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therworldly dark-haired alien RAW novel - Chapter (589)
〈 589화 〉봄이 오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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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엘리제가 왜 이렇게 된 것인가…!
“어서 해주십시오.”
엘리제는 미소를 짓고 있었지만, 나는 어째서인지 이 미소가 그 동태눈의 엘리제보다 더욱 무섭게 느껴졌다. 그래, 엘리제는 내가 너무 늦게 와서 개빡친 것이다.
차마 나한테 화를 낼 수는 없으니 이렇게 티를 내는 것이겠지.
“그래.”
나는 천천히 대답하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좋아.”
떨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면서 사자후를 터트릴 준비를 한다.
“원하는 대로 해주마.”
“…”
일어난 즉시 스트레칭을 시전하여 몸을 풀면서 긴장했던 근육을 이완시킨다. 천천히 숨을 들이쉬고, 그리고 다시 내쉬면서 엘리제의 안색을 살핀다.
엘리제는 그저 미소를 짓고만 있을 뿐,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는 않았다.
“한다?”
“성도님.”
“음?”
“친분을 확인하는 데 있어서, 구태여 제 허락을 받으실 필요는 없습니다. 저희는 디바인 프렌드지 않습니까.”
“그, 그렇지!”
아무튼 엘리제가 원한다면 해 주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나는 사자후를 터트릴 준비자세를 잡은 뒤에, 한계치까지 숨을 들이쉬고는 외쳤다.
“디바이이이이이이이인ㅡ!!!!!!!!!!!!!!!!!!”
그리 나의 청명한 목소리가 겨울이 다 끝나가는 이스반트의 하늘에 울려 퍼졌다.
깨끗한 하늘에 맑은 목소리.
어그로야 좀 끌리겠지만 이걸로 엘리제가 만족한다면 그것보다 좋은 일은 없다.
“후우, 엘리제?”
엘리제는 내가 고함을 치는 모습을 빤히 바라보더니, 곧 소리를 내어 웃기 시작했다.
“후, 후후후…”
“뭐?”
“후후후… 예. 프렌드입니다, 성도님.”
그리고는 나지막히 프렌드라고 말한 뒤에 팔을 뻗어 왔다. 나도 일단 팔을 마주 뻗으면서 엘리제에게 불만을 토로해봤다.
“엘리제 뭐야! 넌 왜 크게 안 하냐고!”
나한테는 고함을 치라고 시켰으면서, 정작 자기는 작게 말했다.
“제가 크게 외치기를 원하십니까?”
“어… 일단은 그렇지?”
“정말, 어쩔 수가 없군요!”
ㅡ프렌드으!!!!!!!!
엘리제 역시 난폭하게 고함을 치고는 나를 다시 올려다봤다. 해달라고 하니까 해 주기는 하는데… 뭐지? 이 이상한 느낌은?
“…만족하셨습니까?”
한바탕 고함을 질러서 그런 것일까, 어딘지 표정이 좀 풀린 것 같았다.
“극단적으로 만족했다.”
“그렇습니까, 다행이로군요.”
아무튼 엘리제의 기분이 좀 풀린 것 같았다.
뭔지 모를 사나운 기운 따위는 없어진 지 오래였다. 평소의 엘리제로 돌아온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리 정상적인 상태로 되돌아온 엘리제가, 내게 물었다.
“성도님. 그동안 잘 쉬셨습니까?”
“엄청 잘 쉬었지. 너는?”
“저 역시 푹 쉬어서 몸에 힘이 넘치는 것 같습니다. 물론 익숙하지 않은 느낌인지라 이상한 기분이 들기도 합니다.”
이상한 기분이라고?
“이상한 기분?”
“예.”
엘리제는 내 얼굴을 빤히 바라보면서 대답했다.
“이상한 기분입니다.”
“대체 얼마나 이상한 기분이길래?”
“사실 이렇게 오랫동안 쉬는 것도 처음이니까요. 이상하게 느껴지는 것이 당연합니다. 당장 도시의 바깥에서는 악마들과 이교도들이 준동하고 있을 것인데, 그것을 방치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런 것 같습니다.”
광명성십자회의 교인들은 거의 쉬지 않으면서 매일같이 사악한 존재들과 투쟁을 한다. 엘리제는 본의 아니게 이스반트로 와서 긴 시간 동안 쉬게 되었다.
매일 일만 하는데 갑자기 오래 쉬면 좀 이상하게 느껴지긴 하겠지.
“이 불안함은, 예. 그런 것이겠지요.”
선량한 엘리제는 단지 오랫동안 쉬는 것만으로도 불안해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신경이 조금 날카로워져, 그런 태도를 보였던 것일까.
아무리 수녀라지만 엘리제 역시 사람이다. 감정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으며,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불안함이라… 뭐, 엘리제 너무 걱정하지 마라. 오늘 가보니까 성녀님이 딱히 나한테 시킬 일이 없다더라고. 그렇다는 건 적어도 이 인근에 그런 문제는 없다는 소리니까 안심해.”
“…정말 다행이로군요.”
“다행인 일이지. 엘리제 너도 가끔은 마음을 편히 먹어 봐.”
“편안하게, 말씀이십니까.”
“그래.”
사람은 마음의 여유를 가져야 한다.
“성도님께서 그리 말씀하신다면 일단 마음을 편하게 먹어보도록 하겠습니다. 헌데, 그것이 바로 이번 사건에 대한 공문입니까?”
내가 들고 있던 문서 쪽으로 시선을 옮긴 엘리제가 말했다.
이걸 깜박하고 있었구만.
“어. 읽어 봐. 정리 잘 돼 있더라.”
바로 문서를 넘겨줬다.
“알겠습니다.”
문서를 받아든 엘리제가 그것을 천천히 읽어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고개를 끄덕이는데, 제법 만족한 눈치였다.
“상당히 정리가 잘 되어 있군요. 사후처리까지 완벽합니다. 역시 놋쇠성천사회로군요. 능력이 상당합니다.”
“흐흐흐, 그렇지?”
“이 건에 대해서는 따로 걱정할 필요가 없을 것 같습니다만, 아무리 그래도 그 잔당들이 걱정입니다.”
이교도들은 한 개의 거점을 잃었다고 해서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원래 미친놈들은 포기를 모르는 법이니까.
우리가 모르는 곳에서 다시금 인신매매를 실시하면서 어보미네이션을 창조할지도 모른다.
“그래도 그건 지금 걱정할 일이 아니야. 대책도 세울 수 없고, 아직 모르는 일에 대해서 걱정하는 것도 심력 소모일 뿐이지. 적어도 다음 일을 하게 되기 전까진 편하게 있자고.”
엘리제는 이제 곧 크라스하임으로 돌아가야만 한다.
어차피 돌아가는 순간 평소처럼 계속 구르게 될 것이다.
지금 정도는 쉬어도 된다.
“슬슬 돌아가야 하잖아? 그때부터 부지런하게 일하면 되지.”
“아…”
그 말을 들은 엘리제가 안타깝다는 표정을 지었다.
“슬슬 돌아가야 하는군요… 역시 아쉬운 일입니다.”
“나도 그래. 어쩌면 오늘이…”
“예. 성도님께서는 곧 팔라딘이 되어 수도 올라가시니까요. 마지막일지도 모릅니다.”
“그러게 말이다.”
팔라딘이 되어 수도로 간다고 해도, 어떻게든 만날 수는 있을 것이다.
“이제 이스반트 쪽으로 오게 되어도 성도님을 뵐 수가 없겠군요.”
“그래도 연락 정도는 할 수 있을 거다. 팔라딘 권한이면 가능하겠지.”
“후훗, 그렇다니 다행입니다.”
그래도 역시 아쉬운 것은 어쩔 수가 없다.
“…성도님. 배고프시지 않습니까. 일단 식사부터 하러 가시지요. 오늘은 제가 대접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존나 고마워!”
아무튼 바로 엘리제랑 밥을 먹으러 식당으로 들어갔다. 들어가서 메뉴를 주문하고 이것저것 일에 대한 것과 팔라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그리 이교도를 보고 이성을 잃는 성기사들에 대한 주제로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 엘리제가 말했다.
“흐음… 확실히. 대부분의 교인분들은 사악한 존재들이 일으킨 참혹한 현장을 목격한 즉시 이성을 잃어버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아마도 극단적인 단련과 신앙 교육을 받은 것이 그 원인일 것입니다.”
이세계의 종교인들은 불의를 보면 어지간해선 참지 못하는 것을 넘어 이성을 잃는 것이 일상다반사다.
그렇게까지 하지 않으면, 사악한 존재들과의 전투에서 승리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저 역시 최대한 이성을 유지하려 하지만, 못 참게 되는 일이 더욱 많습니다. 그렇게 보면 성도님께서 팔라딘이 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가장 이성적으로 정보를 획득할 줄 아시니까요.”
엘리제 역시 심문의 중요성을 아주 잘 알고 있다. 어느 정도 참을 수는 있지만, 진짜 참혹한 현장을 보면 이성을 잃는다.
“그래도 조금 특이한 직책 같습니다. 성녀의 지령을 받아 이곳저곳으로 파견을 나가면서 문제를 해결한다니… 나름대로 자유롭고, 먼 곳까지 갈 수 있다는 점은 분명 끌리는군요. 저도 언젠가 팔라딘이 된다면, 비슷한 권한을 요청해 봐야겠습니다.”
“흐흐흐, 무조건 요청해라. 난 약간 모험가 같은 느낌이라 괜찮은 것 같더라.”
“그런 것 같습니다.”
아무튼 식사를 하면서 엘리제랑 대화를 이어나갔다.
밥을 먹는 엘리제는 더없이 차분해 보였다.
아까 처음 만났을 때의 기이한 태도는 완전히 사라져버린 것이다. 솔직히 조금 무서웠는데 정상으로 돌아오니 다행이다.
“그런데, 성도님.”
“음?”
돌연, 엘리제가 식기를 내려놓더니 내게 그런 것을 물었다.
“요즘 힘드신 일은 없습니까?”
“힘든 일?”
“가정에 대한 것입니다. 아내분들이 다섯 명이라고 하시지 않으셨습니까.”
ㅡ흠칫.
뭐라고?
나는 순간 긴장했으나, 엘리제의 눈은 평온했다.
“저번에 성도님께 말씀드렸듯이, 여색에 너무 빠지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이것은 디바인 프렌드로서, 진심으로 걱정하여 충고하는 것입니다. 자연스러운 일이라도 그것이 과도하다면 부자연스러운 일이 됩니다.”
엘리제의 설교는 지극히 올바른 내용이었다.
그 눈을 살피니 특별히 이상한 점은 없었다.
그냥 진심으로 하는 소리인 것 같다. 그 무서웠던 태도도 내가 타락할까 봐 그랬던 것이 분명하고.
“저는 성도님이 여색으로 인하여 경을 치실까 걱정이 됩니다.”
“역시… 그렇겠지? 그래. 남들이 보면 당연히 그렇겠지. 걱정해줘서 고마워 엘리제. 하지만 별로 문제는 없다고.”
“…그렇습니까? 문제가 없다면 정말 다행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는 해도 역시 걱정을 지울 수는 없습니다.”
많이 걱정을 해주는 모습을 보니까 고마울 따름이다. 그러나, 단언컨대 문제는 없다. 지금 잘 지내고 있지 않은가.
“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분명 제가 알기로, 기존의 아내분들은 클라우디님과 위니아님이 유일했습니다만.”
“그랬었지.”
상당히 옛날이야기다.
“디바인 프렌드로서 몹시 궁금합니다. 물론 실례되는 질문이라는 것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렇게 느끼는 것만큼 성도님을 걱정하고 있습니다.”
“아니, 별로 실례되는 질문은 아니야. 당연히 물어볼 수 있지. 그럼 걱정한다니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려줄게.”
나는 엘리제가 걱정을 하지 않도록, 여태까지 있었던 일을 간단히 생략해서 설명을 해줬다.
카린과 리샤, 리즈티나와 어쩌다 보니 이어지게 되었다는 설명이 주 골자다. 엘리제한테 성적인 이야기를 하는 것은 불경이나 다름없으니 그 부분은 모조리 생략했다.
“흐음… 그렇습니까.”
엘리제가 고개를 끄덕였다.
“저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이야기로군요.”
“그건 나도 그래. 평범함과는 좀 거리가 있는 이야기지.”
사실 나조차도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트리플, 쿼드라를 넘어서 펜타 와이프라니 이건 믿을 수 없는 일이다. 귀족들이야 삼처사첩이 일상이라지만 나는 딱히 그런 자리에 있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
“성도님. 제가 성도님께 충고해 드릴 것은 단 하나입니다.”
엘리제는 무표정한 얼굴 그대로 말했다.
“인간이 욕망을 가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며, 그것을 분출하는 것 역시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그렇지…?”
“하지만.”
그리 말한 엘리제가 잠시 침묵하더니 내 눈을 응시했다.
“지금이라도 자제를 하시는 겁니다. 누차 말씀드리지만, 과도한 욕망에 빠지는 것은 타락의 지름길입니다. 성도님께서… 그, 여색을 아주 밝히신다는 것은 잘 알겠습니다만, 그래도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나는 그렇게까지 여색을 밝히는 사람이 아니다. 이 일은 거의 뭐 어쩔 수 없는 사고와 우연이 중첩된 결과랄까, 그런 느낌이다.
퓨전유교는 바로 그런 것이다.
“아니, 딱히 엄청 밝힌다거나 그런 건 아니라니까.”
그리 답하니 엘리제가 고개를 꺾으면서 말했다.
“아니라는 겁니까?”
“그, 그러니까…”
어떻게 보면 맞는 이야기라고 할 수는 있다.
잠시 어떻게 답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으니, 엘리제가 내 양손을 맞잡았다.
“엘리제?”
잡힌 손에서 온기가 전해져 온다.
“성도님. 저는 성도님을 훈계한다거나, 혼내는 것이 아닙니다. 단지 디바인 프렌드로서 충고를 하는 것뿐이지요.”
엘리제는 종교의 특유의 선한 표정으로 내게 그렇게 말했다.
“제 말을 훈계로 들으신다는 것은, 사실은 여색에 너무 빠져 있다고 생각하시기 때문이 아닙니까?”
“…”
그래.
맞는 말이다.
“…나도 좀 과도하다고는 생각하고 있었어.”
다섯 명은 좀 많기는 하다.
클라우디야 항상 그런 생각을 하고 있지만, 나는 딱히 더 늘린다거나 그런 생각은 하고 있지 않다.
근데 또 클라우디가 뭐라고 하면 따를 수밖에 없는 몸인데… 클라우디의 말 역시 퓨전유교의 근간이니까.
“바로 그것입니다.”
“뭐든지 너무 과도한 것은 좋지 않겠지…”
“그렇습니다. 욕망을 이겨내시는 겁니다. 성도님은 할 수 있습니다. 누구보다 굳건한 신념과 강철같은 신앙으로 무장하고 계시지 않습니까. 여인들의 유혹 정도는 뿌리칠 줄 알아야 합니다.”
그거 뿌리치면 맞아 죽을 텐데.
“흐흐흐, 엘리제. 걱정 안 해도 다 알고 있어. 나 못 믿냐?”
“지금 저는 성도님을 믿지 못해서 이러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 진심으로 걱정해주고 있는 거잖아. 고마워.”
“마찬가지로, 당연한 말을 하는 것이기에 감사받을만한 일도 아닙니다.”
엘리제가 내 손을 놓아줬다.
“그렇다면 성도님. 욕망을 자제하시는 수행을 하시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그건 또 무슨 수행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