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 One Star Instructor Master Baek RAW novel - Chapter 61
60화. 두 천재팽사혁이 천무학관으로 떠난 지 사흘이 지났다.
“빌어먹을 놈.”
헌원강은 팽사혁이 자신에게 남기고 간 서찰을 노려봤다.
벽에 붙여 놓은 저 서찰을 매일 아침 일어나자마자 보고, 수련이 너무 힘들어서 포기하고 싶을 때마다 보고, 녹초가 되어서 잠들기 직전에도 다시 보았다.
“이기고 천무학관으로 튀었다 이거지?”
만약 눈빛으로 사물을 꿰뚫을 수 있었다면, 벽에 붙은 서찰은 진작 너덜너덜해졌을 것이다.
“오냐. 천무제에서 보자. 모두가 보는 앞에서 개망신을 시켜 주마.”
이를 간 헌원강은 벽에 붙어 있던 서찰을 거칠게 뜯어 품에 넣었다.
그 서찰을 마지막으로 얼마 안 되는 짐을 모두 꾸렸다.
헌원강은 미련 없이 삼 년간 머무른 기숙사를 나섰다.
기숙사 정문 앞에서 백수룡과 매극렴이 대화를 나누며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헌원강을 본 백수룡이 물었다.
“짐은 그게 전부냐?”
“……예.”
아직은 어색한 존댓말을 하며, 헌원강은 고개를 끄덕였다.
백수룡에게 도법으로 배우기로 한 이후로, 헌원강은 그동안의 자존심을 다 버리고 수련에 매진하기로 결심했다.
도법을 가르쳐주기로 한 백수룡에게 존댓말을 하는 것은 당연했고, 귀찮아서 산발로 내버려 두던 머리도 짧게 잘랐다.
아직은 어색한 짧은 머리를 긁적이며 헌원강이 말했다.
“필요한 건 다 챙겼습니다.”
“이쪽도 절차 다 끝냈다. 할아버님. 이 녀석 데려가도 되겠습니까?”
“잠시 이리 와 보거라.”
학생주임이자 기숙사 사감을 겸하는 매극렴이 헌원강을 불렀다. 그의 시선은 언제나 그렇듯 칼날처럼 예리했다.
“앞으로 무공에만 정진하겠다는 것이 진심이더냐?”
헌원강은 항상 피해 왔던 그 시선을 똑바로 마주 보며 대답했다.
“예. 오늘부터 백 선생님의 댁에서 하숙하며 무공에만 정진하겠습니다.”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방학 기간에 학관에 머무는 학생은 무조건 기숙사에 있어야 한다.
일주일에 하루 쓸 수 있는 외박계를 제외하면, 그 이상의 외박은 금지되어 있었다.
‘대체 이 깐깐한 학생주임을 어떻게 구워삶았는지 모르지만…….’
백수룡은 사흘 만에 헌원강이 기숙사에서 짐을 뺄 수 있도록 만들었다.
자신의 집에서 하숙시키며 무공을 가르친다는 명목으로 말이다.
“확실히 눈빛이 좋아졌구나.”
매극렴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수십 년 동안 청룡학관을 지키며 온갖 학생을 봐 왔다.
그중에는 헌원강보다 더한 망나니도 있었고, 졸업해서 대체 뭐가 될지 상상도 안 되는 문제아도 있었다.
예를 들면 자신의 딸을 훔쳐 간 도둑놈…….
“백무흔 이 개잡놈…….”
“하, 할아버님? 천천히 심호흡하십시오. 심호흡!”
“후우……. 요란 떨지 마라.”
겨우 진정한 매극렴이 다시 헌원강을 바라보았다.
아무튼 이런 눈빛을 한 학생은 쉽게 포기하지 않는다.
매극렴이 헌원강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믿어 보마. 얼마 안 남은 방학이지만 백 선생에게 많이 배우고 오거라.”
“그동안…… 실망시켜 드려서 죄송했습니다. 앞으로는 달라진 모습을 보여 드리겠습니다.”
헌원강이 고개를 꾸벅 숙였다. 확실히 달라진 태도에 매극렴의 입가에 흐뭇한 미소가 맺혔다.
매극렴은 마지막으로 몇 가지 당부의 말을 전했다.
“술은 끊도록 해라.”
“……앞으로 입에도 안 대겠습니다.”
“여자도 멀리하고.”
“예.”
“한 번 더 강조하마. 만약 기숙사를 나가서 혹여 기루에 출입한다는 이야기가 들려오면…….”
츠츠츠츳.
날카로운 살기에 헌원광은 온몸의 솜털이 곤두서는 것을 느꼈다.
매극렴이 스산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너와 네 스승의 거시기를 자를 것이다.”
“하, 할아버님? 저는 왜요?”
백수룡이 뜨악한 표정으로 매극렴을 바라봤지만, 매극렴의 표정에는 한 치의 자비도 없었다.
“학생의 잘못은 곧 선생의 책임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명심, 또 명심하거라.”
“예…….”
“네…….”
창백해진 두 남자가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모든 이야기가 끝난 후, 헌원강은 백수룡을 따라 청룡학관을 나섰다.
“본격적으로 수련을 시작하면 꽤 힘들 거다.”
“충분히 각오하고 있습니다.”
백수룡의 말에 헌원강은 비장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삼 년.
방황이 너무 길었다.
왜 그렇게 살았는지, 낭비한 시간이 아까워 죽을 지경이었다.
이제부터는 하나만 보고 달릴 생각이었다.
천무제.
그곳에서 다시 팽사혁을 만나 지난 패배를 설욕할 것이다.
그리고 지난번에 못 한 이야기를 마저 할 것이다.
몸에 힘이 잔뜩 들어간 헌원강을 본 백수룡이 피식 웃었다.
“어깨에 힘 빼. 누가 보면 수금하러 가는 줄 알겠다.”
“……예.”
목적지는 멀지 않았다.
두 사람은 청룡학관을 나와 금세 커다란 장원 앞에 도착했다.
“앞으로 이곳에서 하숙하면서 무공을 배우게 될 거다.”
“……여기서 말입니까?”
상상보다 훨씬 더 큰 장원의 규모에, 헌원강이 눈을 크게 뜨고 백수룡을 돌아봤다.
“선생님 부자……였습니까?”
백수룡이 흐뭇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내 집은 아니고 내 친구 집이야. 허천이라고, 근방에서 사업을 크게 하는 친구지.”
친구 얘기를 하는데 마치 자기 자랑을 하는 것처럼 뿌듯한 얼굴이었다.
헌원강은 백수룡이 허천이란 사람과 정말로 친한 친구인가 보다, 하고 생각했다.
“친형제나 다름없는 친구니까 편하게 써도 돼. 내가 다 얘기해 놨어!”
잠시 후, 두 사람은 마차도 드나들 수 있을 만큼 커다란 정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장원 안은 연무장까지 있을 정도로 크고 넓었다. 하지만 사람의 기척은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얼마 전에 구입한 장원이라 아직 사람이 별로 없거든. 원래는 최종에서 떨어지면 여기다 백룡학관을 지으려고 했는데…….”
“예?”
“뭐, 거기까진 몰라도 되고.”
어깨를 으쓱한 백수룡은 안쪽에서 느껴지는 인기척에 씩 웃었다.
“아, 그리고. 여기서 무공 수련하는 건 너 혼자가 아니다.”
“……누가 또 있습니까?”
“천무제 우승을 위한 내 비밀병기.”
“예?”
“그리고 곧 네 후배가 될 녀석.”
백수룡이 씩 웃는 순간, 장원 안쪽에서 열 네다섯 정도의 나이로 보이는 앳된 소년이 나왔다.
“수룡 형님!”
“선생님이라고 부르라니까.”
두 사람을 발견한 소년이 반가운 얼굴로 소리쳤다.
나이에 비해 체구가 조금 작은 소년이었다.
순진하게 생긴 얼굴에 티 없이 맑은 웃음.
얼굴이 하얀 것만 빼면 영락없는 시골 소년이었다.
“천아. 잘 지냈냐?”
“네!”
백수룡은 주인을 발견한 강아지처럼 달려온 소년의 머리를 거칠게 헝클어뜨렸다.
“왜 이렇게 오랜만에 오셨어요. 저랑 할아버지랑 얼마나 기다렸는데.”
“한동안 좀 바빴거든. 대신 앞으론 매일 볼 거야. 내일부터 여기서 출퇴근할 거거든.”
“정말요?”
정말로 기쁜지 환하게 웃는 소년.
수년간 학관에서 알아주는 망나니로 살아온 헌원강은 그 선량한 미소가 어쩐지 좀 불편했다.
그런 시선을 느꼈을까, 소년이 헌원강을 돌아보며 물었다.
“저, 그런데 옆에 계신 분은 누구세요?”
백수룡은 그제야 두 사람을 서로에게 소개해 주었다.
“이쪽은 헌원강이라고. 오늘부터 이곳에서 하숙하게 될 녀석이다. 청룡학관 3학년이지.”
“……헌원강이오. 오늘부터 신세 좀 지겠소.”
무뚝뚝하게 고개만 살짝 까닥이는 헌원강과 달리, 소년은 인사성 바르게 허리를 크게 숙여 인사했다.
“위지천이라고 합니다! 올해로 열다섯입니다! 말씀 편하게 하세요, 선배님!”
“……선배님?”
헌원강이 의아한 표정으로 백수룡을 바라보자, 백수룡이 그 의문을 해결해 주었다.
“이 애는 올해 입관 시험을 치를 거다. 그러니까 곧 네 후배가 되겠지.”
“입관은 뭐 개나 소나 받아 주는 줄……. 아, 미안. 그쪽을 무시하는 게 아니라…….”
헌원강이 뒤늦게 위지천을 보며 미안한 표정을 지었지만, 위지천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밝게 웃었다.
“헤헤. 아니에요. 청룡학관 입관 시험이 어렵다고 해서 열심히 준비하고 있어요!”
“……그래. 열심히 해.”
헌원강은 영 떨떠름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백수룡은 물과 기름처럼 영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 둘을 바라봤다.
‘마치 처음 만난 개와 고양이 같군.’
헌원강이 까탈스러운 고양이 같은 성격이라면, 위지천은 사람만 보면 꼬리를 흔들며 다가오는 강아지 같은 성격이었다.
어쨌든 둘을 나란히 세워 놓자 보기만 해도 든든했다.
“너희는 앞으로 함께 수련하게 될 거다. 대련도 자주 하게 될 거고.”
“잘 부탁드립니다, 선배님!”
“……어. 그래.”
헌원강은 떨떠름하게 대답했다.
솔직히 조금 김이 샜다.
자신은 3학년이고, 위지천보다 두 살이나 더 많았다.
그런데 딱 봐도 허약해 보이는 녀석과 함께 수련하고 대련을 해야 한다니.
‘시시하겠군.’
그것뿐만이 아니다.
새로운 무공을 익히기도 바쁜데, 위지천이 이것저것 가르쳐 달라고 들러붙을까 봐 헌원강은 걱정이었다.
‘귀찮게 굴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첫 대련에서 기를 한번 죽여 놔야 하나.’
그런 생각이 바뀐 건, 백수룡이 둘에게 대련을 시킨 이후였다.
“몸이나 풀 겸 가볍게 둘이 대련이나 한번 해 보자. 단, 내공은 쓰지 말고.”
생각보다 기회가 빨리 왔다고 생각하며, 헌원강은 자신만만하게 목도를 집어 들었다.
* * *
“꾸엑!”
목검에 배를 얻어맞은 헌원강이 허리를 새우처럼 접었다.
숨을 제대로 못 쉬어 꺽꺽대는 헌원강에게, 위지천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다가갔다.
“선배님. 괜찮으세요?
“괜찮……. 우에에엑!”
이미 몇 번이나 속에 있는 걸 게워낸 터라, 이제는 허연 위액만 게워냈다.
손등으로 입가를 대충 닦아 낸 헌원강이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한 번 더 하자.”
“또요?”
위지천이 좀 말려 달라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이제 그만해도 되지 않을까요?”
하지만 내가 뭐라고 하기도 전에, 헌원강이 목도를 지팡이 삼아 몸을 일으켰다.
“한 번 더.”
눈에 독기를 잔뜩 품은 모습.
처음에 위지천을 얕잡아보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헌원강은 생사대적을 만난 것처럼 목도를 들어 위지천을 겨눴다.
“벌써 아홉 번이나 했는데요? 선배님. 이제 정말 그만하는 게…….”
“한 번 더.”
고집을 부리는 헌원강과 울상을 짓는 위지천.
내가 둘 사이에서 중재를 해 주었다.
“이번이 마지막이다.”
“……예.”
“예…….”
각오를 다진 헌원강과 한숨을 내쉰 위지천이 각각 목도와 목검을 들었다.
다시금 두 녀석의 검과 도가 어우러졌다.
나는 팔짱을 낀 채로 둘의 대련을 지켜봤다.
‘역시 위지천이 더 강하군.’
비록 주화입마를 치료하면서 내공은 대부분 잃었다지만, 혼자서 가짜 무극검을 익혀 낸 가락이 어디 간 게 아니었다.
내공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전제하에서, 위지천은 자기보다 두 살 많은 헌원강을 압도할 실력을 갖추고 있었다.
퍼억!
“커헉!”
결국 또다시 복부를 얻어맞은 헌원강이 바닥에 대자로 뻗었다.
“저, 선배님…….”
“……말 시키지 마.”
“……넵.”
잘나가던 망나니(?)에서 동네북이 된 헌원강은 복잡해 보이는 얼굴로 밤하늘의 별을 올려보며 중얼거렸다.
“접싯물에 코 박고 죽을까…….”
아주 궁상을 떠는구나. 궁상을 떨어.
가볍게 혀를 찬 나는 위지천에게 말했다.
“천아. 그 녀석 데려가서 좀 씻게 하고 방도 안내해 줘라.”
“아, 네!”
위지천의 부축을 받아 일어난 헌원강이 절뚝이며 방으로 향했다.
녀석은 그 와중에도 고집을 부렸다.
“이거 놔. 혼자서 걸을 수 있어…….”
“놓으면 넘어질 것 같은데요…….”
“두 번 말 안 한다. 놔라.”
“지, 진짜 놔요?”
“놓으라니까…….”
“노, 놓을게요, 그럼.”
위지천이 부축하던 손을 놓자마자 헌원강은 무릎이 풀려 바닥에 쓰러졌다.
거기다 재수도 없지. 앞으로 넘어지면서 안면으로 바닥에 있던 돌을 박았다.
퍼억!
“노, 놓으라고 해서 놓은 건데……. 괜찮으세요?”
잠시 후, 고개를 치켜든 헌원강이 애써 괜찮은 표정으로 씩 웃었다.
“흐.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다.”
녀석의 얼굴에서 쌍코피가 줄줄 흐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