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Sword Alone RAW novel - Chapter 1646
1647화 이제 그만하자
엽현은 가부좌를 틀고 앉아 천천히 눈을 감았다.
마음을 가라앉힌 그는 깨달음의 내용에 온 정신을 집중하기 시작했다.
액난은 말없이 문밖으로 보이는 엽현을 응시했다.
이때, 소액이 그녀 곁으로 다가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도일이 그를 죽일까요?”
액난이 고개를 저었다.
“그러진 않을 게다.”
“그럼 도대체 뭘 하려는 걸까요?”
“도일이 무서운 게냐?”
소액이 고개를 끄덕였다.
액난은 고개를 돌려 잠잠히 앉아 있는 엽현을 바라보았다.
“그녀보다 더 두려운 자가 존재한다. 만약 주인이 도일을 넘어서지 못하면, 오 년 후에는 지금보다 훨씬 더 비참한 말로를 맞게 될 거다.”
“이유인을 말하는 것입니까?”
“이유인은 주인이 상대해야 할 적 중 하나일 뿐이다.”
이 말에 소액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도대체 어느 정도로 강해져야 그들과 맞설 수 있겠습니까?”
액난은 말없이 바둑판 위를 바라보았다.
잠시 후, 말없이 있던 액난이 다시 입을 열었다.
“모른다. 도일 또한 모를 거다. 내가 유일하게 아는 것이라곤 지금의 주인이 너무나도 약하다는 것이다. 너무나도…….”
소액은 고개를 들어 엽현을 쳐다보았다.
문득 그녀의 눈에 우려의 기색이 스치듯 나타났다.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엽현이 지금보다 얼마나 더 강해지든지 훗날 그가 상대할 적들은 그보다 더 강할 거라는 것을.
현재의 엽현은 동일 경지 내에서라면 무적이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그가 상대해야 할 적이 누구인가?
허무족 그리고 우주법칙이다.
지금의 엽현은 우주법칙은 고사하고 허무족에게도 상대가 되지 않는다.
만에 하나, 엽현이 초신경(超神境)이 된다 할지라도 여전히 우주법칙에게는 통하지 않는다. 평범한 초신경 강자 정도는 우주법칙 앞에서 어린아이에 불과하니까.
설령, 천신만고 끝에 우주법칙을 물리쳤다 하더라도, 그 뒤에는 이유인이 버티고 있다.
아무리 노력하고, 발버둥 친다 해도, 결국 엽현은 항상 더 강한 적을 맞이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엽현에게 주어진 운명의 정체였다.
“그를 돕고 싶습니다.”
생각에 잠겨 있던 액난이 고개를 들어 소액을 똑바로 응시했다.
“죽을 거다.”
죽을 거다!
죽을 가능성이 있다는 말보다 훨씬 더 강한 어조였다.
“후회하지 않을 겁니다.”
액난은 잠시 소액을 쳐다보더니 끝내 고개를 내저었다.
“멍청한 녀석….”
“…….”
이후로도 엽현은 책 읽기와 참선을 반복했고, 시간은 빠르게 지나갔다.
그렇게 한 달째 되던 날.
도일이 대나무집으로 돌아왔다.
도일은 곧장 호숫가에서 참선을 하던 엽현을 찾았다.
“따라오너라.”
엽현이 눈을 뜨고 도일을 쳐다보았다.
“어디로?”
“사람을 하나 구해야 한다.”
“사람? 누구를?”
“막념.”
잠시 어리둥절하던 엽현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막념 누님! 누님에게 무슨 일이 있는 거야!”
“아직 무슨 일이 벌어진 건 아니다. 다만 지금부터 내가 그녀를 죽이려 할 거다.”
순간, 엽현의 눈가에 살기가 일었다.
이 모습에 도일이 옅은 웃음을 터트렸다.
“그렇게 보면 내가 물러날 것 같으냐?”
“누님을 해치지 마! 부탁이다!”
순간, 도일의 눈빛이 점점 차갑게 변해갔다.
“마지막으로 경고한다. 다시는 적에게서 자비를 구걸하려 하지 마라. 다시 한번 그따위 말을 지껄였다간 네 주변에 있는 자들을 하나하나 죽여버릴 테니까!”
“…….”
엽현은 도일을 노려보며 주먹을 움켜쥐었다.
“호오… 덤벼 볼 테냐?”
“…지금 당장 그녀에게 가야겠어!”
“후후, 그렇게 하려무나. 의미가 있을진 모르겠다만.”
말을 마친 도일은 순식간에 자리에서 사라졌다.
엽현 역시 검광과 함께 자리를 떠났다.
한편, 두 사람을 따라나서려던 소액은 액난에 의해 가로막힌 상태였다.
소액 뿐 아니라, 은신한 채 자리를 떠나려던 소막 역시 제지당하고 말았다.
한편, 도일과 엽현은 삭풍이 몰아치는 어느 미지에 세계에 도착해 있었다.
이들의 정면 멀리에는 커다란 산이 있었는데, 절벽 위에 관 하나가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엽현이 안광을 밝히자, 관 안에 누워있는 여인 하나의 모습이 시선에 들어왔다.
순간, 엽현은 숨이 멎을 듯했다.
여인의 정체는 다름 아닌 막념이었던 것이다!
엽현은 자신도 모르게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이때, 도일이 엽현을 보며 말했다.
“막념, 오유계의 천도이자 무도에도 천부적인 자질이 있는 여인이지. 이미 널 위해 한 번 죽었고, 이번에도 죽을 것이다. 네게 주어진 시간은 단 반 시진뿐이다. 그 안에 절벽에 도착할 수만 있다면 살릴 수 있겠지만, 그렇지 못한다면 죽고 말 것이다. 불사제족처럼 육신과 영혼이 모두 파괴될 것이니 부활은 꿈도 꿀 수 없겠지!”
엽현이 어두운 표정으로 도일을 바라보았다.
“왜… 차라리 날 노리면 되잖아!”
“후후, 이것도 널 노리는 거나 마찬가지 아닌가?”
“차라리 날 죽이고 나머지는 살려줘! 내가 죽으면 되는 거잖아!”
순간, 도일의 눈빛이 날카롭게 변했다.
“지금… 내게 구걸하는 건가?”
“그게 아니라…….”
“그게 아니면 뭐 하고 있느냐?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을 텐데?”
엽현은 도일을 한 번 노려본 후, 절벽을 향해 신형을 날렸다.
시공사화를 이용한 그는 순식간에 관 앞에 도달할 수 있었다.
엽현이 관을 향해 손을 뻗는 이때, 거대한 도 한 자루가 그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
상대는 초신경 급 강자였다!
엽현은 다급히 손을 거둬들이는 동시에 검을 뽑아 들었다.
쾅-!
가까스로 공격을 막아내긴 했지만, 엽현은 그대로 지면에 처박히고 말았다.
콰쾅-!
산 전체가 진동하면서 그 자리에 거대한 구덩이가 만들어졌다.
바로 이때, 그림자 하나가 엽현 뒤에 나타났다.
엽현이 채 반응하기도 전, 비수 한 자루가 엽현의 목을 노리고 날아들었다.
초신경!
게다가 살수!
엽현은 순간적으로 상대가 둘인 것을 파악했다.
이때, 날카롭게 날아오던 비수가 엽현의 목 앞에 멈췄다.
뒤이어 도일이 엽현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실망이군. 한 번 더 기회를 주겠다. 더 이상의 기회는 오지 않을 것임을 명심하거라!”
엽현이 도일을 노려보며 소리쳤다.
“나는 겨우 파범경일 뿐이라고!”
이 말에 도일이 차가운 눈으로 엽현을 바라보았다.
“파범경이 어쨌다는 거냐? 약하다고 해서 적이 살살 해 주리라 기대하는 건가? 정신 차려! 적은 네가 약하면 약할수록 더욱 맹렬하게 공격해올 거다!”
이 말을 끝으로 도일은 한쪽으로 물러났다.
이때, 엽현의 목을 겨누고 있던 살수는 이미 사라진 상태였다.
엽현이 고개를 들자, 산 정상에 도를 들고 있는 중년 남자의 모습이 보였다.
그의 발밑에는 막념이 누워있는 관이 아슬아슬하게 매달려 있었다.
순간, 엽현의 표정이 흉악하게 일그러졌다.
“마지막 기회라는 걸 잊지 마라! 실패해도 넌 살겠지만, 막념은 죽는다! 그녀가 죽어도 변하는 것은 없다! 왜냐하면 그땐 막념 대신 또 다른 사랑하는 사람이 관에 누워있게 될 테니까!”
침묵하던 엽현이 천천히 몸을 일으켜 세웠다.
그가 한 발을 내딛는 이 순간, 전신에서 혈맥지력의 기운이 피어올랐다.
쾅-!
찰나의 순간, 엽현은 혈인의 모습으로 변했다.
엽현은 알고 있었다. 자신이 상대해야 하는 살수는 결코 소막보다 약하지 않다는 것을. 조금이라도 승산이 있으려면 반드시 전력을 다해야 한다는 것을!
엽현은 절벽을 향해 천천히 나아갔다. 그가 막 절벽 아래에 도착했을 때, 뒤쪽에서 무성의 기운이 날아들었다.
엽현은 즉각 검역을 발동했다. 하지만, 검역이 형성된 순간, 한 자루 비수에 의해 곧바로 파괴되고 말았다.
이때, 엽현이 돌아서며 일검을 날렸다.
하지만 살수는 이미 모습을 감춘 상태!
엽현의 검은 허공을 가르고 말았다.
이 순간, 엽현의 가슴이 갈라지면서 선혈이 터져 나왔다.
숨 돌릴 틈도 없이, 이번에는 목을 향해 차가운 기운이 날아들었다.
엽현은 재빨리 허리를 젖혀 비수를 피해냈다.
뒤이어 엽현이 반격에 나서려 했지만, 살수는 이미 자취를 감춘 뒤였다.
이때, 사라진 비수가 이번에는 엽현의 뒷덜미를 향해 날아왔다.
이에 엽현은 검 자루를 거꾸로 잡고서 옆구리 사이로 찔러 넣었다. 방어를 포기한 동귀어진의 수법이었다.
하지만 그의 검은 허공을 갈랐고, 비수는 또다시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엽현은 큰 피해를 입진 않았지만, 뒷덜미에 옅은 핏자국이 생긴 상태였다.
상대는 엽현의 수의 말려들지 않았다. 자신이 더 유리한 싸움이었으니 굳이 엽현과 같이 죽을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엽현은 고개를 치켜들어 관을 바라보았다.
그는 막념을 구할 수 있는 시간이 많지 않음을 알 수 있었다.
“도일! 약속은 지키는 거겠지!”
엽현이 소리치자, 도일이 대꾸했다.
“네 손이 관에 닿기만 하면 그녀를 풀어 주겠다!”
엽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엽현이 대답을 마친 순간,
쾅-!
엽현의 몸이 갑자기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이는 수명이 아니라 영혼을 태우는 불꽃이었다.
이 모습을 보자, 도일이 잠시 멍하니 엽현을 바라보았다.
지금 엽현은 자신의 목숨을 바쳐 막념을 구하고자 하는 것이다!
의외의 상황에 도일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엽현이 진짜로 목숨까지 내걸 줄은 몰랐던 것이다!
이때, 도일 곁에 액난이 나타났다.
액난은 몸에 불이 붙은 엽현을 보고는 눈살을 찌푸렸다.
“너무 몰아붙이지 말라고 했잖아.”
“…….”
도일은 아무 대꾸도 하지 못했다.
바로 이때, 엽현이 땅을 박차며 허공으로 솟구쳤다.
윙-!
날카로운 검명이 울려 퍼진 순간, 엽현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은 오직 죽음뿐이었다.
죽을힘을 다한다가 아니라 정말로 죽겠다고 마음을 먹은 상태였던 것이다!
눈앞의 두 명의 초신경 강자를 상대하기 위해선 영혼을 태울 수밖에 없었다.
다른 방법이 있었더라면 진작 시도해 보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때의 엽현은 그 방법이 도무지 생각나지 않았다.
파범경인 그가 초신경 강자를 상대로 할 수 있는 방법은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목숨을 거는 것 이외에는!
자신이 죽고 막념을 구할 수 있다면 가장 좋은 결과겠지만, 그렇지 못하더라도 함께 죽을 수 있으니 그리 나쁜 결말은 아니리라!
엽현이 관에 바짝 다가선 이때, 거대한 도가 머리 위로 날아들었다.
엽현은 있는 힘을 다해 검을 내질렀다.
그의 모든 생명을 담은 일검이었다!
쾅-!
순간, 검광이 흩날리면서 엽현이 천천히 추락했다.
추락의 순간, 엽현의 시야에 막념이 있는 관이 들어왔다.
“누님… 미안하게 됐소… 최선을 다했건만…….”
이때, 엽현의 뺨을 타고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엽령, 안란수, 소액, 청아, 불사제족과 오유계.
그 외의 자신이 지키고자 했던 사람들의 모습이 주마등처럼 머릿속에 떠올랐다.
살고 싶었다. 살아서 소중한 사람들을 지키고 싶었다.
엽령, 청아, 안란수, 장문수, 멀리 있는 척발언까지…….
한 번만이라도 만나서 껴안아 주고 싶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들에게 갈 방법이 없다.
최선을 다했건만 결국 여기까지인 것이다.
점점, 사람들의 모습이 모호해져만 갔다.
이에 엽현은 모든 것을 체념하며 천천히 눈을 감았다.
“청아… 이번엔 죽게 내버려다오… 고달팠던 인생… 이제는 그만하고 싶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