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GAME RAW novel - Chapter 17
오그던, 유타. 킹스턴 드라이브.
“무슨 생각 하냐?”
“그냥요.”
“…….”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저녁에 있었던 WSU와 아이다호의 경기는 67 : 54. WSU의 13점차 승리로 끝이 났다. 40분의 경기였음을 감안하면 그리 높은 점수는 아니었지만, 경기의 수준은 상상 이상으로 높았다.
특히나 인상적이었던 것은 숨 막힐 것만 같은 수비였다. 뛰어난 운동능력을 기반으로, 볼을 잡은 선수가 약간의 여유조차 가지는 것도 허용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놀라운 점은 WSU와 아이다호가 뛰는 리그가 마이너 컨퍼런스라는 것.
Division 1임을 감안하더라도, 엄밀히 구분해 3부 리그라는 뜻이었다. 훨씬 더 농구를 잘하는 팀의 숫자만 해도 200개에 이른다.
“들어가서 밥이나 먹고 조금 쉬자.”
“하아- 형.”
“응?”
“전 조금 뛰고 올 게요.”
어차피 트레이닝복이었고, 운동화도 신었다.
이대로 집에 들어가면 더 머리만 복잡해질 것 같았기에 내린 결정인데, 데이비드는 낯선 이방인이 밤늦게 돌아다니는 것은 좋지 않다고 말해왔다. 실제로 셸리도 그렇게 말하기도 했다보니, 아무래도 걱정이 되는가보다.
“그럼, 조금 산책을 하고 오면 안 될까요?”
길 건너에 있는 스탠리의 집 주위로는 밤늦게까지 문을 여는 상점들이 몇몇 있었다.
“하아- 폰은?”
“챙겼어요. 그럼, 금방 올 게요.”
“어두운 데로는 다니지 말고! 낯선 사람이 말을 걸면 무조건 도망쳐! 알겠지?!”
“알겠어요!!!”
어린아이도 아닌데라고 하기에는 나도 들은 이야기가 너무 많았다.
유타 주(州)가 원래 조용한 곳이라고는 하더라도, 아무리 많이 조심해도 전혀 모자랄 것이 없다는 것쯤은 나도 잘 이해하고 있었다.
주머니에 손을 푹하고 찔러 넣은 채, 입김을 솔솔 내뿜으며 조용한 거리를 걷는다.
[“봐봐, 민혁아. NBA의 관계자들이야.”]데미안 릴라드를 보기 위해, 많은 NBA 스카우트가 WSU를 찾아왔었다.
그리고 릴라드는 자신이 어째서 전미에서 손꼽히는 가드인지를 몸소 증명해 내었다. 22점을 올리는 동안 6개의 어시스트를 추가로 기록했고, 아이다호의 수비수들을 손쉽게 찢어버리며 공격을 리드했다.
“…….”
솔직히 너무나도 큰 충격이었다.
열심히 노력하면 충분히 비벼볼만 하다고도 생각이 들 때도 있었지만, 몇몇 장면들에서 큰 회의가 찾아오기도 했다. 과연 내가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
데이비드는 이따금 내가 너무 생각이 많다고 했지만, 이게 나다.
내일부터는 공부를 하느라 농구공을 당분간 놓게 될 텐데, 그래도 될까?
지금부터 학기가 시작되는 8월까지, 매일 체육관에 처박혀 있어도 모자랄 것 같은데 말이다.
또 다른 횡단보도의 앞에서 나는 멈춰 섰다. 길 건너편에 보이는 몇몇 남자들이 나를 보며 수군거리는 것처럼 보였다. 개 중 하나가 외투를 여미며 가까이 다가오려고 할 때 쯤, 나는 곧장 몸을 돌려 집을 향해 걸었다.
등 뒤에서 들려오는 웃음소리가 어쩐지 거슬린다.
“휴우우-”
과연 내가 이곳에 오기로 한 것이 잘한 결정일까? 이미 각오한 것이기는 하지만, 한국에서와는 모든 것이 달라진 환경에서 살아가는 일은 생각보다 훨씬 더 어려운 일인 것만 같았다.
하늘에 걸려있는 보름달만큼이나 차가운 바람이 나를 더욱 초라한 기분이 들도록 만들고 있다.
++++++++++++
2012년 2월 8일. 오그던, 유타. 해리슨 불러바드. 까페 빌벨라(Ogden, UT. Harrison Blvd. Cafe Villebella).
딸랑-딸랑-
“(헤이- 집중하라고.)”
이건 조금 이상한 상황이다. 어째서 내가 집중하라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일까?
“(그렇지만 배가 고픈걸.)”
“…….”
아, 정말. 대체 이 여자애의 뱃속에는 뭐가 들은 거야?
“(머핀이 먹고 싶어. 하나만 사주면 안 될까?)”
“…….”
치렁치렁하게 늘어진 스웨터의 소매를 빙빙 돌려가며 말하는 셸리의 시선은 지금, 카운터에 고정되어 있었다. 내가 셸리와 함께 공부를 시작한지도 벌써 보름이 지났다.
그리고 그 동안, 셸리는 매일같이 내게서 머핀을 강탈해갔다.
하아- 젠장.
“(무슨 맛?)”
“(흐흐흥- 블루베리.)”
한숨을 쉬며 자리에서 일어나 카운터로 걸어간다. 어째 꼭 빵 셔틀이 된 기분이다.
“(애인이 제법 귀엽네? 블루베리?)”
“(애인이 아니라니까요. 네, 맞아요.)”
까페 빌벨라의 주인인 타미카는 매번 같은 소리다.
그녀가 직접 만든 스콘과 머핀이 이곳 까페 빌벨라의 자랑거리였는데, 들리는 말로는 타미카의 머핀이 3년 연속으로 지역 최고의 머핀으로 선정이 되었단다. 실제로도, 이곳의 머핀은 오후 2시가 넘어가면 동이 나기 일쑤였다.
“(그나저나, 프레디가 너에 대해 묻더라.)”
“(프레디?)”
“(왜, 그 비쩍 말라서 섬뜩한 남자 있잖아.)”
“(아.)”
타미카의 이야기가 길게 이어질수록, 내가 그것을 알아듣는 것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었다. 특히나, 지금처럼 말이 빨라질 때에는 더더욱 그렇다.
간단한 단어의 조합을 넘어서면, 내게 필요한 것은 폰과 전자사전이 되어버리니까.
“(이런. 내가 또 실수를 했어. 그렇지?)”
“(하하. 종이에 적어 주시면, 읽어 볼게요. 그리고 머핀은요?)”
“(그렇지, 참!)”
박수를 짝하고 두드리며 걸어가는 타미카는 서비스라며, 머핀 두 개를 접시에 올려 내게 주었다. 차라리 하나만 주고 계산을 받지 않는 편이 훨씬 더 나은데.
왜냐하면.
“(왜 이렇게 늦었어? 오우!)”
바로 이 셸리라는 계집애가 둘 다 집어가 버릴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그럼, 이제 시작해 볼까?)”
“(하아- 그래. 저번에는 여기까지 했어…….)”
미국에서의 나의 일상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지루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
오그던, 유타. 킹스턴 웨이.
“응? 이건, 그건데?”
“뭔데요?”
오전부터 시작 된 나의 공부는 저녁 무렵이 되어서야 끝이 났다.
나보다 무려 세 살이나 많은 셸리는 현재 휴학 중이었는데, 내가 그녀 때문에 놀란 일은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스탠리와 클레어는 16살 때 만나 사랑에 빠졌고, 만 18세가 되던 해에 곧장 결혼을 했다고 한다.
실로 대단하지 아니한가? 문화가 다르다고는 하지만, 대단하다는 것에는 변함이 없다. 아무튼, 그로부터 2년 뒤 셸리가 태어났다고 한다.
그리고 또 하나 더 놀라운 것은 셸리가 매우 똑똑하다는 점이었다.
물론 사람을 외모로만 평가하면 안 된다는 것은 잘 알지만, 진한 화장과 다소 야한 옷차림의 겉모습으로는 절대로 그녀가 노스캐롤라이나 대학(UNC)의 장학생이라는 것을 연결시키지 못할 것이다.
셸리가 내 SAT를 도와줄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번 주 토요일에 플리마켓이 열린다고 하네.”
“그게 뭔데요?”
“아차, 그렇지. 음. 일종의 벼룩시장이라고 보면 돼.”
이곳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자리한 리버티 공원(Liberty Park)에서 열릴 예정이라는데, 지역 주민들의 흥미를 유도하기 위해 가벼운 자선 경기를 주최할 것이라 적혀있다고 한다.
그리고 그 자선경기에 나를 초대하고 싶다는 게 요지였다.
“대체 그런데 프레디가 누구야?”
“우리가 공부하는 곳에 있는 아저씨가 있어요. 흑인이고, 되게 멋쟁인데. 이상하게 타미카가 싫어하더라.”
“좋아하는데 괜히 그러는 거 아냐?”
“알게 뭡니까? 일단 씻고 올게요.”
“그래-”
방으로 들어가 갈아입을 옷을 챙겨들곤 샤워실로 들어간다.
그런데 대체 프레디가 내가 농구를 한다는 것은 어떻게 알았을까? 인사를 몇 번 나눈 적은 있었지만, 이렇다 할 대화를 주고받지는 않았는데 말이다.
나는 혹시나 싶어 몸을 빼꼼히 내밀어 휴대폰을 만졌다. 셸리에게 메시지를 보내기 위함이다. 근데, 어떻게 물어봐야 하지?
아. 그렇지.
부르르르-
부르르르-
부르르르-
이런, 씨.
아무래도 셸리가 여러 개의 메시지를 보내는 것 같았다. 일단은 씻고 나서 확인을 해봐야지 싶다.
딸깍-
“응?”
“(나야. 금방 변기만 쓰고 나갈 거니까, 안에 있어.)”
“뭐라고?”
몸을 돌려 샤워커튼을 걷으려던 내가 움찔했다.
지금 이 목소리의 주인공은 애나 워코비츠(Anna Wokowitz)라는 여자애로, 비어있던 2층 방의 주인공 중 하나였다. 지독한 골초에다, 여자애다운 구석이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 볼 수 없는 사람이랄까.
우리가 오기 전 원래 1층 샤워실을 혼자서 독식했던 그녀는 안에 누가 있건 아랑곳없이 쳐들어와 마음대로 변기를 사용하고는 했다.
그나마 함부로 벗고 다니지 않는다는 게 다행이려나?
민지도 저러지는 않는다.
쏴아아아아-, 드르르륵-
“우와, 씨! 뭐, 뭐야?!!”
“(우-! 운동선수라고 하더니, 정말인가 봐?)”
“너, 너, 너너. 미, 미, 미쳤어?”
“(그럼, 나중에 봐. 허니.)”
“…….”
쟤가 지금 나한테 허니라고 한 거야?
거의 넋이 나간 상태에서 알게 된 사실이지만, 배런도 나와 같은 경험이 있다고 한다. 그리고 다른 여자아이인 스칼렛 하퍼(Scarlett Harper)도 마찬가지였다.
하아- 똑같고 지루한 일상과는 달리, 그 속에 있는 사람들은 참으로 다양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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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2월 9일. 오그던, 유타. 해리슨 불러바드. 까페 빌벨라.
“(어? 잠깐만.)”
다음 날 빌발라에 갔을 때, 프레드가 까페 안으로 걸어들어 오는 것이 보였다.
“(저기, 실례합니다.)”
“(응? 오-! 타미카가 말해줬지. 와썹, 호미-)”
“(호미?)”
“(하하. 형제 같은 말이야. 같은 동네에 살고 있으니, 우린 가족이잖아?)”
호미(Homie)라는 단어가 Home Boy를 뜻하는 힙합 슬랭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조금 시간이 지나고 난 뒤의 일이었다.
아무튼 나는 대충 호미가 브라더와 같은 뜻이라는 것만 이해하고는 되물었다.
“(제게 농구를 하자고 권유하셨던데……)”
“(예스!! 널 본 순간 한눈에 딱 알아봤거든. 오그던 매거진에 네 이야기가 실렸지. WSU가 동양인을 리쿠르팅 했고, 얼마 뒤에 네가 나타났어. 그것도 스탠리의 딸인 셸리와 함께. 너는 잘 모를 수도 있지만, 스탠리는 제대로 된 녀석이 아니면 자신의 집에 들이지 않거든. 그는 뭐랄까. 혜안을 가진 남자라고 할 수 있지.)”
“…….”
타미카로부터 커피를 받는 순간까지, 프레디는 쉬지도 않고 떠들어댔다.
그런데 어쩌나. 미안하지만, 나는 예스 이후로는 조금도 알아듣지 못했다. 이런 나의 불안한 시선을 눈치 챘는지, 타미카가 곁으로 다가와 신문과 같은 것을 하나 내밀었다.
“(언젠간 네게 사인을 받으려고 보관한 거야.)”
“(크크큭. 대체 네가 보관한 신문은 몇 개인 거야?)”
“(닥쳐요, 프레디!)”
“(우-! 매콤하긴. 하긴, 그게 더 섹시하지. 안 그래?)”
능글대는 프레디와 고개를 절레절렐 저으며 걸어가는 타미카.
그런데 어째, 정말로 표정이 썩어있지 만은 않다. 데이비드의 말처럼, 그녀도 어쩌면 이런 것들을 즐기는 것일 수도? 근데, 지금 그러한 것 따위는 아무래도 상관없다.
커피를 잠시 계산대에 올려놓은 프레디가 직접 페이지를 넘겨가며 말한다.
“(오그던은 작은 도시지. 그리고 정이 많은 동네야. 요즘은 인터넷이면 뭐든 다 된다지만, 이런 작은 동네에는 신문 하나면 충분하거든.)”
“…….”
“(오-! 여기에 있군. 보이지? 이게 네 기사야.)”
정말 놀랍게도, 신문의 한 구석에 내 이름이 적혀 있었다.
Min-Huk Kim From South Korea.
“(그 날은 데미안도 오기로 했다고.)”
“(뭐라고요? 정말요?)”
“(그래-! 그리고 이 동네에서 한가락 한다는 애들은 전부 다 온단 말이야. 걔네들하고 5 : 5 경기를 펼칠 거야. 그리고 그 관전료로……)”
여전히 나는 극히 일부만 알아들을 수 있었지만,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데미안 릴라드가 온다고?
내가 WSU의 정식 훈련에 참여하는 것은 SAT 1을 치고 난 이 후 부터다. 그리고 이 때는 이 끝나고 난 뒤이자, NBA에 참여할 선수들이 팀을 떠나고 난 이후이기도 했다.
즉, 데미안 릴라드와 함께 농구를 할 수 없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지금 내 눈앞에, 갑자기 기회가 생겨나버렸다.
“(나도 참여 하겠어요.)”
“(정말로? 하하하. 아주 좋아. 여기 사람들은 신입생에게 관심이 아주 많거든.)”
“…….”
호탕한 웃음과 함께 어깨를 두드려대는 프레디는 내게 엄지를 척하고 치켜들고는 까페 밖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내가 다시 자리로 돌아왔을 때, 셸리가 말하길.
“(넌 지금 실수 한 거야.)”
“(응?)”
그녀의 미소가 어쩐지 께름칙하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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