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Sword Alone RAW novel - Chapter 915
915화 갈수록 무서워지는군
영계로 돌아온 원천.
이미 서영족은 난장판이나 다름없었다.
차가운 눈으로 장내를 둘러보던 원천은 대전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대전 안에 들어선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바로 원령과 원경의 시체였다.
두 사람의 시체에는 모두 단 하나의 검상만이 남아 있었다.
“엽현의 짓인가…….”
뒤쪽의 노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것 같구나.”
“엽현……. 하루하루가 무섭게 강해지는구나.”
“…….”
“숙부, 놈을 맡아주실 수 있습니까?”
원천이 뒤에 서 있던 노인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 노인의 정체는 바로 조금 전 만유서원에서 엽령을 막아섰던 원전이었다. 선각자와 동시대를 살았던 초고수였다.
잠시 고민하던 원전이 대답했다.
“만약 수라여제가 놈을 비호한다면 죽일 수 없다.”
“셋째 숙부까지 합세한다면 어떻습니까?”
“원청(元青)을? 그 엽현이란 놈을 그리 높이 평가하는 게냐?”
원천이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에는 저도 그저 젊고 재능 있는 무인인 줄로만 알았습니다. 하지만 막상 겪어보니 제가 상상했던 것 이상으로 성장 속도가 빠릅니다. 이대로 내버려 두었다간 우리 서영족의 앞날에 큰 걸림돌이 될 것이 분명합니다.”
“흠… 지금으로서는 놈을 죽이는 것은 쉽지 않을 것 같구나. 만유서원과 부문종이 놈을 홀로 내버려 두지 않을 테니 말이다. 게다가 애당초 우리의 목적은 그가 아닌 만유서옥을 얻는 것이지 않았느냐? 놈을 처리하는 것은 서옥을 얻고 난 뒤에 해도…….”
“그 열쇠를 놈이 가지고 있습니다.”
“…….”
원천의 말에 원전이 잠시 말을 잃었다.
이때 원천이 말을 이어갔다.
“둘째 숙부, 이는 절대 간단히 볼 사안이 아닙니다. 제가 처음 그놈을 봤을 때와 지금의 실력 차이가 얼마나 큰지 아십니까? 놈의 성장 속도를 무시했다간, 결국 죽일 수 없는 지경에 이를지도 모릅니다!”
“흠…….”
잠시 침묵하고 있던 원전이 마침내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놈을 내버려 둬선 안 되는 것은 분명하구나. 하지만… 지금 우리가 처한 상황을 고려해 보았느냐?”
“숙부, 그게 무슨 뜻입니까?”
“잘 생각해 보거라. 여부자가 다시 나타났고, 장문수가 새로운 경지를 돌파했다. 이런 상황에서 오유계의 다른 세력들이 우리와 손을 잡으려 하겠느냐? 백이면 백, 뒤로 물러나서 지켜보려 할 것이다. 우리와 엽현측이 양패구상하는 장면을!”
“…….”
“물론 엽현은 죽여야 한다. 하지만 지금 상황을 타개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먼저 서옥을 손에 쥐는 것이다. 그렇게만 된다면 엽현이든, 만유서원이든 우리 입맛대로 처리할 수 있을 것이다.”
“흠… 숙부 말씀이 일리가 있습니다.”
이때, 원천이 문득 함께 온 옥라연을 바라보았다.
“그대 무적종의 병력은 어느 정도나 되오?”
“…….”
옥라연이 말을 아끼자 원천이 다시 입을 열었다.
“상황을 똑바로 바라보시오. 그대의 목적이 9호인 것은 알겠으나, 그녀는 엽현과 한 패거리라는 것을 잊지 마시오. 결국 그녀를 제거하기 위해선 어쩔 수 없이 우리가 힘을 합쳐야 한다는 말이오.”
침묵하던 옥라연이 가볍게 웃으며 대꾸했다.
“네 말이 맞다. 하지만 한 가지 명심할 것이 있다면, 그건 바로 9호가 깨어나는 순간 우리 모두 벌레처럼 죽을 거라는 사실이다.”
9호!
9호를 떠올리자 원천의 안색이 일순간 어둡게 변했다. 그때 그가 보았던 9호의 실력은 이미 육대강자를 훌쩍 뛰어넘은 것이었다. 그렇다는 것은 원전이 나선다 해도 결코 적수가 될 수 없다는 뜻이 아닌가.
이때 옥라연이 원천을 바라보며 말했다.
“나 역시 너의 말에 동의한다. 서옥과 엽현 중, 먼저 해결해야 할 것은 단연 엽현이다. 그를 죽이면 서옥의 열쇠를 얻음과 함께, 미래의 큰 후환을 제거할 수 있다. 반대로, 엽현과 9호가 살아있다면 설령 서옥을 차지한다고 해도 아무 의미가 없게 돼 버린다. 다 죽어버릴 테니까!”
옥라연이 이번에는 원전을 돌아보며 말했다.
“엽현을 죽이는 것이 급선무다. 게다가 9호가 잠들어 있는 지금이야말로 놈을 죽이기에 적기라고 할 수 있지.”
“그대가 말하는 9호라는 여자는 도대체 어디서 나타난 것이오?”
원전의 물음에 옥라연이 고개를 저었다.
“그건 노부도 알 수 없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우리 무적종의 시대에도 존재했었다는 점뿐. 그 외에는 어디서 왔는지, 신분이 무엇인지, 모두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
원전이 눈썹을 치켜세우며 물었다.
“아무도 모른다니, 그게 가능한 것이오?”
“후후, 그러게나 말이다. 그녀가 왜 하필이면 우리 무적종에 스스로를 봉인했는지도 알 수 없다. 다만… 어쩌면 그녀가 혈겁과 관련된 것이 아닌지 의심해 보고는 있다.”
“혈겁? 무슨 혈겁 말이오?”
원천이 황급히 물었지만, 옥라연은 말을 아꼈다.
“방금 전 한 말은 한 귀로 흘려버려라. 어쨌든, 지금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할 것은 엽현이다. 그를 제거하고 난 후, 9호까지 처리한다. 다만… 우리 무적종은 이번처럼 만유서원에 우르르 몰려가는 일은 하지 않겠다.”
말을 마친 옥라연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이번 전투에서 무적종은 의미 없이 한 명의 강자를 잃고 말았다. 인원수가 상대적으로 적은 그들로서는 결정적인 순간이 아닌 이상 출수하기가 부담스러워진 것이었다.
옥라연을 한 번 바라본 원천이 원전을 향해 말했다.
“허면, 둘째 숙부. 먼저 엽현부터 처리하시겠습니까?”
“그러자꾸나. 그러나 이번에는 계획을 철저히 세워야 한다. 만약 다시 한번 수라여제, 여부자, 그리고 장문수와 정면으로 부딪쳤다간, 설령 승리한다고 하더라도 남 좋은 일밖에 되지 않을 테니 말이다.”
“제게 한 가지 생각이 있습니다.”
“말 해 보거라.”
“조사해 본바, 엽현은 이곳에 오기 전, 사유계의 북경이란 곳의 왕이었다 합니다. 그곳에는 그의 친구들도 많다고 하니, 북경을 손에 넣으면 자연스레 놈을 끌어낼 수 있을 것입니다. 다만…….”
“다만?”
원전이 궁금해하자 원천이 뜸을 들이며 대답했다.
“듣자 하니, 사유계에는 그의 뒤를 봐 주는 강자가 하나 있다고 합니다. 아마도 검을 쓰는 여인인 것 같습니다.”
바로 이때, 옥라연이 나섰다.
“걱정 말거라. 그 여자는 내가 맡도록 하겠다!”
* * *
부문종.
부문종으로 돌아온 엽현의 뒤에는 십여 명의 강자들이 있었다.
이들은 모두 이번 서영족 침공을 위해 대가를 지불하고 초빙한 무인들이었다.
“첨로, 이번에 참 고생이 많았습니다. 하하하!”
첨로(詹老)!
이 노인을 데려오기 위해 엽현은 칠색 부적 한 장을 그려 주어야 했다.
그 외의 다른 십여 명의 무인들 역시 각각 칠색 부적 한 장씩을 받아갔다.
비록 그 지출이 적다 할 순 없었지만, 그만한 가치는 분명 있었다.
만약 이들의 도움이 아니었더라면, 엽현을 포함한 수라기병과 수라사위들은 영계에 진입하는데 상당히 애를 먹었을 테니까.
첨로라 불린 노인이 엽현을 향해 크게 웃어 보였다.
“엽 신사, 별말씀을. 꽤나 즐거운 동행이었소!”
“하하, 다른 분들 역시 흔쾌히 달려와 주어 고맙소.”
엽현이 웃으며 가볍게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십여 명 무인들의 앞으로 납계가 하나씩 날아들었다.
납계 안에는 밀정이 무려 일만 개씩 들어있었다.
밀정 일만 개!
순간 무인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밀정 일만 개는 그들 같은 고수들에게도 결코 적은 액수가 아닌 것이다.
이에 첨로가 대표해서 엽현에게 포권을 취해 보였다.
“엽 신사, 다음에도 도움이 필요하다면 얼마든지 불러 주시오. 내 한걸음에 달려오겠소이다!”
그 말에 다른 무인들 역시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모두 엽현의 큰 배포에 반한 것이었다.
“하하, 말씀은 고맙지만, 내 주변의 적들이 하나 같이 보통이 아니라서 말이오. 꽤나 위험할 텐데 괜찮겠소?”
“하하, 우리는 원래 이런 일로 먹고사는 자들이니 개의치 마시오. 또 엽 신사께서 이리 신경 써 주는데, 일만 있다면 하루에 한탕씩이라도 뛰고 싶은 마음이오.”
“그렇게 말씀해 주니 안심이구려. 다음에도 잘 부탁드리겠소.”
첨로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우리는 이만 물러가 보도록 하겠소. 혹여 죄성(罪城) 근처에 온다면 꼭 방문해 주시오!”
말을 마친 첨로가 다른 무인들을 이끌고 떠날 채비를 했다.
바로 이때, 사방의 공간이 갑자기 덜덜 떨리더니, 엽현 앞에 엽령이 모습을 드러냈다.
엽령이 나타난 순간, 첨로 등의 얼굴이 마치 귀신이라도 본 듯 사색이 되었다.
아마도 엽령의 정체를 알고 있기 때문이리라.
이때, 분위기가 어색해진 것을 느낀 엽현이 재빨리 웃으며 말했다.
“자, 소개하겠소. 여기는 내 동생 엽령, 아니지, 공식적으로는 수라지옥을 지키는 수라여제라 하오. 인사들 하시오.”
동생?
첨로 등이 멍하니 서로의 눈을 바라보고 있을 때, 엽령이 그들을 향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비록 작은 행동이지만, 엽현의 체면을 생각한 것이었다.
예상치 못하게 엽령이 인사를 하자, 첨로 등은 부랴부랴 황송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오유계 최강자 중 하나인 수라여제가 자신들에게 인사를 했다?
첨로는 순간 자신의 뺨을 때리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그래야 이게 꿈인지 현실인지 확인할 것 아닌가!
잠시 후, 첨로 등이 떠나고 장내에는 엽현과 엽령 둘만 남게 되었다.
“령아, 고생했어. 그래서 장문수는 경지를 돌파한 거야?”
“응. 눈으로 확인하고 왔어.”
“우리로서는 참 다행인 일이구나. 참, 여부자가 돌아왔다며? 소문대로 엄청나게 강한가?”
“글쎄, 내가 보기엔 그저 그랬어.”
“하하하! 물론 네 눈에는 그래 보일 수도 있지. 나와는 비교도 안 되게 강하겠지만.”
“…….”
“참, 지금 네 경지는 어때? 너도 다음 경지로 나아갈 수 있을 것 같아?”
엽령이 잠시 고민한 후 대답했다.
“아무래도 매우 어려울 거야. 다만 나는 이미 어느 정도 문턱에 도달하긴 한 것 같아.”
“문턱이라면…….”
“윤회(轮回).”
“윤회?”
“응. 내가 알고 있는 한, 선각자만이 도달했다는 경지가 바로 이 윤회경(轮回境)이야. 원래대로라면 아직 요원하기만 할 테지만, 그를 찾기 위해 윤회를 한 경험이 있는 탓에 어느 정도 실마리를 얻을 수 있었지. 남은 것은 폐관으로 깨달음을 얻는 것인데…….”
“령아, 그럼 지금 당장 폐관하도록 해!”
엽현이 흥분해서 소리치자, 엽령이 고개를 저었다.
“그러면 오빠가 위험해져.”
“하지만…….”
“오빠, 내 말 먼저 들어. 여부자가 돌아온 지금 만유서원엔 두 명의 절정 강자가 버티고 있어. 아무리 서영족이라 할지라도 당분간은 그들을 건드리기 쉽지 않을 거야.”
“…….”
엽현은 엽령이 무슨 말을 하려는지 파악했다. 서영족이 만유서원을 치지 못하게 된 이상, 그 화살은 자신에게로 향할 것이라는 뜻이 아닌가!
“그러니 오빠도 당분간은 조심하는 게 좋을 거야.”
“응, 알았어.”
“아 참, 지금 그 여자를 만나러 갈 건데 오빠도 같이 갈래?”
“여부자?”
“응.”
“그래, 오랜만에 남매가 나들이 한 번 떠나 볼까?”
말을 마친 엽현은 엽령의 손을 꼭 붙잡고 만유서원을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