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fficer is too good at sailing RAW novel - Chapter 84
083화 조선의 딜레마 (3)
“어, 엄청납니다. 이렇게 많은 함선은 처음 봐요! 전부 한성으로 가는 겁니까?”
배를 처음 타보는 장영실이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좋아했다.
“부산포에 남은 함대가 있듯이, 전라·충청으로 향하는 함선도 있다.”
“네? 전부 한성으로 가서 전하께 포상받는 게 아니었습니까?”
“3만 대군을 끌고 한성으로 향한다고? 맙소사. 장차 큰일을 할 아이네.”
“아…….”
“게다가 왜국에서 데려온 포로도 고향에 데려다줘야지.”
그건 그렇고.
너무 명랑한 거 아니냐.
네 덕에 난 어제 잠을 설쳤는데.
“고향을 떠나는 건 처음이다 보니 무척 기대됩니다.”
“마지막으로 하나 더 알려줄게.”
“예. 말씀하세요.”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는다면 배신당할 일도 없다.”
“…….”
이건 나에게 하는 말이기도 했다.
나는 뭘 기대했던 걸까.
킬방원은 유능한 군주니까, 오히려 내가 가진 힘의 위험을 누구보다 잘 알 텐데 말이다.
당연히 견제가 들어오리라 생각했어야 했는데, 너무 안일했다.
“모든 걸 의심하고, 끊임없이 생각해라. 세상을 지탱하는 자는 상식인이지만, 세상을 바꾸는 자는 상식에 얽매이지 않는 자다.”
“명심하겠습니다.”
“그것과는 별개로 네 신분에 대해서는 너무 신경 쓸 필요 없다. 공장 기술자라고 해도 유능하다면 ‘아직은’ 높게 대우해주니 말이다.”
장영실은 관노 출신으로 그를 관직에 임명할 때 엄청난 반대에 부딪혔다고 알려졌다.
하지만 이는 장영실의 뛰어난 능력과 세종대왕의 포용성을 강조하기 위한 거짓말.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세종대왕은 장영실에게 관직을 내려주기 전 세 명의 대신에게 물었다.
관노를 관직에 임명하는 게 가능하겠냐고.
그러자 세 명의 대신 중 두 명은 찬성했고, 한 명만이 반대했다.
누가 찬성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반대한 대신은 허조.
엄격한 원리원칙주의자일 뿐, 나쁜 사람은 아니다.
유능한 충신에 자기 관리에 엄격한 청백리.
말만 청백리인 다른 대신들과는 다르게, 진짜 자기 자신에게 엄격한 청백리였다.
어떤 사건 때문에 각 잡고 제대로 털었는데도 먼지 한 톨 발견되지 않았을 정도로.
“그러니 너는 맡은 바 일에만 최선을 다해라. 네 재주가 비범하긴 하나, 네가 날 뛰어넘고 싶거든 너 혼자의 힘으로는 절대 안 된다.”
재능은 그가 더 뛰어날지 몰라도.
나는 거인의 어깨 위에 있으니까.
“……열심히 하겠습니다.”
이제 됐다.
해주고 싶은 말은 다 했으니.
받아들이든 말든 본인 선택이겠지.
***
우리는 차근차근 수군을 원래 자리에 돌려놓고, 왜구에 잡혔던 포로를 고향으로 돌려보내 주는 등 할 일을 하며 한성으로 향했다.
덕분에 한성의 내 집에 도착할 때쯤에는 해가 지기 시작했다.
낮에 도착했다면 바로 입궐했을 테지만, 아무래도 입궐은 내일 해야겠다.
“괜찮으시겠습니까?”
“뭐가?”
장영실은 아까부터 계속 움츠러들어 있었다.
수도인 한성에 왔다는 무게감도 있겠지만, 내 태도가 공적으로 바뀐 탓이 더 크겠지.
어쩔 수 없는 문제다.
신하를 모시는 측근은 군주라고 해도 함부로 손대면 안 된다.
그 측근을 정 등용하고 싶으면 신하에게 허락, 최소한 의향이라도 물어야 한다.
근데 킬방원은 내 체면을 박살 내고 멋대로 손을 뻗었고.
장영실은 내 생각 따윈 묻지도 않고 그 제안을 받았다.
둘에게 그런 의도가 없다고 해도 나를 제대로 엿 먹인 셈.
이걸 그냥 넘어가면 스스로 등신이라는 걸 인정하는 꼴이 된다.
“독립하겠다고 해놓고 계속 나리께 폐를 끼치는 듯해서요.”
“신경 쓰지 마라. 민폐라고 할 것도 없으니까. 날이 늦었다. 너는 젊으니 괜찮겠지만, 어머니께서는 많이 피곤하실 테니 어서 가 쉬어라.”
“예. 집이 크네요. 동래현에 있는 나리의 집보다 더 큰 것 같아요.”
“돈이 있는데 굳이 궁색하게 살 이유는 없으니까.”
부모님이 물려주신 집 주변을 사서 증축했다.
예법에 따라 궁궐보다 작은 99칸 집이다.
“관리는 청렴결백해야 한다고 들었습니다만…….”
“청렴결백하다.”
“예?”
“나는 부정하게 재물을 모은 적이 없고, 권력을 이용해 범죄를 저지른 적도 없다. 당연히 매관매직 따위도 한 적이 없고.”
청백리가 가난해야 한다는 법은 없으니까.
“됐고. 어서 가서 쉬어라.”
“……예.”
장영실은 그대로 사라졌다.
“너희들도 날 떠나가려면 최소한 미리 말이라도 해라.”
““…….””
이소군과 석피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 난 간다고 미리 말했다?”
“알고 있어. 다시 돌아와도 받아줄 거고.”
“아직 애잖아. 세상 물정 몰라서 왕이 시키는 대로 한 게 아닐까?”
“세상 물정 몰라서 벌인 일이니, 세상 물정을 알게 해줘야지.”
“…….”
“너희한테도 상담 안 하디?”
“뭐…… 서로 바쁘니까.”
“스스로 결정했으니 스스로 책임지는 거다. 더는 말하지 마라.”
피곤하다.
나도 가서 쉬어야겠다.
“저…… 나리…….”
내 집에 고용된 하인 하나가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응?”
“밖에 누가 찾아왔습니다.”
“누가?”
“그게…… 정체를 밝히지는 않았습니다만 얼굴을 보면 아실 것이라고…….”
해가 져 가는 이 시각에 손님이?
손님을 맞는 것은 양반의 의무라지만, 별로 내키지 않는데.
“이소군, 무함마드. 쉬고 있어. 석피야. 넌 조금 더 고생해야겠다.”
“별말씀을 다 하십니다.”
석피와 함께 대문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찾아온 사람의 얼굴을 보고 깜짝 놀랐다.
“……그.”
“됐다. 잠시 갈 곳이 있느니라. 따라오너라.”
나를 찾아온 사람은.
다름 아닌 킬방원이었으니까.
태종이 미복잠행을 좋아한다는 이야기는 못 들어본 것 같은데.
오히려 상왕인 정종 이방과가 잠행을 즐겼다.
석피와 함께 이방원의 뒤를 따라갔다.
“늦은 시간에 위험하지 않습니까.”
“나에게도 호위가 있고, 그대에게도 석피가 있는데 무슨 걱정인가.”
그는 미복잠행이라는 걸 의식해서인지 ‘과인’이라 말하지 않고 ‘나’라고 자신을 지칭했다.
게다가 내가 내일 입궐한다는 사실을 알렸음에도 이렇게 찾아온 이유.
아마 대신이나 사관 앞에서는 할 수 없는 말을 하겠다는 뜻이겠지.
뭘까?
달래주기?
“…….”
우리는 아무 말 없이 어디론가로 향했다.
그 목적지는 다름 아닌…….
“기방?”
“한양에서 가장 유명한 기방이다.”
“이곳은 어찌 아셨습니까?”
“자주 와봤으니까.”
본인이 한 말을 증명하듯, 이방원은 능숙하게 안으로 들어갔다.
이상할 건 없지.
태조 이성계와 정도전이 한창 권력을 잡고 휘두를 때, 이방원은 살아남기 위해 파락호 행세를 했다고 하니.
그 뒤를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자색이 뛰어난 미모의 기생들이 그를 맞았고, 곧 우리를 별채로 안내했다.
석피와 호위는 밖을 지키고.
나와 킬방원 단둘이 별채 안으로 들었다.
“너의 눈에서 경계심이 보이는구나.”
“짐승도 목숨의 위협을 느끼면 주변을 살피는바. 인간이라고 다르겠습니까.”
다만 민무구, 민무질 형제처럼 유배 보내지는 못할 것이다.
내게는 명나라 관직도 있으니까.
“이 기방은 내가 만든 것이다.”
“예…… 예?”
“사내놈들이 권세를 얻으면 가장 먼저 하고자 하는 것이 재물을 얻는 것이요, 그다음이 권세를 자랑하며 아름다운 여인을 품는 것이니까.”
자기비판인가?
“그리고 좋은 술을 마시고 아름다운 여인을 옆에 두면 무겁던 입도 풀리는 법이지.”
“…….”
무서운 이야기다.
킬방원이 대신들의 약점을 파악하고, 은밀한 정보를 수집하려고 일부러 기방을 두었다는 이야기니까.
“반면 그대는 단 한 번도 기방에 찾아오지 않더구나. 기회는 많았을 텐데 말이다.”
“소신은 심지가 약합니다. 그리하여…….”
“유혹에 넘어갈 수 있는 위험한 일에는 근처에도 가지 않는다. 맞느냐?”
“예.”
“참으로 독특한 사고방식이란 말이야. 보통은 ‘나는 어떤 유혹에도 미혹되지 않도록 수양을 쌓았다.’라며 자랑하는데.”
불혹을 말하는 것이다.
지금에 와서는 40대를 가리키는 말이지만, 본래는 공자가 마흔에 이른 경지를 의미한다.
어떤 유혹에도 미혹되지 않는다던가.
“저는 공자처럼 위대한 성현이 아니니까요.”
“내가 이 자리에 너를 데려온 까닭은 사정을 설명해줘야 할 것 같아서다.”
“…….”
“그대를 위해서였다.”
분명 장영실 일을 말하는 것일 터.
그게 날 위해서였다고?
“일부러 그대의 체면을 깎을 필요가 있었다.”
“이유를 여쭤도 되겠습니까?”
“그대는 조정 대신과 척을 졌지.”
“예. 그렇지요.”
눈앞의 누구 때문이긴 하지만.
“하지만 이제 대신들은 그대를 싫어하지 않는다.”
“그렇습니까?”
“두려워하지.”
잠시 대화가 멈췄다.
기생들이 술과 안주를 가져왔으니까.
조선 여자를 좋아하는 킬방원은 오늘은 목적이 아니라는 듯 손을 휙휙 저었다.
아름다운 기생들은 허리를 꾸벅 숙인 뒤 방을 빠져나갔다.
“이전 하마연이 끝나자, 대신들은 그대를 질투했고 무례하다 여겼다.”
“개의치 않습니다.”
“그다음 그대가 부산포와 동래현을 관리하며 진행하는 일을 보고는 분노했다.”
“무엇이 그들을 분노하게 했습니까?”
“첫째는 그대가 방납을 없앴기 때문이다.”
조선 시대 세금 중 공납이라는 게 있다.
각 지역의 특산품을 바치는 것.
그러나 특산품인데도 백성들은 이를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산골에 사는 사람에게 전복을 바치라는 일도 있을 정도로 이상한 공납도 많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를 대신 해주는 방납이라는 게 등장했다.
쌀이나 콩, 면포 등을 받고 대신 특산품을 내주는 상인을 말한다.
당연히 값은 터무니없는 바가지다.
게다가 방납을 해주는 상인들이 고을 수령과 짜고 트집을 잡아 공납품을 거절하는 일도 많았다.
조선에서 괜히 상인들을 싫어한 게 아니다.
“방납은 불법입니다. 애초에 방납은 납부를 방해한다는 뜻이지 않습니까.”
“하지만 그에 연관된 대신이나 관리도 많았지.”
나는 동래현과 부산포를 관리하게 되자마자 이 방납을 없앴다.
터무니없는 공납은 상소를 보내어 없애버렸고, 백성이 구하기 힘든 공납품은 내가 구해서 보낸 후에 쌀이나 노동으로 대신 값을 치르게 했다.
“둘째는 조운이다.”
“제가 보낸 조운선은 단 한 번도 문제없이 세곡을 잘 전달했다고 알고 있습니다만…….”
“그게 문제다.”
“예?”
“비록 반년에 불과하지만, 그대는 한성에서 가장 먼 땅인 동래현 일대의 세곡을 무사히 보냈지.”
세금을 제대로 보낸 게 문제라고?
이야.
엄청나네.
“조운선은 자주 침몰하지. 그때마다 나는 내 부덕함을 말하고, 조운선 대신 육로로 보내라고 명령을 내렸다.”
“길도 제대로 닦이지 않은 조선에서 육로로 보내는 건, 인력과 시간의 낭비입니다.”
“누가 그걸 모른다더냐.”
“…….”
“조운선이 자주 침몰하는 건 재해가 아니라 의도된 수법이라는 보고가 있었다.”
일부러 허술하거나 오래된 조운선에 쌀 대신 흙을 넣은 가마니를 잔뜩 싣는다.
기준치보다 훨씬 많이.
조운선이 침몰하면 이를 조정에 보고하고 세곡은 가로챈다.
현대인에게는 널리 알려진 조선의 탈세 수법이다.
“원래라면 평소대로 하라고 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대가 해준 이야기가 떠오르더구나.”
“어떤 이야기입니까?”
“선장과 죄수 이야기.”
선장에게 그냥 죄수를 실어 날라 달라고 돈을 주면, 어떻게든 돈을 남기기 위해 죄수의 목숨 따윈 관여치 않는다.
반대로 잘 도착한 죄수의 숫자에 따라 돈을 주면, 돈을 더 벌기 위해 어떻게든 죄수를 살리려 노력한다.
말은 쉽지만 그만큼 돈이 많이 들어가는 일이다.
확실한 보상이 보여야 그 일을 맡을 테니까.
“그래서 차라리 전문적인 세곡 운송인을 키우려고 했다.”
“좋은 방책이라 사료되옵니다.”
“하지만 그 적정한 대가를 산정하려고 하자, 대신들이 반대했지.”
“어째서입니까?”
“나랏일을 하는데 큰 보상을 주는 건 이치에 맞지 않는다고 하였다. 또한, 많은 녹봉을 받지 못하는 참하관 등 하급 관리에게 큰 박탈감을 줄 것이라 했지.”
명분은 확실하지만, 진실은 그거다.
돈 빼돌릴 구석이 줄어든다는 것.
조선 초기에는 유능한 신하가 많았지만, 부패한 관리 역시도 적지 않았다.
세종대왕의 인사 정책이야 유명하고, 태종 이방원 역시도 왕권에 위협만 안 된다면 공신들의 부정부패에 관대한 편이었으니까.
대표적으로 하륜과 이숙번 등이 있다.
오히려 허조 같은 청백리가 정말 희귀한 케이스다.
“이렇듯 대신들은 그대에게 분노했고, 그 결과가 이번 대마도 정벌이다.”
영락제의 일본 정벌을 방지하기 위해, 조선은 대마도 정벌의 주력이 되라는 명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대신들은 나에게 일부러 신병 위주로 넘겼다.
대마도 정벌보다 조선 백성을 보호하는 게 더 중요하다는 명분으로.
어느 나라 신하인지 확실하지 않은 나에게 정예병을 맡길 수 없다는 이유로.
동시에 엿 되어 보라는 마음도 있었을 것이다.
신병이라고는 해도 3만에 가까운 병사를 이끌고 큰 피해를 내면 발언권을 크게 줄일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그대는 신병을 이끌고 대마도를 정벌했고, 나아가 이키섬과 구주(큐슈)에 있는 왜구의 본거지까지 쓸어버렸다. 심지어는 단 한 명의 전사자도 없이 말이다.”
대마도를 정벌했을 때 한 번.
쇼니 가문을 소탕했을 때 한 번.
전후 보고를 상세하게 올렸다.
나중에 문제가 생길 걸 대비하여 일부러 공을 축소해서.
“천운이 따랐습니다.”
“그걸 누가 믿겠는가.”
“…….”
“대신들은 이제 그대를 두려워한다. 동래현은 물론 차근차근 세력을 키워 조선을 뒤엎을지도 모른다고.”
킬방원이 깊게 숙고한 결과 한 일이 장영실 스카우트?
아무래도 좋다.
나는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으니까.
중요한 건 킬방원의 생각이다.
“어찌하실 요량입니까?”
“…….”
“전하께서 원하신다면 조선을 떠나 다시는 발을 딛지 않겠습니다.”
내 확고한 대답과 질문에,
“조선에서 내린 모든 권한을 내려놓아라.”
킬방원은 단호하게 말했다.
“예. 전하.”
각오했던 일이기에.
담담하게 답했다.
“그리고 내 부마가 되어라.”
“……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