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Sword Alone RAW novel - Chapter 1348
1348화 이곳으로 온다고?
막념의 무덤 앞.
엽현은 잠시 멍해져서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도총의 신녀를 자기에게 시집보내겠다고?
“혼인…. 소음, 제대로 들은 거 맞소?”
“아무렴 그 말을 헷갈릴까 봐 그러시오?”
“도총… 재밌는 자들이로군.”
“어찌할 셈이오? 이 조건은…….”
“자, 갑시다! 가서 대화나 나눠 봅시다!”
두 사람은 빠르게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잠시 후, 막 대전 안으로 들어선 엽현의 귀에 괴상야릇한 음성이 들려왔다.
“우리 두 사람을 기다리게 하다니… 참나, 누가 오유계의 왕 아니랄까봐! 하하하!”
엽현이 고개를 들자 한 젊은 남자가 눈에 들어왔다.
남자는 비단옷을 입고, 허리춤에는 검을 차고 있었다. 방금 전 목소리는 이 남자의 것인 듯했다.
그의 곁에는 소복을 입은 노인이 말없이 서 있었는데, 한눈에 보기에도 의젓하고 기품이 있어 보였다.
‘저들이 바로 도총의 무인들…….’
엽현이 두 사람 앞으로 다가서자, 노인이 일어나 먼저 엽현을 향해 포권을 취했다.
“도총의 주견심(朱見深)이 엽 공자를 뵙겠소.”
“오유맹의 엽현이오. 일단 앉아서 이야기합시다.”
엽현이 예를 차리자 주견심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의자에 앉았다.
이때, 젊은 남자의 차가운 웃음소리가 날아들었다.
“엽 공자, 손님을 두고 한나절이나 자리를 비우다니, 초면에 너무한 거 아니오? 기다리다가 다리 부러지는 줄 알았소이다!”
주견심은 말없이 찻잔을 들 뿐, 남자를 만류하지 않았다.
엽현의 시선은 당연히 남자에게로 향했다.
“그대는 누구시오?”
“흥! 일찍도 물어보시는구려. 혁련검(赫連劍), 도총 제일의 검수요!”
“…….”
이때 엽현의 시선을 받은 주견심이 멋쩍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엽 공자, 여기 혁련 공자 역시 나와 같은 임무를 부여받았소.”
말뜻을 이해한 엽현이 가볍게 미소를 보였다.
보아하니, 혁련검이란 자는 주견심도 건드릴 수 없는 귀한 집 자제임이 분명했다.
“그나저나, 오늘 방문은 혼담을 나누기 위함이라 들었소. 게다가 혼수로는 도경을 원한다고… 내가 들은 것이 사실이오?”
주견심이 대답하려는 찰나, 혁련검이 한발 앞서 발언했다.
“도총의 사위가 되는데 무슨 문제라도 있소?”
“하하… 내가 문제 삼으면 안 될 이유라도 있는 것이오?”
“흥! 오유계가 누구 때문에 아직까지 멀쩡한데. 바로 우리 도총이 도정을 견제하고 있기 때문이 아니오? 우리가 아니었으면 그대 목은 진작 날아가 썩어 없어졌을 것이오!”
혁련검은 말릴 새도 없이 말을 이어갔다.
“설마 오유계를 지켜 낸 게 그대들 천도라고 믿고 있소? 하하, 그럴 리가! 우리 도총이야말로 그대들을 지켜 준 생명의 은인이란 말이오! 은인!”
주견심의 표정이 순간 어둡게 변했으나, 여전히 혁련검을 말릴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
이때 엽현이 뭔가 눈치챈 듯, 주견심을 향해 무언의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이를 본 순간, 혁련검의 눈썹이 높이 치켜 올라갔다.
“지금 이건 무슨 의미지?”
엽현이 웃으며 대꾸했다.
“혁련 공자, 다소 흥분한 것 같은데 나가서 바람이라도 쐬는 게 어떻겠소?”
순간 눈을 가늘게 뜬 혁련검이 검집을 향해 손을 가져갔다.
“버르장머리가 없군. 내 검 맛을 보고 싶은 건가?”
이때 엽현이 갑자기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 혁련 공자. 그대를 보낸 자가 누구인지는 모르겠소만, 좋은 의도를 가진 것 같지는 않소. 오만하고 교양 없는 그대를 사절로 파견했다는 것은 오직 한 가지 해석만이 가능하오. 바로 그대의 죽음이오. 단순히 그대와의 개인적인 원한 때문인지, 아니면 그대의 죽음을 이용해 오유계와 분란을 조장하려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엽현의 시선이 주견심에게로 향했다.
“주 선생이 말씀 해보시오. 내 추측이 맞았소?”
주견심은 다소 놀란 듯한 표정으로 엽현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주견심이 아무런 부정도 하지 않자 혁련겸의 표정이 크게 일그러졌다.
“엽현, 방금 그 말… 무슨 뜻이냐…….”
“하하, 내 말 속에 답이 있소. 곰곰이 잘 생각해 보시오!”
잠시 말이 없던 혁련검이 갑자기 손을 부르르 떨기 시작했다.
“아니야… 그럴 리 없어… 그녀가 내게 그런 짓을 할 리가…….”
이때 엽현이 음미하던 찻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혁련 공자, 흥분을 가라앉히고 생각해 보시오. 그대 같은 고수가 그 정도 지능이 없을 리가 없소. 잘 생각해 보면 분명 놓치고 있던 게 떠오를 거요.”
혁련검의 안색은 계속해서 어두워져만 갔다.
상대방은 정말 자신의 죽음을 원하는 것일까?
이때 엽현이 주견심을 향해 말했다.
“자, 그럼 우리는 본론으로 들어갑시다.”
“과연 명불허전(名不虛傳)이구려. 소문대로 일 처리가 날카롭습니다.”
“하하, 우리 누님께서 말씀하시길 항상 전후사정을 살피고, 신중에 신중을 기하면 일을 그르치지 않을 거라 하셨소. 가장 중요한 건 예전 같으면 천방지축으로 날뛰어도 뒤를 봐 줄 사람이 있었지만, 더는 그렇지가 않다는 거요.”
“오유계의 천도… 그녀는 확실히 남다른 존재였다고 들었소.”
엽현이 말없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엽 공자,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겠소. 우리 도총은 엽 공자와 혼인 관계를 맺길 원하오.”
“후후, 도경 때문이라고 솔직히 말하는 건 어떻소?”
“아무렴 어떻소? 뜻만 통하면 되는 것을. 어찌 생각하시오?”
“만약 거절하면 어떻게 되는 것이오?”
엽현의 질문에 주견심이 침착하게 대답했다.
“백제성군이 이미 천계연에 도착했소. 곧, 휴전에 관한 논의에 들어갈 것이오. 도총과 도정의 전쟁이 이대로 막을 내릴지는… 순전히 엽 공자의 대답에 달려 있소.”
엽현은 잠시 침묵했다.
주견심은 천천히 찻잔을 들이키며 서두르지 않았다.
한편, 혁련검은 여전히 생각에 잠겨 있었다. 그의 안색은 상당히 좋지 못했다.
믿었던 상대에게 칼을 맞을 뻔했으니, 마음이 편할 리가 없었다.
이때 엽현이 문득 질문을 던졌다.
“그나저나, 그 신녀라는 여인은 어떤 사람입니까?”
주견심이 찻잔을 내려놓으며 대답했다.
“그녀는 상주(上主)의 의붓딸이자 도총의 업무를 관장하는 총책임자이기도 하오. 오늘 우리의 방문도 그녀가 명령한 것이오.”
“그렇다면 혼담을 제시하라고 한 것도 다 그녀 생각인 거요?”
“그렇소.”
“후후… 그것참 재미있구려.”
계략!
엽현은 본능적으로 이일에 어떤 계략이 숨겨져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상대는 도경 외에도 또 다른 무언가를 노리고 있던 것이다!
‘뭐지? 뭘 원하는 거지?’
엽현은 아무리 생각해 봐도 도경 이외에 자신에게서 얻어 갈 것을 생각할 수 없었다.
혹시 자신의 빼어난 용모에 반한 것일까?
“음… 그럴 가능성이 없진 않지.”
“엽 공자, 혼자서 뭘 중얼거리는 것이오?”
엽현은 주견심의 음성에 제정신으로 돌아왔다.
“음, 그리고 그녀가 또 달리 한 말은 없소?”
“신녀께서 말씀하시길, 결코 강요는 하지 말라 하셨소. 혼인 생각이 없다면 친구로 남아도 괜찮다는 뜻이오.”
“하나 그리되면 그대들은 도정과 휴전을 할 것이지 않소?”
주견심이 고개를 끄덕였다.
“백제성군은 휴전을 논의하면서 그대를 역사상 다시없을 천재로 묘사했소. 과장이 좀 섞여 있다 해도 도정이 얼마나 그대를 죽이고 싶어 안달이 났는지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이었소.”
백제성군, 백제자!
엽현은 속으로 이를 바득 갈았다.
진작 해치워 버렸어야 했는데 어찌어찌 살아 돌아가서는 결국 이런 결과를 만들어 냈으니.
물론 이는 엽현의 잘못이라기보다, 백제자의 도주 실력이 너무나도 신출귀몰한 탓이었다.
주견심은 다시 차를 들이켜며 엽현의 대답을 기다렸다.
급할 건 없다.
어차피 주도권은 자신들에게 있으니까.
반면 엽현의 속은 타들어가고 있었다.
만약 도총이 회군하면 도정은 오유계로 밀고 들어 올 것이 분명하다.
자신이 도정에서 한 일을 세상이 알고 있는데 저들이 참고만 있을 리가 없다.
도정의 무인들을 죽인 것 외에도 약탈, 방화, 조사전 파괴까지 온갖 천인공노할 짓을 다 한 엽현이었으니까.
이때 엽현이 문득 물었다.
“주 노인, 한 가지 묻겠소. 신녀가 원하는 게 정말로 도경뿐이오? 아니면 나를 어떻게 한 번 자빠뜨려 보려고 수작을…….”
순간, 주견심은 마시던 차를 뿜을 뻔했다. 다행히 그런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았지만, 사레가 걸리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몇 번 켁켁 거리던 주견심이 괴상한 눈빛으로 엽현을 바라보았다.
“엽 공자… 그런 식으로 물으면 노부가 무어라 대답해야 할지…….”
“…….”
찻잔을 내려놓은 주견심은 다시 호흡을 가다듬었다.
“엽 공자, 생각할 시간은 충분했소? 이제 대답을 듣고 싶소만.”
엽현이 웃으며 대답했다.
“대답은 도총에 방문한 이후에 하겠소.”
“도총? 그게 무슨…….”
“하하, 혼인은 개인의 중대사인 만큼 당사자가 마주 보고 앉아 결정하는 게 옳지 않겠소?”
“그러니까… 도총에 가서 신녀를 만나겠다는 말이오?”
엽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가는 김에 도경도 지니고 가겠소. 혹시 정말로 눈이 맞아 혼례를 올릴지도 모르니 말이오!”
“좋소. 그럼 바로 떠날 생각이오?”
“음… 준비할 시간이 필요하오. 반나절 후에 떠나는 게 어떻소?”
주견심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럽시다!”
엽현이 자리에서 일어난 이때, 혁련검이 엽현을 막아섰다.
“그대도 검수인가?”
“…그렇소만?”
“어디, 온 김에 실력이나 한 번 보지!”
혁련검이 말을 마친 순간, 엽현의 모습이 희미해졌다 다시 나타났다.
이때, 그의 검 끝이 어느새 혁련검의 미간에 닿아 있었다.
차가운 감촉을 느낀 혁련검은 자리에서 돌처럼 굳어버렸다.
잠시 혁련검의 눈을 응시하던 엽현이 웃으며 검을 거둬들였다.
“혁련 공자, 다음에 날을 잡고서 겨뤄 보도록 합시다. 그럼 나는 바빠서 이만.”
이 말을 끝으로 엽현은 대전을 떠나갔다.
한편, 목숨을 건진 혁련검은 몸을 부르르 떨고 있었다.
“이 정도 실력일 줄이야…….”
이때 혁련검이 불현듯 주견심을 바라보았다.
“내가 그런 무례를 저질렀는데도 저자는 날 죽이지 않았소. 어째서…….”
주견심이 무심한 표정으로 대꾸했다.
“그야, 엽 공자는 현명한 사람이기 때문이오.”
“…….”
* * *
엽현의 처소.
엽현이 막 방문을 열고 들어왔을 때, 소음이 재빨리 방 안으로 따라 들어왔다.
“진심이오? 정말 도총의 땅으로 갈 작정이오?”
엽현이 다소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달리 방법이 없었소.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도총은 곧바로 휴전을 선언할 것이고, 그러면 바로 도정과 맞닥뜨려야만 하오.”
“흠… 그 여인이 혼인을 들먹인 것은 비단 도경 때문만은 아닌 것 같소.”
엽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 역시 그렇게 생각하오. 분명 다른 속셈이 있는 것 같긴 한데, 그게 정확히 무엇인지는 떠오르지 않소. 어쨌든 직접 대화해 보면 알게 될 것이오.”
“함정일 가능성은?”
엽현이 이번에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지금으로써는 아무것도 장담할 수 없소.”
엽현은 막념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그녀는 분명 도총을 조심하라면서, 오히려 도정보다 더 무서운 상대가 될지도 모른다고까지 말했었다.
“정말로 가지 않으면 안 되는 거요?”
소음이 걱정스레 묻자 엽현이 미소를 지어 보였다.
“도정이든 도총이든 언젠가 한 번은 맞닥뜨리게 될 상대들이오. 너무 걱정하진 마시오. 소득이 없을 순 있겠으나, 결코 손해를 보진 않을 테니까.”
“…무슨 근거로?”
소음이 의아해하자, 엽현이 손바닥으로 자신의 뺨을 톡톡 건드렸다.
“왜냐하면, 내겐 이 두꺼운 낯짝이 있으니까! 나처럼 몰염치한 자가 어떻게 손해를 보겠소?”
“…….”
반나절 후.
모든 준비를 끝마친 엽현은 주견심 등과 함께 도총으로 향했다.
이번에는 엽지명이 그와 동행했다.
* * *
도총의 땅.
어느 신묘한 기운이 감도는 산꼭대기, 눈처럼 하얀 치마를 입은 여인 하나가 마치 한 마리 고고한 학처럼 나뭇가지 위에 흔들림 없이 서 있다. 이때 바람이 불어와 거추장스러운 앞머리를 쓸어 넘기니 영기(英氣) 가득한 아름다운 외모가 드러났다.
“이곳으로 온다고? 훗, 재밌는 자로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