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Sword Alone RAW novel - Chapter 1657
1658화 수준 낮은 대화
호숫가.
돌계단 위에 반쯤 드러누운 도일이 여유롭게 다리를 꼬고 하늘을 바라보고 있다.
그리고 그 곁에는 액난이 심각한 표정으로 앉아 있다.
“주인을 가장 끔찍이 생각하는 건 역시 엽령이란 아이인 것 같아.”
엽령!
“스스로 모든 기억을 봉인한 게 맞지?”
액난의 말에 도일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가 생각하는 게 맞아.”
“정말로 지독하면서도 대단하다는 생각이 드는군.”
“하하, 사랑의 힘이 아니겠어?”
액난이 도일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만약에 기회가 주어지면 너도 그렇게 할 자신이 있나?”
도일이 고개를 저었다.
“당연히 못 하지!”
“어째서?”
액난이 호기심을 보였지만, 도일은 끝내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이때, 갑자기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액난이 고개를 들어 구멍 난 하늘을 바라보았다.
“정말로 조금의 도움도 주지 않을 생각인가?”
“검도에는 지름길이 없어. 전적으로 자신에게 의지해야만 해.”
“만약 혼자 해내지 못한다면?”
도일이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했다.
“그럼 부친한테 가서 물어보겠지. 아니면 동생을 찾아가든가. 자고로 금수저 걱정은 하는 게 아니랬다.”
“…….”
시간은 빠르게 지나갔다.
한 달이라는 시간이 눈 깜짝할 사이 사라졌다. 이때에도 엽현은 여전히 가부좌를 틀고 앉아 마치 입적한 고승처럼 꼼짝도 하지 않고 있었다.
도대체 신(神)이란 무엇인가!
그는 한 시도 이 질문을 머릿속에서 지워 본 적이 없었다.
깨어 있는 동안은 오직 이 질문의 답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도무지 답을 내릴 수가 없었다.
엽현은 문득 자신에게 무엇이 부족한지 느낄 수 있었다.
지금까지 너무나 빨리 달려온 탓에 검도에 대한 지식이나 기반이 충분하지 않았다.
남들은 수만 년에 걸려서야 겨우 도달하는 멸범을 이십이 조금 넘은 나이에 이루었으니 문제가 없다면 그게 더 이상하리라.
그의 경험은 여전히 부족했고 어떤 문제를 맞닥뜨렸을 때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은 너무나 부족했다.
눈에 보이는 부분은 대단할지 몰라도 그 속을 들여다보면 그렇지가 못했다.
이는 마치 매우 넓지만 깊이가 발목까지 밖에 오지 않는 강과 같은 것이었다.
‘너무나 조악해!’
엽현은 문득 쓴웃음을 지었다.
빨리 간다고 해서 좋은 것만은 아니었던 것이다.
이때, 엽현이 눈을 뜨고서 손안의 검을 내려다보았다.
범경!
여기서 범은 평범함을 의미하는 것으로 세상에서 말하는 반박귀진(返璞归真)이 여기에 해당된다.
그렇다면 범검이 왜 그리 강한 것일까?
그건 바로 본질을 베는 검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범검의 상위 경지인 입신은 무얼 베는 걸까?
바로 이때, 엽현의 눈이 번뜩였다.
“영혼!”
영혼!
범검이 베는 것은 육신, 그렇다면 입신은 혹시 영혼과 관련 있는 게 아닐까?
엽현은 검을 바라보며 생각에 빠져들었다.
엽현은 입신경 강자들과 겨뤘던 장면을 떠올렸다.
그의 입가에 금세 미소가 드리웠다.
그가 입신경 강자를 상대로 승리할 수 있었던 주요한 원인은 다름 아닌 영혼을 제압했기 때문이었다.
육신은 껍데기에 불과할 뿐.
사람의 본질은 영혼이라 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사람이 죽는다는 말의 의미는 육신의 소멸이 아닌 영혼의 소멸이다.
파괴된 육신은 영혼만 멀쩡하다면 얼마든지 재생할 수 있다.
범검이 육신을 파괴하는 것이라면 입신은 영혼을 베는 것이었다.
여기에 생각이 미친 엽현은 눈이 맑아지는 기분이었다.
물론 이것만으로 입신경이 되기에는 턱없이 모자랐다.
하지만 적어도 막막하지는 않았다. 대략적인 방향을 잡았기 때문이었다.
영혼!
엽현은 이 영혼이란 것에 대해 더 자세히 알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곧바로 진혼검과 교류하는 동시에 대나무집에서 읽었던 책들의 내용을 떠올리기 시작했다.
입신경이 영혼과 깊은 관련이 있다는 것을 알아냈으니, 이제는 영혼에 대해 이해할 차례였다.
엽현이 한참 연구에 집중하고 있는 이때, 도일이 기척 없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는 정신을 집중하고 있는 엽현을 한 번 보고는 말없이 자리를 빠져나갔다.
잠시 후.
도일은 이유계 입구에 모습을 드러냈다. 검은 회오리 앞쪽에는 여전히 남자의 검기가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도일은 검기를 응시하며 무언가를 골몰하기 시작했다.
한참 후, 도일은 그곳을 떠나 넓은 우주 공간으로 나왔다.
성역은 언제나처럼 고요하기만 했다.
이때, 그녀의 시선 끝에 하얀 소복을 입은 여인 하나가 나타났다.
소복의 여인!
이쪽을 향해 걸음을 옮기던 여인은 도일을 보더니 자리에 멈춰 섰다.
손이 닿을 거리에서 서로를 마주 보고 선 두 여인.
먼저 침묵을 깬 것은 도일이었다.
“바둑이나 한판 둘까?”
“…그러지.”
도일이 소매를 펄럭이자, 바둑판 하나가 두 사람 사이에 나타났다.
도일이 흑을 택하자, 여인이 백을 집어 들었다.
“내가 선을 잡아도 상관없겠지?”
“…마음대로.”
도일이 여인을 쳐다보며 물었다.
“그를 기다리고 있는 건가?”
이 질문에 여인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몇 가지 질문을 해도 될까?”
여인이 돌을 놓으며 대답했다.
“곤란한 것만 아니라면.”
“스스로의 실력을 어떻게 보고 있지?”
여인이 도일을 똑바로 쳐다보며 대답했다.
“무적.”
무적!
“언제부터?”
“기억이 아득할 정도로 오래전부터.”
“…….”
여인이 돌을 만지작거리며 물었다.
“문제 있나?”
막 돌을 놓으려던 도일이 미간을 찌푸리며 동작을 멈췄다.
“음… 첫수부터 좋지 않군. 혹시 이유족을 알고 있나?”
“그 쓰레기들 말인가?”
쓰레기!
“쓰레기라니? 아무리 그대라도 이유족이 그 정도는 아닐 텐데?”
“흥! 네 잣대로 나를 평가하려 하다니. 정말이지 너는… 아무것도 모르는구나.”
잠시 표정이 굳어져 있던 도일이 애써 웃으며 입을 뗐다.
“이유족은 미래나 과거로 이동할 수도 있고, 시간을 뒤죽박죽으로 만들 수 있다는 건 알고 있겠지?”
“그게 어쨌다는 거냐?”
“그건 네가 더 잘 알 텐데. 그게 어떤 의미인지는.”
이때, 여인이 되물었다.
“시간 다음에는 뭐가 있는지 아나?”
이 물음에 도일이 다시 멈칫했다.
시간 다음에 있는 것? 그게 뭐란 말인가?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힘이 정말로 시간이라 생각하나?”
도일은 잠시 손안의 돌을 만지작거리며 생각에 잠겼다.
“도무지 모르겠군. 조금 더 자세히 말 해 줄 순 없나?”
이에 여인이 고개를 저었다.
“다음 질문으로 넘어가지. 수준이 맞질 않으니 대화가 어려울 것 같군.”
“하하… 꽤나 자존심이 상하는군. 좋아. 지금 너는 그가 성장하길 기다리고 있는 건가?”
여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너 정도의 실력을 갖출 때까지?”
여인이 재차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로 그게 전부인가?”
“질문을 하는 건가, 아니면 추궁을 하는 건가?”
“굳이 말하자면 둘 다라고 할 수 있겠…….”
“죽고 싶구나!”
순간, 여인의 눈빛이 퍼렇게 빛났다.
동시에 분위기는 찬물을 끼얹은 듯 고요해졌다.
도일은 말없이 여인의 얼굴을 응시했다.
문득, 그녀는 서글픈 마음이 들었다.
무적!
상대는 모든 무인이 원하는 무적의 경지에 오른 존재다.
하지만 이런 강함은 외로움과 고통을 수반할 수밖에 없다.
무도의 한계는 어디인가?
검도의 한계는 어디인가?
여인이 추구하는 것은 또 무엇일까?
그건 무도의 끝도, 검도의 끝도 아닌 자기 자신의 한계일 것이다.
그 과정에서 맞닥뜨려야 하는 외로움은 다른 이들은 상상조차 할 수 없으리라.
“난 그가 나와 함께 가길 원한다.”
도일이 고개를 들어 여인을 바라보았다.
“어디로?”
여인은 성공을 바라보며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도일 역시 굳이 따져 묻지는 않았다.
한동안 침묵이 흐른 후, 도일이 입을 열었다.
“만약 그가 기대한 만큼 성장하지 못한다면 어떻게 되는 거지?”
“그럼 나도 가지 않는다.”
이 말에 도일은 여인의 속마음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녀는 엽현을 데리고 어딘가로 데려가고 싶어 했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엽현이 지금보다 훨씬 더 강해져야만 한다.
이 때문에 그녀는 엽현과 떨어져 있으면서 그가 스스로 성장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도일은 더 이상 질문하지 않고 눈앞의 대국에 집중했다.
다른 곳에 정신을 쏟기엔 여인의 바둑 실력이 너무나 대단했던 것이다.
이로부터 반 시진 후, 여인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네가 졌군.”
이 말을 남긴 채 여인은 어둠 속을 향해 떠나갔다.
바둑판을 내려다보던 도일은 쓴웃음을 지었다.
바둑에서 누군가 패한 것은 십여만 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었다.
심지어 그녀의 주인조차 바둑으로는 자신을 이겨 본 적이 없었다.
이는 곧 여인의 머리가 비상하다는 의미였다.
물론 그녀는 좋은 머리를 뽐내 본 적이 없었다.
일 검이면 모든 것이 해결되기에 굳이 머리를 쓸 필요가 없는 것이었다.
이때, 멀어지던 여인이 갑자기 자리에 멈추더니 뒤돌아섰다.
“그거 말고 더 묻고 싶은 게 있지 않나?”
도일이 고개를 끄덕였다.
“만약 그의 검도에 대해 조언한다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지?”
여인이 고개를 저었다.
“할 이야기가 없다.”
“조금도 지적해 줄 게 없단 말인가?”
“하지 않는 게 아니라 그러지 못하는 거다. 오빠의 검도는 내 것과는 완전히 다르다. 내가 지도해서 될 일이 아니라는 거지.”
도일이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말인지 이해되는군.”
“가서 오빠에게 전해라. 만약 혼자 힘으로 이유인을 해결하고 날 찾아온다면 상을 주겠노라고.”
“만약 해결하지 못한다면?”
“그럴 일은 없다. 난 오빠를 믿으니까.”
“…….”
이때, 돌아서려던 여인이 다시 걸음을 멈췄다.
“참, 시간과 공간은 동일 선상에 존재한다. 시간이 공간에 비해 우월하다는 건 잘못된 생각이다. 이쪽 우주의 무인들은 공간만 연구하려 하지 시간은 매우 소홀히 대한다. 반면, 시간만을 연구하는 이유인들은 공간에 대한 이해도가 매우 취약하지. 공간이 없는데 시간이 존재할 수 있을까? 모든 시차원은 공간을 토대로 세워진다. 이 점을 명확히 이해한다면 네 경지도 한발 더 나아갈 수 있을 거다.”
순간, 여인을 바라보는 도일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만약 이유인이 이러한 사실을 알게 되면 어찌 될 것 같나?”
“훗, 지금보다는 덜 약해지려나?”
“한 가지 더. 시간과 공간 이후에는 뭐가 있지?”
“그야 물론 다중차원이다.”
도일이 눈썹을 치켜세웠다.
“다중차원? 그건 또 뭐지?”
“지금 말해 준다 해도 이해하지 못할 거다. 그리고… 시간 있으면 책을 보면서 지식이나 좀 더 쌓아 두거라. 도대체 어디까지 일일이 설명해줘야 할지 모르겠구나.”
“…….”
도일은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다.
여인의 지식을 따라가지 못하는 것은 사실이기 때문이었다.
“너는 도대체 어디서 그런 지식을 쌓은 거지?”
이 말에 떠나려던 여인이 다시 발걸음을 멈추고 돌아섰다.
“매일 우주 공간을 걷기나 하니까 내가 한량으로 보이나? 나 역시 공부를 한다. 오늘 너에게 이야기했던 시간과 공간에 대한 개념은 이미 내가 십만 년도 더 전에 다뤘던 주제다. 네가 오빠를 도와주지 않았다면 이런 기초적인 대화를 하느라 시간 낭비하지도 않았을 거다. 정말이지 어린아이도 알 수 있는 수준의 내용을 설명하려니 머리가 깨질 지경이구나!”
여인은 도일이 또 질문할까 싶어 순식간에 달아나듯 자리를 떠났다.
한편, 도일은 충격을 받은 나머지 한동안 자리에서 움직이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