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fficer is too good at sailing RAW novel - Chapter 285
284화 화약, 강철, 믿음 (1)
이 시대에 인구는 곧 국력이다.
이런 시대에 대만의 인구는 10만 정도.
그나마도 대부분이 외국에서 들어왔다.
솔직히 말하면 애국심 같은 건 전혀 기대할 수 없다.
애초에 내가 요구하지도 않고.
반면 조선의 인구는 최소 500만을 넘고 600만 가까이 된다.
그것도 통일 신라 시대부터 쭉 이어온 민족 동화 정책으로 인해 한 민족이라는 인식이 매우 강한 백성들.
국력으로 따지면 조선이 대만보다 압도적으로 위다.
그러니 낮게 보는 건 이해할 수 있다.
“화약을 주게. 저 되놈들을 모조리 날려버릴 만큼의 화약을.”
만약의 사태 때 최전방은 대만과 조선이다.
다만 명나라가 보유한 큰 배는 대부분 내가 운용하고 있는 상황.
당분간은 이쪽으로 오긴 힘들다.
반면 조선은 육지를 접하고 있다.
직접 공격을 받을 가능성이 크니, 미리 확보한 화약을 나눠주는 것도 나쁘지는 않다.
하지만…….
당연하다는 듯이 요구하면 기분이 나쁜데.
“화약을 주는 건 어렵지 않습니다. 어렵지는 않은데…….”
전생에 전쟁이 난 어떤 국가를 불쌍히 여겨 물자 지원을 했더니, 자꾸 더 내놓으라고 재촉하는 꼴을 보는 기분이었다.
최소한 감사하다는 인사 정도는 해야지.
“우리 하나는 확실히 할까요?”
“무엇을?”
“조선과 대만은 대등한 독립국이며 동맹이라는 점을요. 이는 대만뿐만 아니라 합종에 참여한 모든 국가가 그러합니다.”
“…….”
“그렇게 매서운 눈으로 보셔도 소용없습니다.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이니까요.”
지금이 기회다.
앞으로 다가올 시대의 격변에서 성공적으로 적응하고 진화하려면 지금부터라도 사고방식을 바꿔야 한다.
조선과 명나라만이 문명국이고 나머지는 오랑캐라는 편협한 사고방식 말이다.
“만약 이를 인정하신다면 다시 말씀하시는 게 옳지 않겠습니까?”
“대만이 조선을 더 필요로 할까. 아니면 조선이 대만을 더 필요로 할까.”
“자국에 자부심을 느끼는 건 좋습니다. 하지만 미래를 생각하셔야지요. 조선의 우위가 영원히 지속되리라 믿습니까?”
“영원하지는 않겠지. 하지만 적어도 지금 당장은 그렇다. 이제 그대가 과인의 질문에 대답할 차례다.”
“누가 더 필요한 지가 그리 중요합니까? 서로 필요하다는 게 더 중요하지 않겠습니까?”
“아니지. 대만과는 달리 조선은 선택지가 하나 더 있으니까.”
양녕대군(확정)이 질펀한 똥을 싸질러 폐세자가 확정된 상황.
이는 도의적인 사과는 했다는 뜻이다.
하지만 명나라는 이 실책을 놓치지 않고 어떤 식으로 행동에 나설 것이다.
애매한 태도를 보이는 조선을 아군으로 확실하게 끌어들이고 싶을 테니까.
관용을 보이기엔 명나라 상황이 매우 급하거든.
물론 조선이 거부한다고 해도 당장 움직이지는 못한다.
하지만 분열이 수습되면 굉장한 압박이 들어오리라는 것은 분명할 터.
따라서 조선은 지금 선제적으로 움직여야 한다.
명나라에 그랜절 박고 전력을 다해 돕거나.
아니면 나를 따라 명나라가 하나가 되지 못하도록 막거나.
킬방원은 이를 말하는 것이다.
‘자꾸 기어오르면 확 명나라에 붙어버린다.’라고 협박하는 것.
“너무 조선스럽게 생각하시는 것 아닙니까?”
“뭐라?”
“믿어지지 않으시겠지만, 명나라가, 아니 중화제국이 항상 최강대국은 아닙니다. 언젠가는 그보다 더 강력한 나라가 이곳으로 올 수도 있지요.”
“하하하! 재미있는 상상이구나. 그래서?”
“그때가 되면 조선은 선택을 강요받을 것입니다.”
“그때가 과연 올지도 의문이지만, 그때가 오면 그때 다시 고민하고 선택하면 된다.”
“아니지요. 그때가 되면 선택하지 못할 것입니다.”
“어째서지?”
“중화는 조선을 번국이나 속국 정도로 생각할 테니까요. 만약 조선이 다른 선택을 하려고 하면, 어떠한 수를 쓰더라도 조선만큼은 확실히 치명타를 가하려고 할 것입니다.”
이건 추측이 아니다.
확신이다.
전생에 겪어 봤거든.
다른 나라가 중국에 뭐라 하든 늘 하던 대로만 반응하는데, 한국은 뭐만 하면 게거품을 물더라.
“무엇보다 조선 자체가 타성에 젖을 것입니다. 변화를 거부하고 누군가 해결해주기만을 바라며 바짓가랑이만 붙잡고 있겠지요.”
“…….”
“아까도 말씀드렸다시피 그렇게 무서운 눈으로 보셔도 진실이 변하지는 않습니다.”
전생에 나는 한국에서 많이 나오던 몇 가지 말이 너무 싫었다.
안보위기가 오면, 왜 이순신 같은 장군이 안 나오냐.
정치 혼란이 오면, 왜 세종대왕 같은 리더가 안 나오냐.
노벨상 시즌이 되면, 왜 한국인은 노벨상을 받지 못하냐.
문장 자체가 잘못되었다.
이순신 같은 성웅이 나오지 않더라도 위기가 오지 않도록 대비해야 하고.
정치 혼란이 오기 전에, 어렸을 때부터 타협과 협력하는 방법을 미리 익혀야 하고.
노벨상을 바라기 전에, 노벨상을 배출한 국가의 교육이나 연구지원 제도가 어떻게 되는지를 보고 배워야 하는 거 아닌가.
당연히 말은 쉽고 실천은 어렵다.
하지만 적어도 노력이라도 해보고 한탄을 해야 할 것이 아닌가.
내가 할 생각, 혹은 내가 도와줄 생각이 아니라.
누군가가 알아서 해주길 바라는 생각을 하는 시점에서 틀려먹었다.
“전하께서는 전에 저에게 말씀하셨지요. 도저히 이길 수 없는 판에서 이기려면 판을 키우고, 판을 엎어야 한다고.”
품 안에 있던 두 개의 물건을 꺼냈다.
만약을 대비한 호신용품이다.
우츠 다마스쿠스로 만든 명품 단검.
그리고 정밀한 손기술로 만든 권총.
“판은 이미 몇 배로 커졌습니다.”
이어 창밖 너머를 가리켰다.
“그리고 판은 이미 엎어졌지요.”
저 방향에 세 개로 갈라진 명나라가 있다.
“조선은 선택지가 더 있고, 대만은 선택지가 따로 없다고 하셨지요? 틀렸습니다.”
“무엇이 틀렸다는 것이냐?”
“바로 제가! 조선 출신으로서! 고향에 대한 애정으로! 조선이 자립할 기회를 드리는 겁니다.”
진짜 마지막 기회다.
중국과 일본 사이에 있는 동방의 작은 나라가 아닌.
세계사의 한 축을 담당하는 강대국이 될 기회.
“할 수 있습니다.”
지금 DNA를 바꾸면 할 수 있다.
진짜 할 수 있다.
“조선이 전 세계에서 가장 큰 배를 만들고, 이름도 모르는 머나먼 나라에서 조선의 언어와 문화를 배우고자 이곳까지 찾아오게 할 수 있어요.”
국뽕이라 해도 상관없다.
그 가능성을 누구보다 믿는다.
“그러려면 누구보다 마음을 열고, 먼저 다가가야 합니다. 사람은 제아무리 잘났다 해도, 제 팔꿈치도 못 핥는 존재입니다.”
내 진정을 담은 호소에도.
이방원은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
이번에는 조선 궁궐까지 들어가지 않았다.
한시가 급하므로 곧바로 배를 타고 함길도로 향했다.
“저…… 괜찮으십니까?”
“뭐가?”
“한양에 다녀오신 이후로 계속 표정이 굳어계십니다.”
갑판 위에서 조선 땅을 바라보고 있자니, 내 감정에 민감한 석피가 걱정스러운 말투로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다.
“……내가 조금 실수한 것 같아서.”
“예?”
“상인의 자질을 시험하는 아주 간단한 시험이 있거든.”
품속에서 우츠 다마스쿠스로 만든 단검을 꺼내어 그에게 내밀었다.
“이걸 나에게 팔아봐.”
“어…… 음…… 이 칼은 파사국에서만 나오는 철로 만들어진 명검으로, 단단하기 이를 때 없고 칼날의 문양은 아름답기 그지없죠. 누구나 탐내는 명품입니다.”
“그런데?”
“사시겠습니까?”
“이 시험의 핵심은 그게 아니야. 바로 필요성, 혹은 결핍을 만들어주는 것이지.”
“무슨 말씀인지 어렵습니다.”
“예를 들어 칼을 팔기 전에 ‘누군가가 너를 노리고 있다.’ 혹은 ‘네가 가려는 곳은 매우 위험한 곳으로 무기가 필요하다.’ 같은 말을 해야 한다고.”
칼을 다시 품속에 넣었다.
“이걸 알고 있으면서 조선이 동맹에 참여할 필요성을 제대로 설득하지 못했어. 아니, 아예 생각도 하지 못했지.”
쫄리니까 참여할 것이다.
이런 막연한 생각을 했던 것 같다.
킬방원은 호락호락하지 않았고.
“결국 조선은 동맹을 거부한 거군요.”
석피가 씁쓸하게 웃었다.
“아닌데.”
“예?”
“함께하기로 했어.”
석피가 멍한 표정으로 입을 벌렸다.
순간 뇌 정지가 온 듯했다.
“그, 그러면 뭐가 문제인 겁니까?”
“전략적으로는 이겼지만, 개인적으로는 졌다고 할까.”
조선 땅을 볼 때마다 온갖 생각이 떠오른다.
과연 내가 어렸을 때 계획대로 존버를 타다가 세종대왕이 즉위한 후에 날개를 펴기 시작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내가 지나온 길에 후회는 없다.
다만 앞으로도 갈 길이 멀다.
“어떤 일이 있었냐면…….”
나는 어제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
“너의 진심은 알아들었다.”
이방원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옷을 바르게 정돈하고, 갓을 고쳐 맸다.
“하지만 부족하구나.”
“무엇이 부족합니까?”
“네놈도 군주라면 감정에 호소할 것이 아니라,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었어야지.”
“그러니까 지금 이렇게 왔지 않습니까.”
“호오. 그렇다는 건 세자의 추태에 네놈이 관여했다는 뜻이더냐?”
“장영실에게 들으셨겠지만, 저와는 전혀 상관없는 사고였습니다.”
그러려고 했지만, 그러기 전에 알아서 일어났다고 할까.
“됐다.”
“네?”
“선승구전(先勝求戰). 먼저 이겨놓고 싸워야지. 악전고투하는 건 군주가 할 일이 아니다.”
“…….”
“네가 조선을 위하는 진심을 갸륵하게 여겨 가르쳐주마.”
위에서 내려다보는 게 참 습관이 되셨네.
다른 나라를 상대로 그러면 점점 고립될 텐데.
“조선은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약하지 않다.”
“하아?”
“그 일이 일어나자 진명은 신이 나서 사신을 보냈지. 대명으로부터 보호해줄 테니 자신을 진정한 천자로 인정하고 조공을 바치라고.”
충분히 그럴 수 있다.
단지 내 생각보다 건문제의 움직임이 빨랐을 뿐.
기존의 명 황실의 체제를 생각하면 조금의 고민도 없이 일을 지킨 셈이다.
“대명에서도 사람을 보내왔다. 없던 일로 해줄 것이니 대명을 계속 섬기고 조공을 바치라고.”
“그렇다면 왜 세자를 폐하기로 하셨습니까?”
“명나라와의 관계가 위험해질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 아니다. 조선의 앞날을 걱정했기 때문이지.”
생각해보면 원 역사에서 양녕대군이 폐세자된 것은 명나라와는 전혀 상관없는 일이었다.
이번에도 그러지 말라는 법은 없다.
“그렇다면 왜 화약을 달라고 하셨습니까?”
“이 기회를 놓칠 내가 아니니까. 이번 기회에 확실하게 입지를 세우려고 했지.”
“그런 것치고는 상당히 고압적이시던데요?”
“이 사람아. 최악의 사태로 흘러간다면 가장 큰 피해를 보는 것은 조선이야.”
그건 그렇다.
“그렇다면 성공했을 때, 가장 큰 이익을 봐야 하는 것도 조선이지. 그렇지 않은가?”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굳이 이쪽에서 앞장서서 피를 흘릴 이유도 없지. 승패가 확실시되면 그때 움직여도 되는 것이니까.”
“…….”
“그래서 과연 자네가 어디까지 해줄 수 있는지를 확인하고자 했던 것일세.”
“결론이 무엇입니까?”
“그대가 대만 국왕이라 해도 아직은 조선인이며, 조선을 위하는 마음이 있다는 건 확인했다. 허나 감정에 치우쳐 국가의 중대사를 결정하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일이다.”
그는 방을 나섰다.
“그러나 그대는 그 바보 같은 생각으로 역사를 바꿨지.”
나가기 전, 마지막으로 나를 보며 따뜻하게 웃었다.
어쩐지 제자를 바라보는 스승의 눈빛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에는 함께 하기로 하지요. 동등한 위치에서.”
그렇게 말하고서는 한마디 더 덧붙였다.
“대만 국왕 전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