을 내쉰 헌원강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고, 독고준은 그런 헌원강을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바라보다가 물었다.
“거상웅 선배랑 야수혁은?”
“둘 다 몸 상태가 아직 별로야. 꼼짝없이 쉬고 있지.”
“여민 선배는 북해빙궁의 이모님과 시간을 보내기로 한 모양이에요.”
“쳇. 누구 때문에 비싼 가게로 예약했는데…….”
셋이서 두런두런 이야기하다 보니 어느새 목적지에 도착했다.
도시의 중심지에 있는 고급 요릿집으로 무려 오 층 건물이었는데, 한눈에 봐도 가격이 만만치 않은 곳이었다.
헌원강은 자신을 따라온 둘을 돌아보며 으스댔다.
“여기 예약하느라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아? 돈이 있어도 아무나 못 오는 곳이야. 귀한 집 자제들만 받아 주기로 유명한…….”
어깨에 잔뜩 힘을 주고 가게로 들어선 헌원강의 목소리가 점점 작아졌다.
그들을 뚫어질 듯 바라보는 이들의 시선 때문이었다.
“우리…… 아무래도 잘못 들어온 것 같은데요?”
주위를 둘러본 위지천이 어색한 표정으로 선배들에게 작게 말했다.
천무학관의 학생들이 세 사람을 바라보고 있었다.
요릿집을 반쯤 전세 내다시피 했는지, 수십에 가까운 천무학관 학생들이 여러 탁자에 자리를 잡고 식사 중이었다.
“귀한 집 자제들…… 그래……. 천무학관에 전부 모여 있었지…….”
뒤늦게 깨달은 헌원강이었으나, 그들은 이미 요릿집 안으로 걸어 들어온 후였다.
여기까지 왔는데 돌아서서 나가면 모양새가 더 이상해질 것이다. 다음 날 천무학관 학생들에게 주눅이 들어서 도망쳤다는 소문이 날 수도 있었다.
독고준은 지끈거리는 관자놀이를 손가락으로 짚었다.
“헌원강…….”
“이럴수록 당당해야지. 우리도 돈 내고 음식 먹으러 온 손님인데. 뭐 어쩌라고?”
헌원강은 짐짓 태연한 척하며 점소이가 안내해 준 자리에 앉았다. 하필이면 가게의 정중앙이었다.
“…….”
“…….”
잠시 불편한 적막이 흘렀다. 그들이 점소이에게 요리를 주문하고 나서야, 시선들이 하나씩 흩어졌다.
차를 한 모금 마신 독고준은 둘에게 눈짓으로 한쪽을 가리켰다.
“저쪽.”
그곳에는 천무학관의 학생회장인 소림신룡 일각을 포함해, 하나같이 기도가 특출한 후기지수들이 둘러앉아 있었다.
헌원강 일행이 가게에 들어왔을 때도, 그들은 힐긋 한번 시선을 주곤 다시 저희들끼리 가벼운 담소를 나누었다. 간간이 웃음소리가 들렸다.
“작년 용봉비무의 순위권에 들어 용봉의 칭호를 받은 학생들이다. 그리고 올해 용봉을 노리는 학생들도 함께 있는 것 같고.”
즉, 구파일방에서 손에 꼽히는 후기지수들의 모임이란 소리였다.
독고준은 이 정도는 누가 들어도 상관없다는 듯, 덤덤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한 명씩 이름을 알려 주지. 학생회장인 일각은 설명하지 않아도 될 테고. 그 좌측부터 점창파의…….”
“됐어. 어차피 금방 까먹을 건데 딴 얘기나 하자고.”
헌원강의 말이 끝난 것과 동시에, 공교롭게도 일각 일행이 앉아 있는 탁자에 일순간 묘한 침묵이 감돌았다.
“저쪽에서 먼저 무시하겠다는데, 우리가 굳이 알아야 할 필요가 있냐?”
헌원강이 어깨를 으쓱이며 묻자, 위지천도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럴 필요 없죠. 저희도 저분들한테 별 관심 없으니까요.”
“너희들…….”
“독고. 우리가 뭐 틀린 말 했냐? 그냥 밥이나 맛있게 먹고 가자.”
“……그래. 생각해 보니 너희 말이 맞다.”
작게 고개를 끄덕인 독고준은 더 이상 천무학관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았다.
잠시 후 나온 요리는 감탄이 나올 정도로 맛있었고, 이젠 독고준마저 주변에 관심을 끊고 음식에 집중했다.
“하, 밥맛 떨어지게…….”
주향이 잔뜩 묻어나는 목소리가 울린 것은 그때였다.
“어디서 더러운 땀 냄새가 나는 거야?”
명확한 주어가 없었지만, 청룡학관의 세 사람을 노리고 한 말임을 모두가 느끼고 있었다.
술에 취한 목소리는 멈추지 않았다.
“여기도 갈 데까지 갔군. 제대로 씻지도 않은 자들을 들여보내다니. 나중에는 개방도들도 받아 주겠어.”
대부분 깨끗한 의복 차림으로 외출한 천무학관 학생들과 달리, 헌원강 일행은 학관에서 무공을 수련할 때 입던 무복 차림이었다. 그들의 옷에는 약간의 땀 냄새가 늘 배어 있었다.
“지금 우리한테 시비 거는 거냐?”
오리고기를 입 안에 넣고 우물거리던 헌원강이 목소리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상대의 얼굴을 확인하곤 뭔가가 기억난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너 어제 여민한테 경공으로 발린 걔잖아? 이름이 옥자였나?”
“……옥진이다.”
곤륜의 제자, 옥진이 술에 취해 벌게진 얼굴로 헌원강을 매섭게 노려봤다.
경공 비무에서 여민에게 망신을 톡톡히 당한 그였다. 그때 생긴 악감정이 아직까지도 남아 있는 듯 보였다.
“아미타불. 옥진 시주. 과음하신 듯합니다. 진정하시지요.”
학생회장인 일각이 나서서 제지하려고 했지만, 옥진은 그 말을 무시하고 헌원강에게 걸어갔다.
옥진은 곤륜 장문인의 제자였다. 배분으로 따지자면 일각에 비해서도 크게 부족함이 없는 위치.
다른 천무학관 학생들도 난감한 미소만 지을 뿐, 적극적으로 다툼을 말리려는 사람은 없었다.
어느새 헌원강 앞에 선 옥진이 이죽거리며 말했다.
“운 좋게 몇 번 이겼다고 기고만장하기는. 같은 곳에서 밥을 먹는다고, 너희가 우리와 같다고 생각하나?”
헌원강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옥진을 내려보는 한쪽 입꼬리가 사납게 올라갔다.
“술 처먹었으면 곱게 집에 가서 발 닦고 자라. 처맞고 나서 후회하지 말고.”
“말본새 한번 천박하군. 그래도 한때는 잘나갔던 세가의 장남이라고 들었는데. 제대로 된 교육도 못 받을 만큼 가세가 기울었나?”
“이 새끼가 진짜……!”
헌원강이 손을 뻗어 옥진의 멱살을 잡으려 할 때였다.
“헌원강!”
독고준이 그의 앞을 가로막으며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껏 해 온 노력을 생각해라. 그걸 수포로 돌리고 싶은 건 아니겠지?”
“……끄응.”
헌원강은 지금까지 쌓인 벌점이 아슬아슬했다.
만약 여기서 사고를 치고 징계를 받는다면, 그토록 원했던 용봉비무에 참가하지 못할 수도 있었다.
헌원강에게 그 사실을 주지시킨 독고준은 고개를 돌려 위지천을 바라봤다.
“위지천. 너도 검파 만지작거리지 말고 얌전히 있도록.”
“……네.”
우선 두 사람을 진정시킨 독고준은 고개를 돌려 옥진을 바라봤다. 그가 정중하게 포권을 취하며 말했다.
“저희는 곧 식사를 마치고 갈 테니 사소한 다툼은 이쯤에서 매듭짓도록 하지요. 내일 있을 대회를 앞두고 서로에게 좋지 않을 듯합니다.”
청룡학관의 학생회장다운 대처였다. 이에 천무학관 학생회장인 일각도 두 손을 모아 합장을 하며 말했다.
“청룡학관의 양보에 감사드립니다. 옥진 시주께서 말실수를 하신 것에 대해서는 제가 대신 사죄를…….”
그때, 술에 취한 옥진의 독설이 이번에는 독고준을 향했다.
“너희는 어쩌다가 운 좋게 무림십존인 스승을 만나서 무공 몇 수 배운 것뿐이야. 근본도 없고 전통도 없지.”
“시주! 그만하십시오!”
“예전의 무능력했던 너희 선배들과 비교하면 조금 낫지만, 결국 거기서 거기란 말이다. 작년까지만 해도 우리 앞에서 고개도 못 들고 빌빌대던 것들이…….”
술에 취해 빈정거리던 옥진은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어느새 눈앞에 들이닥친 독고준의 주먹이 그의 턱을 후려쳤으니까.
빠악!
부지불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옆으로 고개가 돌아간 옥진의 몸이 힘없이 비틀거리다가 바닥에 털썩 주저앉은 순간, 헌원강은 손바닥으로 얼굴을 가리고 한숨을 내쉬었다.
“독고, 저 또라이 새끼…….”
그와 동시에, 천무학관 학생들 수십 명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