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therworldly Illusion Hunter RAW novel - Chapter 226
224화. 가시나무 숲 (2)
왜 저렇게 놀라지?
콰직!
던져진 방패에 부딪힌 괴물이 비명횡사한다. 기려는 죽은 괴물이 떨어트리는 까만 잔부스러기에 시선을 고정했다.
“형님! 괜찮으세요?!”
일단 안윤승이 자신을 손을 덥석 붙잡고 뭔가를 자꾸 확인하려 드는 이유 정도는 이해가 간다.
겉으로 보기에는 잔 흠집 하나 남지 않은 깨끗한 손바닥.
하지만 저 플라잉 트리의 돌출 가시에는 모종의 마법이 새겨져 있었으니.
‘비명말뚝과 비슷해. 이건 [고통 부여]잖아.’
거리 곳곳에 자리 잡은 거대 나무들.
그리고 그것이 낳은, 어린 식물처럼 작은 몸집을 가진 저 비행체들의 무기란 다름 아닌 생물의 통각 자극이었다.
적이 일정 범위 안으로 들어오면, [고통 부여]가 새겨진 가시를 빠른 속도로 뻗어 대상과 억지로 접촉해왔던 것이다.
“괜찮아.”
“괜찮긴요! 그거 맞으면 엄청나게 아프던데! 어흐흑, 못난 저를 감싸주시다 형님이……!”
하지만 외계인이 궁금해한 점은 바로 안윤승이 흘리는 저 체액.
본인이 공격당한 것도 아닌데, 그는 다리가 비틀린 수사슴처럼 눈물까지 갈쌍거리며 난리를 피웠다.
예전부터 생각한 거지만 동족의 부상에 참으로 민감하게 반응하는 행성인들.
몇몇은 헤집어진 살을 보며 혐오감을 느끼고, 안윤승과 같은 선인은 깊은 동조와 슬픔을 보내오기도 하고.
공감이 안 된다.
‘흠.’
게다가 기려는 이런 부류의 공격에 내성이 있어서, 어차피 피어오르는 감각은 자동으로 무시해 버린 상황.
“진짜 괜찮아. 그러니 포션 좀 가만 놔둬라.”
“형님……!”
“이런 현장에서 진통제 낭비하면 안 되지. 넌 A급이라는 놈이 나중에 약 떨어지면 버드나무 빻아 먹으려고?”
휘적휘적.
기려는 회복제를 건네주려고 하는 윤승의 행동에 치우라는 듯 손짓했다.
그리고 주변을 다시 한번 훑었다.
괴물의 술법을 파악하기 전까지는 몰랐는데, 저것들이 윤승의 방어력을 관통하는 [고통 부여]를 쓴다고 가정하면 슬슬 윤곽이 잡혀서 말이다.
“윤승아.”
“네, 네?”
“그런데 혹시 이 나무들 공격……. 여기에 온 헌터들한테 죄다 먹히는 중이야?”
아니나 다를까.
이윽고 곁에 선 방어계 헌터에게서 설명이 흘렀다.
“예예! A급이고 B급이고 가릴 것 없이 전부요. 옷 위로 닿아도 속수무책이더라고요!”
“역시나.”
“이번에는 [화원남작]과도 양상이 완전히 달라요. 그건 그나마 정신 조작 스킬 있는 헌터들 부르면 어느 정도 대응이 되잖아요?”
“서로 같은 정신 공격계니까.”
“그런데 저 가시나무에는 씨알도 안 먹혔어요.”
그래서 아직도 브레이크 처리가 안 됐던 거군.
어째 생소한 얼굴들이다 했더니. 알고 보니 땅 밑에 숨어있던 게이트는 지금까지 한 번도 등장하지 않은 신종 던전이었던 모양이었다.
동시에 저 식물형 괴물들은 지위고하에 상관없이 평등하게 고통을 느끼게 하는 술법을 갈겨댔으니…….
“아니, 뭐야. 그러면 다들 아픈 게 무서워서 저 돔 안으로 못 들어가고 있던 거였어?”
S급 헌터가 질문하니 안윤승이 기죽은 기색으로 답했다.
“예. 사실은 아까 무리하게 진입하려고 시도했다가……. 헌터 한 분이 고슴도치 꼴로 쇼크사 직전까지 몰려서 다들 철수한 상태인데요…….”
환각 마법처럼 환상통을 자아내는 비명말뚝과 메커니즘이 살짝 달라, 여러모로 문제를 일으키는 중인 신종 몬스터라.
아픔을 기피하려 드는 것은 어느 동물이나 똑같다.
그래서 저렇게 닿기만 해도 고통을 뽑아내는 괴물이 발견될 경우.
지성체들은 보통 그것과 최대한 접촉하지 않고 상황을 해결하려 들기에 오히려 ‘식사’의 효율은 급격히 떨어진다.
따라서 알파우리에 방문한 기심체들은 [고통 부여]의 사용을 꾸준히 줄여나갔거늘.
‘멍청한 기심체가 아직 남아 있었네.’
지구는 아직 점령 초기여서 그런지 꽤 구닥다리 식의 방법이 성행했다.
물론 이쪽이 알 바는 아니었다.
가시나무 돔이고 나발이고, 그는 조리된 돈가스만 받고 바로 귀가할 계획이었기에.
‘나는 모른다 이것들아~ 꼬우면 하성이나 데려와서 방화해라. 뭐, 딱 보니 그 녀석은 지금 다른 던전 같은 곳에 있는 모양이다만.’
밥도 못 먹고 노동하는 것은 이제 정말 사양이다.
김기려는 괜한 책임이 늘기 전에 브레이크 현장에서 빠르게 도주하고 싶었다.
“기려 형. 진짜 이걸 어떻게 하면 좋죠? 저 커다란 돔을 없애려고 지금 다들 노력하고 있기는 한데.”
“….”
“헌터들이 줄기를 베는 속도랑 저게 재생해 버리는 속도가 완전 똑같지 뭐예요. 하여간 회복력이 저런데 저게 어떻게 고작 B급인지…!”
스윽.
이윽고 시작된 정신 집중.
기려는 옆에서 안윤승이 뭐라고 하든 말든 제 목표에 집중했는데.
그가 알고자 하는 것은 바로 어떤 아파트 앞의 마물 개체 수.
현재 이 근방의 아파트는 던전 브레이크로 튀어나온 괴물에 의해 현관이 막혀 주민들이 갇힌 상황이었다.
그러니 그 몇 마리의 괴물들을 처리하고 배달 기사에게서 음식을 건네받으면 오늘의 할 일은 끝.
‘음?’
…이라고 아까까지는 생각했지만.
‘잠깐, 이건.’
순간.
개체 수 탐색을 위해 감각을 넓게 펼치던 김기려가 꿈틀, 눈썹 한쪽을 추켜올린다.
이마를 짚고 침묵하던 사냥꾼이 갑자기 표정 변화를 보이니 의아해하는 안윤승.
하지만 금발의 헌터는 그 후로도 별다른 말을 하지 않고 조용히 손을 움직일 뿐이다.
아이템 박스에서 애장(愛藏)하는 히드라를 꺼내 들고, 그것을 칼집에서 빼내며 호흡을 가다듬었다.
“후우…….”
드론. 헬리콥터 등.
현대의 문물로는 관측하기 어려울 정도로 빽빽하게 구성된 검은색의 가시나무 돔.
불우하게 갇힌 순환은행의 직원.
그리고 그 안에서 은행원들과 함께 존재할 어느 초능력자 강도.
강도.
사람을… 힘 따위로 협박하여 돈을 얻어내려 한 생물 쓰레기.
꿀꺽, 생각을 정리하던 누군가는 이내 목울대를 크게 움직였다.
“어.”
어느 S급 헌터의 태도가 급작스럽게 변한 상황.
이것은 기실 단 한마디로 정리될 수 있었다.
“기려 형?”
김기려는 방금의 탐색으로 저 가시나무 숲 안에 죽은 각성자가 있음을 알아냈다.
“───이런.”
곧이어 기려는 [히드라]를 고쳐잡고 외친다.
“그래. 하여간 선량한 시민분들이 위험한 상황에 부닥쳤다는데 정말 몹시 큰일이구나. 좋아, 어쩔 수 없지. 헌터들 싹 다 물러. 돔은 내가 당장 진입한다.”
“예?”
후다닥!
기려는 그렇게 뻔뻔한 선언을 남기고 사태의 중심부로 향하기 시작했다.
“윤승아, 넌 따라오지 말고 요 앞 △△ 아파트에 조난자 있다니까 그거나 구하고 있어!”
완전 범죄를 위한 목격자 제거.
이득을 위해 손바닥 뒤집듯이 바꾼 일정.
그야말로 양심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행동이지만, 어찌 됐든 밖으로 티는 안 났으니 된 거 아닐까?
“어, 어, 넵!”
가시나무의 고통을 겪고도(안 겪었다.) 한 치의 망설임이 없이 현장 행을 택할 줄이야.
게다가 남들보다 한발 앞서 주변의 조난 현황을 파악한 저 놀라운 정보력!
“알겠습니다!”
역시 기려 형님이다!
그렇게 안윤승은 존경심이 2할은 늘어난 눈빛을 하며 이내 주어진 지시를 따랐다.
***
슈수숙.
어디선가, 날카로운 바람 소리가 울린다.
이는 식물이 가진 뾰족한 기관이 급성장을 이루어 한 점으로 뻗어지는 소리였다.
-콰직!
-푹.
-콱!
그나저나 안이 이런 꼴이라 바깥 녀석들이 손을 못 쓴 거였구나…….
“아.”
나는 걸음을 멈춘 상태로 눈만 굴려 주변을 살폈다.
“이건 좀 심한데?”
침입자를 인지하면 동서남북에서 가시를 쏘아대는 적들이라니.
안윤승의 말대로 검은 돔의 안쪽은 수많은 괴물이 숲의 형태로 땅을 점령하고 있었다.
물론 에픽급 아이템과 고통 관련 신체 개조의 협업으로 대미지는 전부 무시했지만.
문제는 가시들이 지닌 미는 힘.
나는 넘어지지만 않았다 뿐이지. 사실상 핀이 꽂힌 곤충 표본처럼 이 자리에 단단히 고정된 상태였다.
“에라이.”
하지만 크게 걱정할 일은 아니지.
다행히 내게는 가시나무에 대항할 든든한 도구가 있었으니까.
나는 오른손의 손목을 꺾어 들고 있던 [히드라]의 날 끝을 주변 가시에 스치게 했다.
-!!
그러자 팔팔하던 줄기들이 불과 몇 초를 견디지 못하고 고꾸라진다.
그렇다.
히드라. 이 에픽급 무기의 독성은 자그마치 식물형에도 가리지 않고 효과적이었다.
‘그러게 누가 길을 막으래?’
게다가 히드라를 이용한 사냥법은 또 다른 유용함도 가지고 있다.
이곳에 놓인 가시나무들은 하나같이 재생력이 뛰어나 줄기를 잘라도 금세 원상 복구된다는 특징을 지니고 있었는데.
회복 현상을 멈추려면 원래 저것의 몸에 무작위로 숨어있는 물컹한 기관을 찾아내 터트리는 게 정석 공략법이지만.
이렇게 독을 활용하면 그 귀찮은 과정도 편하게 생략됐다.
수관 안으로 맹독이 풀려 핵이 알아서 고사한다.
‘됐다!’
자, 그럼 방해물도 치웠으니 어서 그 은행으로 가보실까.
‘부디, 무사하기를…….’
서걱! 슥, 콰직!
나는 모종의 기도를 떠올리며 주변의 가시나무 개체를 빠르게 줄여갔다.
개발하지 않은 숲처럼 우거져 있던 풍경에 이내 길이 났고,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 조금 더 넉넉하게 사냥을 진행하니 드디어 잃어버린 도시 풍경이 드러나기 시작하는데.
‘제발, 우리 시체가 크게 손상되지 않고 멀쩡한 상태이길!’
그 순간이었다.
쿵!
도로 한가운데에 뿌리를 내리고 있던 나무를 처치하니, 새파랗게 빛나는 건물 간판 하나가 시야 안으로 불쑥 들어왔다.
[순환은행 신수동지점]은행원들이 고립된 문제의 저층 건물.
그리고 역시나, 감각을 집중해 보면 그 안에서 익숙하고도 이질적인 마력의 감각이 느껴진다.
‘살아 있는 마법사와 달리 체내 마력 흐름이 정지한 몸.’
즉, 술사의 시체.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갔다.
아까부터 생각한 거지만, 이건 정말 천재일우의 기회니까.
‘웬 횡재냐!’
어차피 바깥은 무너져 가는 건물들을 수습하기 위해 한창 정신이 없는 와중이다.
그러니 지구인들은 생존한 동족을 챙기기도 바빠서 당분간은 돔 내의 죽음에 신경 쓰지 못하겠지.
‘저 강도의 육신은 이제 내 거야!’
시신을 숨길 방법쯤은 물론 예전부터 확실히 생각해 뒀다.
좋다. 그럼 이제 남은 일은 오로지…….
***
“꺄아아아악!”
“아아악.”
“준우 씨. 책상 밑으로! 몸 숙여. 빨리!”
쿵.
이른 아침부터 얼굴이 비칠 정도로 깨끗하게 닦았던 타일 위.
그곳으로 76kg 상당의 질량을 가진 물체가 둔탁한 소리를 내며 쓰러진다.
하지만 그것은 아까까지만 해도 물체가 아니었다.
명백한 생명이 있었으며.
심지어는 얼마나 활기가 넘치는지 실내가 온통 울리는 목소리로 ‘돈 가져와 씹새끼들아!’라고 외치기도 했었으니까.
업무를 하며 얻은 심각한 발목 부상으로 강제로 은퇴를 맞게 된 모 헌터.
그는 평생을 모은, 동시에 후유 장애를 치료할 최상위 포션을 사기엔 부족했던 전 재산을 사기로 잃게 되자 생활비와 유흥비를 충당하기 위해 은행털이를 모의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보다시피 이 빙결 술사의 범죄는 성공하지 못했다.
고문을 당하다 죽어버린 비참한 최후처럼, 실핏줄이 온통 터진 눈을 부릅뜬 시신이라니.
“으으으, 으흐흐흡……!”
“조, 조용히 하세요! 소리 내지 마요. ‘저것’한테 들킨다고요.”
주르륵.
남자에게서 터져 나온 혈액이 타일의 줄눈 사이를 적신다.
처음 비상벨을 누를 때만 해도, 이 은행원들은 어느 2인조 강도가 출동한 경찰에게 범행을 저지당할 줄 알았다.
그러나 그들의 악행은 정말이지 예기치 못한 존재에게 가로막힌다.
하필이면 이 은행의 땅 밑에 게이트가 숨겨져 있었고, 그게 지금 이 순간 터져버릴 줄이야.
-끄아아악!
운이 안 좋았다.
청원경찰의 몸을 꽁꽁 얼려 이 인간의 전신이 괴사하는 꼴을 보고 싶지 않으면 당장 돈을 꺼내오라고 한 그 퇴직자는.
은행에 나타난 나무 괴물에게 급습당해 한참을 싸우다 결국 과다출혈로 방금 사망하였고.
동료를 버리고 도망간 20대 최 모 씨는 신속한 판단으로 은행을 빠져나가는 데는 성공했으나.
결국 이쪽으로 진입하던 경찰들을 맞닥뜨려 즉시 체포당했다.
그리고 이후. 등장한 나무끼리 빠른 속도로 증식을 반복해 검은 돔이 형성되어 버린 것이다.
‘흐윽, 으으…….’
【 순환은행 🙂 】
익살스러운 이모티콘이 그려진 순환은행의 작은 투명창으로 무언가의 그림자가 비친다.
지금 이 순간에도 끊임없이 몸을 꿈틀거리며, 새끼-비행체-를 치고 있는 두려운 크기의 거대 생물.
‘흐으윽.’
그뿐만이 아니라 이곳의 내부에는 손님 석을 모조리 박살 내고 안방을 차지한 동종의 괴물이 한 그루 있었다.
이 때문에 은행 직원들은 함부로 위층으로 이동하지도 못한다.
그 나무는 마치 숨바꼭질이라도 즐기는 것처럼, 큰 움직임을 보이는 인간의 몸을 모두 꿰어 죽여버렸으니까.
덜덜덜덜.
은행원들은 괴물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도록 데스크 아래로 바짝 몸을 숨겼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숨을 죽였는데도 이윽고 그들에게 재앙이 찾아든다.
-후드드드…….
무언가 얇은 것이 빠르게 회전하는 소리.
동전 분류기의 옆에 앉아 있던 남자 은행원은 그것의 형태를 확인하자마자 호흡이 가빠진다.
‘괴, 괴물! 괴물이잖아!’
안윤승을 공격했던 그 작은 새끼 나무가 그만 깨진 입구를 타고 안으로 들어와 버렸다.
끝났다.
저게 이곳을 헤집기 시작하면, 각성자도 아닌 이들은 고통에 채 시달릴 틈도 없이 내장이 뚫려 죽을 텐데.
‘아아, 아아. 어머니, 아버지…….’
그런데 그때.
극한의 공포로 뇌가 미쳐서 이제는 환청이라도 느껴지는 걸까?
은행원들의 귀로 돌연 익숙한 형태의 소음도 함께 들어오기 시작했다.
-터벅, 터벅, 터벅.
깔끔하게 차려입은 직장인이 잠시 은행 업무를 보러 왔을 때나 날 법한 가죽 구두 소리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