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therworldly Illusion Hunter RAW novel - Chapter 207
205화. 비스트 (3)
반려동물도 꿈을 꾸나요?
세상에는 인간을 제외한 포유류도 잠을 자며 꿈을 꾼다는 여러 증거가 존재한다.
발을 앞뒤로 꼼지락거리는 개가 정말로 달리는 꿈을 경험하고 있을지는 모르지만.
대부분의 동물은 꿈을 꾼다. 한데, 지금부터 말할 이의 정체는 개도 양도 아닌 사람이었으니 당연히 그것도 잦은 REM 수면에 빠지지 않을까.
…이곳은 짐승의 꿈 안이다.
비스트는 꿈속에 본인의 과거가 나올 때면 다소 울적한 기분이 되곤 했다.
아무리 행복한 장면이 보인다 한들. 이 이야기의 끝은 항상 비극이었으니까.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당시의 비스트는 심산유곡에 숨어 나무나 패는 지저분한 모습으로 살고 있었는데.
어느 날.
토끼를 잡으려고 깔아뒀던 스프링 덫에 못 보던 동물이 걸려들었다.
그것은 젊은 사람이었다.
더불어 아주 청량한 목소리와 아름다운 미소를 가진 사람이기도 했다.
불우한 항공 사고로 고아가 되어 상실감에 떠돌던 등산객과.
숲속 짐승의 우연한 만남이라니.
이후에 벌어진 일은 로맨스 장르에서나 흔히 보이는 관계의 발전이었다.
두 사람은.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셋이라고 봐야 할 그들은.
사소한 해프닝으로 마주친 서로에게 첫눈에 반해버렸으니까.
비스트는 덫에 걸린 이의 사슴 같은 외모가 마음에 들었고.
상처 입은 이방인은 산중에서 홀로 외로이 살고 있다는 상대의 고독함에 묘한 끌림, 동질감을 느껴 관심이 생겼다. 그렇게 사랑이 시작된 것이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비스트는 처음으로 받아보는 타인의 순수한 애정에 세뇌되어 갔는데, 비스트는 원래 정상적인 인간의 사회생활을 못 할 정도로 성질이 거칠고 괴팍한 존재였지만…….
자신에게 찾아온 이방인이 인내를 갖고 꾸준히 친절과 교육을 베풀자, 신기하게도 그 야생성이 점차 순해져서.
“허니, 이건 치실이라는 거야. 앞으로 자기 전에는 꼭 이걸 쓰도록 하자.”
“그냥 칫솔질만 해도 되는 거 아냐?”
“그러다간 이빨 사이에 충치 생겨. 예약해 뒀으니까. 내일은 나랑 같이 치과도 가고.”
이후, 비스트는 상대가 하라는 것을 했고 하지 말라는 건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비스트는 매일이 행복했다.
이방인의 손에 길드는 비굴한 삶에 그것은 나름대로 만족을 느껴버렸기에.
원래 기쁜 순간은 빠르게 지나가는 법이다.
그렇게 비스트는 자신의 오두막에서 첫사랑과 즐거운 시간을 보냈고, 몇 년 정도가 지났을 무렵에는 그 아름다운 이방인에게 청혼을 받을 수 있었다.
***
며칠 뒤.
[오늘은 전국적으로 많은 양의 비가 내립니다. 외출을 하시는 분들이면 꼭 우산을 챙겨주셔야겠습니다.]TV에서는 우비를 차려입은 기상 해설자가 하루 종일 봄비가 내릴 거라고 말한다.
그런데 독서의 계절은 가을이라던데.
여기에 있는 외계인은 여름조차 오지 않은 무렵에 장문의 글을 읽으며 한참을 씨름하는 중이었다.
“으으음…….”
사실 이 외계인은 강창호를 속일 더미를 제작하다가 난관에 봉착해서.
그가 알던 모종의 마법이 지구에서 정상적으로 발동하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그는 연구에 골몰한 끝에 이것이 지구와 알파우리의 행성 환경 차에서 기인한 문제라는 걸 알아채고, 지금은 직접 던전에 가서 변수를 조정할 재료를 수집해오는 등 열심히 해결법을 찾는 중이었는데.
“아니, 염병할. 어차피 차이는 기압이냐 수압이냐 뿐인데 이게 왜 자꾸 혼자 꺼지는 거야?”
어째 일이 조금 거칠게 돌아간다.
탄소나 질소 같은 개념은 그나마 원소마다 특성이 정해져 있어서 외계인인 그도 쉽게 새로운 명칭을 익힐 수 있었지만.
길이, 또는 기압 같은 측량 단위는 두 행성이 쓰는 체계가 완전히 달라 계산할 때만 되면 머리가 아파 왔기 때문이다.
특히 알파우리의 외계인은 이곳의 야드파운드법과 미터법을 발견했을 때 크게 분노했다.
오죽하면, 나중에 지구를 정복하게 될 경우 미터든 야드든 어느 한쪽은 쓰는 놈들을 죄다 멸족시켜서라도 단위를 통일해야겠다고 생각할 정도인 상황.
“흐음.”
한데 이런 살벌한 마음을 먹은 것치고는, 직면했던 문제가 의외로 쉽게 해결됐다.
이곳의 외계인은 이래 봬도 일생의 대부분을 마법에 바쳐온 우수한 학자였고.
이 외골수적인 성향 탓에 평범한 경험이 적어 종종 일상에선 허술한 면을 비추지만, 반대로 말하면 마도학에서만큼은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 지식을 갖고 있었으니.
“그래. 이러면 되겠네.”
얼마 안 가 떠올린 해결의 실마리.
결과적으로 연구는 큰 어려움이 없이 진행됐다.
하지만 더미를 무난히 완성해봤자 ‘그 단계’에서 막히면 아무런 의미가 없을 텐데…….
‘망할, 그런데 새 육체는 진짜 무슨 수로 구해야 하지.’
이 몸이 가진 F급의 마력을 100% 활용할 수 있게 된 것.
따라서 영혼을 재차 옮길 교환술도 시전이 가능하게 된 것.
모두 그에게 있어선 좋은 소식이다.
하지만 예전부터 걱정한 대로, 결국 그놈의 몸뚱어리를 구하는 과정이 발목을 잡았다.
한국은 주민등록법이 체계화된 국가라 어딘가에서 사망자가 발생하면 거의 반드시라고 해도 될 정도로 어떻게든 가족을 찾아내 연락하고.
설령 정체불명의 무연고 시체가 발생했다 한들, 이것은 시에서 거둬가 자체적으로 장례를 치러줘 버린다.
거기에 각성자의 몸은 연구 가치가 높으니 실제로 도난 사건이 몇 번 있어서 헌터 전용 공동묘지 등의 경비도 살벌해진 상황.
길바닥에 대충 시신이 버려져 있었다는 편의주의적 해결은 좀체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렇다면 새로운 그릇을 어떻게 수급해야 하는가.
그것도 일반인이 아니라, 최소 E급 이상의 시신을 구해야 하는 거라면.
‘흠, 유족에게 돈으로 대가를 지불하고 시신을 인계……. 일단 이건 안 되겠군. 아까부터 우리 기려의 뇌가 그것도 인신매매라 걸리면 잡혀간다고 경고를 무진장 보내주네.’
나날이 고민이 쌓여가던 시점.
여태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봄비가 내리는 바깥세상은 어느덧 새로운 변화가 고개를 들었다.
***
어쩌면 지금까지 살금살금 던전의 크기가 늘어났던 건 모두 이날을 위한 예행연습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지구.
이 세계에 드디어 거대하다는 형용사에 완전히 들어맞는 새로운 형태의 던전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뭐야.”
“신규 게이트인가?”
그리니치 시각 기준 14일 오전 1시.
아르헨티나의 동쪽 앞바다에서 어떤 블루 게이트가 발견됐다.
이때까지만 해도 헌터들은 평범한 신규 게이트의 발생일 거로 생각했다.
“음? 던전 마력 밀도가 C인데 왜 몬스터는 D급이 뜨는 거지?”
“뭔가 이상한데?”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그들의 눈앞에 나타난 던전의 정체는 무려 내부 공간 길이가 6.1km에 달하는 대미궁이었고.
그것의 출입구는 남아메리카 외에도 몰도바, 아이슬란드, 레바논, 그리고 한국 등의 다양한 국가에 중구난방으로 등장한 상태였으니.
여러 개의 통로를 공유하는 세계적인 던전.
이것이 바로 [모방 도시]라는 이름으로 불릴 별세계의 시작이었다.
[모방 도시].인류의 번화함을 본뜨고 싶기라도 한 듯, 끝을 모를 정도로 광활하게 펼쳐진 게이트라.
그래도 던전에서 나오는 몬스터의 등급이 최대 C급에 불과하니, 아마 공략은 금방 쉽게 끝나겠지.
라고 방심했던 각국의 전문가들은 머지않아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았다.
종이 다른 괴물이 일관성 없게 섞여 등장하는 이 난잡한 던전은 놀랍게도 우두머리로 보이는 것이 발견되지 않았으니까.
그렇다면 이곳이 보스가 존재하지 않는 Ⅱ형 블루 게이트였단 말인가?
‘골치 아프군.’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지도자들의 입장에선 이보다 거슬리는 아공간이 있을 수 없었다.
가뜩이나 던전이 넓어서 숨은 몬스터를 찾아내기 어려운데, 이렇게 공략 시간이 질질 끌리는 사이 다른 나라의 입구에선 여러 검증되지 않은 헌터들이 드나드니…….
지금 공략이 문제가 아니다.
설령 몬스터를 다 죽여서 출구를 연다고 해도, 안에 생존자가 남아 있으면 결국 던전이 붕괴하지 않을 것 아닌가.
이 게이트는 자칫 잘못하면, 여권도 없는 이방인을 제 나라에 들이게 만드는 불법적인 수단이 돼버릴 수도 있는 상황.
아르헨티나를 포함한 각국의 지도자들은 생성된 출입구의 위치를 빠르게 파악해 부랴부랴 관리에 나섰다.
하지만 그들의 불행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맙소사!”
그로부터 8시간 뒤.
아이슬란드의 측량 기사로부터 해당 던전이 ‘점점 더 커지고 있다’는 무서운 보고가 전달됐기 때문이다.
모방 도시는 기심체의 시선에선 일종의 뷔페식당이 아닐까?
다양한 국적의 숙주들이 한 바구니에서 고통을 겪어준다니.
이 모방 도시는 그야말로 공략을 시도하지 않을 수가 없는 구조로 만들어졌는데, 그것이 가진 몇 가지 특징이란 이러했다.
Ⓐ 시간이 지날수록 공간의 크기와 입구 개수가 늘어난다.
Ⓑ 780분 주기로 던전 진행도가 초기화된다. 이는 바뀐 지형, 해제된 함정 등이 복구되며 일반 몬스터의 개체 수 또한 전의 상태로 돌아옴을 뜻한다.
Ⓒ 이 게이트의 마수들은 매우 높은 도탈성을 띤다. 즉, 게이트 통로를 발견하면 무조건 돌격해 나간다.
학자들의 손을 거쳐 다소 표현이 점잖아졌는데, 한 마디로 풀어 써보자면 참 더럽게도 성가신 게이트.
그나마 다행인 건 모방 도시의 ‘초기화’ 현상은 던전 안에서 발생한 사체를 모두 제거해줘서, 초기화 주기마다 사냥 부산물이 산더미처럼 쌓인다는 악몽은 벌어지지 않게 됐지만.
어느 날 갑자기 우리 집 마당에 미궁의 통로가 열려버리면 어쩌나.
위험한 범죄자가 입국 심사도 없이 우리나라에 들어와 버리면 어쩌려나.
시민의 시름은 날이 갈수록 깊어져 갔다.
하여, 세계협력 기구는 이 대미궁의 탐식을 멈추기 위해 다급히 대응 협약에 나섰으며…….
***
어느덧 찾아온 월요일.
‘큭큭큭.’
모두가 걱정에 잠긴 와중에, 원룸살이를 하는 모 청년만은 회심의 미소를 삼킨다.
불법 입국자.
바깥세상을 좋아하는 괴물의 맹렬한 돌격.
암, 그런 것들도 선량한 시민에겐 당연히 무서울 것들이지.
하지만 저들은 정작 앞으로 벌어질 어떤 강력 범죄에 관해서는 전혀 인지를 못하고 있다.
“세상이 날 미워한다는 발언은 오늘부로 철회해야겠어. 이거 인제 보니 아주 온 우주가 내 편인데?”
어떤 등급 위조자가 복잡한 던전 안에서 시체를 몰래 훔쳐 가기라도 하면 어쩌나…….
진정으로 섬세한 사람이라면 이런 어처구니없는 경우의 수도 걱정해둬야 할 터.
이 생각으로 알 수 있듯이, 기려는 [모방 도시]로의 진입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다.
던전이 처음 생성됐을 때만 해도 별생각은 없었거늘. 하나둘 밝혀지는 특징을 가만히 살펴보니 머릿속에 번뜩 계획이 섰기 때문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지구의 무작위한 위치에 생성되고 있는 던전의 구멍.
각국에서 모여들 이름 모를 헌터들.
게다가 그곳의 광활한 면적조차 시체의 영득 행위에 있어서는 그저 더없는 장점일 뿐이다.
‘오호라.’
뉴스를 살펴보면 국제협력 기관에선 각국의 동의를 받아 오는 15일부터 던전의 1차 탐색을 진행하고, 그것에서 얻은 정보를 기반으로 제대로 된 공략 계획을 세워 16일에 진정한 대청소에 나설 예정이라는데.
기려는 이 15일에 진행될 탐색 과정을 노려볼 생각이었다.
‘그 던전의 잘 안 보이는 곳에 웅크려서 기회를 노리다 보면, 언젠가 실수로 죽는 각성자가 나와주지 않을까?’
헌터 업계는 전투 도중 사망자가 나오면, 그것을 업고 함께 탈출하다간 남은 생존자마저 위험에 처하니 시신을 버리고 이탈하는 경우가 태반이었으니까.
이쪽은 가만히 숨죽여 있다가, 적절한 사망자가 나오면 그것을 가져와 통제가 느슨한 출구로 향하면 될 터.
‘지금의 마력으로는 영구동토 같은 빙결술은 펼칠 수 없지만……. 그래도 시체를 몇 주 얼려놓는 것 정도는 가능해. 다른 나라의 땅에 몸을 묻어놓고, 나중에 그 좌표로 가서 신체 교환술을 시전하는 건 어떨까. 국내는 오히려 여러모로 행동에 제한이 많으니까.’
물론 이 계획은 실제로 실행해 보면 여러 변수가 많으리라.
예를 들어, 분명 사람이 없는 걸 확인하고 나왔는데 알고 보니 출구 근처에 목격자가 있었다든가.
하지만 그럴 때는 유연한 말재간으로 세상을 속이면 그만이었다.
그는 갖은 웹서핑으로 과거의 사건마저 완벽히 분석한 상황이었으니.
‘여차하면 감포항에서 벌어졌던 오해처럼 희생자를 구출해 온 거라고 둘러대면 돼!’
이처럼 흉계를 세우는 것은 알파우리인의 전문 분야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