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mber One Star Instructor Master Baek RAW novel - Chapter 70
69화. 본 교관은나는 퇴근길에 시장에 들러 미리 주문해 놓은 물건들을 챙겼다.
그 후 바로 백룡장으로 돌아가 하숙생들을 한자리에 불러 모았다.
“백 선생. 그게 다 뭔가?”
내 양손에 들려 있는 보따리의 정체가 궁금한지, 공손수가 곧장 물었다.
안 그래도 지금 알려 줄 참이었다.
나는 모두의 발 앞에 보따리 하나씩을 툭툭 던졌다.
“교육생들.”
일부러 표정을 굳히고, 목소리를 낮게 깔았다.
뭔가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느꼈는지 모두가 긴장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나는 평소보다 목소리에 힘을 줘 연무장이 쩌렁쩌렁 울리도록 말했다.
“지금부터 반각 이내에 내가 지급한 무복으로 환복하고 이 자리로 다시 모인다. 실시.”
“……예?”
“갑자기요?”
“이유나 설명해 주고…….”
나는 그들의 의문에 대답해 주지 않고, 대신 내 몫의 보따리에서 붉은 영웅건을 꺼내 이마에 둘렀다.
질끈 동여맨 영웅건의 중앙에는 ‘필사(必死)’라는 자수를 새겨 넣었다.
‘이러니 옛날 생각나네.’
혈교에서 악마 교관이라 불리던 시절, 이 붉은 영웅건은 나를 상징하던 신물이었다.
-내가 이기면 백 선생이 매일 아침저녁으로 내 방을 청소하는 건 어떻소?
그 재수 없는 얼굴을 반드시 뭉개 놓겠다는 각오를 다지며, 나는 붉은 영웅건을 새롭게 만들었다.
“분명 반각이라고 했는데. 다들 시간에 여유가 있나 보군.”
피식.
나는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여전히 멀뚱멀뚱 나를 쳐다보는 어린양들을 바라봤다.
“아니면 본 교관의 말이 우습게 들리나?”
“시, 실시!”
셋 중에 가장 눈치가 빠른 공손수가 보따리를 들고 방으로 달려갔다. 헌원강과 위지천도 뒤늦게 자기 방으로 향했다.
나는 여전히 행동이 굼뜬 세 사람을 향해 외쳤다.
“정해진 시간보다 늦는 교육생에게 오늘 저녁밥은 없다고 생각하도록.”
“헉!”
“그런 치사한!”
“안 돼!”
셋은 그제야 꼬리에 불붙은 망아지처럼 방으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나는 팔짱을 끼고 그 모습을 느긋하게 구경했다.
“한 달이라…….”
지금부터 딱 한 달만, 나는 악마 교관 시절로 돌아갈 생각이었다.
* * *
“헌원강 교육생. 겨우 이것밖에 못 하나?”
“더 할 수…… 있습니다.”
내 엉덩이 밑에 깔려 있던 헌원강이 거친 숨을 몰아쉬며 대답했다.
헌원강은 지금 네 발로 연무장을 기어 다니고 있었는데, 나는 그 위에 앉아서 녀석의 움직임을 지적하고 있었다.
“무인들은 아주 오래전부터 동물의 움직임에 영감을 받아 무공을 만들었다. 호랑이, 원숭이, 늑대, 뱀, 개, 그리고 하늘을 나는 새들도 그 대상이었지.”
“끄으윽…….”
밑에 있던 헌원강이 죽겠다는 소리를 냈다.
단순히 올라타기만 한 게 아니라, 내공으로 더 무겁게 누르며 동작을 교정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교육생. 똑바로 안 해?”
“하고 있잖……! 끄어억!”
검집으로 여기저기를 꾹꾹 누르고 때릴 때마다 헌원강이 비명을 질렀다.
녀석의 사지가 뒤틀리고, 경련하고, 온몸에서 땀이 줄줄 흘렀다.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듣겠나. 스스로를 호랑이라 생각하고 움직이라고. 원숭이, 뱀, 독수리, 물속을 헤엄치는 물고기라고 생각하라니까.”
“선생님만 등 위에 없었어도 충분히……!”
“그럼 날 떨쳐내 보든가.”
“으아아악!”
헌원강이 갑자기 악을 쓰며 온몸을 마구 흔들어 댔다.
그러나 나는 균형감각을 발휘해 떨어지지 않고 버텼다.
벌써 반 시진 가까이, 나는 이 망아지 같은 놈의 등에 앉아서 버티고 있었다.
헌원강도 단련시키고 내게도 수련이 되는 일석이조의 수련법이었다.
“젠자아앙!”
“교육생. 방금 교관한테 욕했나? 너 인성에 문제 있어?”
“아닙니다아아!”
자기 마음대로 안 되자 화가 나는지, 헌원강이 괴성을 질렀다. 그래서 내공을 좀 더 실어 여기저기를 꾹꾹 눌러 주었다.
잠시 후, 결국 완전히 퍼진 헌원강이 바닥에 철퍼덕 쓰러졌다.
“허억……. 더 이상…… 진짜…… 못 하겠습니다…….”
“그래 보이는군.”
나는 그제야 헌원강의 등에서 내려왔다.
그리고 검집으로 헌원강의 뭉친 근육 곳곳을 꾹꾹 눌러 풀어주었다.
‘세상에 이렇게 좋은 선생이 어딨어?’
원망 가득한 눈빛을 보니, 헌원강은 내 생각에 별로 동의하지 않는 모양이다.
나는 녀석 앞에 쪼그려 앉아서 아까 못다 한 설명을 마저 했다.
“아까 말했지. 오래전부터 무인들은 동물의 움직임을 본떠 무공을 만들었다고. 그렇게 창안된 무공은 사람의 몸에 맞게 개량된다.”
“허억……. 헉……. 질문 있습니다.”
“해 봐.”
“그럼 네발로 기는 동작, 동물을 따라 하는 동작을 하는 이유는 뭡니까? 그냥 사람에 맞춰 개량된 동작을 배우면 되는 거 아닙니까?”
헌원강은 손가락 하나 꼼짝할 수 없어 보였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눈빛은 여전히 살아 있었다.
내가 시킨 수련이 싫어서가 아니라, 진심으로 궁금해하는 것이 눈에 보였다.
“동물의 동작을 보고 만든 무공을, 인체에 맞게 변형하는 것 자체는 문제가 아니다. 당연한 일이지.”
나는 녀석의 뭉친 근육을 꾹꾹 눌러 풀어주며 대답했다.
“하지만 후대로 전승되면서 불편한 동작은 생략되고 편하고 쉬운 동작만 남게 된다는 것이 문제다.”
“음…….”
헌원강은 이해가 될 듯 말 듯하다는 표정이었다. 당장은 그 정도면 충분했다.
“그걸 무공의 발전이라고 말하는 놈들도 있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편하고 쉽게 익히는 것은 나쁘지 않아. 하지만 그 과정에서 그 무공에 담긴 오의(奧義)가 실종된다는 것이 문제다.”
“아……!”
“이해하지도 못했으면서 아는 척하지 마라.”
따악!
헌원강의 뒤통수를 후려친 나는 가장 중요한 부분을 설명했다.
“결국 네발로 기는 훈련의 목적은, 평소 쓰지 않는 근육을 쓸 수 있도록 만드는 거다. 그렇게 하면 전신의 근육이 더 탄력 있게 변하고, 무공을 사용할 때도 더 폭발적인 힘을 쓸 수 있게 된다. 앞으로 네가 익힐 무공에도 분명 도움이 될 거다.”
“…….”
나는 헌원강에게 앞으로 두 가지 무공을 가르칠 생각이었다.
녹림십팔식과 수라혈천도.
그중 녹림십팔식은 일부만 전수할 예정이었다.
녹림투왕이 창안한 절세외공인 녹림십팔식은, 앞서 내가 말한 여러 동물의 움직임에서 영감을 받아 만든 무공이었다.
지금 헌원강이 동물을 따라 하는 것 같은 동작들이 바로, 녹림십팔식의 일부를 개량해 가르친 것이었다.
“그러니까 잔말 말고 배워. 수라혈천도를 익힐 때도 다 도움이 되는 거니까.”
“……예.”
헌원강이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위지천만큼은 아니지만 오성도 뛰어난 녀석이니, 내 말을 충분히 알아들었을 것이다.
‘이 녀석은 입관 시험과 상관없지만…….’
그렇다고 헌원강만 대충 가르칠 생각은 없었다.
남궁수와 내기를 하게 된 이유가 바로 이 녀석 때문이니까.
-헌원강은 실패작이오. 천성이 게으른 녀석이오. 나태하고 연약하지.
-그런 녀석을 데리고 천무제 우승이라고? 며칠이나 갈지 두고 보지.
그 재수 없는 면상을 떠올리자 다시 열불이 뻗쳤다.
빠악!
“아악! 갑자기 왜 때려요!”
“갑자기 열 받는 일이 떠올랐다.”
“내가 무슨 동네북인가…….”
“헌원강!”
나는 억울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헌원강과 얼굴을 맞대며 소리쳤다. 녀석이 움찔 놀라 나를 바라봤다.
“남궁수는 네가 실패작이라고 했다. 천성이 게으르고 나태하고, 재능도 별 볼 일 없어서 평생 노력해 봤자 팽사혁의 발끝도 못 따라갈 거라고 하더라.”
“뭐라고요? 그 자식이……!”
뒤의 말은 내가 갖다 붙인 거지만, 헌원강이 남궁수를 찾아가서 진위 여부를 확인하지 않는 한 알 수 없을 것이다.
“넌 그런 말을 듣고도 가만히 있을 거냐?”
“가만히 안 있을 겁니다!”
목에 핏대가 선 헌원강이 이를 부득부득 갈았다.
나는 헌원강의 어깨에 팔을 올리며 그의 귀에 나직이 속삭였다.
“좋아. 그럼 첫 중간고사에서 놈에게 본때를 보여 주는 거다. 알겠지?”
“알겠습니다!”
“지금부터 모든 대답은 악으로 한다.”
“악!”
제대로 악에 받친 헌원강의 외침.
나는 씩 웃으며 녀석의 뺨을 툭 친 후에 몸을 일으켰다.
“나머지 수련은 혼자서 하도록.”
“악!”
끙끙거리며 부들거리는 몸을 일으키는 헌원강을 뒤로하고, 나는 각자 훈련 중인 다른 교육생들을 찾아갔다.
“위지천 교육생. 회복은 잘돼 가나?”
가부좌를 틀고 있던 위지천은 내 부름에 천천히 눈을 떴다. 녀석의 소심하게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그게…… 잘 모르겠어요.”
“본 교관이 훈련 중에는 다나까로만 대답하라고 말했을 텐데.”
“죄, 죄송합니다!!”
내가 쏘아보는 눈빛에 위지천은 이마에서 식은땀을 흘리며 대답했다.
하지만 그 식은땀은 긴장해서 흘린 것만은 아니었다.
“내가 한번 보지.”
나는 손을 뻗어 위지천의 맥을 짚었다. 기를 흘려 넣어 몸 상태를 꼼꼼히 살폈다.
‘큰 문제는 없는 것 같은데……. 생각보다 주화입마의 후유증이 오래가는군.’
위지천은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 문제도 없었다.
문제는 몸 내부에 있었다.
주화입마의 후유증이 생각보다 커서, 내공을 끌어올리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단전이나 혈도의 상처는 다 아물었다. 그런데 아직 내공을 끌어올리는 것이 힘들다면…… 심리적인 문제일 확률도 있겠군.’
주화입마에 빠졌을 당시, 위지천은 피에 굶주린 검귀가 되어 많은 사람을 죽였다.
본인은 그 당시의 기억이 거의 없다고 했지만, 무의식에는 여전히 남아 있을 것이다.
“내공을 끌어올리면 증상이 어떻지?”
“……식은땀이 나고, 몸이 덜덜 떨리고, 심장이 막 빨리 뛰어서 어지럽고…….”
심리적인 문제가 맞다.
무공을 펼치며 사람을 죽이던 기억이 무의식에 강하게 남아 있어, 그 공포가 내공을 끌어올리려 하면 떠오르는 것이다.
주화입마를 겪은 무인들이 간혹 겪는 정신 질환 중 하나였다.
“죄송합니다…….”
고개를 푹 숙인 위지천이 모기만 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나는 손을 뻗어 위지천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네가 최선을 다해 노력했다면 죄송할 것 없다.”
“교관님…….”
이 녀석은 고삐 풀린 망아지 같은 헌원강과는 다르다.
천재적인 자질을 지녔지만 심성이 여리고, 섬세하며, 마음속에 큰 공포를 품고 있다.
‘윽박지르고 강제로 시킨다고 될 일이 아니야. 자칫하면 또다시 주화입마에 빠질 수도 있다.’
내공만 회복되면 위지천의 합격은 아무 걱정도 할 필요가 없다.
아니, 내공을 쓰지 않고 지금 실력만으로도 합격은 충분했다.
하지만 내가 바라는 건 그냥 합격이 아니었다.
‘남궁석이라고 했지.’
작은 남궁수처럼 생긴 되바라진 꼬맹이.
그래도 남궁세가의 핏줄답게 자질은 제법 뛰어나 보였다.
남궁수가 자신 있게 ‘올해 수석’이라고 생각할 만큼.
맞는 말이다.
위지천이 없다면 말이지.
“위지천 교육생. 본 교관은 자네의 재능과 성실함을 믿는다. 한 달은 길다. 그때까지 함께 문제를 극복할 방법을 찾아보지.”
“교관님……!”
내가 굳센 믿음을 보여 주자, 위지천은 눈물이라도 쏟을 듯 감격한 표정으로 날 바라봤다.
악마 교관이라고 해서 매번 애들을 굴리지만은 않는다.
나는 부처처럼 자비롭게 웃으며 위지천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러니 부담스러워하지 않아도 된다.”
“네!”
“위지천 교육생이 내공을 되찾지 못한다고 해 봤자, 기껏해야 본 교관이 남궁수에게 개망신을 당하고 청룡학관에서 잘리는 것으로 끝난다.”
“네에……?”
“일자리를 잃은 본 교관은 빚더미에 앉고, 백룡장은 헐값에 팔아치워야겠지. 결국 본 교관은 빚쟁이들에게 쫓기는 신세가 되어…….”
“교, 교관님?”
내 비관적인 이야기가 계속될수록 위지천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나는 위지천에게 강제로 훈련을 시킬 생각은 없었다.
다만 ‘스스로’ 최선을 다하겠다는 마음가짐을 확실하게 새겨 넣을 생각이었다.
알다시피 이 녀석은 여리거든.
“그러니 부담 없이, 최선을 다해서 노력하면 된다.”
내가 쓸쓸하게 웃으며 머리를 쓰다듬자, 위지천이 이를 악물며 외쳤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래그래.”
그렇게 위지천의 마음에도 단단히 각오를 새겨 넣은 후, 나는 마지막으로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하는 교육생이 앞에 섰다.
이 앞에선 나도 좀 막막하다.
일단 심호흡 좀 하고.
“……공손수 교육생. 어디 아픈 곳은 없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