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therworldly Illusion Hunter RAW novel - Chapter 5
3화. RUN
골목 끝으로 고개를 돌리자 처음 보는 이가 나타났다.
까만 정장을 차려입은 정숙한 분위기의 여성.
“선우연 헌터! 어떻게 됐습니까?”
“순경님. 그게······.”
이름은 ‘선우연 헌터’인가?
나는 들고 있던 새를 내려놓고 그들을 봤다. 그러자 익숙한 얼굴도 보였다.
“삼촌!”
“아하, 아까 그 꼬맹이.”
“제가 경찰 아저씨 찾아왔어요!”
“경찰?”
아이가 가리키는 손끝에는 푸른 제복을 입은 지구인이 있었다.
“아이고, 수고하십니다. 선생님.”
경찰이라고 불린 이는 인상 좋게 웃으며 말했다.
“몬스터가 흘러나왔다는 신고를 받고 순찰 중이었는데, 이거 마침 지나가던 헌터님이 계셨나 봅니다.”
“헌터?”
“이놈이 사고 치기 전에 잡혀서 참 다행이네요.”
처음 보는 사람을 이렇게 웃으며 대하다니. 참 친절한 외계인이군.
하지만 옆에 있는 선우연 헌터라는 사람은 표정이 좋지 않았다.
‘신고가 뜨자마자 출동한 건데······. 내가 한발 늦었을 줄이야. 이 사람은 정말 우연히 몬스터를 마주친 건가?’
으음.
무슨 생각 중인 거지.
‘자세히 보니 정공법을 사용해서 죽였네.’
선우연 헌터는 바닥에 난 흔적과 죽은 새를 훑어보며 홀로 고민하는 듯했다.
‘비기너 킬러는 푹신한 모래 지형 게이트에 사는 마수라. 바깥에선 오히려 잡기 쉽지. 돌진 각도만 잘 유도하면 손 쓰지 않고 죽일 수 있으니까. 하지만···. 그건 비기너 킬러의 속도를 대처할 수 있는 동체 시력이 있단 소리야.’
고민을 마친 선우연 헌터는 곧이어 내게 손을 내밀어 왔다.
‘그렇다면 이 사람은 최소 C급?’
나는 지구인이 손을 내미는 게 무슨 뜻인지 어렴풋이 알았다.
그래서 그 손을 맞잡아 악수했고, 상대는 가볍게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헌협에서 나왔습니다. 선우연입니다.”
“아, 네.”
“비기너 킬러를 상처 하나 없이 처리하셨네요. 근방에선 처음 보는 얼굴인데, 프리랜서 헌터신가요?”
프리···랜서?
창이 있냐고 물어보는 건가? 죽었다 깨어난 뇌는 질문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니까, 소속이?”
“네?”
“비기너 킬러 건을 협회에 보고해야 해서요.”
“······.”
“그냥 헌터증만 보여주셔도 되는데요.”
뭔가 분위기가 묘해진다.
헌터증? 그게 뭔데? 통행증이랑 비슷한 말인가? 협회는 또 무슨 협회야?
“어······.”
일단 유연하게 둘러대자.
“죄송합니다. 제가 지금 헌터증을 가지고 있지 않아서요.”
“아, 그러시군요.”
휴. 잘 넘어갔군.
한고비 넘긴 나는 언제라도 도망칠 수 있도록 퇴로를 살피고, 바로 급한 일부터 처리했다.
“잠깐. 야, 너.”
“네?”
“약속을 잊은 건 아니지?”
“아······.”
나는 경찰과 헌터를 데려온 꼬마에게 휙 손을 뻗었다.
그러자 꼬마가 쭈뼛대면서 들고 있던 것을 내밀었다. 내가 애타게 원하던 그 주황색 음식을 말이다.
‘지금 애가 먹는 걸 뺏었어······?’
나는 곁에서 선우연이 흐린 눈을 하든 말든 허겁지겁 주황색 액체를 마셨다.
그리고 그 달고 시원한 액체가 목구멍을 넘어가자, 두 눈이 절로 번쩍 뜨였다. 맛있다.
“와! 죽인다 이거!”
“내 생글탱귤······.”
원래 환생하고 잠깐은 이 몸에 꽤 불만이 있었다.
나는 식사를 하지 않고도 살 수 있게 진화한 지 오래였는데. 이런 원시적인 몸에 들어오다니. 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이제는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다. 잊고 있던 식사란 행위는··· 사실 엄청 기쁜 일이었다.
“쭙쭙쭙.”
나는 정신없이 용기 안에 있는 액체를 빨아 마셨다.
“저기요.”
그런 내 행동을 저지한 건 선우연의 차분한 목소리였다.
“서로 바쁠 테니 간단히 처리하죠. 성함을 알려주세요. 그럼 제가 협회에서 헌터 조회를 할게요.”
나는 순간 등골이 서늘해졌다.
“이름이 뭔가요?”
그야··· 나는 아직 내 몸의 이름을 모르니까.
엎친 데 덮친 격이다. 내가 제대로 된 대답을 못하고 얼어있자 선우연은 점점 이쪽을 추궁했다.
“···혹시 헌터 등록을 안 하셨어요?”
“어··· 글쎄요.”
“각성 검사는요? 검사는 했어요?”
그리고 잠깐의 대화 끝에, 선우연은 두 눈을 크게 떴다.
“당신 설마 등록도 안 하고 대로변에서 각성 능력을 썼어요? 그거 불법이라고요!”
그래. 이게 무슨 소린진 모르겠는데 내가 X됐단 건 알겠어.
선우연은 격한 어조로 내가 법을 어겼다고 했고, 그 뒤에는 작은 꼬마와 ‘경찰’이 있다.
상황 파악을 마친 나는 곧장 행동에 나섰다.
“아뇨. 당연히 등록했죠. 그런데 아까 헌터증을 달라고 하셨죠? 제가 헌터증이 집에 있어서요. 여기 계시면 금방 가져올게요.”
청산유수로 나오는 거짓말.
최대한 자연스럽게 말한다곤 했으나, 지구의 원주민 눈에는 어떻게 보일는지.
나는 그렇게 둘러대고 빠른 걸음으로 현장을 벗어났다.
다행히 그들은 멀어지는 나를 붙잡지 않았다.
‘이 길은 다시는 오지 말자!’
일이 이렇게 된 이상 제발 저들에게 추적 마법이 없기를 빌어야겠는데.
***
몇 분 뒤.
나는 익숙한 방으로 돌아왔다. 내가 눈을 뜬 바로 그 방에.
“어디 보자.”
돌아오자마자 한 일은 바로 정리 정돈이었다.
이제 와서 생각해보니 내가 이 몸의 신분도 몰랐다는 걸 깨달아서였다.
“아아, 이거다!”
다행히 도움이 될만한 물건을 몇 분 만에 발견했다.
[주민등록증] [김기려(金技勵)]김기려.
이것이 나의 새로운 이름이다.
나는 카드에 적힌 단어를 똑똑히 기억하고 방 수색을 이어갔다.
하지만 이어진 수색에서도 결국 ‘헌터증’이란 것은 코빼기도 비치지 않는 터라.
“역시 이 몸은 헌터 등록이란 걸 안 한 건가?”
이 좁은 방에서 볼만한 곳은 다 뒤졌으니. 이제 남은 건 하나뿐.
“흐음.”
나는 화장실로 향했다. 그곳 벽에는 네모난 거울이 붙어 있었다. 덕분에 환생한 육체의 모습도 처음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희한하게 생겼네.’
나는 거울에 비치는 상을 차분히 훑는다.
우선 김기려는 살구색 피부를 가졌다.
살짝 두꺼운 눈두덩이 너머로 삼백안이 심한 검은 눈동자가 보이고.
그나저나 아까 만난 동족들은 다 까만 머리카락이던데.
김기려는 특이하게도 털빛이 금색이다. 아, 자세히 보니 뿌리 쪽으로 갈수록 검은색이 살짝 섞여 있긴 하지만.
“얼룩덜룩해.”
나는 흘긋 시선을 내렸다.
이제야 내가 입고 있던 옷이 뭔지 보였다.
김기려의 착장은··· 어디서 많이 봤는데. 그래. 아까 만났던 선우연이 입고 있던 옷과 비슷했다.
나는 하얀 셔츠와 검은 재킷을 걸치고 있다.
“뭐, 아무튼.”
그럼 새로운 몸에 대한 감상은 이쯤하고.
남은 일은 화장실에 뭔가 숨겨진 게 없는지 찾아보는 것.
그리고 나는 이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발견을 하게 됐다.
“어?”
화장실에 달린 작은 선반을 열자 무언가 보였다.
네모난 상자가 투명한 비닐 안에 줄지어 있는 모습······.
그걸 보자 뇌에서 잊혔던 기억이 떠올랐다.
“담배. 몸 주인이 자주 피우던 거야.”
기억이 또 하나 늘었다. 그래. 이 시체는 담배라는 것을 입에 달고 살았어!
“나 골초였구나!”
방금 먹은 아이스크림의 당분 덕일까?
드디어 뇌가 조금씩 굴러가기 시작하는데, 나는 이 순간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다.
“이 빌어먹을 새끼가 골초였다고!”
그래서··· 그래서 마법이 안 나왔구나!
나는 그만 다리에 힘을 풀고 주저앉아버렸다.
애연가.
이게 마법사에게 있어서 얼마나 치명적인 문제인지 아는가?
지금까지는 뭉뚱그려 ‘마력’이라고 표현했지만.
사실 마법에 쓰이는 연료는 ‘외부 마력’과 ‘내부 마력’으로 분류된다.
외부 마력.
이건 말 그대로 밖을 돌아다니는 마나다. 지구에 흩어진.
그렇다면 내부 마력은 뭘까?
바로 생물의 몸 안을 순환하는 마력이다.
마법사들은 소량의 체내 마력을, 외부의 마력과 결합해 복합체를 만든다.
또한 그게 마법을 실행하는 데 쓰이고···.
그러면 여기에서 잠깐.
마법사가 체내의 마력을 외부 마나와 만나게 하려면, 무슨 기관을 쓸까?
그 기관이란··· 바로 호흡계에 있다.
폐.
“이런 제기랄!”
마법사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핵심 기관은 폐다.
그런데 김기려는 흡연자다. 나는 담배를 발견하자마자 왜 내가 마법을 발동할 수 없었는지 단번에 알아챘다.
이 몸은 이미 폐가 시커멓게 망가져 마력 교환을 할 수 없는 상태에 빠져 있다!
“대체··· 마력이 있으면서 무슨 깡으로 폐를 망가트린 거지?”
알파우리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선천적인 장애로 마력을 못 다루는 게 아닌 이상, 국민 대다수가 마법을 쓸 수 있던 만큼 다들 폐를 각별히 여겼기에.
연기를 빨아들여 스스로 폐를 망친다는 발상은 누구도 하지 않았다. 이건 지구인만의 정신 나간 발명이었다.
미친 자식들아!
“왜······!”
하지만 슬픔은 오래가지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마음을 갈무리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 진정하자.”
이미 벌어진 일인데 뭘 어쩌겠어.
이건 마력의 양에 눈이 멀어 결함 시체를 걸러내지 못한 내 탓이다.
나는 마음을 굳게 먹었다. 설령 마법을 영영 쓰지 못하게 되더라도···.
“분명 뭔가 방법이 있을 거야. 몸을 고칠 방법이.”
지구에서의 삶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나는 앞으로 이 새로운 땅에서 평생을 살 것이다.
행복하게.
반드시.
***
화장실 조사를 마치고 10분 정도가 지났을까?
좋은 소식과 나쁜 소식이 있다.
우선 나쁜 소식부터 말하겠다.
“으윽.”
나는 신원확인을 마치자마자 배에서 느껴지는 공복감에 신음을 흘렸다.
‘아직 지구에 대해 조사할 게 산더미인데.’
먹은 것이라곤 아침에 뺏어 먹은 그 작은 아이스크림이 전부니까.
이쪽은 몹시 배가 고팠다.
당장은 마법도 쓸 수 없으니, 영양이 부족한 상태를 어떻게든 자력으로 해결해야 했다.
그럼 이제 좋은 소식을 말하겠다.
나는 인간이 어디에서 영양분을 얻는지를 기억해냈다.
“이렇게 가까운 곳에 먹을 게 있었다니!”
건물에서 나와 오른쪽 골목으로 들어가면 있는 곳인데, 간판에 [순희네 돼지국밥]이라고 적혀 있다.
나는 그곳에서 아주 간단히 음식을 얻을 수 있었다.
가게 주인이 ‘돼지국밥 하나?’라고 묻는 말에 ‘네, 하나요.’라고 대답했을 뿐인데 음식이 한 상 가득 나왔으니까.
드디어 내내 시달리던 공복감에서 해방됐다.
“헉! 이것도 맛있다.”
지구인들의 음식은 너무 뜨거워서 식히는 데 고생 좀 했지만. 뭐, 맛은 있었으니 됐지.
음······.
정정하겠다.
좋은 소식과 나쁜 소식이 하나 있다는 말을 취소하겠다.
나쁜 소식이 둘 있다.
에너지원을 제공하는 곳을 알아낸 건 좋았는데, 계산을 해야 한다는 건 한발 늦게 떠올라서 말이다.
그러니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지금 파출소에 있다.
가게 주인이 무전취식으로 신고해서 경찰 두 명에 의해 연행된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