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Sword Alone RAW novel - Chapter 158
158화 그런 저급한 은신술을 도저히 봐 줄 수가 없구먼
장내가 순간 얼어붙은 듯 고요해졌다.
성 아래에는 스무 명의 기병들, 특히 이마에 검 끝을 마주하고 있는 중년인이 죽일듯한 기세로 엽현을 바라보았다.
중년인이 두려워하는 기색이 없었다.
“다시 한번 말하겠다. 항복하지 않으면 대운제국의 대군이 이 성에 있는 모두의 머리와 몸을 분리시켜 버릴 것이다.”
이에 엽현이 중년인을 향해 엄지를 치켜세웠다.
“내 검 앞에서 그런 말을 하다니, 담력이 대단하군.”
중년인이 빈정대는 말투로 말했다.
“당연하지 않은가? 네 놈은 결코 나를 죽일 수 없다!”
엽현이 궁금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왜지?”
그러자 중년인이 자신을 가리켰다.
“나는 위대한 대운제국을 대표하여 이 자리에 온 것이다. 만약 네가 날 죽이면 우리 대운제국이 너를…….”
푹!
영수검이 그대로 중년인의 미간 사이를 뚫고 나왔다.
말을 채 잇지 못한 중년인은 눈을 크게 뜨고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영수검이 성 위로 날아가 엽현의 손에 들어갔다. 이때 붉은 선혈이 검신을 타고 바닥으로 떨어졌다.
엽현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렇게 대놓고 협박해서야……, 내 체면도 좀 생각해 줬어야지…….”
“…….”
이때 중년인이 그대로 말에서 고꾸라졌다. 그는 죽어서도 눈을 감지 못했다.
중년인이 죽은 것을 보자 나머지 대운제국의 병사들이 크게 분노했다. 그중 한 명의 병사가 노기 띤 음성으로 엽현에게 소리쳤다.
“네가 감히 우리 대운제국…….”
서걱!
부지불식간에 영수검이 병사의 목에 커다란 구멍을 만들었다. 말 아래로 떨어진 병사가 자신의 목을 애처롭게 부여잡아 보았지만, 목의 구멍을 통해 붉은 선혈이 끊임없이 쏟아져 나왔다.
엽현이 나머지 기병들을 바라봤다.
“저 둘의 죽음에서 뭔가 배운 게 있나?”
그의 말에 대운제국 병사들의 얼굴에 공포가 드리웠다. 눈앞의 남자는 결코 대운제국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을 그제야 깨달은 것이다.
퇴각!
대운제국 병사들이 일말의 주저함도 없이 말 머리를 돌려 달아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들을 지켜보는 엽현을 향해 강구가 물었다.
“왜 살려 보내는 거야?”
이에 엽현이 옅은 웃음을 보이며 성벽에 기립해 있던 강국 병사들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모두 보았나? 대운제국은 결코 무적이 아니다. 저들도 칼을 맞으면 죽고, 죽음 앞에 두려움을 느끼는 것은 우리와 똑같다. 대(大) 강국의 남아로써 대운제국 따위를 두려워할 필요가 있겠는가? 싸우자! 죽더라도 적어도 한 놈은 길동무로 데려가야 할 것 아닌가!”
이에 병사들이 격동하기 시작하더니 이내 한목소리로 소리 높여 외치기 시작했다.
“죽더라도, 한 놈은 데려간다!”
“죽더라도, 한 놈은 데려간다!”
수만의 병사들이 한 목소리로 구호를 외치니, 마치 마른하늘에 벼락이 치는 듯 천지를 울렸다.
이를 보고 엽현이 미소 지었다.
사기(士氣)!
청주의 소국들에게 있어서 대운제국은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특히, 기병 단 백 기로 청주의 작은 나라 하나를 멸망시킨 이후로는 더욱 그러했다. 그렇기에 강국 병사들은 대운제국과 싸우기도 전에 사기가 상당히 떨어져 있던 것이다.
만약 이 상태로 전쟁을 했다가는 강국 군은 칼 한번 제대로 휘두르지 못하고 패배할 수밖에 없었다.
엽현을 바라보는 강구의 입가에 미묘한 웃음이 번졌다.
강구의 눈빛을 느낀 엽현이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
“잠시 창란학원에 다녀와야겠어.”
“오래 걸려?”
“아니, 금방 올게!”
“그럼 기다리고 있을게.”
엽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란수의 등장으로 적들은 당분간 공격해 오진 못 할 거야. 그래도 방심하지 말고 성을 잘 지키고 있어. 적어도 이틀 안엔 돌아올게!”
강구는 돌아서는 엽현의 뒷모습을 뚫어져라 쳐다보다가, 더 이상 보이지 않을 때가 되어서야 고개를 돌렸다.
‘란수….’
엽현은 이번엔 운선 대신 육반장이 남기고 간 흑랑 위에 올라탔다. 흑랑의 속도가 운선보다 훨씬 빨랐기 때문이었다. 흑랑의 속도라면 개양성에서 창란학원까지 단 반나절이면 주파가 가능했다.
저들의 공격이 주춤해져 있을 때, 엽현은 반드시 창란학원을 방문해야 했다. 왜냐하면 당국의 병사들만으로는 결코 초국과 대운제국 연합군을 막아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지금 상황에서는 원군이 절실했다.
한편 그는 이번에 새로 얻은 질영검을 흡수하지 않기로 했다. 왜냐하면 두 자루의 검만으로는 여전히 신합경에 이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는 차라리 질영을 남겨 현재의 전투력을 올리는 것을 선택했다.
* * *
개양성에서 백 리 떨어진 초국 대군의 주둔지.
“건방진!”
분노에 찬 목소리가 막사 안을 가득 채운다.
막사 안에는 철갑을 입은 중년인이 서 있었다. 그의 살벌한 시선 끝에는 한 병사가 바닥에 무릎을 꿇고 있었다.
“강국 따위가 대운제국을 능멸했다는 것이 말이나 되는 소리냐!?”
병사가 급히 머리를 조아렸다.
“장군, 제가 드린 말씀엔 일절 거짓이 없습니다.”
중년인은 분노에 못 이겨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너는 가서 대운기병을 집합시켜라.”
이때 막사 안으로 한 백의 노인과 검은 그림자 하나가 막사 안으로 들어왔다.
백의 노인이 무릎을 꿇고 있는 병사를 보고는 말했다.
“물러 가거라!”
이에 병사가 허겁지겁 막사 밖으로 빠져나갔다.
백의 노인이 중년인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이봉(李鋒) 장군, 이곳에서는 내 지시에 따르기라는 고산왕의 벌써 명령을 잊은 것이오?”
이봉이라 불린 중년인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이 장군, 엽현은 창목학원도 두려워하지 않는데, 대운제국이라고 해서 겁먹을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오? 그놈은 일신상의 실력도 대단하지만 그 뒤에 검선과 안란수가 있소. 이번에 안란수가 돌연 나타난 의도를 파악하기 이전엔 결코 경거망동해서는 안 될 것이오. 만약 명을 어길 시, 군법대로 처분하겠소!”
이봉이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백의 노인의 얼굴 역시 편안한 것은 아니었다. 예상에 없던 안란수의 등장으로 모든 계획이 꼬여 버린 것이다. 물론 안란수 한 명은 두렵지 않지만, 잘못하다간 그녀 뒤에 있는 세력을 자극하게 될 수 있다는 것이 문제였다.
이 때문에 자신들이든 대운제국이든 섣부른 행동을 삼가야 했던 것이다.
하지만 엽현에게 시간을 주는 것 또한 안 될 일이었다. 엽현은 이미 다른 기운을 빌려 쓰는 차세(借势)에 대한 가닥을 잡은 상태였다.
즉, 검주가 되기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는 의미다.
그때가 되면 상황은 점점 어려워진다.
엽현이 검주가 된다면 창목학원과 암계의 무인들만으로는 그를 잡을 수 없게 된다. 결국 요얼방의 무인들을 청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것도 요얼방 10위 이내의 무인들 정도가 되어야 검주와 상대가 가능하다.
문제는 요얼방 상위권의 무인들은 돈으로는 움직일 수 없는 자들이라는 것이다. 그들은 이미 재물에는 구애받지 않는 다른 차원의 무인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엽현이 검주가 되면 창목학원과 암계의 만법경 강자를 제외하곤 엽현을 상대할 패가 거의 없어지게 되는 셈이었다. 백의 노인으로서는 지금 이 상황이 답답할 수밖에 없었다.
다행인 것은 엽현이 아직 검주가 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검주가 아니라면 그들이 엽현을 죽이기 위해 써야 할 비용이 상당히 절감된다.
그러나 또 다른 변수가 나타났으니, 바로 안란수였다.
안란수를 생각하니 백의 노인의 안색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엽현과 안란수는 도대체 어떻게 알게 된 사이일까?
이때 그의 곁에 있던 암주가 말했다.
“이목(李牧) 형, 호도자를 청해야 하는 것 아니오?”
‘호도자라고?’
이목. 그는 중토신주 창목학원의 호법이다. 만법 전봉경 그 이상의 강자다. 이목은 진중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호도자를 부르려면 대가가 만만치 않을 텐데?”
“하지만 엽현 뒤의 그 여인을 상대하려면 그 정도는 돼야 하지 않겠소?”
이목이 침묵에 빠졌다.
바로 이때, 검은 장포를 입은 노인 하나가 막사 안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목의 눈이 순간 가늘어졌다. 왜냐하면 그 노인은 안란수와 함께 있던 자였기 때문이다.
이때 흑포 노인이 그림자 속에 숨어있던 암주를 발견했다.
“그대의 저급한 은신술은 도저히 눈 뜨고 봐줄 수가 없군!”
퍽-!
노인의 발끝이 가볍게 움직이자 둔탁한 소리와 함께 암주가 모습을 드러냈다.
흑의 노인을 바라보는 암주의 눈에 한 줄기 두려움이 스쳐 지나갔다.
이때 흑의 노인이 다시 입을 열었다.
“걱정하지 마시게들, 그대들의 염려를 알고 있소. 우리가 엽현의 일에 끼어들 일은 다시는 없을 테니, 하려던 것을 하시오.”
이목의 눈썹 끝이 살짝 움직였다.
“어째서?”
흑의 노인이 입가에 비릿한 웃음을 보였다.
“왜냐하면 우리 역시 그가 죽길 원하기 때문이오. 단지 안 소저 때문에 우리는 손을 쓸 수가 없소. 하지만 동시에 안 소저 역시 다시는 그를 도울 수 없을 것이오.”
“그대는 도대체 누구요?”
이목의 질문에 흑의 노인이 담담한 어투로 대답했다.
“그건 알 필요 없소. 다만 우리의 의사를 전달해 주려고 온 것뿐이오. 엽현은 검도종사이긴 하지만 창목학원과 암계의 힘이라면 무난하게 처리할 수 있으리라 믿고 있소.
참, 그리고 한 가지 조언을 주자면, 그를 칠 때 모든 힘을 한 번에 집중시키는 것이 좋을 것이오. 한 명씩 보냈다가 남 좋은 일 하게 될지도 모르니까 말이오.”
이목이 흑의 노인을 바라봤다.
“놈은 그대 생각만큼 간단하지가 않소!”
“흥, 안 소저만 아니었더라면 한 손가락으로 죽여 버렸을 것을! 어쨌든 그대들이 지금까지는 너무 안일하게 일을 처리해 온 것 같소. 하지만 온 힘을 집중시킨다면 못 죽일 것도 없지 않겠소?”
흑의 노인이 막사 밖으로 나가려다가 걸음을 멈췄다.
“조금 있으면 중토신주에서 사람이 하나 올 것인데 그대들에게는 큰 도움이 될 것이오. 그때가 되면 부디 모든 패를 다 꺼내서 확실히 처리하길 바라겠소!”
말이 끝나자 흑의 노인의 신형이 잔상을 남기며 사라졌다.
이봉과 암주가 말없이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이때 백의 노인, 이목이 암주와 이봉을 바라봤다.
“암주, 지금 즉시 암계 도병들을 부르시오. 이 장군 역시 대운기병들이 언제든 출격할 수 있게 준비해 놓으시오. 엽현이 죽으면 단번에 성을 무너뜨리고 강국 황실에 그 시체를 던져 줄 것이오!”
이목이 진중한 표정으로 두 눈을 천천히 감았다.
“이번에 성공하지 못하면 다음 기회는 없다.”
* * *
한편, 창란학원 앞에 도착한 엽현은 눈앞의 펼쳐진 풍경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산 아래에 수많은 인파가 구름떼처럼 몰려와 창란학원 쪽을 바라보고 있던 것이다. 게다가 그들의 눈은 하나같이 어떤 기대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엽현이 근처에 있던 한 남자의 곁으로 다가와 물었다.
“저, 형씨. 이게 다 무슨 일이오?”
남자가 엽현을 돌아보았다.
“정말 몰라서 묻는 거요?”
엽현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좀 알려 주시오.”
“참, 이 양반, 소식이 어둡구먼. 엽 국사가 돌아온다지 않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