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therworldly Illusion Hunter RAW novel - Chapter 50
48화. 헌터 범죄 (3)
박준태도 행인이 없다는 걸 눈치챈 걸까.
“인마, 나는 정직하게 살자가 좌우명이야.”
그는 여유로운 태도로 대화를 주도해나갔다.
내가 제안에 관심을 보인 이후로는 다행히 살기가 다소 누그러졌다만.
그렇다고 상황이 나아졌다는 건 아니었다.
“어쨌든 이직할 마음은 있나 보네? 야, 진짜 잘 생각했어! 우리 쪽으로 오면 일도 재밌게 할 수 있고, 게다가 애들도 다 착해.”
그 말끔한 인상의 남성은 활짝 웃으며 말한다.
“자, 그럼 자세한 이야기는 내 아지트에서 하자. 아직 서로 궁금한 게 많잖아.”
하지만 당장은 조직에 가입하는 척하면서 위기를 모면한다고 쳐도, 그다음은?
모르는 사람을 따라가면 안 된다는 건 5살 난 애도 아는 상식이다.
괜히 장소를 이동했다간 더 복잡한 문제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지 않나.
‘F급 마력으로는 어딘가에 갇히면 혼자 탈출할 수가 없어!’
확신이 들었다.
이놈에게서 도망치려면 지금밖에 없다는 모종의 확신이.
그래서 나는 순간적으로 말을 멈추고 깊은 생각에 빠졌다.
“왜 그래? 혹시 마음 바뀐 건 아니지?”
“…….”
“참고로 저기 있는 보안 카메라들은 내가 오면서 깨부쉈거든? 그냥 알아두라고.”
일단 그는 현재 상당한 여유를 부리는 중이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해치울 수 있는 상대 앞에서 서두를 필요가 없겠지.
“그런데 너 진짜 F급이긴 했었나 보다. 만나기 전까진 몰랐는데 실제로 보니 각성치가…….”
근거 있는 자신감이었다.
이처럼 저 인간도 이 자리에서 김기려의 끔찍한 마력 상태를 확인했으니까.
박준태는 나를 향해 씩 웃다가,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 땅에 내던졌다.
‘그림자 덩어리?’
잠깐 봤는데, 아마도 빠른 이동을 할 때 쓰는 마도구인 듯싶다.
“…야, 너 사실 우리 쪽으로 올 생각 없지?”
하지만 약 3초 뒤.
내가 여전히 입을 다물고 있으니 그도 슬슬 낌새를 눈치챈 건지. 돌연 추궁을 던졌다.
“아니요.”
“아니긴 뭐가 아니야. 딱 봐도 그렇구만.”
그가 한 발자국 앞으로 나온다.
이쪽은 그에 맞춰 한 발자국 물러났다.
“진짜 미안한데, 우리 조직엔 세뇌 스킬 쓸 수 있는 놈이 없거든.”
“그래서요?”
”네가 자꾸 이렇게 나오면 방법이 하나밖에 없어요.”
자, 침착하자.
당장 이 길목에 사람이 없다 뿐이지 여긴 공원이다.
조금만 탐색 범위를 넓히면 꽤 많은 행인을 찾을 수 있었다.
또한 나는 언제나 호주머니에 마력 증폭제를 담고 다닌다.
지금은 그가 안 보는 사이 몰래 이를 사용한 상태였다.
‘구강으로 섭취하는 것보다는 훨씬 느리지만.’
있는 힘껏 주먹 쥐어 손톱으로 손바닥에 상처를 내고.
이렇게 드러난 혈관에 물약을 적시면 임시방편은 됐으니까.
“날 죽이려고요?”
어쩔 수 없다.
역시 이거 혼자서 어떻게 해볼 만한 사안이 아니야. 도움을 요청해야 해.
안윤승이든 경찰이든 불러야겠다.
“하, 그거야 당연히.”
그리고, 이런 난장판을 보면 바깥의 누군가가 신고해줄지도 모르는 일이지.
“네가 경쟁자에게 붙는 걸 보느니……. 음?”
우수수수…….
어딘가, 먼 곳에서부터 수많은 나무가 잘게 가지를 떠는소리가 울린다.
그리고 세차게 내리는 소나기와도 같은 이 소리가 귀에 닿을 무렵.
“무슨.”
박준태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들어 소음의 방향을 확인했다.
나는 굳이 이와 같은 행동을 하지 않았다.
이미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아니까.
-구르륵 구르륵.
-깍깍! -찌르르르르르…….
-삐이이이이-. 삐이이이이-.
이게 지금의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다.
간단히 말하겠다.
나는 죽기 살기로 마법을 시전해 뒤쪽 산에서 멀쩡한 새의 주검을 죄다 모아왔다.
“새?”
공원 사람들과 저 지구인의 이목을 빼앗기 위해 거대한 소음공해를 일으켰다는 거다.
-삑삑삑삑삑삑.
-까아아아악! 까아아아악!
“윽!”
죽은 새의 집합체로 이루어진 검은 구름이 파드드 날아든다.
박새, 멧비둘기, 까마귀.
종을 가리지 않고 모여든 새들은 성대가 찢어져라 소리 지르며 나와 박준태 주변을 돌았다.
“뭐 하는 짓이야!”
어찌나 수가 많은지. 그들의 날갯짓이 모두 모이니 부풍이 불어닥쳤다.
“이 새끼, 역시 감정사가 아니었……!”
근데 사실 이게 끝이야.
이거 보기에만 화려하지 공격력이 0이거든?
F급의 마력으로 조종하는 이상. 이 까마귀들로 몸통 박치기를 한다 한들 상대에게 흠집 하나 못 내니까.
‘켁.’
예상대로 마나도 불과 몇 초 만에 동났다.
뚝. 이어서 수십 마리의 새들이 움직임을 멈추고 바닥에 맥없이 떨어졌다.
‘역시 이렇게 많은 수는 무리였나…….’
하지만 그것으로 충분했다.
상대가 새에 정신 팔린 사이 휴대폰을 들어 112를 누르는 데 성공했거든.
‘어차피 내 신체 능력으로는 도망쳐봤자 금방 잡혀. 이렇게 된 이상 죽어도 저 자식은 신고하고야 만다. 팔찌의 보호막이 몇 초는 더 벌어주겠지!’
나는 악에 받친 마음으로 호흡을 들이켰다.
원래는 휴대폰 마이크를 향해 이 억울함을 호소할 생각이었다.
“──잠깐! 멈춰!”
하지만 손에 든 휴대폰을 얼굴로 들어 올리기도 전에, 상대방 쪽에서 고성이 터져 나왔다.
“살려주세요!”
어…….
내가 하려고 했던 말을 왜 자기가 하는 건지 잘 모르겠는데.
“아, 아하하. 우리, 대, 대화로. 대화로 합시다.”
박준태가 갑자기 자세를 낮춘다.
그는 얼굴이 새파랗게 물들어 있었다.
***
박준태.
또는 표나길.
이름부터 생김새까지. 어느 것 하나 사실인 게 없던 그 남자는 자신도 모르게 진실한 공포감을 표현하고야 말았다.
믿을 수 없는 일이다.
-까아아아악! 까아아아악!
처음에는 이게 웬 새들인가 싶었지.
물론 자신은 커팅 외에도 몇 가지 스킬을 가지고 있으니, 이 정도 물량쯤은 거뜬히 상대할 수 있을 거로 생각했건만.
-삐이익…….
-찌르르…….
그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가고야 말았다.
김기려는 새를 부리는 능력을 보이기 위해 이들을 부른 게 아니었으니까.
“…!”
몇 초 뒤.
순식간에 소음이 사라졌다.
활기차게 지저귀던 새들이 그 목소리를 잃고 일제히 추락한 것이다.
후두두둑.
하늘에서 떨어지는 시체 비를 보고 있자니 머릿속이 얼어붙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 어떤 전조 없이, 손조차 대지 않고 생물을 죽이는 힘.
그가 알기로 이런 작용을 할 수 있는 스킬은 세상에 단 하나였기에.
‘저주 계열 헌터…….’
발현자 수가 손으로 꼽히는 희귀 계열이지만, 저주 헌터가 한국에 2명쯤 있다고 해서 크게 이상할 일은 아니지.
문제는 다른 곳에 있었다.
‘새가 즉사했어.’
박준태는 찰나에 떠올렸다.
최근, 에스더를 암살하기 위해 수집하던 저주 스킬의 정보들을 말이다.
저주는 전형적인 상태 이상 부여 스킬.
사실 이것 하나로 싸운다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었다.
보통은 저주만으로 무언가의 목숨을 빼앗을 수 없었으니까.
기껏해야 행동이 좀 둔해지게 만들거나, 짧은 정신착란을 주거나…….
동물의 원초적인 생존 본능은 실로 강력한 방어기제였다.
그런데 이를 무시하고 생물을 저주만으로 죽이는 것이 가능했던 건. 지구상에 딱 한 사람뿐.
‘이럴 수가.’
서에스더.
저주에 의한 생물의 떼죽음은 그 S급 헌터나 할 수 있는 짓이었다.
그런데 지금 펼쳐진 이 광경은 다 뭐란 말인가.
‘이 자식, 도대체…….’
혼란에 빠진 박준태는 두서없이 시선을 돌렸다.
그러자 섬뜩한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윽!’
김기려 헌터.
그가 일말의 감정 변화 없이 이쪽을 주시하고 있다.
왜 진작 눈치채지 못했을까.
F급에 불과한 주제에, 상대는 여태껏 이어진 살해 협박에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그야말로,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설마 각성치를 이렇게까지 떨어트리는 아이템이 있었다고……? 내가 위장에 당한 거야?’
이후로는 생각할 틈도 없었다.
박준태는 눈을 질끈 감고 소리쳤다.
“살려주세요!”
새의 떼죽음은 경고 사격이다.
저 남자는 지금 자신의 힘을 과시하며 이쪽의 반응을 살피고 있는 거다.
‘여기에서 까딱 잘못했다간 저주에 당한다!’
박준태는 겉으로는 투항하는 척하면서도, 속으로 이를 갈았다.
이쪽이 무엇 때문에 그 많은 공을 들여 [나이트 워커]를 구했던가.
저주는 특히나 사거리가 길기로 유명한 스킬이었다.
즉, 자신의 능력과는 최악의 상성.
원래는 은신 스킬로 이 차이를 극복할 생각이었다.
조용히 거리를 좁히고, 불의의 기습을 할 수만 있다면 나머지는 압도적인 공격력으로 해결됐을 터인데.
‘큭…….’
저 금발의 헌터에게는 그마저도 먹히지 않는다.
“살려달라고……?”
투명인간을 알아보는 눈.
의지만으로 생물을 죽일 수 있는 능력.
오히려 이건 에스더보다 까다로운 상대이지 않나.
“아, 여보세요. 뭐 좀 신고하려고 연락드렸습니다.”
기려는 투항한 남자를 고요히 살피다, 손에 쥐고 있던 휴대폰을 들어 올렸다.
“여기 △△시민공원인데요.”
이런 상황에서 느긋하게 통화나 하고 있다니, 제정신인가?
“지금 각성 사고 났으니까 빨리 좀 와주세…….”
박준태는 상대가 방심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슬쩍 거리를 좁히려 들었는데, 이쪽이 다리 근육을 움찔하자마자 기려가 턱, 휴대폰 마이크를 손바닥으로 덮었지.
“움직이지 마.”
김기려의 태도가 바뀌었다.
그는 목소리를 내리깔고 고압적인 말투로 박준태를 제지했다.
이쯤 되면 본인도 슬슬 상대가 뭔가를 착각했다는 걸 알아차렸거든.
“허튼 짓거리 하면 너도 거기에 널린 새들처럼 만들어주지.”
김기려는 언제 겁에 질렸느냐는 듯 살벌이 협박을 던졌다.
뻔뻔하기 그지없다.
하지만 박준태는 이 연기에 깜빡 속아 넘어갈 수밖에 없었다.
“아, 아, 알겠어요.”
김기려라는 남성은 객관적으로 봤을 때 제법 인상이 싸늘하다.
물론 단순히 눈빛이 좀 무섭다고 남을 과대평가하는 경우는 잘 없지만….
상대는 외계인이라는 특성 때문에 하는 행동도 묘하게 뒤틀려있는 때가 많아서.
“갑자기 말을 멈춰서 죄송합니다. 형사님, 언제까지 와주실 수 있을까요?”
바로 지금처럼.
김기려는 종종 뜻하지 않은 공포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었다.
“네. 알겠습니다.”
위험한 놈이다.
박준태는 휴대폰을 손에 든 남자를 보며 그렇게 생각했다.
상급 각성자에 속하는 자신이 버젓이 눈을 뜨고 있는데도 저렇게나 차분히 통화하다니.
이건 이쪽을 적수로 여기지도 않는다는 뜻 아닌가?
‘제길!’
체급 파악에 실패했다. 적어도 박준태는 그렇게 생각한다.
온갖 강력 범죄를 일으키고 다닌 대범한 악당이라도 제 목숨은 아까운 법.
결국 박준태는 눈치를 살피다 기려의 경계가 느슨해진 틈을 타 도망쳤다.
“어?”
뻔히 감지되는 행동이지만 막을 수는 없었다.
‘이런! 저걸 잊고 있었네.’
상대가 아까 바닥에 깔아두었던 마도구를 타고 도주했으니까.
검은 그림자에 휩싸인 남자가 순식간에 모습을 감춘다.
기려는 참았던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일단 어떻게든 넘기긴 한 것 같은데.
“여기 맞지?”
“와, 이게 뭐야. 다 시체인가?”
“아유, 불쌍해라~”
잠시 뒤.
한바탕 불었던 난리 탓인지 공원의 시민도 하나둘 이곳으로 모여들었다.
이를 가만히 살피던 기려는 얼마 안 가 인파 사이에서 익숙한 제복을 발견했다.
경찰이 왔다.
“음?”
그런데 왠지 덤으로 끼어있는 사람이 눈에 띄는데…….